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신성 캐리 멀리건

변화무쌍하면서도 절제된 탁월한 연기력, 짧은 블론드 헤어만큼이나 개성적인 외모, 그리고 25세란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사려 깊은 연기철학과 인생관… 지금 할리우드의 신성 캐리 멀리건을 둘러싼 칭찬은 끝이 없다. 최근 신작 두 편을 선보인 그녀가 오뜨 꾸뛰르의 베스 트 룩을 입고 〈보그〉 카메라 앞에 섰다.

NATURE WONDER최근 캐리 멀리건의 연기는 무대와 스크린을오가며 빛을 발하고 있다. 존 갈리아노가만든 디올 꾸뛰르 컬렉션은 풍성한 꽃잎 같은실루엣으로 활짝 핀 한 송이 꽃을 연상케 한다.그녀가 입은 핸드 페인팅된 새틴 오간자튤 드레스는 디올 오뜨 꾸뛰르(Dior HauteCouture), 모자는 빈티지.

BEHIND THE CURTAIN“영화 촬영장보다 극장이 더 편하죠. 제가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껴요.” 자신은 영화보다무대에서 더 강하다고 캐리는 고백한다.실크 튤과 머슬린 코사지가 장식된골드 세퀸 드레스는 샤넬 오뜨 꾸뛰르(ChanelHaute Couture).

SHOW DOWN부드러운 곡선과 딱딱한 직선이 만났다.길고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어주는가는 뼈대 위로 얇고 부드러운실크 오간자가 더해져 물결치는 형태를완성했다. 드레스와 롱 장갑은 발렌티노오뜨 꾸뛰르(Valentino Haute Couture).

스물다섯 살의 캐리 멀리건(Carey Mulligan)은 연극과 영화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2008년 그녀는 런던과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체홉의 〈갈매기(The Seagull)〉에서 니나 역을 완벽히 소화해내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2009년 영화〈언 에듀케이션(An Education)〉을 통해 60년대 런던의 10대 소녀 역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이후 유럽과 미국을 바쁘게 오가며 14개의 상을 휩쓸었고,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를 포함, 12개 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리고 지난 9월엔 미국에서 그녀의 신작 두 편이 개봉되었다.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한 섬뜩한 경고라 할 수 있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Wall Street:Money Never Sleeps〉에서 캐리는 고든 게코의 냉정한 딸 위니 역을 맡았다. 이 비즈니스 드라마에서 사적인 이야기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그녀는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이 영화의 감정적인 부분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마크 로마네크가 연출한 영화 〈Never Let Me Go〉—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알렉스 갈란드가 완벽하게 각색한 작품—에서 보여준 절제된 탁월한 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재 그녀는 새로운 ‘잉글리시 로즈’로 떠오르며 심오한 감정의 깊이를 전달하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할리우드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오스카 시즌 이후 캐리 멀리건은 〈월 스트리트〉 속편 촬영장에서 만난 상대 배우 샤이아 라보프와 행복한 사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철저히 보호하기로 동의한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아주 단호하다. 가끔 함께 있는 모습이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영화와 관련된 파티에도 함께 참석하지 않는다. “레드 카펫 위에서 포즈를 취할 때면 저와 관련 없는 것들을 팔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른 누군가와 공식 석상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하는 건 마치 ‘우리는 커플로 왔어요! 우리 두 사람을 사시겠어요? 결혼식이나 성인식용으로 딱이랍니다!’ 라고 떠드는 것 같아 보여요”라고 캐리는 말한다.

영리하고, 호기심 많고, 상냥한 캐리와 LA에서 보낸 며칠 동안 우리는 하염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많은 매장에 들렀지만 물건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혼자서 여행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녀의 아이팟에는 로라 말링, 케이트 러스비, 그리고 에밀리아나 토리니의 음악이 가득 들어 있다. 그녀는 시나 참고자료 등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구글로 검색하고, 서점에서는 맘에 드는 희곡들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녀의 취향은 예상 외로 아주 대중적이다. 〈네버 렛 미 고〉의 대본 연습 때 그녀는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하는 앤드류 가필드에게 전혀 가식적이지 않은 배우라는 인상을 남겼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을 나열해 보라는 물음에 모든 배우들은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을 꼽으며 잘난 척을 했죠. 하지만 캐리가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이라고 얘기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라고 앤드류는 말한다.

