엔터테인먼트

스타와 파티의 날들

2016.03.17

by VOGUE

    스타와 파티의 날들

    〈보그〉 오피스로 특별한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제15회 부산영화제에 모인 화려한 영화인들을 위해 아시아 매니지먼트사들이 연합해서 ‘프라이빗 파티’를 하는데, 오로지 〈보그〉만 그 자리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낯가리는 나르시시스트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1. 흥겨운 디제잉. 2. 파티의 호스트 박중훈. 3. 김보연과 전노민 부부. 4. 흥에 겨운 여배우들. 박솔미와 김혜나, 한혜진.

    작년 이맘때쯤, 부산을 찾았으니 꼭 1년 만이다. 그러니까 파라다이스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이병헌과 조시 하트넷을 1950년대 이탈리아의 클래식한 마초처럼 연출했던 게 벌써 1년 전이다. 그때 거대한 영화 조명과 사진 조명, 카메라 장비와 야외 세트를 위한 천막, 컴퓨터 리터칭 시스템, 전기발전용 장비는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수영장 한복판에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방불케 하는 세트를 만들어냈고, 스펙터클한 두 명의 영화 스타는 해운대 하늘 아래서 섬광처럼 빛났다. 제14회 부산영화제가 환호한 찬란한 별이 2009년 〈보그〉11월호 표지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올해 파라다이스 호텔은 거의 텅 빈 듯한 느낌이다. 영화제 본부와의 불화로 모든 스타와 게스트들이 그랜드 호텔과 센텀시티로 숙소를 옮겼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15회 부산영화제에 지난해 같은 초특급 게스트는 없었다. 중국의 탕웨이와 일본의 아오이 유우가 오프닝을 장식한 최고의 해외 스타. 유혹적인 레드 카펫 드레스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했던 김혜수 대신 〈하녀〉 의 헤로인 전도연이 T-팬티가 드러나는 전신 시스루 드레스로 즐거운 가십을 만들어낸 정도. 영화 저널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올리버 스톤 감독과 한국에 이어 아시아의 영화 강국으로 부상하는 태국의 공주가 방한한 것이 영화제 데일리에 짧은 뉴스로 소개됐다. 장동건이나 이병헌 등 무게감 있는 대형 스타가 빠진 자리는 〈만추〉의 현빈과 〈아저씨〉의 원빈 등, 두 잘생긴 ‘빈’브라더스가 채웠다. 특히 〈포화 속으로〉 라는 첫 영화로 첫 레드 카펫을 밟은 빅뱅의 탑(최승현)이 남자 스타들 중에서 가장 핫한 비주얼을 선사했다. 어떤 면에서 올해 부산영화제의 가장 핫한 스타는 일흔이 넘는 관록의 영화인, 김동호 위원장과 김지미 여사였다. 15년간 부산영화제를 이끌어 온 김동호 위원장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임하면서, 50년 영화 인생을 정리하는 ‘김지미 회고전’을 가장 의미 있는 행사로 주최했다. 신구 영화인들을 화합시키기 위한 김동호 위원장의 노력으로, 이번 영화제는 당대의 자본과 인기가 훼손시킬 수 없는 영화예술사 고유의 ‘Respect’를 제시했다.

    1. 언제나 유쾌한 박중훈의 건배 제안. 2.  기자와 영화 의 프로듀서 스팀 리. 3. APAN 파티를 기획한 나무 액터스의 김종도 사장. 4. 진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왕지혜. 5. 태양의 황홀한 공연.

