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윤, 긍정의 힘으로 날아오르다

윤시윤은 돈과 권력의 황금문을 향해 비상하는 이카루스과의 청춘 스타가 아니다. 기록적 시청률의 〈제빵왕 김탁구〉로 장외 홈런을 날린 이 성실한 청년은 연기자를 평생의 직업 삼아 자신의 항로를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 팔봉빵집의 탁구가 가르쳐준 긍정의 힘으로 윤시윤이 날아오른다. 총천연색 날개를 힘껏 펼치고.

슬림한 블랙 수트는 디올 옴므(Dior Homme), 도트 패턴의 실크 스카프는 란스미어(Lansmere), 큼직한 42mm 스틸 케이스와 악어가죽 스트랩의 클래시마 이그제큐티브 오픈 밸런스 시계는 보메 메르시에(Baume&Mercier).

그레이 컬러의 치노 셔츠는 버버리 런던(Burberry London), 풍성한 실루엣의 배기 팬츠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비비드한 컬러의 슬림한 타이는 프라다(Prada), 브라운 스웨이드 슈즈는 일 치르코(Il Circo at San Francisco Market).

턱시도 재킷은 폴 스미스(Paul Smith), 슬림하게 떨어지는 화이트 셔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세라믹 소재의 골드 보타이는 콜 신 라브 돌리(Cor Sine Labe Doli at 10 Corso Como), 실버 안경은 레트로 스펙스(Retro Specs & Co.), 고급스러운 악어가죽 스트랩의 클래시마 이그제큐티브 오픈 밸런스 시계는 보메 메르시에(Baume&Mercier).

푸드득. 날아오른다. 데뷔 2년 차에 잊지 못할 국민 드라마를 남긴 윤시윤의 날갯짓이 만만치 않다. 그런 그의 어깨와 팔다리를 차지한 건 갓 태어난 앵무새와 알록달록한 새 떼들이다. 그리고 윤시윤은, ‘새타령’을 방불케 하는 이 소란스러운 촬영장 한구석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성난 눈썹에 머리는 한껏 세운 상태였다. 용감무쌍한 노란 새는 아예 그의 머리 위에 둥지를 틀고 어여쁜 콧등에 입을 맞췄다. 콕콕콕. 그러거나 말거나 위험천만한 새들의 움직임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멋진 연기를 펼치는 중에도, 그의 한 손엔 하늘색 가죽 케이스에 담긴 좋은 말씀.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상품가치로서의 파워를 지닌 스타가 아니라, 이 친구가 한마디 하면 누구든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은 착한 마음이 생길 것 같은 호소력을 지닌 희망의 키워드 말입니다. 제가 더 나이가 들었을 땐 그런 배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잠깐. 대체 여기는 어디고, 이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각박한 세계에 청춘 스타의 옷을 입고 등장한 신인 사도라도 된다는 말인가? 게다가 반짝이는 눈빛은 진심이다.

야구로 치자면 윤시윤은 생애 처음으로 정규 리그에 출전해 쓰리런 홈런을 때린 행운의 타자다. 〈제빵왕 김탁구〉의 평균 시청률은 36%, 최고 시청률은 50.8%을 기록했다. 지난해 열풍을 몰고 온 〈선덕여왕〉보다도 높은 수치다. 굳이 야구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가 데뷔 전엔 일주일에 두 번씩 야구장을 찾을 만큼 야구광이었던데다, 그 시각 대구에서는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두산 팬이다. 그리고 야구는 인생과 닮았다. 드라마 주인공의 드라마 같은 실제 삶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말하자면 데뷔 타석이었다. 처음으로 프로들의 카메라 앞에 선 이 생짜 신인배우는 제법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병욱표 시트콤에서 매력 없는 인물이 존재한 적 있던가? 그건 순전히 캐릭터 게임에 능한 감독의 역량 덕분이라고만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바로 다음 작품에서, 그것도 30부작 드라마라는 엄청나게 큰 경기를 성공으로 이끌 줄은, 그것도 주인공이라는 4번 타자의 부담감을 안고 쓰리런 홈런을 때릴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사춘기 소년을 연기함에 부족함이 없었던 앳된 외모는 20대 중반의 그가 다음 커리어를 쌓는 데엔 오히려 방해 요소였고, 정극 연기 경험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 역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분들이 걱정하는 것의 열 배, 천 배는 더한 것 같아요. 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어요. 내가 약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김탁구는 자동차로 보면 약 200km/h로 밟아야 하는 친구예요. 그냥 무작정 질주만 하는 게 아니라 슬픔의 짙은 농도라든가 변화되어 가는 모습도 담아야 했고, 긍정의 힘도 줘야 했죠. 전 사실 80km/h밖에 나가지 않는 소형차고, 아직 길도 들여지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런 데서 오는 두려움이 있었죠.”