〈갈매기〉의 뉴욕 공연에서 마샤 역으로 출연한 후 그녀와 가까운 친구가 된 조 카잔은 캐리와의 첫만남을 회상하며 그녀의 섬세함, 유쾌함, 그리고 장난꾸러기 같은 매력에 매료되었다고 말한다. “강한 정신력이나 유머 같은 건 없는 순진한 소녀를 기대했지만 캐리는 그와 정반대였어요.”

그녀는 오늘 줄무늬 스웨터를 입고 왔다. 그리고 한쪽 무릎 밑이 크게 찢어져 있는 프라다 팬츠를 입고 있었지만 팔다리는 길고 우아했다. 오드리 헵번과 비교되던 짧은 머리는 많이 자란 상태였지만, 그녀를 어린아이처럼 보이게 만드는 보조개는 여전했다. 지난번 런던에 있었을 때 그녀는 해열 진통제를 구입하려다 신분증을 제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결국 빈손으로 약국을 나와야 했다. 우리는 공중 곡예 수업, 케이크 굽기, 해변에서 자전거 타기, 중고품 교환 모임, 그리고 묘목밭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천천히 느긋하게 돌아다니고 싶어 했다. 덕분에 종종 그녀 내부에 있는 자석에 이끌려 호텔 정원에 들어가곤 했다. 그녀는 베니스 쪽으로 자신의 차를 몰았다. 베니스에서 그녀는 파멜라 바리시의 애봇 키니 매장 윈도에 걸린 체크무늬 드레스를 칭찬하며 한참을 서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그녀는 열성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좋은 건 바로 홀 푸드(Whole Foods)인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여자다.

베니스에서 점심을 먹으며 그녀는 자기 나이의 두 배 정도 되는 연극 배우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웨이터에게 립 아이를 주문하고, 자신이 드레스에 가장 많이 지불한 액수는 5백 파운드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처음 참가한 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에 가기 전 구입한 자스민 디 밀로의 드레스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취향은 아주 고상해서 무릎 위로 올라가거나, 타이트하거나, 소녀 같거나, 우스꽝스러운 것은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사양한다. 평상시에는 어반 아웃피터스와 버버리를 입는다. 지난 오스카 시상식 때 그녀는 작은 나이프들, 포크들, 가위들이 달린 프라다를 입었고, 미국 영화배우 협회(Screen Actors Guild)시상식 때 입었던 랑방 드레스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알버 엘바즈를 만났을 때 그에게 완전히 반했어요. 그는 너무나 친절하고, 재미있고, 현실적이고,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 않는 사랑스러운 남자였죠.” 그녀는 여배우가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할 때 그에 뒤따르는 전리품들에 상당히 무심하다. 패션 광고들을 거절해왔고, 몸에 착용하는 주얼리는 자신의 홍보 담당자들인 제시와 니콜에게서 선물로 받은 달랑거리는 작은 금팔찌뿐이다. 그녀는 일 년 중 많은 시간을 LA에서 보내고 있지만, 포토샵과 보정 속옷과 보톡스로 자신을 바꾸려고 한 적이 없다. 170cm의 키에 53kg인 그녀는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한다. “누구처럼 보이고 싶으세요?”라는트레이너의 물음에 배우처럼 보이고 싶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고 대답했다. “가장 말랐을 때는 맹장 수술을 하고 난 직후였어요. 런던에서 〈갈매기〉를 공연하고 있을 때였죠. 체중이 50kg까지 내려갔는데 그렇게 마르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이 제가 이곳에 왔을 때 할리우드의 만연한 압박감에 의연할 수 있었던 이유예요. 저는 여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영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고요. 모든 사람을 밟고 서야 한다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에요. 저는 겨우 스물다섯 살이고, 다른 누구보다 뛰어나지도 않고 그저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걸 배우고 싶을 뿐입니다.”

