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김하늘, 매혹의 승부사

2016.03.17

by VOGUE

    김하늘, 매혹의 승부사

    김하늘은 보통 여자처럼 살고 일상의 연기를 한다. 천재, 광기, 명예, 예술보다는 열정, 도전, 일상,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며, “완전! 대박!”같은 추임새를 자주 터뜨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아는 명민한 승부사,김하늘이 영화 〈블라인드〉 개봉을 앞두고 〈보그〉와 만났다.

    리넨 소재의 스트링 점퍼와 슬리브리스 니트 톱은 구찌(Gucci), 카키 컬러의 쇼츠는 이로(Iro at Celebration), 버클 스트랩 슈즈는 아쉬(Ash).

    아이보리 컬러의 쇼트 톱은 씨 바이 클로에(See by Chlo), 이너로 입은 슬리브리스는 자인송(Jain Song), 블랙 가죽 팬츠는 타임(Time), 헌팅캡은 닉슨(Nixon), 버클 장식의 앵클 샌들은 아쉬(Ash), 오른손의 메탈 시계는 버버리(Burberry), 왼손의 가죽 뱅글은 토즈(Tod’s),골드 스트랩 팔찌는 스튜디오 아파트먼트(Studio Apartment).

    VOGUE 여배우는 마스카라를 지우지 않고 커튼 뒤로 사라져야 한다, 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영화 〈여배우들〉이후로 ‘비밀의 여배우’ 는 이제 사라진 걸까요?
    김하늘 신비로운 여배우도 있겠죠. 하지만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려요.

    VOGUE 신비로우면 더 빨리 잊는다는 말인가요?
    김하늘 아니요. 카메라 안에서 배역에 몰입하면 자연인 김하늘은 또 잊는다는 거죠. 서른이 넘어가면서 ‘인생 뭐 있어?’ 그런 생각을 해요. 그 전엔 항상 나를 감추고 내 앞에 벽을 세웠는데, 내가 챙길 식구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마음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VOGUE 원래 성격이 액티브한 편인가요?
    김하늘 네. 친구들과 함께 여행 가는 걸 좋아해요.

    VOGUE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여배우 특집’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김하늘이라고 하더군요. 자신 있었나요?
    김하늘 그냥 놀러 가는 기분이었어요. 딱 하루 반나절 동안, 있는 그대로의 내가 노출된다면 그것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VOGUE 자연인 김하늘에 자신이 있었다는 말이군요.
    김하늘 네. 예전엔 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색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진짜 나도 아니고 연기하는 나도 아닌, 어정쩡하게 각색된 모습이 나올까 봐 걱정했죠. 그런데 이건 정말로 리얼이니까.

    VOGUE 이수근 옆에서 직접 운전하는 모습이 놀라웠어요.
    김하늘 운전을 좋아해요.

    VOGUE 맙소사, 운전을 왜 좋아하죠?
    김하늘 운전은 곧 여행이라고 생각하니까요.

    VOGUE 공주는 아니군요.
    김하늘 네. 공주 아니에요. 전 길을 잃어버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차에 내비게이션도 없죠. 헤매고 물어보고…, 그런 걸 재미있어 해요. 얼마 전에도 친구랑 둘이서 단양엘 여행갔는데 심지어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갔어요.

    VOGUE 정말 모험적이시군요.
    김하늘 그날이 마침 〈1박2일〉방송을 하는 날이었는데, 방송 시작 1시간 전에 단양에 도착한 거예요. 1시간만에 숙소를 구해야 했어요.

    VOGUE 여배우가 이 집 저 집 “빈 방 있나요?”하고 다닌 거예요?
    김하늘 네. 그런데 연휴 기간이라 예쁜 펜션은 모두 방이 없고, 어디 식당에라도 가야 하나, 하는 순간 구세주처럼 통나무 펜션 안내판을 발견했어요. 마침 방이 있다길래, 너무 기뻐서 꼬불꼬불 산꼭대기까지 운전을 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어요. 아! 어떡하지…, 순간 멀리 길 끝에서 노부부가 마중 나와 손을 흔들며 계신 거예요. 그날 저녁 별천지 같은 산꼭대기 집에서 노부부와 함께 오순도순 TV를 봤죠.