    어쨌든 내가 이번 제 15회 부산영화제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 연예매니지먼트 협회(Asia Pacific Actors Network)에서 주최하는 특별한 파티인 ‘APAN party’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부산영화제가 열리기 몇 주 전, 〈보그〉 오피스로 중요한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부산에 모인 화려한 배우와 영화인들을 위해 매니지먼트사들이 연합해서 ‘프라이빗 파티’를 하는데, 오로지 〈보그〉만 그 자리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사진가 KT로부터 칸에서 열리는 베니티페어 파티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이번 파티에 무척 호기심이 일었다. 멋지게 차려 입은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지만 주최측은 이번 파티를 좀더 캐주얼하고 프라이빗하게 진행하고 싶어 했다. 드레스 코드는 ‘진’이었다. 맙소사! 세상에 온갖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이 ‘날 좀 해주세요!’라고 기다리고 있는 마당에, ‘진’이라니! “영화제 공식 행사의 긴장은 잊은 채 맘껏 춤도 추고 즐겨야죠. 드레스를 입으면 아무래도 뻣뻣해지니까요.” 말하자면 이건 배우들이 주인공인 배우들의 파티.

    10월 8일 저녁, 그랜드 호텔로 가기 전에 식당에서 배우 현빈을 만났다. 그는 〈만추〉 시사회를 마치고 한껏 고조돼 있었다. “영화 꼭 보세요. 김태용 감독님이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드셨어요.” 현빈과 탕웨이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산 혹은 서울에서 〈보그〉와 촬영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탕웨이가 자국의 영화 촬영 스케줄 문제로 오늘 시사회 직후 밤 비행기를 타고 떠났기 때문에, 우리는 한 달 후를 기약하기로 했다. 호텔 앞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검정 밴이 내 앞에서 스르르 문을 열었다. “여기서 뭐해요? 빨리 타요!”세상에, 이재용 감독과 김민희, 윤여정, 일명 〈여배우들〉 팀이다. 〈보그〉의 화보 촬영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여배우들〉도 부산에 초대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 그런데 〈보그〉의 여배우들에겐 왜 초대장이 안 온 거지? 갑자기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수기 휴양지 같은 파라다이스 호텔에 비해 ‘배우 파티’가 열리는 그랜드 호텔은 스타와 팬들의 집결지다. PIFF 안내판과 자원봉사자들, 스타들의 밴과 일본 팬들로 북새통이다. 2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배우 윤정희와 김동호 위원장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이곳은 마치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레미따주 호텔 같은 분위기군. 모든 방이 영화 스타와 영화인, 패션 스태프들로 가득 찬 보물상자 같으니! 파티장엔 나무액터스 김종도 사장이 최종 점검을 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김상경 소속사인 국엔터테인먼트 국세환 대표가 비공식 의전 담당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상경 씨는 부산에 왔지만, 오늘은 참석이 힘들 것 같아요”라는 비보를 전하며.〈하하하〉로 세 번째 인연을 맺은 홍상수 감독과 김상경은 애증이 뒤엉킨 부부 같은 관계로 어디선가 또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겠지.

    1. 클래식한 스트라이프 더블 재킷 안에 진 셔츠를 매치해 멋을 낸 봉태규. 2. 새벽에 도착해서 파티의 여흥을 돋운 오광록. 3. 의 헤로인 최강희와 에 향단이로 나온 류현경. 4. CN블루 강민혁. 눈이 마주치면 큐트하게 ‘치어스!’를 외치는 배우들. 5. 댄디한 김지운 감독. 6. 와 로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유준상. 7. 배우들의 영원한 맏형 안성기.

    제일 먼저 등장한 배우는 역시나 박중훈. 갭티셔츠에 아르마니 진, 디젤 청 재킷과 뉴욕에서20달러 주고 산 모자를 매칭한 그는 80년대 영화〈철수와 미미의 청춘 스케치〉에 나온 철수 같았다. “시계는 프랭크 뮐러예요. 요걸로 중심을 잡았지.하하.” 박중훈은 이 ‘배우 파티’를 발족시킨 장본인, 말하자면 오늘의 호스트다. “배우들이 함께 모일 기회가 없잖아요. 그래서 안성기 선배와 처음 이 파티를 만들었어요. 영화계의 올드 멤버, 뉴 멤버가 좀 다같이 어울려서 얘기도 하고, 아시아 감독들, 제작자들과 함께 비즈니스도 하자는 거죠.”

