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년 여배우 특집-황정음] 귀여운 여인

황정음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신이 나서 말하면 그 어떤 발언도 싱그러워진다. 이제 막 연기의 맛을 발견한, 어느 귀여운 여인의 성장기.

레더 브라 톱은 꼼 데 가르쏭(Comme Des Garons), 플리츠 스커트는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메이크업 받는 동안 책을 읽고 있던데, 무슨 책인가요?
미우치아 프라다에 관한 책이에요. 쉬운 글 찾는다고 ‘청소년 롤 모델 시리즈’로 나온 걸 사봤는데, 이건 또 너무 쉬워서 재미없네요. 다음엔 이것보단 어려운 책 읽어야겠어요.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우리는 참 예뻐요.
우와, 감사합니다. 사실 전 드라마에서 봉우리가 늘 못나게 나오는 것 같아서 오늘은 아주 예쁜 컨셉으로 찍고 싶었는데…

3개월 전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 첫 주인공인 만큼 내일 죽을 것처럼 해보겠다고 했죠?
저 많이 예민했어요, 잘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스태프들이 실수를 하면 그게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또 실수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못되게 굴었어요. 제가 여유로운 사람이면 그렇게 예민하게 안 굴었을 텐데, 아직 여유가 없어서 주변 사람도 힘들어졌죠. 역시 나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봉우리는 자신을 여자로 보는 남자를 여전히 친오빠로 대하고 챙겨주기 위해 연인에게 잠시 헤어져 있자고 제안하는 여자예요. 그런 선택을 이해해요?
봉우리 같은 여자는 너무 착한 아이기 때문에 마음이 두 개라고 이해하기로 했어요.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 가끔 우리 엄마가 드라마를 보다가 “쟤가 너야? 어떻게 엄마한텐 그리 못하면서 저런 착한 짓을 알아?” 그러세요. 그럼 전 이래요. “대본대로 하지!”

원래 착한 여자가 욕먹기 쉽잖아요.
맞아요. 〈내 마음이 들리니〉를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이해를 할 수 없는데 이해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사실 윤여정 선생님이나 정보석 선생님이 친할머니도 아니고 친아빠도 아닌데 봉우리는 그렇게 잘하는 거잖아요. 게다가 원인이 되는 부분을 모른 채 결과가 되는 부분의 쪽대본만 받고 촬영해야 했어요. 물론 웬만한 드라마들이 그렇게 만들어지지만.

시청자가 볼 때는 앞뒤 맥락이 있게 보는데,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연기자 입장에선 그런 게 없으니 답답한 거군요.
그래서 얘기가 이어지도록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해요. 그래도 우리 드라마는 허술하지 않았죠? 작가 선생님은 정말 천재 같아요. 제가 아직 대본을 잘 분석할 줄 모르거든요.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대본 처음 받고 이렇게 좋은 얘기도 있구나 싶었어요.

잡지가 나올 때쯤이면 드라마가 종영된 후일 거예요. 그러니 엔딩에 대해 말해주세요
진짜 몰라요. <지붕 뚫고 하이킥> 때는 알면서도 모른척했는데, 지금은 정말 몰라요. 착하고 예쁜 드라마였으니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쇼킹하고 반전 있게 끝나면 좋겠어요.

〈지붕 뚫고 하이킥〉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라고 생각해요?
저요. 그리고 제가 제일 행복해 하면서 했어요. 신종플루 걸려도 마냥 좋다고 열심히 했거든요. 세경이야 원래 얌전하지만, 저만 좀 붕 떠 있었어요.

<자이언트>처럼 호흡이 긴 60부작 드라마도 해냈어요.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달라졌겠죠. <자이언트>는 시트콤을 끝내고 처음 하는 정극이라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지 않았어요. 지금은 경험자 황정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용서를 안 해주죠. 저 스스로도 이번엔 나도 연기 잘한다는 소리 좀 들어봐야지 싶었어요.

