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년 여배우 특집-강혜정] 그 여자 청순하다

집단, 구속, 익명의 대중 대신 가족, 남편, 이웃집 아줌마들을 더 사랑하는 청순한 보헤미안. 땅에 발 닿은 독특함으로 배우 인생 두 번째 그라운드를 시작한 강혜정을 만나보자.

톱과 스커트, 헤어피스 모두 릭 오웬스(Rick Owens).

점프 수트와 판초는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실버 목걸이는 크리스 루스(Kris Ruhs at 10 Corso Como).

우리 스타일리스트가 혜정 씨 남편에게 반바지 입히고 촬영한 적 있대요.
남편은 원래 반바지 안 입었어요. 자기 다리가 휜 줄 알았대요. 그런데 제가 다리 예쁘다고 칭찬하니까 그때부터 반바지를 입어요.

아기는 돌 지났죠?
14개월이에요. 요즘 진짜 열심히 걸어요. 아침 6시부터 일어나 마실 나가자고 보채요. 애들은 엄마한테 달라붙잖아요. 그게 되게 힘든데, 또 엄청 좋아서 그 맛에 키워요. 딸이라서 더 착착 감겨요.

드라마 <리플리>는 시청률이 좋죠?
좋아요. 근데 또 욕심이 나서 시청률이 다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요. 욕심이 많아서요, 제가.

결혼과 출산이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쳤나요?
아니요. 잘 아시겠지만 요즘엔 ‘쎈’ 영화가 안 나와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어요.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할 만한 시기가 아닌가 봐요. <인셉션> 같은 영화가 한국에서도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그 놀란 형제가 함께 각본을 쓰고 연출했대요. 동생이 <메멘토> 각본을 썼다죠?

글 잘쓰고 연출도 잘하고, 자기 시나리오로 영화 만드는 감독들 참 놀라워요.그렇죠?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 같은 분들 참 존경스러워요.

지금은, 영화 공백기인가요?
안 한 것 반, 못한 것 반, 그래요.

아기가 있으니까 충족감이 크죠? 영화 현장에서와는 다르겠지만.
예전에는 열정이나 삶의 즐거움을 현장에서 충족시켰거든요. 요즘엔 일할 때 힘들고 분노가 차오르다가도 집에 가서 위안을 얻어요. 아이와 갖는 시간을 통해 열정을 해소해요. 하하.

정말, 침착해졌네요. 술은 안 해요?
술은 전혀 못해요. 안 먹고 잘 노는 스타일이에요. 요즘엔 친구들 만나도 아이가 있는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만 만나게 돼요. 봉태규 커플이나 정혜영, 송윤아 언니같이….

교회 다녀요?
하나님을 믿어요. 집단을 안 좋아해서 기도만 해요.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얼마 전에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이 신랑한테 제가 기도한 걸 들었다고 그러시더래요.

뭐라고 기도했는데요?
힘든 걸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진실로 판결이 났다 해도 상처는 남죠? 타블로 학력 사건은 대중의 폭력이었어요.
그걸 캐주얼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더 힘들었어요. 저는 트위터를 안 하거든요. 그런데 외국에는 트위터에서 타인의 사생활을 올리는 건 안 된다는 규제가 있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통제가 안 되잖아요. 악의를 갖고 쓰더라도 그게 그냥 노출이 되잖아요. 거름종이도 없이.

개인사를 잘 공개 안 하는 편이죠?
나누면 지탄 받을 재료를 제공하는 것 같아서요. 제 사생활을 널리 전파할 필요는 못 느껴요.

요즘엔 일반 대중들도 SNS 공간에 사생활 공개하는 게 취미예요. 나르시스틱하게.
나르시스틱이 우리말로 뭐죠?

스스로에게 도취된 거요.
아~ 자뻑! 배우들은 다 자뻑 기질이야 있죠. 그런데 요즘엔 외형적으로 옷 안 산 지 한참 됐어요. 촌스러워지고, 신랑 옷 입기도 하고… 하하.

그런 스스로가 어때요?
좋아요. 아가를 봐야 되니까 옷이 다 체육복 수준이에요.

몸매는 보기 좋은데, 다이어트 했어요?
지금 제 몸은 YG 엔터테이먼트 트레이너 사부님의 작품이에요. 그분이 제 몸을 연구해서 식단, 운동 프로그램을 짜주셨어요. 닭가슴살 샐러드를 엄청 먹고 근력 운동을 많이 했죠.

원래 잘 견디는 편이죠?
잘 견디긴 하는데 그런 상황을 힘들어 해요. 애기 낳을 때도, 우리 애기 3.6kg로 나왔거든요. 하도 턱을 악물어서 턱이 벌어졌어요. 그 와중에 우리 아가는 제가 힘을 잘 못 줘서 쇄골이 부러져서 나왔잖아요.

혜정 씨는 원래 비명은 잘 지르잖아요. 박찬욱 감독 말씀이 <쓰리-몬스터> 때 혜정 씨가 비명을 잘 질러서 캐스팅 했다고…
하하. 그런데 너무 아프니까 비명도 못 지르고 그냥 박수만 쳤어요. 짝짝짝! 어휴~ 그랬더니 울 애기 나올 때 울음 소리가, 병원에서 제일 컸어요. 저도 힘들어서 성질이 난 거죠. 하하.