그녀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칭찬할 때 사용하는 형용사는 ‘믿음직하다’는 단어다. 믿음직한 배우, 믿음직한 시, 믿음직한 역할. 그녀는 그런 믿음직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암만의 한 호텔에서 일하는 동안 만났고, 그녀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런던에서 메이페어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3년 후 그는 하노버와 뒤셀도르프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인수했다. 그들은 호텔 맨 꼭대기 층에 있는 호텔 매니저 아파트에서 살았다. “대저택 같은 곳에서 산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호텔 직원들은 우리를 위해 일하지 않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팀의 일원이었어요. 마치 꼬마 웨이터들 같았죠.” 캐리와 오빠 오웨인은 웨일즈 출신인 어머니의 엄격한 지시에 따라 자신들의 방을 늘 깨끗하게 정돈해야 했다. 그들은 독일어로 대화를 나눴고, 세탁실에서 놀며 라디에이터 뒤에서 애완용 기니피그를 잃어버리거나 룸서비스로 비엔나 슈니첼을 주문해 먹었다.

그녀가 여섯 살 때 오빠 오웨인은 뒤셀도르프의 국제 학교에서 〈왕과 나〉에 캐스팅되었고, 곧 그녀도 합류했다. 그녀는 금발을 검게 염색했다. 아버지가 비엔나에 있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경영하기 위해 그곳으로 떠났을 때 그녀는 영국의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월딩햄에서 학교 연극에 몰두하면서 주로 남자 역할을 맡았지만, 그런 건 별로 상관없었다. 별로 소녀답지 않았고 남자역할이 더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나 홀로 집에〉였다. “저는 매컬리 컬킨이 되고 싶었어요.” 그녀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도 되고 싶었다. 열여섯 살 때는 슈퍼 히어로 파티를 열었다. 그녀는 등에 풀 먹인 딱딱한 종이로 만든 거북이 등껍질을 붙이고 〈닌자 거북이〉의 레오나르도로 분했지만 친구들은 모두 캣우먼으로 변신하곤 했다.

READY FOR ANYTHING“나는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실패는 곧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라는문장은 캐리가 좋아하는 존 키츠의시 구절이다. 작약꽃무늬가 프린트된 자카드드레스는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발렌시아가(Balenciaga by NicolasGhesquiere), 목걸이는 발렌시아가아카이브(Balenciaga Archives), 핑크컬러의 새틴 장갑은 라크라시아(LaCrasia).

STANDING FIRM1947년 크리스챤 디올이 선보인 혁명적인바 재킷은 이후 복식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모던한 페플럼 실루엣에 프릴을 더한레드 컬러 재킷과 리본 모양의 라피아 벨트는디올 오뜨 꾸뛰르(Dior Haute Couture),프라다(Prada) 팬츠는 멀리건 본인의 것.

GRASS ROOTS멀리건은 연기에 대해“누군가의눈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자극시킬 수 있어야해요”라고 말한다. 프린트된 오간자 톱과티어드 코튼 드레스, 라피아 벨트는디올 오뜨 꾸뛰르(Dior Haute Couture).

배우 줄리안 펠로우즈가 〈고스포드 파크〉의 각본과 제작 과정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그녀의 학교를 방문했다. 그녀는 배우가 되는 것에 대해 조언을 구했지만 “변호사와 결혼하거라”라고 답해줄 뿐이었다. 캐리는 열일곱 살 때 부모님에게 말도 없이 런던의 드라마 학교들에 지원했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사라 케인이 자살하기 직전에 쓴 〈4.48 Psychosis〉의 독백 부분을 선택한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곧 대리인을 구했고, 토어 벨프레이지는 지금도 그녀의 영국 에이전트다. “캐리는 학교를 졸업한 상태였고, 아주 사랑스러웠어요. 저는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부모님의 청소부가 동네 곳곳에서 일하는 걸 보조하며 일거리를 찾아 다녔다. 담당자의 눈에 띄길 바라며 일링 스튜디오로 심부름을 다녔고, 열여덟 살 때는 밤에 바텐더로 일하기도 했다. 그녀가 받은 연기 교육은 주말에 진행되는 즉흥 워크숍이 전부였지만, 얼마 후 줄리안 펠로우즈의 아내가 〈오만과 편견〉의 오디션에 그녀를 연결해 주었다. 펍의 지하실에서 술통을 바꾸면서 그녀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키티 베넷 역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여동생 역을 연기하러 가기 몇 주 전까지 계속 바텐더로 일하며 기쁨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열다섯 살 때 주디 덴치와 연기하는 생생한 꿈을 꾸곤 했어요. 톰 크루즈가 아니라 늘 주디 덴치였지요. 잠에서 깨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 울곤 했어요. 그런데 〈오만과 편견〉을 찍던 첫날 촬영장에 갔더니 그곳에 주디 덴치가 있었죠.”

