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 액트

말미잘의 촉수처럼 두 팔을 흐느적거리던 미미시스터즈, 언젠가 일을 칠 것만 같았다. 기타를 메고 마이크를 잡고 그들 자신의 이름으로 우뚝 선 미미시스터즈가 말한다.“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

(왼쪽부터)작은 미미가 입은 플리츠 드레스와 뱅글, 구두는 미우미우(Miu Miu). 큰 미미가 입은 컬러 블록 드레스는 쟈니 헤잇 재즈(Johnny Hates Jazz), 퍼 스톨은 프라다(Prada), 뱅글과 구두는 미우미우. 선글라스는 모두 구찌(Gucci).

차갑고 도도했다. 이 여인들은 어느 별에서 불시착한 쌍둥이인가 싶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뒤에서 말미잘의 촉수처럼 두 팔을 흐느적거리던 미미시스터즈의 인상은 그랬다. 혜성처럼 나타난 한 가수가 장판과 자신의 물아일체를 읊조리며 노골적으로 룸펜의 정서를 드러낼 때, 미미시스터즈라는 풍경은 루저도 판타지를 지닐 수 있도록 화룡점정 해줬다. 참으로 기이하고 당혹스러운 방식이었다. 무기력한 청춘들과 ‘차도녀’의 결합. 자칭 타칭 ‘저렴한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쌓은 아우라. 그들은 화장실에서도 벗지 않을 것 같은 선글라스와 늘 한 몸인 채로, 코러스를 할 때 외에는 말없이 빨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재미가 없는 사람들이오.” 미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뒤에서 코러스를 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건 우리에게 ‘완벽한 취미’였소. 애초부터 이렇게 독립할 생각을 했던 건 아니라오.” 큰 미미의 고우면서도 성량 좋은 목소리, 작은 미미의 느릿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속삭였다(이 가상의 ‘하오 체’는 그들이 말이 아닌 문장으로 팬들에게 말을 걸 때 쓰는 어투다). 미미시스터즈가 낮에는 또 다른 직업인의 생활을 하고 밤에는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이야 익히 알려져 있었다. ‘완벽한 취미’였다고 하지만, 십여 년 전 어느 날 막곱창집에서 술을 먹다 만나 친구가 됐다는 둘의 과거사나 범상치 않은 조연 역할을 수행하는 그 카리스마라면 언젠가 일을 칠 것만 같았다. 도도한 미미는 누가 봐도 말 없는 조연으로 생에 만족할 인물들이 아니었으니까. “어느 기사에 우리가 장기하와 ‘협의이혼’했다는 보도가 대문짝 만하게 나갔소. 그가 우리의 전 남편이었다는 표현은 썩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오. 그저, 수많은 남자들 중에 하나는 아니었다 정도로 정리하겠소.” 이들은 회사의 사활을 거는 모험을 할 수 없다는 사장에게 ‘붕가붕가 레코드 위키리크스’를 들이밀며 음반을 내달라고 종용했다. 협박과 회유 끝에 음반 발매가 결정됐을 때는 보루네오 섬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찍고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도는 월드투어 계획을 짰다.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이 봄, 온전히 가수 미미시스터즈의 데뷔 음반이 나왔다. 앨범명은 미미시스터즈가 늘 그랬듯 여전히 당혹스럽다.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 기타를 메고 ‘미미랑 미남미녀’ 밴드를 대동하는 것으로 장전했으니, 이들이 들고 나온 장르는 록이다. “록은 테크닉보다 스피릿 아니오. 아마 회사에서 우리에게 R&B를 권유했으면 하지 못했을 것이오.” 날것의 아마추어리즘을 미덕으로 삼는 미미의 모습은 예상했던 바인데, 앨범에 관여한 인물들의 면면은 마치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하고 회심의 일격을 날리는 듯하다. 더욱 ‘미미스러운’ 미미시스터즈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생애 첫 단독 프로듀서의험난한 길로 뛰어든 이는 김창완밴드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황신혜밴드와 뜨거운 감자 등에서 객원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전력의 그는 90년대 중반 우연히 손에 쥔 테이프에서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의 음악을 듣고 무작정 한국으로 건너와 여태껏 눌러 살고 있다. 프로듀서는 미미시스터즈에게 이렇게 주지시켰다.“너무 잘하지 말아라, 너무 연습하지 말아라. 그러면 재미없어진다.”

그렇게 김창완이 80년대 초반 인희라는 가수에게 써준 곡 ‘폭탄 소녀’는 ‘다이너마이트 소녀’로 진화했고,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은 자신의 아버지 신중현이 바니걸스에게 줬던 곡 ‘우주여행’의 미미 버전을 위해 장장 16분이 넘는 곡에서 화려한 기타 솔로를 들려준다. 미미시스터즈가 막곱창집에서 인연을 맺던 시절 그 이전부터 인디 씬에 발자취를 남겨온 로다운 30은 타이틀 곡 ‘대답해주오’ , 여전히 긍정적 기운을 전염시키는 크라잉 넛은 ‘미미’에 참여했다. 서핑 사운드와 사이키델릭한 록과 로큰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록을 가볍게 시식해보는 시간. 아직 덜 다듬어진 목소리로 그저 한바탕 노는 미미를 위해 예의 프로들이 판을 깔아준다. 미미의 미숙한 성질과 이 밴드들의 무르익은 성질이 한자리에서 어울린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희열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