시청률을 타점과 비교할 수 있다면 작품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심정은 아마 홀로 마운드에 올라선 투수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고 도망치진 않았다. 그는 직구로 승부했다. “지금 제가 연기를 잘하려고 한다는 게 더 웃기고 건방진 거죠. 이제 막 한글을 배우는 네다섯 살짜리 꼬마가 밤새 코피 쏟으며 배운다는 건 우스꽝스럽잖아요. 열심히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으니 조급하게 제 자신을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한 신, 한 신이 거듭될 때마다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건, 거짓말은 안 하겠다는 약속이었어요. 슬프지 않은데 슬픈 척,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척, 이런 거 말이죠.” 이런 경우, 연기는 그날의 컨디션과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다행히 스태프들은 그를 믿고 기다려줬다. 감정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오히려 윤시윤의 그런 감성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배우의 진심은 시청자들에겐 곧 탁구의 진심으로 다가왔다. 결국 그는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연기 테크닉에서의 완전함이 아니라, 그 자체가 김탁구였다. 처음부터 윤시윤을 믿었던 강은경 작가는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기적 같은 아이’라는 찬사로 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했다.


독특한 텍스처의 블랙 셔츠와 팬츠는 디올 옴므 옴므(Dior Homme), 딥 퍼플 컬러의 스웨이드 슈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브라운 컬러의 스트랩 시계는 보메 메르시에(Baume&Mercier), 강렬한 레드 컬러의 수트 케이스는 콜롬보(Colombo).

불과 2년 전 이맘때의 평범한 연기학과 대학생 윤시윤과는 꽤 달라진 상황이다. “음… 마트에서 보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네요. 손님들 오면 인사하고, 물류 창고에서 짐도 나르고.” 데뷔 전 그가 PC방부터 고깃집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이며 피팅 모델까지 어지간한 종목은 죄다 섭렵한 아르바이트의 달인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 “태어날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연기자 지망생에겐 언제 끝날지 모를 캄캄한 ‘벤치 워머(BenchWarmer)’ 의 나날이었다. 힘들고 슬픈 날엔 그만의 팔봉빵집, 고향 순천을 떠올렸다. 맞벌이를 하러 먼저 서울로 올라간 부모님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중학교 때까지 함께 살던 시골 마을이다. 아침 6시면 약수물 뜨러 산에 오르고 비오는 날이면 논두렁을 뛰어 다녔다. “베갯잇이 젖을 정도로 울다 잠든 날엔 노을 질 무렵 흙을 밟으며 집으로 걸어가던 꿈을 꿔요. 평소엔 별로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는데, 제 기억에 가장 행복하고 편안했던 때가 그때였나 봐요.”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의외로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니까 이게 그런 거죠. 반드시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줄 거라는 거. 따뜻하게 웃어줄 거라는 거.” 하지만 하늘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은 들더라고요. 어른이 된다는 게 하고 싶은 걸 포기할 줄도 아는 건데, 만약 이 길이 아니라면… 내 욕심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힘들 게 아는 게 아닌가. 그런데도 하고 싶다. 진짜 하고 싶다.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놓지 못했어요. ‘포기할게요. 그래도 진짜 하고 싶어요.’ 그런데 참 모든 사람의 인생엔 드라마가 있는 것 같아요.” 캐스팅 스토리는 극적이다. 딱 그때였다. 복잡한 마음에 친구들과 동해로 여행을 떠났을 때, 해변에서 지금의 기획사 매니저가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지붕 뚫고 하이킥〉을 만났다. 김병욱 감독은 오디션 현장에서 옷을 찢고 물건들을 집어던져가며 온마음과 온몸을 다해 싸우는 장면을 연기하는 윤시윤을 주저 없이 선택했다. 심지어 그때 날라온 플라스틱 통이 감독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췄는데도 말이다. “제 인생에 구원 투수가 있다면 김병욱 감독님이죠. 처음으로 배우로 태어나게 해주신 분이니, 지금 카메라 앞에 있는 윤시윤의 부모님은 김병욱 감독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첫 촬영은 급식실에서 식판에 머리를 박는 장면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의 풍경과 느낌만큼은 생생하다. “콜 시간보다 한 시간을 일찍 갔어요. 인사도 드려야 하고 분위기에 적응도해야 하니까. 스태프분들이 분주하게 장비를 옮기고 계시는데, 나 한사람 촬영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토록 많은 준비가 들어간다는 게… 예전에 첫 광고를 찍었을 때처럼 또 내가 그 장면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가슴 벅찼어요.” 확실히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시트콤이 끝난 후엔 자기 나이 또래의 역할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캔디 같은 캐릭터와 착한 작품을 만나고 싶다고 인터뷰 때마다 말해왔다. 그러자 김탁구가 찾아왔다. “어느 별에서 탁구가 그 얘기를 듣고 와준 것만 같아요. 정말 그런 느낌이었어요.”