    박중훈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드디어 스타들이 하나 둘씩 파티장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성기, 한혜진, 왕지혜, 봉태규, 지성, 최강희, 류현경, 유인나, 박솔미, 유준상, 이소연, 김보연과 전노민부부, 오광록, 김지운 감독과 이광모 감독… 그리고 올해 처음 레드 카펫을 밟은 빅뱅의 탑과 2AM의 임슬옹. 평범한 듯 보이지만, 파티와 진을 매치시키기 위해 엄청 신경 쓴 것이 분명한 룩을 선보이며. 파티장은 배우들뿐만 아니라, 매니지먼트계의 막강한 실력자들과 해외 저널리스트, 프로듀서들이 모여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고, 서서히 DJ 부스에서 틀어대는 현란한 라운지 음악이 파티장 안의 흥분을 고조시켰다.“배우들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오늘의 파티는 중요해요. 드라마와 영화의 캐스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도 하니까요.” NOA의 양현승 실장의 말이다. 옆에서 YG 엔터테인먼트의 김성훈 실장이 오늘의 스페셜 공연으로 빅뱅의 멤버 태양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고 운을 띄웠다. “저기 보세요. 형인 탑이 응원을 왔죠.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현빈, 하지원과 출연하고 있는 YG의 신인 유인나도 이 자리에서 인사를 시킬 겁니다.”

    오! 초록색 빈티지 재킷을 입은 탑은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단연 빛나 보였다. 내가 〈포화 속으로〉영화가 근사했다고 하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처음 레드 카펫을 밟았는데, 설렘 반 걱정 반이었죠. 평소에 빅뱅 동생들하고 다닐 땐 편했는데 어제는 혼자서 정말 중압감이 컸어요. 차승원 형은 아프고, 권상우 형은 드라마 때문에 바쁘고…, 아르마니 블랙 턱시도를 입고 갔는데 다행이 반응이 괜찮은 거 같네요.”개인적으로 제작한 초록색 재킷에 블랙 빈티지 진을 입은 탑은 〈포화 속으로〉의 이재한 감독을 자신의 의형제라고 소개했다.“감독님이 제 내면의 문을 열어주셨죠.” 예상과는 달리 그는 파티를 즐기지 못하는 성격이며, 조용히 12시에 공연할 태양을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옆에 앉은 임슬옹에게 “나가서 춤 좀 추면서 놀아요”라고 했더니, 그가 버버리 프로섬 진 셔츠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전2PM이 아니라 발라드하는 2AM이라….” 그의 첫 데뷔 영화이자 신세경, CN블루와 함께한 〈어쿠스틱〉은 오늘 남포동 메가박스에서 상영됐다. “이곳은 천국 같아요. 평소에 제가 존경하는 영화 스타들이 여기 가득하네요.” YG의 탑과 JYP의 임슬옹이 가수가 아닌 신인 영화 배우로 쑥스러운 인사를 나누는 사이, 박중훈이 동석해서 ‘건배’제의를 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망사 스타킹에 가죽 재킷, 블랙진 핫팬츠를 입은 탤런트 한혜진은 클러버 분위기를 풍기지만, 클럽엔 딱 한 번 가봤다. “춤은 못 추지만,저도 연예인 구경하는 게 신기해서 마구 기분이 업되는 걸요. 아무도 불러주진 않았지만, 드레스 차려입고 레드 카펫에 서는 건 여배우로서 특권이잖아요.” 반면 박솔미는 부산영화제를 여섯 번째 방문한 영화제 베테랑이다. “박중훈 선배는 늘 헬스 클럽에서 마주치는데, 배우 파티 에서 보니까 반갑네요. 〈핸드폰〉이 마지막 영화였는데, 어서 빨리 영화 현장에서 다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1. 태양의 공연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빅뱅의 맏형 탑의 근사한 포옹. 2.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나온 지성. 3. 귀여운 연기파 배우 황우 슬헤.4. YG의 탑과 JYP의 임슬옹이 가수가 아닌 신인 배우로 인사를 나눴다.