본인이 연예인이 아니라 여배우란 생각을 하나요?
지금도 여배우라는 소리를 들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진짜 여배우는 이미숙, 고현정, 윤여정 선배님 같은 분들이에요. 배우의 아우라는 연기를 통해 나오는 것도 있지만 삶을 통해 나오는 것도 있어요. 그분들은 지금까지 힘든 순간들을 넘겨내며 꿋꿋하게 존재감을 이어온 분들이잖아요. 특히 윤여정 선생님은 제가 왜 연기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게 해준 분이에요. 그냥 매 순간순간이 감동이에요.

몸빼 바지 입은 할머니로 나오지만, 그마저도 멋지게 보이는 거죠?
하하, 사실 실제 모습은 버킨 백과 에르메스 스카프에, 워싱된 청바지를 입고 컨버스 신는 분이세요. 바라보고 있으면 담배 피우는 모습과 밥 먹는 모습조차 다 좋아요. 제가 예전에는 예쁜 모습만을 생각하고 성형외과 기웃거리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통통해져도 다이어트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 이유가 그 이상의 다른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본인의 얼굴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과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어디에요?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엄청 많죠.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을 사랑하기로 했어요. 피부관리는 해요. 그건 무조건 해야 돼요. 성형과는 이제 작별하기로 했어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 보기 싫어지면 그때 조금 더 할까….

여배우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예뻐야 해요. 물론 연기도 잘해야죠, 하하.

연기를 잘한다는 건 어떤 걸 말하나요? 기술적인 것? 철학적인 것? 순진한 것?
다 필요해요. 분명한 건 어떤 상대방과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점점 내가 발전하는 걸 느낀다는 거예요. 나도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기고, 연기가 재밌어지고, 선생님들이 멋있고. 나도 저렇게 돼야겠다고 느끼면서 기분 좋게, 행복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무슨 일을 하든 20대엔 롤 모델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죠.
그런 대상이 없으면 자만하기 쉬워요. 전 항상 모든 사람에게 배워요. 거지한테도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해요. 좋으면 바로 따라 해서 갖고, 싫으면 버리면 되니까. 저 스스로 선배님들 것 캐치하고 습득하는 게 느껴지니까,이제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 같아서 모든 게 재밌어어요. 제 장점은, 자만을 안 한다는 거예요.

스트라이프 실크 셔츠는 컬처콜(Culture Call), 블랙 탱크 톱은 스팽스(Spanx).

하지만 사람들이 아는 황정음은 자신만만하고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여자일 텐데요?
그건 자신감이지 자만은 아니에요. 통장잔고가 487원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허술한 점들을 드러내고 살 기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아>라고 첫 드라마 할때도 윤여정 선생님이 계셨어요. 얼마 전에 선생님이 “너 그땐 대사도 잘 못 외우고 연기 못하더니, 많이 늘었다? 요즘 니 연기 어떤 것 같아?” 하시기에 “아직 이상해요, 저 어떡해요” 했더니 “그럼 됐어” 하시더라고요. 자만하고 있지는 않다는 거죠.

자만 아닌 자신감엔 미모도 한몫했겠죠?
네, 정말 그랬어요. 전 제가 제일 예쁜 줄 알고 컸어요. 오빠가 둘인데 여덟 살, 열 살 차이가 나요. 오빠들한테 용돈 받아 중학교 때부터 택시 타고 다녔어요. 그런데 슈가 활동할 때 아유미가 너무 잘나가는 거예요. 나만 잘난 게 아니구나, 처음으로 신세계를 봤죠. 그러면서도 이상한 자신감은 늘 넘쳤어요. 가수할 때 회사에 송승헌 오빠, 한은정 언니가 있었지만 별로 부럽지 않았다니까요.