처음 눈 맞췄을 때 어땠어요?
처음엔 괴리감이 컸어요. 회색의 쪼끄만 애기를 내 옆에 눕히는데, 단번에 실망했잖아요. 그래서 제 첫마디가 이 쬐끄만 건 뭐예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예뻤는데, 아련히 생각해보면 왜 그 예쁜 걸 몰랐을까….

타블로와는 서로 취향이 잘 맞죠?
저도 음악 좋아하고, 남편도 영화 좋아하니까. 남편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커서 예전에 NYU 영화과에도 지원해서 합격했었대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얘기도 남편이 해줬어요.

타블로는 소설가이기도 한데, 혜정 씨를 위한 시나리오를 써주면 어떨까요?
언젠가는 각본을 써주겠대요. 되게 나이 들어서 신랑이 쓴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혜정 씨는 자기 인생이 이렇게 펼쳐질 줄 알았어요?
아뇨. 2년 전까지 몰랐죠. 전 제가 엄청 독립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서로 의지해서 살아가는 게 좋아요. 유들유들해진 것 같아요.

딸이 여배우가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차라리 여군이 되라고 하겠어요. 그래도 고집하면 파푸아뉴기니나 이스라엘로 데려갈 거예요.

그래도 혜정 씨는 연기를 사랑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요즘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어요.

<올드보이>에 출연한 건 행운이었죠? 그런 영화가 다시 나올까요?
미국에서 <올드보이>를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미국인들이 더 반대했대요. 그 좋은 영화를 왜 다시 만드냐고. 얼마 전에 <렛미인>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잔혹하고 아름다운 스웨덴 흡혈귀 영화거든요. 그걸 미국에서 리메이크를 했는데, 참 이상했어요. 원작이 너무 좋은데, 그걸 왜 또 만들었을까?

<박쥐>는 어땠어요? 욕심 나지 않았어요?
그 작품은 옥빈이가 너무 잘했어요.

목소리가 왜 기운이 없어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없어졌어요. 소수일 수도 다수일 수도 있는데, 네티즌이 예술적 행위를 하는 사람을 왜소하게 만들어요. 작품을 위해 했던 행위가 캡처되어 유흥사이트에 돌아다니면 쓰레기가 된 것 같아요.

기분이 엉망이겠어요.
사람 상처 주는 게 레크레이션이 된 것 같아요. 동호회처럼. 무섭죠. 어쩌면 현실이 영화고 영화는 차라리 동화 같아요.

어떤 여자로 살고 싶어요?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었으면 해요. 자기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헤쳐 나가는 독립적이고 민폐 없는 삶. 여배우들이 힘없이 비실거리는 거, 그거 민폐예요. 이혜영 선배님 말씀이 민폐 안 끼치는 여자가 청순한 거래요.

그렇다면 당신은 청순한 여자?
그럼요. 무척 청순하죠.

예전엔 의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었죠? <올드보이> 때 박찬욱 감독과 함께 <보그> 촬영할 땐 꼭 의리 있는 형제처럼 보였어요.
네. 요즘엔 의리와 신의를 동시에 생각해요. 의리는 1 2=3 같은 수학적인 형태인데, 신의는 또 지켜나가야 할 도덕적 진리 같은 거고.

요즘 혜정 씨의 신조는 뭐예요?
가정은 친하게, 대중을 멀리! 하하하. 농담이구요. 전 동네 아줌마들이랑 무척 친해요. 제가 아는 대중들은 그런 분들이에요. 전 부족한 게 참 많은 사람인데, 그분들한테는 잘 보이고 싶어요. 참 이상한 게 배우라는 직업이 누구 하나가 날 싫다고 하는 소릴 들으면 세상 사람들이 다 날 싫어하는 것처럼 생각되거든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신랑이요. 사랑한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커리어에 장애가 있다면?
제가 자유롭게 몸을 활용하는 연기를 할 일은 없을 거예요.

해외로 진출할 계획은?
전 한류에 묶이고 싶지 않아요. 강혜정 ‘센 배우’ , 이런 분류도 싫어요. 저도 얼마든지 청순할 수 있다구요.

참 행복해 보이네요.
내가 내 자신을 뛰어넘어서 인정받을 때의 행복과는 또 달라요. 그런 성취의 기쁨은 지금의 행복과는 비교가 안 돼요.

예전엔 아주 독특했는데, 지금은 평범해졌네요. 그러니까 혜정 씨 특유의 독특함이 평범함을 포용하고 있는 듯해요.
신랑이 그랬어요. 특이한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 오래 되면 다 질린다. 붕 떠서 매력 있으면 오래 못 간다. 땅에 발이 닿아서 매력 있어야 진짜 매력이다.

명언인 걸요? 붕 뜬 독특함이 아니라 땅에 발이 닿은 독특함이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창작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리얼한 삶을 나눌 줄 알아야 된다는 거죠.

멋진 커플이네요.
하하. 전 제 남편을 진짜 존경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