    유준상은 영화 〈하하하〉로 부일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뒤늦게 뛰어들어와서 어리둥절하다. “오늘 컨셉이 진이라구요? 오! 나도 모르게 블랙 진을 입고 있군요.” 배우들이 서로 쑥스러움과 설렘에 차서 섞이는 모습이 마치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파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저 사람이 누군가를 묻기도 하고,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는 감독에게 신인 배우를 소개시키기도 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자정이 되면서 시작된 태양의 하이라이트 공연은 배우들을 거의 실신상태로 몰고 갔다. 호피무늬 점퍼에 선글라스를 낀 태양의 퍼포먼스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태양이 “형님!”을 부르자, 탑이 달려 나왔고, 이 멋진 청년 뮤지션은 서로를 포옹했다. 탑은 태양이 있어서, 태양은 탑이 있어서 정상에서 빛나 보였다.

    태양의 공연에 가장 열광한 사람은 최강희와 류현경. 〈애자〉의 헤로인인 최강희는 루즈한 분홍색 스웨터에 진 팬츠 차림이다. “부산영화제는 매년 와요. 전 배우로서보다 영화 팬으로서 여길 찾죠. 이스라엘, 러시아 그런 흔히 접할 수 없는 나라의 영화들을 골라서 봐요.” 〈방자전〉에서 향단이로 나온 류현경은 그녀의 베스트 프렌드. “저 친구도 연기한 지 10년 됐어요. 우린 오늘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즐기려구요.”스트라이프 더블 재킷에 클래식한 안경을 쓴 봉태규는 제발 호텔 로비만은 레드 카펫을 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람들이 너무들 쳐다봐요. 그럴 땐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들거든요.” 그는 안 보이는 동안 대학로에서 〈웃음의 대학〉이라는 연극에 출연했으며, 〈청춘-그루브〉라는 청춘 영화에도 참여했다. 배우들과 함께하는 와중에도 비밀리에 영화 홍보가 이뤄지고 있다. 〈헤븐〉이라는 F1을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 중인 황일 감독은 “한국 영화사상 가장 미친 영화가 될 것”이라고 내게 열변을 토했다. “한국, 일본, 미국 합작 영화예요. 내년 초크랭크인 할 건데, 정말 대단할 거예요. 기자 역을 찾고 있는데, 출연해줄 수 있나요?”오 마이 갓! 난데없는 캐스팅 제안이라니! 〈헤븐〉의 여자 프로듀서 스팀 리는 〈LA 타임스〉 지부장을 대동한 채 글래머러스하게 파티장을 헤집고 다녔다.

    〈투 타이어드 투 다이〉의 진원석 감독은 좋은 배우를 물색 중이고, 이병헌을 할리우드에 소개한 윌리암 모리스 에이전시의 캐스팅 디렉터 테레사 강도 눈을 빛내며 넥스트 스타를 찾고 있다. “현재는 박찬욱 감독이 소속돼 있죠. 배우는 역시 이병헌이구요. 참, 전 〈보그〉를 열 살 때부터 보고 있어요. 〈보그〉에는 화려함이 있고 꿈이 있잖아요. 할리우드처럼요.” 테레사 강은 이병헌 소속사의 해외 파트를 맡고 있는 찰스와 친밀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한편 나는 이병헌, 한채영, 김민희, 한효주 등을 이끌고 있는 BH엔터테인먼트의 손석우 대표와 즉석에서 10월말에 스타트할 〈보그〉와의 도네이션 화보 미팅을 잡았다. 그런 와중에도 탕 웨이의 한국 에이전트인 권효진은 화장실 앞을 가로막고 다시 한번 내게 〈만추〉가 얼마나 아름다운 영화인지를 설명했다. “말로 표현이 안 돼요! 〈색, 계〉의 탕 웨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니까요!”

    배우와 감독, 영화인들은 점점 취해갔고, 부산영화제에서 가장 사적이고 공적인 밤이 깊어만 갔다. 작년 같은 엄청난 야외 세트도 없고, 시간에 쫓기는 긴박감도 없이 사진가 KT가 멋진 블랙 수트에 블랙 진을 입고 조용히 배우들의 파티를 기록했다.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KT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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