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스페셜 1] 부활, 제 5의 전성기

지난 27년 동안 부활은 그 이름처럼 위기의 순간마다 되살아났다. 80년대 한국 록 뮤직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이시대의 멘토로 제5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김태원과 부활을 위해 〈보그〉가 특별한 무대를 만들었다. 부활의 음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자 모델의 점프수트는 구찌(Gucci), 스트로 소재의 롱 케이프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aisonMartin Margiela), 김태원이 입은 브이넥 티셔츠는 그라운드 웨이브(Ground Wave), 뱀피 프린트 블랙팬츠는 레주렉션(Resurrection), 스트로 소재의 베스트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선글라스는 디타(Ditaat Optical W), 쇼트 장갑은 로엔(Roen at Je neSais Quoi), 뿔 목걸이는 쥬세페 자노티(GiuseppeZanotti at 10 Corso Como).



김태원이 입은 옷핀 장식의 티셔츠는 발맹(Balmain), 가죽 팬츠와 가죽 워커는 버버리 프로섬, 선글라스는 디타(Dita at Optical W), 체인 벨트 장식은 로엔(Roen at Je ne Sais Quoi). 여자 모델의 스팽글 드레스는 마커스 루퍼(Markus Lupfer at Supernormal), 부티는 버버리 프로섬, 골드 목걸이는 레주렉션 바이 주이, 정동하의 슬리브리스 셔츠와 가죽 팬츠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쇼트 장갑은 로엔, 워커는 디올 옴므, 오른손의 실버 뱅글들은 마코스 아다마스, 뿔 펜던트 목걸이는 쥬세페 자노티(Giuseppe Zanotti at 10 Corso Como).




채제민의 집업 점퍼는 그라운드 웨이브(GroundWave), 체인 목걸이는 엘레나 마이어(Elena Meyer at10 Corso Como), 발톱 목걸이는 레날드 비주(RenardBijoux at 10 Corso Como), 반지는 마코스아다마스(Macos Adamas), 프린트 티셔츠는크랭스(Crank), 데님 팬츠는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여자 모델이 입은 가죽 원피스와 벨트는 미우미우(MiuMiu), 곤충 팔찌와 목걸이는 디올 옴므(Dior Homme),십자가와 열쇠 목걸이, 반지는 모두 마코스 아다마스,워커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서재혁의워싱 팬츠와 프린트 티셔츠, 스카프는 모두 발맹(Balmain),워커는 레주렉션, 실버 팔찌는 마코스 아다마스

‘부활’이 부활했다. 80년대 록 뮤직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보그〉 화보 역사상 최고령 밴드로 기록될 부활은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드럼의 채제민이 문틈 사이로 우람한 몸매를 수줍게 드러낸 데 이어 국민 멘토 김태원과 베이스 서재혁이 나란히 입장하더니, 마지막으로 막내 정동하가 정시에 맞춰 들어섰다. 에어로 스미스와 반 헤일런이 전용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티타임을 갖든 말든, 네 남자는 매니저가 운전해주는 연예인 차량 대신 직접 각자의 차를 몰았다. 그리고 이국보다 낯선 청담동이라는 동네에서 넉 잔의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문신이 새겨진 팔뚝을 뻗어 작은 커피잔을 손에 쥔 채 십센치의 ‘아메리카노’를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여기서부터 편견은 무너진다. 약속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는 이 사나이들은 스타의식이라고는 원두 알갱이만큼도 없는데다, 커피 맛을 논할 줄 알며, 요즘 유행이 뭔지도 안다. 27년 전통의 밴드는 확실히 포스가 달랐다. 그러니까 부활이다.

