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년 여배우 특집-김효진] 지적인 효진씨

김효진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여배우다. 모피를 입지 않고, 채식을 실천하며, 채굴 과정의 잔혹성 때문에 다이아몬드를 거부하고, 인터뷰 다음날 봉사 활동을 위해 알바니아로 떠났다.

재킷은 템펄리 런던(Temperley London at Je Ne Sais Quoi).

우리 지금이 두 번째 만남이죠?
네. 그런데 <보그>를 열심히 봐서 그런지 오래 알던 분 같아요.

나도 그래요. 지태 씨(유지태) 애인이라서 더 친근감이 가요. 지태 씨 만나면 효진 씨 얘기하고, 효진 씨 만나면 지태 씨 얘기하고 그래요. 그런데 난 처음 효진 씨 보고 감동했어요.
왜요?

그냥 모델 출신 하이틴 스타인 줄 알았더니 굉장히 인텔리전트하고 연기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서요.
하하. 고맙습니다.

그때 감독들의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에 출연했잖아요. 동성애 코드에 베드 신까지 있었는데 여배우로서 힘든 도전이었죠?
그냥 제가 좀더 열려 있는 배우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동성애 코드, 베드 신, 멀쩡한 여자의 추한 연기… 그런 것에서 세르지오 카스텔라토 감독의 <빨간 구두>나 페드로 알마도바르의 <귀향>,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떠올리고 다시 봤어요. 저는 거기서 성적으로 마조히스트적인 여자로 그려지기까지 하거든요. 마지막엔 엄정화 선배가 보는 앞에서 호수에 빠져 죽어요. <디 아워스>를 보면 니콜 키드먼이 몸에 돌을 묶고 강으로 걸어 들어가잖아요. 그 심정이 말로 다할 수 없이 슬프더라구요.

감성도 어느 정도 훈련되는 것 같아요. 효진 씨는 학구파죠?
책 읽는 걸 좋아해요. 한양대 영화과 대학원 다니면서 영화 이론 공부하는 것도 재밌어요.

석사 논문은 썼나요?
아뇨. 이제 써야죠. 시대를 분석하려면 영화 전편을 여러 번 봐야 해요.

저는 요즘엔 시를 여러 편 읽었어요.
와~! 좋으시겠다. 제 메일로 좋은 시 좀 보내주세요.

그럴게요. 요즘 읽은 시 중에 문정희 시인의 ‘물을 만드는 여자’라는 시가 있는데요, “딸아, 아무 데서나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로 시작해요. 그 시를 읽으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이 생각나요.
그렇게도 연관이 된다니 신기해요. 저는 장영희 시인의 영미 시 산책 <생일>을 읽었어요. 그분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에세이도 좋았어요.

장영희 선생님은 훌륭한 영문학자시죠. 특히 <생일>은 김점선 화가의 천진난만한 그림까지 곁들여져 있어서 좋아요. 효진 씨는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해요?
소설이요. 저는 추리, 범죄 소설 좋아해요. 미야베 미유키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화차>도 신용불량자 이야기인데 현실을 치밀하게 반영한 심리를 그렸어요.

몇 달 전에 보니까 어떤 패션지에서 효진 씨를 모델로 ‘책 읽는 여자’라는 화보를 찍었더라구요.
하하. 그러게요. 저의 독서 취향을 어떻게 아시고는. 하하.

효진 씨의 ‘내 인생의 책’은 뭔가요?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이요. 어릴 때 헤어진 두 남자가 노인이 되어 나누는 이야기인데요. 문장이 정말 좋아요. 배낭 여행 갈 때도 가지고 다녔는데 제 삶에 방향 제시를 해준 것 같아요.

효진 씨는 책에서 삶의 해답을 얻는 것 같네요. 제레미 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됐고, 모피나 가죽도 입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네. 전 궁금한 게 있으면 그 분야의 책을 찾아 읽으면서 공부해요.

메이저 작품 외에도 연극과 독립 영화 장르에도 적극적이죠?
드라마 <메리는 외박 중> 하기 전에 <풀 포어 러브(Fool for love)>라고 샘 셰퍼드 연극을 했어요. 이복남매의 사랑 이야기인데 1시간 30분 동안 둘이 좋아했다, 사랑했다 하는 역이에요.

그 작품이 작년 연극 축제 ‘무대가 좋다’ 시리즈 오프닝이었죠?
네. 그 다음이 근영이(문근영)의 <클로저>였고, 그 다음이 강혜정의 <프루프>였어요.

그런데 이복남매의 사랑이라니, 같은 아버지에서 나온 남녀가 사랑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그걸 알고 사랑해서 더 괴로워요. 아주 우울하고 괴로운 역이었어요. 그런데 또 밝고 경쾌한 역은 욕심이 안 나요.

독립 영화 <창피해>는 베를린 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됐었잖아요?
네. 그 영화도 여자들끼리의 사랑 이야기예요. 외로운 여자들끼리 만나면서 몸도 열리고 마음도 열리는 내용이에요.

<오감도>도 엄정화 씨와 레즈비언 코드가 있었는데, 현실에서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늘 쉽지 않은 사랑을 하네요.
그랬네요. 동성애, 이복남매… 자꾸 금지된 코드네요. 하하. 제가 그쪽에 관심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힘든 걸 하게 돼요.

가장 에로틱한 사랑은 뭘까요?
금지된 사랑이요. 하하. 영화 <데미지>에서 줄리엣 비노쉬와 제레미 아이언스의 사랑 같은 거. 아버지와 자기 약혼녀가 그런 관계라는 걸 알고, 아들이 뒷걸음질치며 난간에서 떨어져 죽을 때 제레미 아이언스의 고통스러운 표정 기억나세요? 마지막에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평화로운 가족의 일부로 변한 그 여자를 우연히 멀리서 지켜보며 독백하는 장면에선 가슴이 무너져요.