    VOGUE 이제까지의 작품 선택을 보면 여성적인 연약한 외모와 반대로 승부사 기질이 다분해 보여요. 드라마 〈온 에어〉의 여배우나 〈7급공무원〉의 국정원 직원, 그리고 개봉을 앞둔 영화 〈블라인드〉의 시각장애인까지. 〈온 에어〉에서 당신이, “나는 내가 무서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거든”이라고 말했었죠.
    김하늘 그래요. 내가 그런 말을 했죠. 승부사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작품을 선택할 때 과감했어요.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있죠.

    VOGUE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이네요.
    김하늘 실수나 실패를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성공을 위해선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맞다고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죠.

    VOGUE 사이즈가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지겠어요?
    김하늘 〈온 에어〉때부터 그런 느낌이 들어요. 배우가 배우를, 그것도 싸가지 없는 배우를 연기한다고 반대가 심했거든요. 위험을 무릅쓰고 그걸 선택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VOGUE 배우를 연기한 배우가 두 명 있죠. 〈스타의 연인〉의 최지우와 〈온 에어〉의 김하늘. 닮았으면서도 다르네요.
    김하늘 최지우 언니는 솔직하고 사랑스러워요. 염정아 언니는 자신감이 넘쳐서 오히려 더 귀엽죠. 맞아요. 그 둘 사이에 제가 있는 것 같네요.

    카키 컬러의 니트 스웨터와 트렌치코트, 네임택 목걸이는 모두 구찌(Gucci).

    VOGUE 8월에 개봉할 영화 〈블라인드〉얘기를 좀 해볼까요? 경찰대 출신의 시각장애인을 연기했죠?
    김하늘 그건 진짜로 모험이었어요. 기존의 여러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는 칭찬을 들었는데, 이번엔 너무 힘들었어요. 성격이 낙천적인데도 크랭크인 전에 열흘 정도 잠을 못 잤어요. 제가 폐쇄 공포와 공황장애 기질이 있는데, 이 나이에 눈이 멀면 어떨까, 가정을 하니까 가슴이 꽉 막혀왔어요. 불을 끄면 더 끔찍했죠.

    VOGUE 정말 진실하게 들리는군요.
    김하늘 시각장애인 다큐멘터리, 책, 영화도 많이 참고했는데, 특히 책이 큰 도움이 됐어요. 중도에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이 개안 수술을 하면, 보이는 세상에 적응을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많대요. 눈을 고치고 나면 남자 여자도 잘 구별을 못한대요. 〈눈 먼 자들의 도시〉얘기도 들었고, 〈여인의 향기〉의 알 파치노도 연구했어요.

    VOGUE 눈 연기가 관건이었겠군요?
    김하늘 실제 연기할 때 안 보일 수는 없지만, 스스로 닫고 안 보는 거죠. 오케이 사인 후에도 잘 넘어지곤 했어요.

    VOGUE 스스로의 연기가 질감이 풍부해졌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였죠?
    김하늘 〈90일 사랑할 시간〉 이라는 드라마에서요.

    VOGUE 일일 드라마였나요?
    김하늘 오종록 감독님의 미니시리즈였어요. 나답지 않은 장면이 많아서 좋았어요.

    VOGUE 드라마에서 자기 모습이 보여지는 게 싫은가요?
    김하늘 내 모습이 나오면 왠지 연기한 것 같지 않아요.

    VOGUE 그럴 수도 있죠. 드라마 〈로망스〉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당신의 히트작이죠. 그때를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연하의 남학생을 가르치는 풋내기 교사를 연기하던 시절인데.
    김하늘 푸릇푸릇하고 상큼하죠. 20대 중반이었으니까요.

