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적인 데자뷔

그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와 개인화된 경험으로 기억되는 음악. 이미 하나의 구조를 완성한 뮤지션은 그의 음악이 흐를 때마다 느껴지는 기시감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윤상적인 레퍼토리는 아이유가 그의 곡을 부르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커스텀멜로우(Customellow), 스트라이프 재킷과 데님 팬츠는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브로그 슈즈는 프라다(Prada).

윤상은 인기와 상관없이 호불호가 갈리는 가수들의 리스트에서 비껴난 존재였다. ‘이별의 그늘’이나 ‘가려진 시간 사이로’ 같은 발라드를 생각해도 좋다. 노영심의 간질이는 목소리와 함께한 ‘이별 없던 세상’이나 ‘한 걸음 더’ 같은 미디엄 템포의 곡을 떠올려도 좋다. 조용필처럼 대한민국이 보증하는 슈퍼스타가 아니고, 입에 붙는 여느 가요처럼 노래방에서 도전하게 되는 곡이 아닌데도 윤상의 음악 하나쯤은 적지 않은 어느 세대의 기억 한 편에 침투해 있다. 그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와 개인화된 경험으로 기억되는 음악.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김현식에게 곡을 써주던 약관의 윤상을 알진 못하더라도, ‘명반’으로 꼽히는 3집(‘바람에게’ ‘결국… 흔해 빠진 사랑 얘기’ 등 수록)을 낸 2000년 즈음의 윤상은 알길 바라지만, 그의 짧지 않은 역사를 생각하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윤상이 누구냐고 묻는 어린 친구들, 꽤 봤어요.” 유학을 마치고 1년 전부터 상명대학교 교수로 강단에 서는 그가 요즘 세대의 천진한 ‘무지’와 맞닥뜨리는 건 현실이다. 그러나 어떤 20대는 SES가 리메이크한 ‘달리기’ 때문에 윤상을 알고, 어떤 10대는 소녀시대가 리메이크한 ‘랄랄라’ 때문에 윤상을 안다. 작곡가 윤상이 동방신기, 보아, 가인, 아이유 등의 이름과 어우러질때면 그건 이질적인 조합이면서도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과거의 특별한 아이돌이었던 윤상이 지금의 아이돌과 어떤 식으로든 접점을 가졌다는 얘기다. KBS다큐멘터리 〈누들로드〉의 음악 감독은 어떤가? 90년대에 우리 앞에 선 싱어송라이터는 그 시절 그 세대의 팬덤을 쭉 이어가면서도 이렇게 자신만의 양식을 재생산한다.

지난 4월 발매된 윤상의 ‘20주년 기념 박스세트’는 그가 자신의 시간에 방점을 찍기 위한 결론이다. 1990년의 데뷔 앨범에서부터 2009년의 6집에 이르는 정규 앨범, 곡 수는 적지만 속이 꽉 찬 EP앨범, 월드뮤직풍으로 셀프 리메이크한 앨범, 그리고 각각의 리마스터링 앨범 등총 19장의 CD와 팬들이 자체 제작한 포토 에세이북이 박스에 담겼다. 20년의 시간을 압축하는 이 증거들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뒤늦게 지난날의 앨범을 구하려고 해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한 오아시스. 그리고 과거의 소리를 현재의 트렌드에 맞게 다듬은 고민의 흔적. “비틀즈나 아바 같은 전설적 밴드들의 리마스터링 음반이 나오는 건 시대가 요구하는 소리 자체에도 유행이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 소비되는 음악들은 소리가 더 가까이 들리는 게 특징이거든요. 리마스터링으로 대중들이 원하고 익숙해하는 포인트를 살려 봤어요. 음반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해도 음악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녹음된 소리가 있어서예요. 기록은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