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시대

순진한 소년과 비열한 사내 사이에서 생물학적 수컷의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박해일. 새 영화 〈심장이 뛴다〉에서 거친 호흡을 보여줄 박해일식 성장담.

넓은 라펠의 부드러운 가죽 코트와 터틀넥은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

3년 전 박해일을 인터뷰하러 가던 중, ‘해일이 온다’라는 주문에 걸맞게 나는 자유로에서 자동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도 외상은 없었고, 몹시 흥분한 채 스튜디오로 달려온 나의 무용담을 들은 그는 침착하게 웃으며 말했다. “스턴트를 하고 오신 거네요. 뵙게 돼서 다행입니다.” 신인 때나 잘나갈 때나 연기할 때나 일상 생활에서도 박해일은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다. 심박동의 흥분이 느껴질 법한 영화 〈심장이 뛴다〉의 컨셉에 맞춰 스튜디오에서 소품용 붉은 피와 거친 식물 다발 앞에서 설전을 벌이는 사진가와 나를 보고도 그가 건넨 첫마디는 “이발하셨네요”였다. 헝클어진 머리에 초록색 야전 점퍼를 입고 있었고, 아무도 쓰지 않는 2G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박해일은 변함없이 즉흥적이고 ‘부끄러움’ 이 없다. 한마디로 뻔뻔한 소년 같다고나 할까.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땀과 물에 젖어 ‘불놀이야’를 부를 때나, 〈살인의 추억〉에서 끝내 선의의 피해자 얼굴로 송강호를 좌절시킬 때나, 〈질투는 나의 힘〉에서 “누나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라고 배종옥에게 칭얼댈 때나, 〈연애의 목적〉에서 “지금, 젖었죠?”라고 강혜정에게 치근댈 때나, 〈괴물〉에서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화염병을 던질 때나, 어쩜 그렇게 타인에 대한 ‘죄의식’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민망함’이나 상황에 대한 ‘쭈삣거림’이 없을까?

나는 박해일이 단 한 번도 신파적인 표정을 짓거나 복잡다단한 인간의 고뇌를 과장되게 표현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런 거대하고 애매한 주제들도 박해일의 작은 얼굴과 쌍꺼풀 없는 눈에 이르면 매우 직설적인 화법으로 정리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돌려 20대 청년기의 박해일을 만났을 때도 이른 새벽 절간에서 듣는 농담 같은 그의 어투는 여전했다. ‘시니컬하다’라는 말을 듣자 대뜸 “시니컬이 무슨 뜻이죠?”라고 묻고 “아! 냉소적? 부끄럽군요. 영문과 다녔는데…”라고 말한다. 그 다음 그것을 만회하듯 진지하게 돌아오는 선문답. “저는 말입니다, 제 삶에 매번 깊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또 ‘나르시시스트가 무슨 뜻이냐’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자기애라는 설명을 듣고는 심사숙고하는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강우석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이나 영화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몸 속에 다른 기운과 규칙을 받아들이게 돼요. 일종의 알고리즘 같은거랄까요.”

나는 무식과 유식의 간극이 이토록 큰 박해일에게 “혹시 머리의 아이큐보다 몸의 아이큐가 높은 게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이 책을 잘 읽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박해일은 결코 이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반면 아주 영리하고 응용력이 뛰어나다. 그는 자신이 얼굴이 작아서 순수함과 얍삽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얼굴 지름이 0.5cm만 더 컸어도 박해일의 연기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얼굴이 크면 좀더 무기력해 보이거나 반대로 무력적으로 보이지 않던가.

내가 몇 년 전 그의 영화 시기를 관객의 입장에서 초기의 정화의 시대(〈와이키키 브라더스〉〈질투는 나의 힘〉〈살인의 추억〉등의 ‘박해일적인’ 청춘물)와 후기의 배설의 시대(〈연애의 목적〉〈괴물〉)의 관점에서 설명할 때도, 그는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그러고는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 정리했다. “말하자면 제가 콩팥과 오줌인 거네요. 하하.” 그리고 강우석 감독의 〈이끼〉 이후 지금의 박해일을 제3기인 ‘심장의 시기’라고 하자 그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어쩌면 역학 관계와 같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내레이터 톤으로 하자면 감독과 배우의 줄다리기죠. 초기엔 감독의 관점에서 저라는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연애의 목적〉부터는 감독의 관리에서 삐져나와 제 자신을 맘껏 던져보았죠. 최근 들어서는 그런 과정을 자양분 삼아 시대에 맞게, 나이에 맞게 저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다시 박해일식의 직설적인 응용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정화와 배설, 심장과 콩팥의 시기를 거쳐 정맥과 동맥의 컨트롤을 잘 해야 하는 심장의 시기가 왔어요. 그러니까 손발이 저릴 땐, 서큐란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에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연기의 흐름을 관객과 배우의 입장에서 관찰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3년 후쯤엔 다시 박해일의 연기가 ‘간과 허파의 시기’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낄낄거렸다.


