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15주년 여배우 특집-예지원] 예지원의 보디게임

2016.03.17

by VOGUE

    [15주년 여배우 특집-예지원] 예지원의 보디게임

    프랑스 여배우 같기도 하고, 분홍신을 신은 무희 같기도 하고. 예지원을 볼 때마다 영혼은 깨끗해지고, 예술은 아름다우며, 인생은 살만하다. 춤추는 여배우, 예지원의 장밋빛 인생.

    스킨 색 보디수트는 보브(Vov).

    카키색 보디수트는 클로에(Chlo).

    등장이 꼭 프랑스 여배우 같네요. 검정 모자에 흑발을 휘날리며.
    그런가요? 호호. 머리를 까맣게 염색했어요.

    오늘은 마릴린 먼로처럼 은발을 할 거예요. 맘껏 춤을 춰도 좋아요.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참, 요즘도 샹송을 부르나요?
    가끔. 당분간은 저 혼자 간직하려구요.

    목소리가 좀 쉰 것 같네요.
    지난주에 <미드 썸머>라고 연극 끝났어요. 그리고 어제는 영화 <더 킥> 후시 녹음을 했어요. <옹박> 만든 감독의 영환데…, 기합이 많아서 소리를 계속 질렀더니 목이 갈라졌네요. 아아아아~.

    <미드 썸머>는 못 봐서 정말 안타까워요. 10년 전쯤인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할 때도 굉장히 신선했어요.
    <미드 썸머>도 2인극이에요. 남녀가 등, 퇴장도 없이 무대에서 1인 다역을 하는 거였어요.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하고… 영국 작품인데, 한국적인 정서를 살리는 게 포인트였어요. 다행이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가만, 아까 <더 킥>이 <옹박> 만든 감독 작품이라고 했나요? <옹박>은 정말 멋진 액션 영화였어요.
    네. <옹박> 만든 태국 감독이 연출한 태권도 영화예요. 작년에 작업했는데, 올가을쯤에 개봉할 거예요. 조재현 선배님하고 저하고 태권도 챔피언인 아들딸이 나오는데, 태국에서는 200% 대박을 기대한대요.

    흥미로워요. 대체 그런 영화는 어떻게 캐스팅 제의가 오는 거죠?
    이야기가 태국에서 한국 요리집을 하는 태권도 가족인데, 엄마는 태권도 전 세계 챔피언이고, 아빠는 은메달리스트예요. 당연히 몸을 쓸 줄 아는 배우가 필요한 거죠. 제가 춤으로 몸을 좀 쓸 줄 아니까요. 호호.

    정말 극과 극이네요. <달빛 길어 올리기>에서는 뇌경색 환자 역이라 움직이질 못하더니, 이젠 태권도 챔피언이라니요?
    그러게요. <볼수록 애교만점> 시트콤 하면서 태권도 도장 다녔어요. 정말 열심히 해서 모든 액션을 다 했죠.

    태권도 실력은?
    검은띠 땄어요. 유리를 뚫고 나가는 것 빼고는 모두 제가 직접 했어요.

    자격증이 많겠어요. <달빛 길어 올리기> 할 때는 한지 공예에 투신했잖아요?
    네. 한지 자격증도 땄고, 검은띠도 땄죠.

    흑백의 조화로군요. <하하하>로 칸 영화제에 가서는 불어로 소감을 말씀하셨다죠?
    네. 정말 바쁜 나날이었어요. 하는 역할마다 숙제가 많아요.

    태국에서의 촬영은 어땠나요? 그 감독이 대역과 CG를 사용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요.
    액션이 이런 거구나, 와~ 위험이 많은데도 태국 배우들은 온몸을 던져요. 맞고 찢어져도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그리고 한국 여배우를 신비롭고 귀하게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나에 대한 정보가 있으니까 좋아한다지만, 태국은 그게 없는데도 정말 많이 사랑해줬어요.

