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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의 농담과 진담사이

2017.07.13

by VOGUE

    김주혁의 농담과 진담사이

    지적인 마스크에 담백한 뉘앙스를 풍기는 배우 김주혁. 그는 농담과 진담을 오가며 상대를 눙치는 스타일이다. 휴먼 드라마 〈투혼〉의 개봉을 앞두고 충만한 기운으로 벅찬 이 남자를 만나보자.

    그레이톤의 체크 셔츠는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니트 블레이저와 코듀로이 팬츠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클래식한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레이스업 워커는 토즈(Tod’s).

    어제 <런닝맨> 촬영 때문에 만리장성에서 죽자고 뛰었다면서요.
    어우, 예능인들은 배우와 스타일이 다르던데요. 하다가 숨도 좀 돌려야 하는데, 그들은 한번 필이 올랐을 때 멈추지 않고 쭉 해요. 두 번은 못하겠어.

    그런데 오늘 컨디션은 좋아 보여요
    제가 이제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살려고요. 열심히 살자. 싫어하는 것 피하지 말자.

    인테리어에 관심 있으세요? 스튜디오 오자마자 찬찬히 살피면서 사진가에게 이것저것 질문했잖아요.
    기초부터 알고 싶은거죠. 제가 확실히 성향을 좀 바꿔야 하는 게, 관심 있으면 이것저것 찾아 다니면서 좀 뒤져봐야 하는데 그러질 않아요. 옷을 사도 구석구석 뒤지면서 싸고 좋은 걸 찾는게 아니라, 비싸더라도 보이는 거 그냥 사요.

    그래도 남자 배우 중에서 옷을 잘입기로 유명해요. 옷에 관심 갖는 이유는 뭐죠?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죠. 옷도 배우 일을 시작하면서 관심 갖기 시작한 거예요. 스스로에게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 꽃미남과도 아니니까 좀 꾸며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아, 그런데 어깨 근육이 살짝 불룩하게 있을 땐 보기 좋았는데 다 없어졌네….

    김선아 씨와 찍은 영화 <투혼> 때문에 야구 연습하다가 부상을 당했죠?
    세 달 동안 훈련했는데 촬영을 겨울에 해서 다친 근육이 더 심해졌어요. 투수한테 겨울은 쥐약이에요. 어깨는 한번 다치면 쭉 가는 거래요, 그냥. 계속 운동하면서 풀어야 되는데 아직은 아파서 잘 못해요.

    때도 야구 연습을 해보셨겠네요.
    그때는 요즘 야구 폼이 아니라 옛날식으로 해야 해서 좀 엉성한 느낌으로 갔어요. 이번엔 프로 선수 역할이라 관객들이 거슬리지 않게 정말 프로처럼 폼을 익혀야 했어요. 야구 보는 거야 좋아했지만 제대로 해본 건 초등학교 때나 했죠.

    영화 때문에 특별 훈련까지 거쳤으니 연예인 야구단 같은 데라도 들어가야 하겠어요.
    내가 그것 때문에 더 열심히 했다니까. 투수하고 싶어서 투수 폼 열심히 익혔는데 어깨때문에 투수를 못하네! 실은 제가 집에만 처박혀 있는 스타일이에요. 이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요.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스타 선수로 잘나가다가 2군으로 전락하는 남자예요. 김주혁은 오르막길을 간 적은 있어도 내리막길을 가본 적은 별로 없죠?
    남들은 몰라도 스스로는 내리막이라고 생각하는 경험들이 군데군데 있죠. 하지만 제 커리어를 보면 휙 올라갔다가 확 내려가고 그런 건 없어요. 그래프가 비교적 완만해요.

    루즈한 핏의 티셔츠는 닐 바렛(Neil Barrett), 케이블 니트 숄 카디건은 트루사르디(Trussardi by Boon The Shop Men), 와이드 팬츠가 멋스러운 스트라이프 수트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by Boon The Shop Men), 가죽 로퍼는 크로켓 앤 존스(Crockett&Jones).

