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인, 이자벨 위페르

프랑스를 넘어 세계 영화사의 지난 반세기를 대표하는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한국을 찾았다. ‘위대한 여인’ 이라는 헌사에 제격인 필모그래피를 갖춘 이 시대 여배우의 초상이다.



“아주 매끈하고, 어떤 감정의 코드화된 기호들이 마치 물결의 은밀한 주름처럼 통과할 수 있는 얼굴.” 영화학자 자크 오몽이 〈영화 속의 얼굴〉에서 기술한 바, ‘영화의 일반적 얼굴’이 지녀야 할 조건. 이자벨 위페르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세월이 빚은 선병질적인 각과 주름, 가로지르는 입술 선이 위페르의 현 얼굴을 특징짓는 바이지만, 이 배우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한 〈레이스 뜨는 여자(1977)〉속 ‘뽐므’, 갓 스물을 넘긴 위페르의 얼굴이라면, 그렇다. 이 영화는 이듬해 열아홉이 되는 파리 미용실 견습생 뽐므의 ‘무표정’이 다스리는 영토다. 세상 모든 노동 계급을 대표하는 듯한 이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은 일련의 사건이 지나간 이후 돌변한다. 영화의 마지막. 뽐므의 얼굴에 드리운 엷은 웃음이 결국 화면을 뒤덮는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 얼굴은 이제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세세히 훑고 지나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얼굴이 되었다.

프랑스를 넘어 세계 영화사의 지난 반세기를 대표하는 배우, 이자벨 위페르(Isabelle Ann Huppert)가 한국을 찾았다.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방문 이후 13년 만이다. 지금 시내 극장가에는 위페르가 친딸 롤리타 샤마와 함께 모녀로 출연한 〈코파카바나〉가 걸려 있고, 한미사진미술관에는 70여 명의 사진가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1969년부터 찍어온 위페르의 사진 110여 점과 영상 6점이 전시되어 있다(〈이자벨 위페르:위대한 그녀〉전, 2011년 8월 13일까지). 어느덧 50대 중반을 넘긴 이 배우는 과연 ‘위대한 여인(La Grande Dame)’이라는 헌사에 제격인 필모그래피를 갖췄다. 열여섯에 데뷔한 이래 6년 만인 1977년 클로드 고레타 감독의 〈레이스 뜨는 여자〉를 통해 자신의 ‘있음’을 알린 위페르는 40년간 8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러므로 위페르를 둘러싼 우리의 기억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기억의 편린들. 장 뤽 고다르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1979)〉에서 낯선 남자와의 섹스 중 무심히 집안을 청소할 계획을 세우던 창녀. 할 하틀리의 〈아마추어(1994)〉에서 포르노 소설을 끄적이며 하루속히 처녀성을 깰 요량인 서른 셋 파계 수녀.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2001)〉에서 변태적인 성행위에 집착하며 제자인 애인을 옥죄는 피아노 교수. 프랑수아 오종의 〈8명의 여인들(2002)〉에서 형부를 유혹하려는 욕구로 점철된, 사감형 외모의 처제.

오직 이자벨 위페르만이 자신들의 뒤틀린 욕망의 대리인이 될 자격을 타고난 양 여기는 듯싶은 예사롭지 않은 감독 명단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이름은 작년 운명을 달리한 프랑스의 히치콕, 클로드 샤브롤이다. 샤브롤의 〈비올레트 노지에르(1978)〉에서 위페르는 바로 전 해 선보였던 〈레이스 뜨는 여자〉 속 침묵하는 소녀의 수동적인 이미지와 대척점에 선, 위선적인 부모를 살해하는 급진적인 소녀로 거듭났다. 샤브롤에게는 돌파구를, 위페르에게는 첫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두 번째 칸 여우주연상을 선사한 작품은 마땅하게도 〈피아니스트〉다)을 안긴 이 영화 이후 샤브롤과 위페르는 억압된 여성의 심리 밑바닥을 파헤쳐 범죄의 근원을 캐는 단단한 실내극들을 수년간 더불어 직조해낸다. “자신의 사악함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고압적인 지성의 얼굴. 죄책감과 교묘한 심리 조종과 수치심에 흥미 있었던 샤브롤이 그녀를 그토록 자주 불러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 매체 〈옵서버〉가 통찰한 얼굴로, 위페르는 그렇게 왜
곡된 길을 걷기 시작한다. 나치 점령기 프랑스에서 불법 낙태 시술을 하며 젊은 남자와 놀아나다 사형 당한 한 여인의 일대기 〈여자 이야기(1988)〉. 범상한 시골 처녀가 내면의 욕망에 눈떠 결국 스스로 파멸하는 〈마담 보바리(1991)〉. 그리고 〈의식(1995)〉. 세파에 찌든 우체국 직원 위페르는 가정부 상드린 보네르와 짝을 이뤄 부르주아 가정을 가루로 만든 직후, 자신 또한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부서지고 만다. 샤브롤과 위페르의 조합은 이렇게 정점을 찍는다.