    VOGUE 그때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야”라고 하이톤으로 지르던 대사는 성대 모사의 단골 소재였어요. 전도연, 최지우도 그랬지만 여배우들의 하이톤 음색은 희화화되기 쉽죠. 연기력과 상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죠.
    김하늘 그러게요. 내 딴에는 가슴 아프게 한 연기였는데… 근데 저도 보면 재미있어요.(웃음)

    VOGUE 언제부터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죠?
    김하늘 저는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는데, 그래서 처음엔 고통스러웠어요. 매 순간 그만두고 싶었죠.

    VOGUE 그때 승부사 기질이 발동한 건가요?
    김하늘 아뇨. 어린 시절엔 그냥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계속했어요. 스톰 모델로 데뷔해서 〈바이준〉 이란 영화를 찍었는데, 처음으로 4백만원인가를 벌었어요. 그런데 이쪽 사람들이 연기하라고 변두리에서 잘 놀던 애를 압구정동에 데려다 놓고서는, 또 못한다고 그렇게 구박을 하는 거예요. 기 센 프로페셔널들 앞에서 나름대로 자아는 있는 애가 주눅은 잔뜩 들어서…, 그런데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나중에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오기가 생겼어요.

    VOGUE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김하늘 드라마 〈해피투게더〉를 할 때 “못하겠다”고 하니까, 오종록 감독님이 4시간 동안 저를 앉혀두고 협박 반 설득 반 하셨어요.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몰랐지만, “넌 이렇게 하면 안 된다”던 말씀만 기억나요. 나한테 실망했다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어쩌면 자존심 때문에 다시 일어선 거죠. 처음엔 나 때문에 스태프들 고생하는 거 보는 게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인정받고 박수도 받고 있더라구요.

    VOGUE 만약 김하늘에게 〈하녀〉나 〈만추〉를 연기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김하늘 〈하녀〉? 어떨까요? 글쎄…, 상상해 보셨어요? 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저는 일상적인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해요. 20대 때 일상을 연기하면 그냥 내가 나와버리는데, 30대가 되면….

    VOGUE 진짜 보통 사람이 나오는군요.
    김하늘 맞아요. 윤계상 씨랑 했던 영화 〈6년째 연애중〉은 연기에서 많은 박수를 못 받았지만, 저는 그 오래된 연인이 자연스럽게 티격태격하는 연기가 정말 힘들었거든요. 〈만추〉는…, 〈만추〉 처럼 성숙한 일상 연기는 해보고 싶어요.

    까무플라주 패턴의 톱은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카키 컬러의 롱 셔츠는 코이노니아(Cononia), 하이웨이스트 쇼츠는 질 바이 질 스튜어트(Jill by Jill Stuart), 헌팅캡은 그레이스 햇츠(Grace Hats at Hat’s On), 옷핀 디테일의 목걸이는 스튜디오 아파트먼트(Studio Apartment), 시계 다이얼이 장식된 목걸이는 라 톤키노이즈(La Tonkinoise at People of Tastes), 화이트와 블랙 뱅글은 프란시스 케이(Francis Kay), 네임택 목걸이와 스트랩 슈즈는 구찌.

    VOGUE 많은 남자 배우들과 연기했지만, 윤계상과 연기한 〈6년째 연애중〉과 강동원을 리드해갔던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호흡이 좋았어요. 솔직한 일상 연기와 뻔뻔하고 과장된 연기, 이 두 가지 모습은 훈련된 건가요? 자기 안에서 끄집어낸 건가요?
    김하늘 둘 다겠죠. 〈그녀를 믿지마세요〉에서 가석방을 받기 위해 교도관들을 속이는 장면하고, 동네 사람들을 앉혀놓고 아버지, 고모님… 차례차례 애처롭게 거짓말 하는 장면은 다 한 호흡으로 갔는데, 저도 놀랐어요. 연기적 쾌감이 느껴졌죠.