열아홉 살 때 그녀는 BBC의 멋진 시리즈로 만들어진 〈블리크 하우스〉에 에이다 클레어 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그 후 런던의 로얄 코트에서 이언 릭슨의 연출로 무대에 오른 〈갈매기〉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분한 아르카디나의 상대역인 니나 역을 따냈을 때 그녀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다.

“제게는 나쁜 일이 일어난 적이 없어요. 실연을 당해 본 적도 없고요. 살면서 별로 극적인 일이 없었어요. 연기할 때 참고할 만한 내장이 끊어질 듯한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거죠. 이언은 아주 뛰어난 연출자였기 때문에 그는 제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을 심어주곤 했어요. 그러면 저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폭넓은 감정을 가지게 됐죠.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너만의 세계를 만들어봐. 실제 네 삶을 이용하지 말고.’ 저는 니나 역을 위해 여러 가지 인용문들, 그림들, 그리고 시들이 가득 담긴 책을 만들었어요. 마치 대학 졸업 논문같이 그 역을 연기하기 위한 자격 조건 같은 것이었지요. 저는 훌륭한 사람들이 쓴 글들을 참고로 해서 역할을 창조할 뿐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읽고 제 것으로 소화하는 거였죠.”

“가장 멋진 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였어요. 저는 관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그건 정말 멋진 일이었어요. 하지만 전 매 순간을 믿었어요. 그래서 〈갈매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죠.” 30년 전 메릴 스트립이 했던 말을 반복하며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건 모자를 쓰는 것과 같죠. 저는 집에 오는 길에 그 모자를 차 안에 두고 내립니다.”

배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캐리에 대해 칭찬 일색이다. “그녀가 연기한 니나에 비교하면 아르카디나는 추잡스러울 정도였어요. 그녀는 아주 뛰어난 차세대 배우예요. 체홉을 연기하려면 염세적이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것을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감정이입에 뛰어난 배우지요.” 영국 신문들은 그녀를 “놀라울 정도로 빛이 난다” “참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아주 뛰어나다”고 평했다. 〈뉴욕 타임스〉의 벤 브랜틀리는 그녀가 연기한 “유쾌하게 순진하면서도 단호한 니나는 취약함뿐만 아니라 그녀의 야망 안에 감춰진 허기, 즉 탐욕스러운 생기를 잘 포착해냈다”라고 썼다.

우리는 3번가에 있는 이자카야에서 다시 만나 점심을 먹었다. 그 이자카야는 캐리가 〈언 에듀케이션〉을 찍기 전에 머물렀던 올란도 호텔 근처에 있다. “버스를 수백만 번은 탔을 거예요. 택시는 너무 비쌌으니까요. 산타 모니카에 아침 10시 30분에 도착하려면 8시에 출발해야 했지요.” 영화 배우 겸 감독인 워렌 비티가 그녀와 어떤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을 때 이 버스 얘기를 듣고는 그녀에게 기사가 딸린 자신의 벤츠를 제공해주었다. 그는 그녀와 친구가 된 첫 중년 남자는 아니다. 그녀는 〈블리크 하우스〉에서 미스터 잔다이스로 출연한 데니스 로슨과도 친해졌다. 두 사람은 런던의 월슬리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점심을 먹고 식사 후 함께 제임스 록&코로 모자를 사러 가곤 한다.

“〈언 에듀케이션〉 이후로 힘든 일은 제가 나이 든 남자를 좋아하는 열여섯 살 여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죠”라고 그녀는 말했다. 작년에 많은 프로젝트들이 소문으로 돌았지만 확정된 건 이언 매큐언의 소설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를 각색한 영화에 출연하는 것뿐이다. “누군가를 제치고 성공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전략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한 적이 없어요.”