이 명민한 배우는 지금도 제2, 제3의 클로드 샤브롤을 찾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국내에 정식 개봉한 위페르의 영화는 이번 신작을 포함해 〈피아니스트〉와 〈8명의 여인들〉 뿐이지만, 이후에도 위페르는 가파른 길을 고집해 왔다. 여전히 도전적인 감독들과 작업하고 도발적인 인물들을 연기한다. 이 배우의 스펙트럼은 이렇게 해마다 확장되어 왔다. 한때 첫 이름이 같은 동시대 프랑스 여배우라는 일차원적인 이유로 이자벨 아자니와 이자벨 위페르가 동시에 거론되던 시절이 있었다. 2011년 현재, 이제 두 배우를 한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이는 없다. 위페르는, 위페르다. 이창동 감독이 말한 바 ‘기념비적’인 배우, 이 시대의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보그 코리아〉의 카메라 앞에 섰다.





VOGUE 당신의 40년을 기록한 110여 점의 사진들 중 당신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촬영한 사진을 가장 자신다운 사진으로 꼽았다. 브레송이 배우 위페르의 일상 그 자체를 포착했다면, 반대로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해낸 작가는 누군가?
ISABELLE 브레송에 대한 놀라움은 작업의 간결함에서 비롯되었다. 촬영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가 내 집에 찾아와 이야기하던 중 자연스러운 상황을 마주했고, 이는 마치 내 삶의 한 부분을 그대로 떼어다 놓은 듯한 결과물을 낳았다. 이렇듯 사진가는 모델의 진실된 측면을 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렇듯 사진이란 언제나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이야말로 사진의 미스터리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모든 사진이 내 예상과 달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VOGUE 영화 감독이자 프로듀서, 배급자인 남편 로널드 샤마가 기획한 이번 사진전은 뉴욕 모마를 기점으로 전 세계 7개 도시를 순회하며 6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도시를 순회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사진가와 추가로 작업했으니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셈이다. 이번 한국 전시의 경우 천경우 작가와의 작업이 더해졌다.
ISABELLE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던 그가 파리로 찾아왔고, 우리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일단 포즈를 취하는 시간이 길었다. 30분 가량 부동자세를 취해야 했는데, 자연히 집중력을 요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모호하면서도 확실한,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결과가 공존하는, 반대의 개념이 함께 성립하는, 규정할 수 없는 결과를 얻었다.

VOGUE 물론 편견일 수도 있겠으나, 남편이 담은 해변에서의 모습이 가장 여성스러워 보였다. 영상 작업도 한참을 바라보게 됐다.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게리 힐이 촬영한 영상 속에서 그저 장시간 카메라 앞에 서 있어야 하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내비치는데, 나이 든 위페르의 수줍음과 쑥스러움이라니, 예상치 못했다.
ISABELLE 게리 힐, 그리고 밥 윌슨과의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밥 윌슨의 경우 게리 힐과는 완전히 달리 특정 캐릭터로 변할 것을 주문했고, 그리하여 그레타 가르보로 출연했다. 또한 〈올랜도〉의 리허설 장면을 비디오로 찍기도 했다.

VOGUE 한국에서 개봉하는 당신의 신작 영화는 〈8명의 여인들〉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코파카바나〉의 주인공은 당신과 딸 롤리타 샤마다. 영어 선생님으로 알려진 당신의 어머니가 딸이 배우가 되도록 격려했던 것처럼 당신이 이미 경험한 모녀 관계가 이제 당신과 당신 딸 사이에서 자연히 재현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ISABELLE 아마도? 글쎄. 나도 확신할 수는 없다. 나의 어머니는 영화계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산 분이다. 그럼에도 직감적으로 내게서 배우의 기질을 발견해 격려를 해주셨다. 그런데 내 딸은 배우로서의 나를 보고 자랐기에 훨씬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 두 관계가 닮은꼴일지언정 온전히 같은 메커니즘은 아니리라 본다. 〈코파카바나〉의 경우 감독 마크 피투시의 첫 장편 영화 〈예술가의 삶〉에 딸이 고집 센 여고생으로 출연했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딸과의 출연은 물론 더없이 큰 기쁨이었지만, 극중 모녀지간과 우리 사이가 온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라 난감한 부분도 있었다.

VOGUE 당신과 딸 롤리타 샤마는 어떤 점에서 닮았고 또 다른가?
ISABELLE 받고 싶었던 질문이다. 우선은 외모적으로 닮았다. 딸이 나오는 장면에서, 얼핏 내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다른 점은, 내가 그 또래였을 때는 지금의 딸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딸은, 그 나이대의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 봐도, 그러한 힘을 더 지닌 듯하다.

VOGUE 연기에 대한 조언을 해준 적은? 딸을 어떤 배우로 보나?
ISABELLE 직접적인 조언을 해준 적은 없다.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전수되는 면이 있다. 간접적인 방식의 간단한 조언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긴다. 그 정도다. 롤리타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굉장히 많은 배우다. 연기가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이상야릇하게 우스꽝스럽기도 한, 나이브한 동시에 진중함과 무거움을 지닌 배우다.