    VOGUE 멜로드라마적인 자질이 무궁무진하군요.
    김하늘 식상하지만 않다면 오래 하고 싶어요. 그런데 늘 새로운 게 샘솟지는 않아요. 연기하면서 반복적인 게 나올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VOGUE 스스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면 뭘까요?
    김하늘 나는 늘 밝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성격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거예요. 나라는 사람은 여행 좋아하고, 평범하고 소박하고 작은 행복 안에 있는 거를 좋아해요. 그러니까 연기를 하고 돌아올 ‘나 자신’이 있는 거예요. 다른 배우들처럼 우울증이 안 생기는 이유가 나는 나라는 사람을 잘 꾸며놨어요. 연기하러 갔다 와도 편하고 아늑하도록.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있어야 내가 산다는 걸 아니까 더 억지로 만드는 부분이 있어요. 부모님도 일하는 사람들도 밝고 긍정적인 김하늘을 좋아하니까 더 인위적으로 밝아지려고 하죠. 반대로 무너질까 봐 걱정도 해요.

    VOGUE 하늘이 어두워질까 봐 두려워서 계속 밝음을 유지하는 인공 태양 같은 기분인가요?
    김하늘 안 그러면 탁 꺼져버릴 것 같은 거 있죠? 그런 말 아세요? 누군가 콧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는 거다. 우울증을 이기려고 유쾌해지는 거죠. 자존심도, 자존감도 강해서 눈물이 핑 돌아도 스스로 용납을 안 해요. 그래서 여행을 좋아해요. 긴장 풀고 떠나서 시골 분들도 만나고 자연도 보고 나를 풀어주는 거죠.

    VOGUE 감정이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잘 관리를 하는 편이군요. 혹시 누군가를 경멸해본 적 있나요?
    김하늘 경멸해본 적 없어요. 싫다, 정도는 있었지만 경멸, 혐오 이런 감정을 안 느끼려고 해요.

    VOGUE 천재성, 광기… 이런 단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하늘 무서워요. 그런 단어 정말 무서워요. 열정, 흥분… 이 정도면 좋지 않아요?

    VOGUE 동서양을 통틀어 어떤 여배우의 육체와 정신과 연기의 어떤 부분을 마음껏 육체에 취할 수 있다면 용납하시겠어요?
    김하늘 선택할 수 있다면 오드리 헵번의 정신 세계, 미란다 커의 탄력 있는 육체. 메릴 스트립의 디테일한 연기력.

    VOGUE 메릴 스트립의 일상 연기는 정말 뛰어나죠. 이번 영화 〈블라인드〉에서 카메라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김하늘 카메라를 보지 않았어요. 시각장애인이었으니까. 나중에 모니터를 봤죠.

    VOGUE 재치 있는 답변이에요. 그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나요?
    김하늘 저희 영화는…, 그냥….

    VOGUE 오락 영화라는 거죠?
    김하늘 네. 시각장애인이라는 강력한 장치가 있는 오락 영화예요. 〈7급 공무원〉 만큼이나 새롭고 흥미진진하죠.

    VOGUE 칸 영화제에 초대된다면 영화인들에게 어떤 인사를 하시겠어요?
    김하늘 칸 영화제요? 가고 싶지 않아요. 너무 불편할 거 같아요.

    VOGUE 역시 김하늘다운 답변이네요. 마지막으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말해주세요.
    김하늘 여배우로 사는 것의 기쁨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거예요. 어떤 캐릭터를 만나고 사랑받고 실패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결국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찾아가는 게 이 일의 진짜 매력이죠. 슬픔은 가려져 있어야 한다는 거. 늘 벽을 두고 사람을 만나는 느낌. 솔직해지고 싶은데 여배우는 눈빛 하나로, 말 하나로 오해 받을 수 있으니까. 진심을 보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죠.

    VOGUE 오늘은 어땠어요?
    김하늘 저, 진짜 열정적이지 않았나요?

    VOGUE 완전!
    김하늘 대박!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강혜원
    아트 디자이너
    세트 스타일리스트 : 최훈화
    스탭
    헤어 / 조영재, 메이크업 / 이현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