    예지원 씨 연기의 근원이 춤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어요.
    맞아요. <달빛 길어 올리기>에서도 몸을 쓸 줄 아니까, 몸이 마비되었다 풀릴 때 모습을 재현할 수가 있었어요. 이번에 태권도 영화도 무용을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요. 이렇게(시범을 해보이며), 스트레칭이랑 발차기가 되니까 빨리 할 수 있는 거죠.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을 할 때도 역할이 무용가였죠? 첫 대사가 “제 춤 한번 보실래요?”
    네. 원래 문인 역할이었다가 홍 감독님이 절 보시고는 무용가로 바꿨어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도 몸에 관한 이야기였죠.

    <버자이너 모놀로그> 한국어 제목이 <보지의 독백>이었는데, 그때 10년 전에 내가 ‘보지에게 무슨 선물을 주고 싶냐?’고 그랬더니 지원 씨가 “갑자기 햇빛을 보면 눈이 부실 테니 선글라스를 씌워주겠다”고 했어요. 하하. 그런데 그런 배역을 맡다 보면 능력이 확장되는 즐거움이 있겠어요?
    호호호. 그럼요. 감독님들이 제가 할 수 있도록 찾아주시니까 기쁘죠. 묻혀 있을 수 있는데 알아봐 주시는 거잖아요.

    정통 뮤지컬을 해보는 건 어때요?
    오! 노래는 좀 힘들듯. <록키호러 픽쳐쇼> 할 때도 노래보다 연기 쪽을 했어요. 뮤지컬은 좀 무서워서 피해 다니고 있어요.

    예지원 씨는 왠지 여배우의 욕망과 여자로서의 욕망이 일치하는 느낌이네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하는 거겠죠.

    연기를 잘한다는 건 뭘까요?
    기술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때그때 초기화시키는 게 중요하죠. 진정성을 갖고 열심히 하려면 작품마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죠. 그런데 늘 처음으로 돌아가기가 쉽지는 않아요.

    여배우에게 중요한 세 가지를 말해봐요.
    신앙, 사랑, 봉사.

    사람에게 중요한 세 가지와 비슷하네요?
    맞아요. 저는 크리스찬인데, 작품을 할수록 신앙이 없이는 못하겠구나. 왜?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이 떨어져요. 어릴 땐 멋모르고 따라 했지만, 제가 커지니까 이기적이고 고집을 부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는 공동 작업이라서 서로 호흡을 잘 맞춰야 해요. 배역만 따지면 저는 남자 역할까지 해보고 싶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어떤 배역이 딱 중요하다기 보다 누구랑 하느냐가 더 중요해져요. 서로 배려하고 격려해도 될까 말까인데, 내 이상에 맞는 사람만 바라면 안 되죠. 저한테는 사람들과 조화롭게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신앙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게 보이죠?
    그럼요. 어떨 땐 겁이 나요. 너무 많은 게 보여서.

    집에선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집에서도 바빠요. 신문도 보고 영화 잡지도 보고, 대본도 보고 영화도 보고, <나는 가수다>도 봐야 하고.

    <나는 가수다>는 어떤 포인트를 주로 봐요?
    진정성을 보는 게 좋아요. 앞뒤 안보고 죽기살기로 하잖아요.

    거기서 자기 모습을 보나요?
    그렇죠. 저런 가수들이 가수 하면 노래 부르는 직업 참 멋있는 거죠. 아이돌만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

    <나는 배우다>를 하면 어떨까요?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으려나? 한 장면만 연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에이~. 말도 안 되겠어요. 장기 자랑 같겠죠.

    그건 <기적의 오디션>에서 봐야겠네요. 그건 그렇고 예지원 씨, 하면 다들 착하다, 그리고 백치미 이렇게 두 가지를 얘기해요.
    착한 건 별로예요. 백치미는 좋아요. 절더러 ‘착하다 착하다’하는 사람은 결정적으로 저한테 실수를 해요. 바보라고 생각해서, ‘쟨 모르는구나’ 이러면서 실수를 하는 거죠. 백치는 좋아요. 이걸 해도 좋고 저걸 해도 좋고, 백지 같은 여자니까.