VOGUE〈코파카바나〉이후에도 당신은 쉼 없이 영화를 찍고 있다. 올해 칸 영화제에 진출한 신작 〈먹이(Prey)〉의 경우 필리핀 감독의 작품이다. 또한 이번 내한을 준비하면서 이창동 감독과의 대담을 직접 제안했다고 들었다. 이창동뿐 아니라 홍상수, 임상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당신이 언젠가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밝힌 한국 감독들의 리스트다. 혹 앞으로 전략적으로, 구체적으로 비유럽 국가 감독들과 작업할 생각이 있는 것인지.
ISABELLE 언제나 바라는 바다. 배우로서 계속 추구해왔던 바다. 국적과 상관 없이, 여러 좋은 감독들과 영화를 찍고 싶다. 필리핀뿐만 아니라 그동안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독일 감독 등과 작업을 해왔다. 당연히 한국 감독과도 꼭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 참고로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즐기는데, 다음에 외국 감독과 손을 잡게 되면, 외국의 이방인으로 찍혀 보는 것이 소원이다. 한국 영화의 경우 프랑스 비평계와 대중 양쪽을 통틀어 나날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내가 보기에 한국 영화에는 프랑스 영화와 통하는 지점이 있다. 거리를 둔 차가운 유머가 프랑스적 정서와 유사하다. 특히 이창동 감독의 〈밀양〉 〈시〉 등은 굉장히 세련되고, 절제되어 있고, 섬세하다. 한편 박찬욱과의 인연은 지난 2009년 내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박쥐〉를 심사할 때부터다.

VOGUE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서 활동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좋은 영화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ISABELLE 의외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좋은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너무도 다양하고 또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영화란 없다. 지극히 주관적이다. 일례로 2009년 칸 심사위원장이 내가 아니었다면 수상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그럼에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의 기준을 큰 틀에서 말하자면, 어느 정도 오락적이고 재미도 있으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영화는 일종의 스펙터클이자 공연이다. 감동을 주면서도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역할이자 속성이라고 본다. 그런데 한 영화에 이 두 지점이 전부 결여되어 있다면, 그때는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VOGUE 아직도 해보고픈 역이 남아 있나?
ISABELLE 지금 이순간 딱히 떠오르는 역은 없다. (잠시 후)그런데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내가 해왔던 역할은 주로 심경이 복잡한 사람, 사랑이 어려운 사람, 결과적으로는 맺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너무 어려운, 사랑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는 역이었다. 그런데 이번 〈코파카바나〉를 계기로 다른 차원의 시작을 해보게 됐다. 주인공 바부는 언뜻 철없는 엄마로만 보이지만 실은 삶에 긍정적이고, 관대하고, 밝다. 코미디적 요소와 삶의 이면 속 어두운 지점이 어우러진 이번 영화처럼, 밝고도 심오한 역할에 계속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또 바부처럼 타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역할을 더 해보고 싶어졌다.

VOGUE 도저히 불가능할 법한 역은?
ISABELLE 도저히 못 하겠다거나 정말 하기 싫다거나 이런 건 없다. 내 작품 선택의 기준은, 감독이 첫 번째다. 역할은 두 번째다. 나는 철저히 감독에 의거해 영화를 고른다. 이를테면 다른 건 다 좋은데 역할이 싫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잠시 후)그런데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있겠다. 극심한 비호감을 안기는 캐릭터라면, 어쩌면 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배우는 백지다. 배우는, 감독의 세계를 대신 입어 표현해주는 주체다.

VOGUE 훗날 ‘어떤 배우’로 기억되기를 바라나?
ISABELLE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 그 자체가 미래의 일 아닌가. 진심으로 솔직히 말하자면, 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배우라는 직업에 꽂힌 사람이고, 그리하여 배우로서 흥미를 느낀 지점이 있다면 온전히 빠져드는데, 한편 관심이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무심하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부분은 후자에 속한다. 정말로, 할 말이 없다.

이야기는 다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작품, 〈레이스 뜨는 여자〉로 돌아간다. “뽐므에게는 꿈이 없었다. 뜨개질하는 사람의 시간과 정열이 한 필의 작물로 화하듯이, 그녀는 ‘노동에 의한 집요한 경배’를 통해 ‘자기 일의 수행 속에서 사라지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_‘장정일의 독서일기’中(2010.3.7) 아무래도 위페르는 꿈을 믿지 않는 부류인 듯하다. 다만 이 배우가 믿는 것은 ‘자유’다. “내게 있어 삶의 가치란 ‘일할 자유’에 있다. 하고 싶은 영화를, 훌륭한 감독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본인은 극구 거부했을지언정 우리는 결국 위페르를 ‘어떤 배우’로 기억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언제나 백지 상태의, 그리하여 언제나 자유로운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