단추 여밈 부분이 핸드 크래프트 자수로 장식된 블루 셔츠는 폴 스미스(Paul Smith), 울 소재 베스트는 롤리앗(Roliat at San Francisco Market), 다크 블루 팬츠와 블랙 에나멜 슈즈는 프라다(Prada), 비비드한 컬러의 실크 타이는 프라다.

블랙 도트 패턴의 셔츠는 꼼 데 가르쏭(Comme des GarÇons at 10 Corso Como), 블랙 턱시도 베스트는 닐 바렛(Neil Barrett), 옐로 컬러 보타이는 드랙크스 런던(Drakes London at San Francisco Market).

강은경 작가는 첫 미팅에서 “긍정의 힘을 믿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물론이었다. ‘촌스럽고 단순하지만, 솔직함과 정직함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선한 매력이 있는 녀석.’이라는 탁구는 곧 윤시윤이라는 청년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걸 운이 좋다고만 마무리 지어버리면 다른 분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줄 거예요. 이게 결코 운이 아닌 노력의 결과였다는 걸 증명해 보일 필요가 분명히 있어요. 물론 저도 나름대로는 노력을 했겠죠. 하지만 저보다 훨씬 더 노력해온 분들이 많잖아요? 현 시점이 마치 어떤 대단한 노력의 결과처럼 미화된다면, 그분들에겐 실례가 될거에요. 이럴 때일수록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려고 해요.” 뚝심 있는 탁구처럼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마음의 밭에 뿌리내릴 수 있게 된 건, 사람들 덕분이다. 드라마 속에 팔봉 선생네 식구들이 있었다면 현실에서는 가족과 신앙,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윤시윤의 마음 밭에 물을 뿌리고 그를 가꿔준다. “지금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저를 잡아주는 건 사람이에요. 중심의 그건 제 고집도 아니고, 내 생각도 아니고, 내 것이 아니에요. 올바른 사람들의 올바른 이야기들이 절 만들어줘요. 그렇다고 제가 듣는 능력이 뛰어나거나 그릇이 넓은 사람도 아니에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고개를 숙일 수 있고,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저를 곧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6년째 계속해오고 있는 봉사활동을 통해 맺은 숱한 인연 역시 그 중 하나다. 꽃동네에서 3만 포기의 김장을 담그고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지체 장애인들의 시설과 보육원, 병원을 찾았다. “처음엔 어려운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주려고 갔어요. 하지만 그게 오만이더군요. 그분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만남일 뿐이고,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고 오는 거죠. 사랑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이긴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당장이라도 결혼할 수 있다. “20대라는 건 뜨겁게 사랑해야 할 나이잖아요. 외롭다거나 욕구에 의해 만나는 게 아니라 건강한 마음에서 건강한 만남으로 이뤄진 사랑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가장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사랑을 통해 경험하는 건데, 그게 얼마나 삶을 성숙시켜줄까요? 그리고 그 삶을 표현하는 게 연기잖아요.” 오히려 젊은 배우의 괜한 스캔들을 걱정하는 에디터에겐 “배우라서 조심해야 할 것은 나쁜 행동들이지, 왜 사랑을 조심해야 하냐”고 반문한다. 윤시윤은 돈과 권력과 대중의 환호가 기다리는 황금문을 향해 비상하는 이카루스과의 청춘 스타가 아니다. 흔히 그 또래들이 열광하는 자동차나 값비싼 치장에는 관심도 없다. 연기자를 평생 직업 삼은 그는 진짜 날개로 자신의 항로를 스스로 개척해나간다.

악천후 속에서 열린 이날의 야구 경기는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왜 지역 구단이 아닌 다른 팀을 응원하는 거예요?” 문자 중계결과를 알려주며 그에게 물었다. “천재적인 선발 투수라든가 뚜렷한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한 야구가 아니었거든요. 원래는 그래서 좋아했어요. 수비는 노력의 힘인데 그 수비의 디테일이 좋아서요.(웃음)” 윤시윤은 그런 사람이다. 성실하고, 팀 플레이를 할 줄 아는 배우다. 두 작품에 불과하지만 그 점만은 분명하다. “때로는 희생 플라이도 용감하게 칠 수 있는 연기자가 된다면 좋겠어요. 나보다 상대 배우를 더 돋보이게 함으로써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결국 홈런과 희생 플라이는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해요.” 팔봉빵집의 김탁구가 아닌 윤시윤으로 잠시 지상에 발을 디딘 그는 또 한번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에 또 어디까지 날아갈까? “예전엔 사람들 앞에 내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이젠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건강하고 아름다운 윤시윤의 비행을 기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