블랙 스트랩이 네크라인에 부착된 화이트 컬러의 톱은 릭 오웬스(Rick Owens), 발목까지 오는 슬림한 팬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그리고 지금, 박해일은 릭 오웬스의 통자루 같은 화이트 롱 티셔츠를 입고 맨발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기(모양을 한 식물)를 양 손에 들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신하균이 장기 밀매업자에게 콩팥을 떼인 후 알몸으로 고속도로변에 내동댕이쳐질 때의 찢겨지고 뜯긴 후의 하드보일드함보다는 좀더 우화적이고, 〈괴물〉에서 송강호가 한강변의 간이의료용 차량에서 미군들에게 해부되기 직전에 도망쳐 나올 때의 온몸이 바늘로 찔리는 듯한 풍자성보다는 좀더 고상하다.

하릴없는 룸펜 같기도 하고, 뭔가 고매한 목적을 지닌 희생자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는 놀랍게도 광채가 난다. 마치 근대의 한길목에서 ‘또라이’ 처럼 사랑에 목숨 걸던 〈모던 보이〉와 〈소년 천국에가다〉처럼 몽유적인 무드를 풍겼다. 얼어붙은 겨울 공기 속에서 거친 호흡을 내뿜는 흑백 컷에서는 〈타짜〉의 조승우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류승범을 섞어놓은 듯한 세련된 야생성이 풍겨져 나왔다. 나는 그가 정말 영화 배우답다고 생각했다. 〈이끼〉에서 강우석 감독과의 작업 후 박해일은 좀더 선이 굵고 직선적인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심장이 뛴다〉라는 이번 영화에서 그는 딸을 구하려는 김윤진과 댓구를 이뤄 어머니를 구하려는 양아치 아들을 연기했다. 뇌사 상태인 엄마의 심장을 김윤진의 딸에게 이식해주려다, 다시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캐릭터. “이번엔 뜨거운 양아치인가요?”라고 내가 물었다. “적절한 표현이네요. 정말 쉽게 말하면 저는 엄마를, 김윤진은 딸을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각자 절박하게 흘러갑니다. Life is going on이라고 할 수 있죠.”

나는 혹시 그 대결 구도가 마치 영화 〈내 깡패 같은 연인〉의 경우처럼, 취업준비생과 삼류 깡패의 캐릭터 대비를 보여주면서 은근히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하류 인생이라는 사회적 고발의 메시지를 품고 있는가를 물었다. 〈질투는 나의 힘〉과 〈연애의 목적〉이 남성 중심 연애의 생태적 도감을, 〈괴물〉이 미국 중심의 위생 권력을 고발했던 것처럼 말이다. “글쎄요, 거대한 함의는 없지만 축소판의 느낌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핏줄은 절박한 거니까요.” 그러면서 요즘 관객은 계몽적인 영화를 고개 숙여 존중하기보다 온몸의 세포를 풀고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영화를 보기를 원한다고 부연했다. 만약 그가 〈이끼〉에 이어 이번에도 훌륭히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면 관객은 원망도 변명도 없는 담백한 눈에서, 야비하고 게으른 양아치의 눈을 지나 축축하고 절박한 해일의 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극락도 살인 사건〉과 〈이끼〉에서 저는 근성이 보여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총, 칼 등 상황을 단번에 정리해 버리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오로지 근성만으로 얽히고 설키는 관계 속에서 강자와 약자가 함께 뒹굴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거죠.” 그는 피가 낭자한 잔인한 공포보다 사람의 잔혹한 기운에 의해 다가오는 공포가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이제까지 사용한 가장 강력한 무기라면 〈괴물〉의 화염병이 전부다. 물론 그것조차 불발됐지만. 최근 그에게 자극을 주는 세 편의 영화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와 〈들개〉, 그리고 한국 영화 〈무사〉다. 3편의 영화 모두 무기를 사용하는 영화다. “〈7인의 사무라이〉는 고전 영화인데도 모든 캐릭터가 선명하게 날이 서있습니다. 〈들개〉는 총을 소매치기 당한 신입 형사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총으로 살인이 일어났고, 형사는 총을 찾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게 되죠. 〈무사〉는 10년도 더 된 영화인데, 배우와 스태프들이 중국 현지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생을 한 것이 파란만장하게 읽혀졌어요. 안성기, 정우성, 주진모, 유해진, 장쯔이 같은 배우들이 타지의 험난한 환경에 처해서 어떻게든 드라마를 이끌어 가려는 모습이, 그 고된 열정과 기운이 전해져서 뜨거워졌습니다. 경험한 만큼 보인다고, 아! 영화가 정말 쉽지 않은 거구나….”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영화를 빼고 박해일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처음 지방 대학의 영문과를 중퇴하고 아동극단에서 일할 때나, 억세게 운 없는 그를 모델로 〈청춘예찬〉이라는 연극이 만들어졌을 때나, 그 연극이 인연이 돼 임순례, 봉준호, 박찬옥 감독에게 동시에 캐스팅됐을 때나 박해일은 영화 안에서 청춘을 맞이하고 이별하고 사내로, 그리고 아버지로 성장해갔다.