rock will never die
입구부터 부활의 음악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촬영장엔 커다란 조명과 간이 무대가 설치되었다. 얼핏보면 포장이 뜯긴 선물 상자 같다. 포토그래퍼 김보성은 잔뜩 상기된채 촬영 컨셉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김태원이 부활을 재조명했다면,이번엔 우리가 다시 그들을 조명하는 겁니다. 부활이라는 그룹을 선물로 받고 그 선물 상자 안에 들어가 같이 음악을 즐기며 뛰노는 거죠.” 음악광 김보성은 촬영을 위해 자신의 악기들까지 소품으로 준비했다.그리고 등장하는 오늘의 첫 번째 뮤지션. 포토그래퍼의 통기타에 멋지게 사인을 남긴 김태원은 고독한 기타리스트가 되어 포즈를 취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숄 사이로 드러난 왼쪽 팔엔 아내의 이름이니셜을 새긴 10년 묵은 문신이 보인다. “멋지다!”는 스태프들의 탄성에 “Thanks you!”라는 짧은 인사도 잊지 않는다. 잔뜩 부풀린 긴 머리를보고 누군가 UV를 떠올리자 UV의 신곡 ‘이태원 프리덤’의 랩 한 토막까지 선보인다.집배원도 판매원도 이태원도 아닌 “기.타.치.는.김.태.원.”이다. “27년 동안 음악을 해왔지만 패션지 화보 촬영은 처음입니다. 역사적인 날입니다. 아름다운 일이죠.” 패션 모델을 실제로 처음보았다는 멤버들은 프로 모델 효니의 작은 얼굴과 큰 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회상 III(마지막 콘서트)’가 수록된 부활의 2집 음반이나오던 해에 태어난 87년생 효니 역시 부활이 생소하긴 마찬가지다.그래도 부활의 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할 때, 친한 친구가 부활 팬이라서 자주 노래를 들려줬거든요.” 짧은 머리에 초록색 피스를 붙인 우람한 체격의 드럼 채제민은 스튜디오의 안마 의자성능에 감탄하며 꼭 한 대 장만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두툼한 손가락으로 깜찍한 V를 그리며 셀프 카메라 촬영에 여념이 없는 그는 온라인 쇼핑광이기도 하다. 짙은 스모키 아이를 한 베이스 서재혁은 메이크업을 하는 동안에도 노트북을 올려놓고 업무에 여념이 없다. 부활의 ‘얼굴’ 보컬 정동하는 처음 바꿔 본 과감한 헤어 스타일이 어색한지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멤버들의 변신이 거듭될 때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한바탕 유쾌한 소동이 계속된다.

확실히 요즘 김태원은 대세다. 〈남자의 자격〉〈위대한 탄생〉을 비롯해 각종 토크쇼까지 그가 나왔다 하면 프로그램은 공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부활의 음악도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국민할매’ 캐릭터로 김태원은 전 국민에게 웃음을 주었지만, 자신의 삶과 부활의 음악을 웃음거리로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카메라를 벗어난 그는 존경의 대상에 가까웠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의 진짜 어른이었고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관객이 모이지 않아 공연이 취소된적 있는 광주 공연은 덕분에 최근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여름까지 공연 스케줄이 빡빡한 상태다. 올 초 박완규와 함께한 ‘비밀’에 이어 지난4월 7일엔 역대 보컬들이 참여한 콜라보레이션 음반까지 발표했다.“일기장에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난 그대로인데 주위의 모든 게 바뀝니다.’ 우리의 팀워크나 무대 위의 오르가슴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아요. 그런데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겁니다. 그 점이 놀라워요.” 부활이라는 이름처럼 이 전설의 밴드는 최악의 순간마다 매번 다시 살아났다. 부활의 1집 음반 제목 역시 ‘Rock Will Never Die’였다.