효진 씨는 욕심만큼 작품을 많이 하고 있진 않죠?
네. 맘에 드는 걸 하고 싶은데, 저희는 선택 받는 직업이니까. 그런데 저는 또 미친 듯이 작품만 하고 싶진 않아요. 쉬어가면서 충전시키는 시간이 필요해요.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오늘 아침에 읽은 영시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삶은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내가 어쩌면 굉장한 착각을 하고 살았구나! 그랬어요. 실례지만, 지금 몇 살이에요?
스물여덟 살이요.

스물 여덟이면, ‘삶은 개척’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뇨. 저는 개척이라고 생각 안 해요.

오! 그래요?
뭘 개척해야 한다,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 불행하더라구요. 물론 그런 분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겠죠. 그런데 저는 배우 생활하면서 개척해야겠다고 해서 상황이 확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 말의 톤 앤 무드는 뭐예요?
그러니까 돈이나 인기를 얻기 위해 일한 적은 없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곳으로 간다기보다 그냥 삶의 질이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기뻐요.

개척하기 위해선 아등바등 하면서 남을 앞지르고 잘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속도를 위반하면 꼭 부작용이 생겨요.
맞아요. 자기 속도를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 필요하구요. 전 조바심이 없는 편이에요.

그럼 나를 충분히 표현했다고 내세울 만한 작품은?
작품으로는 만족스러운 게 없었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갈증은 계속 있어요. 연극 작업 하면서 에너지를 쏟아 부었고, 그랬더니 공허해져서 우울증 기미가 있었어요. <메리는 외박중>을 하면 풀릴 줄 알았는데….

톱은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재킷은 템펄리 런던(Temperley London at Je Ne Sais Quoi), 데님 쇼츠는 베이비 센토르(The Baby Centaur at Je Ne Sais Quoi), 슈즈는 체사레 파초티(Chesare Paciotti).

올해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죠?
한중일 공동제작 드라마 <스트레인저 6> 찍으러 중국엘 가요. 대규모 지진을 막기 위해 구성된 3국의 특수요원 6명의 이야기인데요. 되게 재밌을 것 같아요. 전 세계 30개국에 방송된대요.

멋진데요! 그런데 효진 씨가 감독이라면 어떤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요?
할 베리가 나온 <몬스터> 같은 영화도 찍고 싶고, <디 아워스> 같은 영화도 찍어보고 싶어요. 여자가 주체가 된 영화라면 다 좋아요. 이자벨 위페르나 에바 그린 나온 영화도 좋고.

그런 영화들이 제작되면 좋을 텐데. 감독들은 여배우라는 생명체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감독과 여배우의 관계는 뭘까요?
감독과 여배우의 관계는 가학과 피학의 에로스 같아요. 이자벨 아자니와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의 <퍼제션>은 둘이 사랑하는 상태에서 찍은 영화인데도 끔찍하고 파괴적이에요. 줄랍스키 감독이 여자 친구인 여배우를 극으로 몰고 가 미치광이로 만들고, 그 가학의 에너지가 화면에 고스란히 나와요. 나중에 그 영화로 상도 받았지만, 이자벨 아자니는 <퍼제션> 얘기는 자기 앞에서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잖아요. 모든 감독과 여배우에게 그런 화학 작용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감독은 이기적인 존재라서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도 시킬 건 다 시키거든요. 일종의 사디스트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영화 보고 영화 찍는 걸 좋아하죠? 여배우니까.
그렇죠. 영화 보면서 저런 걸 하고 싶다, 저렇게 보이고 싶다, 자꾸 그러니까 지태 오빠가 영화 좀 그만 보래요.

유지태 씨 작품 중에는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해요?
오빠 만나기 전부터 <봄날은 간다> 팬이었어요.

허진호 감독이 유지태와 김효진을 캐스팅해서 멜로 영화 만들면 좋을 텐데…
허 감독님이 해주시면 너무 좋죠.

<봄날은 간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역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겠죠?
그럼요.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건데 말이죠.

효진 씨는 유지태 씨를 여전히 많이 사랑하죠?
너무너무 좋아요. 오빠와는 열정도 목표도 비슷해요. 이거야말로 축복이구나!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가요.

오! 얼굴에 빛이 나네요. 그런데 몸이 정말 예뻐요. 자신의 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잘 가꾸고 잘 다듬어진 몸이 좋아요. 여배우에겐 몸 자체가 하나의 표현의 수단이니까. 정신 건강도 중요해요. 배우들은 감수성이 예민해서 밤에 주로 깨어 있기 쉬운데,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5년째 채식을 하고 요가도 해요.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같은 삶을 실천하려고 하는데, 그런 생활이 에너지를 맑게 해줘요.

효진 씨가 본 멋진 여배우의 몸은?
줄리엣 비노쉬의 몸이요. 무용수로서도 너무 아름다웠어요. <랑데부>라는 작품으로 데뷔할 때도 그녀는 전라 노출을 했는데, 프랑스 사람들도 성적인 걸로 보지 않고 예술적인 걸로 봐주더라구요.

그럼요, 여배우라는 위대한 생명체는 여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해요.
맞아요. 여배우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아슬아슬한 존재들이라서….

마지막으로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저는 좋은 와이프, 좋은 엄마가 되는 게 꿈이에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거지 싶어요. 좋은 엄마가 된다는 건 최고로 성스러운 일이에요.

효진 씨는 여배우로서의 갈증도 큰데, 현실적으로 여배우의 욕망과 여자의 욕망이 상반된다면?
하하. 그땐 하나님이 지혜를 주실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