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스페셜 2] 미녀와 화수 조영남

모델송경아와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는 화수(畵手)조영남은 붉은 장미 정원의 미녀와 야수만큼이나 기묘한 그림을 연출한다. 마르셀 뒤샹의 체스판과 화투 한 장이 놓인 한밤의 미술관에서 일어난 예술적 스캔들!



한 쌍이 텅 빈 미술관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옛날 옛적 붉은 장미 정원의 미녀와 야수만큼이나 기묘한 그림을 연출하는 이 커플은 패션 모델 송경아와 그림 그리고 노래하는 화수(畵手) 조영남이다. 멕시코 작가 까를로스 아모랄레스의 전시가 한창인 송은 아트 스페이스에서 조영남은 송경아가 화장하는 모습을 두 시간째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좀처럼 미모와 스마트함을 동시에 지닌 여자를 못 만나봤어요. 첫 번째 여자는 그런 줄도 모르고 시작한 건데 나중 보니 스마트한 여자였고. 인생 끄트머리에 와서야 경아를 알게 된 거지.” 농담과 진담을 두 스푼씩 넣은 조영남식 화법으로 달착지근하게 말문을 연 그는 종이컵에 담긴 믹스 커피를 홀짝이며 송경아의 첫인상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첫눈에 반했다고 하면 너무 상투적일 테고… 모딜리아니가 바로 저 여인을 보고 그렸구나 할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 여인에게 심하게 반해가지고 ‘송경아가 안 하면 그만두겠다’고 압력을 넣었지. “‘아무렇게나 조박사’의 믿거나 말거나 짝사랑은 지난 1월, KBS 〈명작 스캔들〉의 MC를 맡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송경아는 이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이다. 물론 조영남의 압력과는 무관한 캐스팅이다.

그는 지금 러브 스캔들의 부푼 꿈을 안고 난생 처음 화보 촬영에 임하고 있다. 두 볼을 빨갛게 칠하고 오리엔탈풍의 원피스를 입은 송경아는 모딜리아니의 캔버스에서 나와 조영남의 화투 그림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거의 끝났다. 종이 우산만 들면 완벽한 ‘비광 여인’이다. 빵모자를 쓴 화가 역시 자신의 작품 속 살아 있는 작품이 된다. 40년 가까이 조영남이 그려 온 화투 작품 중 비광에 그린 자화상을 패러디한 것이다. 179cm의 키에 하이힐까지 신은 프로 모델 옆의 조영남은 어린 벤자민버튼 같다. 키 큰 여인과 나비 넥타이를 한 늙은 꼬마. 굴욕을 맛본 조영남은 오히려 신이 났다. 호기심과 어색함을 두 발에 매단 채 조심조심걸음을 옮기던 조금 전까지의 예순일곱 살 조모씨가 아니라 아티스트 조영남이다. “재미있어. 이건 페인팅하고는 또 다른 차원의 아트야. 난전부터 경아하고 내복 차림으로 둘이 멍청하게 서 있는 걸 해보고 싶었어. 워낙 키 차이가 나니까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웃길 거라고 생각했지.”나란히 선 두 사람의 30cm에 달하는 키 차이는 긴 세월의 간극과도 비슷하다. 송경아가 태어나던 1980년, 조영남은 이미 플로리다에서 신학 공부를 마무리하고 졸업장과 함께 목사 자격증까지 받았다. ‘화개장터’로 국내 가요계에 복귀한 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친구다. “우리에겐 크로스오버라는 공통점이 있죠. 선생님도 본업은 가수셨고, 저도 모델인 동시에 그림을 그리고 책도 쓰고 방송도 하잖아요? 삶의 방향이 비슷하다면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취미까지 통한다면 더할 나위 없죠.” 두 사람이 미술이라는 공통의 취미를 갖게 된 건 꽤 오래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조영남이 서울대 미대를 다니던 후배 김민기(극단 ‘학전’의 대표)를 옆에서 보고 ‘이 정도라면 나도 하겠다’는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두 권의 책, 〈뉴욕을 훔치다〉 〈키스미, 트래블〉을 통해 개성적인 일러스트를 보여준 송경아는 현재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공부하는 중이다. 어린 시절 동화의 삽화나 렘브란트의 성모상을 비롯한 명작을 따라 그리곤 했다는 그녀는 방송 중에 즉석에서 조영남의 캐리커처를 그려준 적도 있다. 그리고 조영남은 그녀의 책을 완독했다. “굉장히 재주가 있어요. 사실 전 모델은 인형처럼 걸칠 줄만 아는 생각 없는 여자들의 직업인 줄 알았어요. 내가 늙은 사람이라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지. 그랬음에 틀림없어. 그런데 책을 받아보고 나서 똑똑한 친구라는 걸 리얼라이즈 한 거야. 창조적인 직업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