위대한 탄생
“1984년 7월로 기억되던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흑백인쇄물의 아주 조악한 라이브 공연 포스터를 명동 입구에서 보게 됩니다. 뭔가 홀린 듯이 그 포스터를 바라보다 나는, 지금은 사라진 록의 메카 종로의 파고다극장 라이브 공연장에서 4인조 밴드의 연주를 듣습니다. 게리 무어의 그 유명한 ‘Parisienne Walkways’입니다. 그 곡을 완벽히 카피해낸 기타리스트가 그 녀석이었습니다.” 부활의 첫 매니저 백강기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스무 살의 김태원을 발견한 그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부활이라는 이름 대신 ‘디엔드(The End)’로 활동할때였다. 시나위의 신대철, 백두산의 김도균, 그리고 김태원. 3대 기타리스트의 전성 시절 밴드의 인기는 엄청났다. 촬영 현장의 메이크업아티스트 류현정 실장이 여기에 생생한 현장 증언을 덧붙였다. “팬이었어요. 고등학교 앞의 벽보를 보고 한국일보 7층 소극장 공연을 찾아간 적도 있죠. ‘희야’가 수록된 첫 번째 정규 음반엔 ‘국내 최초로 기타로 종소리를 연주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요. 노래 도입부의 종소리는 한동안 화제였어요. 얼마 후, 63빌딩 컨벤션 센터에서 콘서트가 열릴 땐 오빠부대가 동원될 정도였죠.” 왕년의 열혈 소녀 팬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멤버들의 얼굴은 색다르게 변신해갔다. 고개를 끄덕이며 당시 이승철의 가 발 착용 여부(방위 시절엔 가발을 쓰고 공연했다)로 공연 연도를 확인하던 김태원은 선글라스 너머로 그때를 회상했다.“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마왕 신해철이 부활의 팬클럽 부회장으로 연습실을 오가던 때이기도 했다.

수 차례의 위기와 멤버 교체를 거쳐 현재의 멤버들로 팀이 구성되기 시작한 건 2000년부터다. 베이스 서재혁이 들어왔고, 이승철과 손잡고 8집을 만들면서 드럼 채제민이 다시 팀에 합류했다. 9대 보컬 정동하는 2005년 10집부터 함께해오고 있다. “종종 우리는 부활을 집에 비유합니다. 드럼은 대지, 베이스는 기둥, 저는 지붕, 보컬은 인테리어. 우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이 집에 들어와 사는 사람인 셈입니다. 집이 후지면 사람이 안 들어옵니다.” 김태원의 주옥 같은 명언에 채제민이 추임새를 넣는다. “어우, 멋지다. 진짜 말 되지 않아?” 부활이 한 채의 집이라면 멤버들은 가족에 비유될 수 있겠다. 회계와 관리에 능한 꼼꼼한 성격의 서재혁이 안살림을 도맡아 한다면, 리더 김태원은 가장이고, 정동하는 조숙한 막내다. “전 집에서 껄렁껄렁 놀고 있는 삼촌이죠. 흐흐.” 산만한 덩치를 들썩이며 드라마 한 편에 울고 웃는 채제민은 팀의 분위기 메이커다. “가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좀 아파오는 게 있어요. 연습을 하다 형이 ‘어, 나 방송 갔다 올게’ 하고 나가는 모습이 어쩔 땐 가족들 먹여 살리러 돈 벌러 나가는 아버지를 보는 듯하거든요.” ‘부활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팬클럽 ‘부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온라인 운영자이기도 한살림꾼 서재혁이 말했다. 생각에 잠겼던 김태원이 곧 말을 잇는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배고픈 건 견딜 수 있어요. 추운 것도 견딜 수 있죠. 하지만 추운데 비까지 맞아야 하는 건 슬픕니다. 비 정도는 제가 기와로 막을 정도의 힘이 있어야죠. 사실 밥까지 먹은 건 얼마 안 되었습니다. 그전엔 굶었죠, 다들. 퇴근할 때 빵 봉지라도 사 들고 올 수 있을 정도가 된 게 2년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남자의 자격〉을 통해 전국민이 다 알게 된 위암 수술 직전에도 김태원은 〈위대한 탄생〉과 〈놀러와〉를 촬영했다. 그리고 수술 3일 후엔 부활 콘서트 무대에 섰다. 가장의 초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