하하, 뭘 했어도 그 자신감이면 어느 정도는 해냈겠네요. 사업을 해도 잘할 것 같고요.
사업, 해보고 싶어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동물병원을 만드는 거예요. 스파도 있고, 학교도 있고, 궁궐 같은 동물병원. 건물 하나 지어서 동물병원도 넣고 성형외과도 넣고. 세 받아가면서….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황정음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신이 나서 말하면 도와주고 싶을 거예요.
그렇죠? 저도 10년 안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의 화두는 뭐예요?
집. 아펠바움이라고, 그 집을 봤는데 기가 막혀요. 그런 집 두 채 사서 나 한 채 살고, 가족들이 옆에 한 채 살고 그렇게 결혼해서도 모두 모여 살면 좋겠어요.

아직 물질적으로 그렇게 누려보진 못한 거죠? 돈 맛과 연기 맛을 알아가고 있는 셈인가요?
네. <우리 결혼했어요> 이후 달라진 게 있다면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아지고 욕심도 끝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원래 꿈도 크거든요. 저 갤러리아 백화점 인수하고 싶어요. 하하.

진심이에요? 갤러리아 백화점은 모 재벌가 소유인데…
무슨 말씀 하시는지 짐작하겠는데, 저는 누구 덕 보거나 남자한테 기대서 얻는 거 관심 없어요! 제가 능력 있으니까. 다만, 이런 생각은 있어요. 제가 벤츠 s500을 몰고 다니면 남자는 벤틀리 몰 수 있는 정도였으면 좋겠다… 비유하자면요. 이런 생각 별로예요?

뭐, 스스로 격을 높이네요.
하지만 남자 친구는 안 바뀌고 계속 한 사람만 만나고 있으니까, 저 의리는 있지않아요? 으하하.

연애는 잘 돼가요?
그 친구 만났을 때는 저 파릇파릇했는데 지금은 나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 스물 일곱이니까, 우리 5년 됐어요. 사실은 <우리 결혼했어요> 하면서부터 연애한다는 기분이 안 들었어요. 그때 너무 많이 싸웠거든요. 그러고 나서 물론 더 돈독해졌죠. 하지만 누구나 연인을 처음 만난 순간이 가장 행복할 거예요. 지금은 가족 같은 느낌? 우리는 우정반지 해야 된다고 우리끼리 얘기해요. 그것조차도 사랑에 포함되는 거죠. 질투, 우정, 의리, 이런 것들도 다 사랑에 포함되는 개념 같아요.

보통은 남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데요..
저 남자예요. 용준이가 여자예요. 요새는 잘 안 싸워요. 옛날엔 할 일이 없으니까 툭하면 싸웠는데, 요즘엔 내가 일이 많고, 나름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싸울 필요성을 못 느껴요.

능력 있고 긍정적인 황정음 인생에 괴로운 순간이 있었다면?
전 늘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도 모든 일을 별일 아닌 것처럼 만들어요. 원래 그렇진 않았는데 이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렇게 돼 있었어요. 힘든 일이 많으니까 스스로 방어하는 건가 봐요. 그런데 얼마 전 외할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태어나서 처음 지독하게 슬픈 감정을 느꼈어요. 우리 외할머니는 평생 희생만 하셨거든요. 절 보면 맨날 밥은 먹었냐고 물으셨어요. 드라마 촬영하다 새벽에 장례식장 가서 엄마한테 외할머니는 평생 밥 먹어라 소리만 하다 가셨네, 했더니 엄마 말씀이 외할머니가 젊었을 때 밥을 잘 못 드셔서 그런 거래요. 우리 할머니 너무 불쌍해. 그런데 가슴 아픈 경험을 하고 나니 윤여정 선생님과 맞출 때 또 연기가 잘 돼요.

가시는 순간까지 뭘 주고 가시네요. 어쨌든 부담과 아픔을 갖고 열심히 하니 드라마가 잘 나왔잖아요. 평균 시청률은 10%가 좀 넘는 정도였지만, 좋다는 평이 많았잖아요?
아니에요. 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 속상해….

오늘 촬영 때문에 마스카라도 다 번지게 메이크업 해놨는데 일부러 안 지웠네요? 그러고 어딜 가고 싶어요?
집에 가서 샤워할 거예요. 그리고 자전거 타야지. 용준이가 요즘 살 빼라고 해요. 사실 좀 찌긴 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