    그게 안전해서 좋은가요?
    장단점이 있어요. 배우로서 느껴지는 삶의 굴곡을 따진다면 좀 안 좋은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좀 부족하다 싶은 것 중 하나가 뭔 짓을 해도 크게 확 못 저지른다는 거예요.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성향 자체가 보수적이에요.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평범하고 건실한 남자로 잘 살았을 것 같아요.
    공무원 하면 잘했을 거예요.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단순 노동이에요. 난 하루 종일 방에 처박혀서 인형 눈 꿰매라 그래도 불평불만 없이 잘할 거야.

    지금과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됐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참 이상한 게, 마흔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성격에 기대 너무 안주하고 사는 거 아닌가 싶고. 이제 더 자유로워지고 싶고 나를 좀더 놔버리려고요. 배우로서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배우가 자신의 이미지를 무시하는 건 어리석은거예요. 고정 이미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죠, 없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그 선에서 좀 다른 것들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고, 하는 식으로 해야죠.

    딱 마흔이시죠?
    네. 배부른 소린지 몰라도 40대로 접어드니까 더 충만한 느낌이 있어요. 이제야 철이 좀 들고 멋있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남자는 40대가 한창이 아닌가 해요.

    그러고 보면 지금 남자 스타들 중에 마흔을 앞두고 있거나 40대로 접어든 사람이 꽤 돼요. 이병헌, 정우성, 장동건… 여전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데도 멜로물에서 성공한 배우는 별로 없어요. 김주혁은 멜로도 가능하죠?
    어느 정도는요. 여자 배우랑 많이 해봤으니까요.

    대신 남자 냄새 나는 작품은 별로 없었네요.
    거의 없었죠.

    본인의 선택인가요?
    투자자의 선택입니다.(웃음) 그런 시나리오가 들어와도 내 구미에 딱 맞는 게 없기도 했고.

    실제로는 남자들과의 문화가 더 익숙한가요?
    그렇지도 않아요. 여자들과 편하게 잘 지내요. 너무 마초적인 건 저랑 안 맞아요.

    지금 충무로에서 대세는 어떤 영화들인가요?
    웃겨라, 무조건. 그리고 자극적으로.

    자극적인 영화의 생명력이 생각보다 꽤 오래 가고 있네요.
    문제는 그런 영화에만 투자가 잘 된다는 거죠. 투자자들은 대개 시나리오상으로, 통계상으로만 영화를 봐요. 통계상 재미있는 장면이 몇 프로 안 되는 영화는 투자가 잘 안 돼요.

    그런 와중에 웃음 뒤에 감동을 주는 영화들은 장르의 유행과 상관없이 늘 유효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성향이 그래요. 감동 받는 걸 좋아하고. 저도 은근히 눈물 많아요. 집에서 혼자 뭐 보다가 조금만 가슴 건드리는 장면이 나오면 흐헝헝.

    하하. 그런데 그런 영화의 문제는 자칫 신파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신파를 좋아한다니까요?

    신파에 민감한가요? 시나리오 읽다가 신파적인 장면을 만나면 순간 오글거린다든가.
    그렇게 민감하진 않아요. 신파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니까. 재밌는 게 관객들이 실제로 웃거나 우는 장면을 보면 우리가 예상한 포인트에서 그러는 적이 거의 없어요. 꼭 신파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하면 관객이 우리 생각처럼 안 받아들여 줄 거예요. 울어야 하는 장면에서 슬쩍 웃으면 그게 더 눈물 나게 할 수도 있죠.

    데릭 앨리라는 해외 평론가가 이런 말 한 적 있대요. 김주혁처럼 연기를 안 하는 듯한 연기를 하는 것도 대단한 거라고. 영화에서 신파적으로 흐를 땐 배우나 감독이나 좀 담백하게 접근하면 좋을 텐데요.
    데릭 뭐요? 네, 맞아요. 담백하게 해야 돼요. 드라마를 보면 사실 남자 배우들이 치는 대사 다 느끼한데 시치미 뚝 떼고 하죠. 영화에서 느끼한 거는 자칫하면 용납이 안 돼요.