진줏빛 팬케이크에 돌돌말린 게를 먹으며 캐리는 한 가지 역할에 정체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네버 렛 미고〉 촬영이 끝난 후 에이전트가 저를 앉혀 놓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일하지 않을 때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똑같은 역할을 반복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지금과 동떨어진 시대극, 60년대와 관련된 작품, 혹은 여학생이나 우쭐대는 사람을 연기하고 싶진 않아요. 코르셋차림의 영국 소녀보다 비열한 역할을 해보고 싶죠”라고 그녀는 말한다. 독립 영화나 휴먼 스케일의 영화들이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선택을 제한하고 있지만 언젠가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아마 캐리는 영원히 연기를 계속할 거예요”라고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말한다. “그녀는 세상을 자신의 손 안에 쥐고 있어요. 할리우드의 상업적인 면을 벗어나 때론 일을 쉬면서 자신의 시간을 갖고 성급하게 상품이 되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캐리는 다시 연극을 하고 싶었다. 〈성녀 조안(Saint Joan)〉. 어쩌면 〈로미오와 줄리엣〉? “저를 감동시키는 문장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몇 시간이고 인터넷을 뒤지게 만드는 작품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요.” 그녀는 마침내 잉그마르 베리히만의 영화 〈유리를 통해 어렴풋이(Through a Glass Darkly)〉를 각색한 작품으로 뉴욕 무대에 설 예정이다.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연예인’이 되는 게 두려워요. 토크쇼에 출연한다면 저에 대한 사실들이 담긴 사인을 들고 있다가 그냥 나올 것 같아요. 아마 1분도 채 안 걸릴 테니 그 시간을 다른 게스트들을 위해 쓸 수 있겠죠.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겠고, 저를 다른 배우로 착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예전에 출연했던 작품에서 저를 기억하지 못하길 바라요. 사람들이 일단 저와 관련된 모든 사진들과 이야기들을 접하고 나면 스스로를 어떤 캐릭터로 받아들여야 되는지에 관해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정말 짜증나는 일이지요.”

우리 둘 다 이미 영화 〈네버 렛 미 고〉를 본 상태였지만, 이제 영화가 완전히 마무리되었고 레이첼 포트만의 음악도 완성되었다. 캐리는 20세기 폭스사의 작고 낡은 시사회실에 앉아 비평가 같지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영화를 봤다. 그 후, 그녀와 나는 비벌리힐스 호텔의 인공 낙원이라 할 수 있는 폴로 라운지 가든으로 향했다. 영화의 원작인 이시구로의 책은 장기를 얻기 위해 복제 인간들이 사육되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강렬하고 사색적인 소설이다. 시나리오를 쓴 알렉스 갈란드의 완벽한 관점과 감독인 마크 로마네크의 비전,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영화로 각색된 이 작품은 책이 주는 감동을 그대로 전해준다. 멀리건은 캐시. H라는 인물로 분해 영화 내내 내레이션을 한다. 그녀는 능력있고, 진지하고, 믿음직한 젊은 복제 인간인 28세의 ‘간병인’이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차갑지만 인정 많은 미스 에밀리가 운영하는 클론 견본 학교인 헤일섬에서 캐리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루스로 등장한다. 얼마 전 스파이더 맨으로 캐스팅된 배우이기도 한 앤드류 가필드는 두 여자 모두가 사랑하는 소년 토미역을 맡았다. 영화 후반부에 토미는 시골 길에서 자동차에서 내려 비명을 지른다. 그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셰임(Shame)〉에 등장하는 막스폰 시도우만큼이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가슴 아프고 섬세한 역을 맡은 캐리는 이 영화가 일종의 예언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한 연민과 힘을 전해준다고 말한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캐리 같은 재능 있는 배우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깊이 있고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미니멀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없었어요.”

LA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인 하시모토에서 캐리는 아프리카 나리가 피어 있는 통로를 걸어가다 퓨셔와 장미 덤불 사이에 쓰러져 있는 무거운 화분 2개를 무의식적으로 일으켜 세웠다. “새집들을 갖고 싶어요. 새집들이 걸린 벽 말이에요.” 하시모토 바로 옆에 있는 야마구치 가든에는 벌새 먹이통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마리화나용 물 파이프처럼 생겼다. 캐리는 데킬라 병을 거꾸로 세워 만든 먹이통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직접 선택한 토마토, 풋콩, 해바라기, 양파, 당근, 딸기, 수박, 그리고 고추 씨를 뿌려 놓은 친구의 정원에 매달아 두기 위해 그걸 구입했다. 그녀가 뿌린 씨들은 모두 가정용 채소밭에 심을 만한 것들이다. 실용적이고, 미니멀하고, 신중하고, 별나고, 탁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