거친 느낌의 블랙 가죽 재킷과 니트 터틀넥은 릭 오웬스(Rick Owens)

가장 어리고 순결한 양이 성전에서 제물로 바쳐지듯, 영화의 신전에서 제사장 격인 감독들은 박해일을 이루는 ‘소년성’을 속물적인 세상과 사랑을 정화시키는 ‘제물’로 사용했다. 모든 미숙함의 증거를 필사적으로 감추며 부끄러움이 부끄러워 애써 당당하던 그때. 동경과 적의가 뒤섞인 마음으로 은밀히 어른을 꿈꾸다가 미래의 완성된 나를 할부구입이라도 하고 싶었던, 청춘이라는 열등감의 시절. 여자들에게 박해일은 여전히 〈질투는 나의 힘〉과 〈연애의 목적〉 사이 〈국화꽃 향기〉와 〈인어공주〉 사이의 어떤 지점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여전히 인터넷 뉴스는 박해일이 장동건을 제치고 MBA(Married but Available), 즉 결혼했지만 갖고 싶은 남자 1순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한다. 박해일이 결혼했다는 사실이 여자들에게 중요하다는 것도 놀랍고(스타일링을 맡은 패션 에디터의 첫 마디는 “결혼하기 전에 정말 좋아했어요”였고), 결혼 이후에도 호감도가 유지된다는 사실도 놀랍다(촬영을 맡은 사진 어시스트의 첫 마디는 “결혼했어도 여전히 좋아요”였다). 순진한 소년과 비열한 사내 사이에서 성장을 멈춘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생물학적 수컷의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막내오빠 같은 작고 흰 얼굴의 박해일. 하지만 가르치려 들지 않는 어른에게선 나이 들어가는 데 대한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늙죠. 잘못해서 늙는 게 아닙니다. 늙는 게 욕먹을 일도 아니죠. 청춘도 그렇습니다. 그냥 청춘이라서 칭찬을 받는 거지, 청춘이 꼭 칭찬 받을 당위성은 없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냥 흐름에 맡겨서 자연스럽게 가자는 거죠. 저는 배우가 안 됐으면 옆집 삼촌 정도가 어울렸을 사람이에요. 하지만 옆집 삼촌이라도 멋지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어요. 내 생각이 진짜 하찮다고 해도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박해일의 말은 계통 없이 툭툭 끊겨서 잘린 채 허공 위에 떠 있지만, 되새김질 해 볼수록 의미가 있는 잠언처럼 들려온다. 100일 된 아들(네 인생 멋대로 그리면서 살라는 의미로 ‘그림’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에게 자신을 ‘아빠’가 아니라 ‘형’이라고 규정 짓는, 장인 어른이 “그 물건은 라이터인가?”라고 묻는 커다란 구식 휴대폰을 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세대 관객들과 자기 식대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반대로 관객들이 왜 자신의 영화를 보는지 영원히 모르고 싶은, 훈련되지 않은 들개로 남고 싶은 박해일.

“제 심장의 온도요? 체온은 몇 도인가요? 36.5도? 그러면 내 심장은 36도쯤 될 거예요. 0.5도 정도 빠진 느낌… 카메라가 돌면 그 0.5도가 채워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