    문득 <백치 아다다>의 신혜수가 생각나네요.
    아! 그거 좋아요. 그런데 신혜수 씨는 뭐하나? 시집 갔으려나?

    글쎄요. 그 작품도 임권택 감독이 연출하셔서 몬트리올 영화제 여우 주연상까지 받았죠? 아마? 예지원 씨도 <백치 아다다> 하면 잘하실 것 같네요.
    너무 좋죠. 백치 역할.

    지금은 태국의 태권도 영화까지 왔는데, 전작들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어요?
    임 감독님 하고 했던 <달빛 길어 올리기>요. 그 현장이 너무 좋았어요. 좋은 선배와 감독님하고 작업하면서 막내로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렸죠. 보호 받고 어리광 부리고.

    강수연 씨와 친해졌죠? 김지미 선생님 회고전 때도 같이 오시고.
    수연이 언니랑 자주 봐요. 그 언니는 베풀기 좋아해서 남들 도와주느라 시간을 다 써요. 좋은 현장이란 어떤 거죠? 전체가 존경심으로 돌아가는 현장이죠. 어떤 전문성이나 대스타도 그걸 이길 수는 없어요. 태국에서 작업했던 감독도 태국에서 톱이고 아시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신 분이래요. 거기도 존경심이 대단해요.

    홍상수 감독 현장도 마찬가지죠?
    그럼요. 그 현장에 모인 사람들 중에 욕심 있는 사람이 없어요. <하하하>도 바캉스 가는 기분으로 찍었어요. 문소리 양이랑 관광하다 온 것 같아요. 영화가 바캉스야. 호호. 임권택 감독님이랑 홍상수 감독님 현장에선 회식이 줄을 서 있어요. 영화가 끝나면 살이 통통하게 쪄 있어요.

    살은 쪄도 영혼은 깨끗해지겠네요?
    맞아요. 한국 최고의 감독들이랑 작업해서 저는 진짜 영광이에요. 칸에서 <하하하>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 수상할 때도 만장일치였대요. 상 받고 파티할 때는 우리가 주인공이었어요.

    <달빛 길어 올리기>는 임 감독님 101번째 영화인데, 아쉽게도 흥행이 잘 안됐어요.
    흥행은 안돼도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거예요.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우리 배우들 사진이 있대요. 전 자랑스러워요. 대신 태권도 영화는 온 가족이 볼 수 있어서 대박일 거예요. 하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예요?
    엄마요.

    엄마? 왜?
    왜냐하면 엄마니까요. 엄마는 저를 여자로 만들어줬어요. 뜨개질도 가르쳐주고, 무용도 하게 해주셨죠.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태권도나 하면서 컸을지도 모르는데, 엄마 때문에 무용도 하고 연기도 했어요. 엄마가 내 여성성을 찾아줬어요.

    만약에 전라로 출연하게 된다면 그 영화는 어떤 영화여야 하나요?
    노출할 때마다 돼지처럼 나왔어요. <생활의 발견> 때는 58kg였죠. 그건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살이 찐 채로 노출한 거였고. 만약 노출을 한다면 몸을 좀 멋지게 만들어서 하고 싶어요. 쉴 때 무용을 하면 몸이 정말 예뻐지는데, 왜 그때는 다들 나를 캐스팅 안 하나 몰라요.

    오! 지원 씨의 예쁜 몸을 볼 수 있는 영화가 곧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 다음 영화는 아빠와 딸 이야기인데, 제가 간경화 환자로 나오네요. <달빛 길어 올리기>의 환자 연기 보고 캐스팅을 한 듯해요.

    태권도 영화 이후에 그럼 간경화? 정말 또 한번의 극과 극의 몸 연기네요.
    그러게요. 환자 아니면 방방이라니까요. 하하하.

    포토그래퍼
    조선희
    스탭
    스타일리스트/한연구, 헤어 / 유다(Duet), 메이크업 / 최대균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