    <투혼>도 웃음과 감동을 주려는 영화인데, 이 작품은 어땠나요?
    일단 심플해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도 신파적인 영화죠. 신파가 한마디로 고전이란 뜻이잖아요. 고전은 항상 통하게 돼 있어요. 물론 잘 만들어야죠. 감독이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의 김상진 감독인데, 시나리오만 보고선 전혀 그 감독 작품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감독님이 지금 칼을 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배우와 촬영을 많이 했으니 그들을 대접해주는 노하우라도 생겼을 법한데요.
    배려를 많이 하려고 해요. 작품에 대한 고민도 같이 나누고, 상대의 연기를 잘 받아주려 하고. 저는 엑스트라나 스태프 한 명 한 명도 잘 챙겨주는 편이에요. 여배우들은 안됐어요. 30대가 넘으면 크게 한번 우울증이 와요. 어느 순간 나이 들고 아름다움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충격이 커요. 남자 배우에게도 그런 때가 오겠죠, 좀더 늦게. 저도 이렇게 집에 처박혀 사는데 여배우들은 어떻겠어요.

    같은 소속사에 가깝게 지내는 여배우들이 많아서인가요? 그들의 심정을 잘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이네요.
    다 그렇죠 뭐… 게다가 난 여배우와 사귀어 봤잖아요. 그러니까 그들의 고충을 더 잘 알죠.

    상대의 연기까지 아우르면서 연기하려면 여유가 필요할 텐데요. 하지만 연기 경력이 오래된 배우 중에도 상대보단 자기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않죠.
    네, 요즘 그 문제가 저의 딜레마예요. 저는 앙상블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결국 살아남는 사람들 보면 악착같이 자기 것 챙기는 사람들이에요. 내가 그렇질 못해서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싶어요.

    자신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냥
    제 인상은 점점 흐릿해져서 사람들이 이제 저한텐 관심 없는 것 같아요. 하하.

    농담 같기도 하고 심각하게 들리기도 하네요. 김주혁은 진지한 사람인가요?
    내 스스로는 진지한데 그걸 잘 드러내진 않아요.

    드러내기가 멋쩍은가요?
    네, 정말로. 멋쩍고 뻘쭘해요. 그래서 장난을 섞어 드러내는 경향이 있어요.

    혹시 혈액형은 뭐죠?
    A형. A형, A형! 정리가 딱 되죠?

    폼 잡는 것 멋쩍어 하고 낯도 가리는 그런 점이 배우 김주혁만의 매력을 만들었을 수도 있어요. 그럼 성적으로는 얼마나 어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보그> 인터뷰에서 성적으로 어필하는 느낌이 부족해서 호스트로 등장하는 <사랑 따윈 필요 없어> 같은 작품을 택했다고 말했어요.
    저한테는 아직도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방자전>의 베드 신은 엄청 세련되고 섹시했는데요?
    그런 섹시함 말고요.

    그럼 어떤 거요?
    그걸 아직 못 찾았으니까 이러고 있죠. 사실 모든 배우들은 다 섹시한 면이 있어야 돼요. 여자든 남자든 영화 보면서 ‘아, 저 사람이랑 한번 자보고 싶다’는 생각이 좀 들어야 돼요. 내게도 그런 사람 한명쯤은 있었을 거야. 몇 년에 한 명 꼴로….

    그럴 리가요. 여자들한테 관심을 별로 못 받는다고 느끼세요?
    저는 원래 별로 인기가 없었어요, 낯을 많이 가려서. 살갑지도 못하니 다들 ‘이 새끼 왜 이리 차가워?’ 할 거예요. 그런데 내가 맘에 드는 여자를 사귀는 데는 자신 있어요.

    대단하십니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요?
    진심이 있으면 다 통하게 돼 있어요. 진심 없어도 잘 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는 얼굴에 다 드러나는 스타일이라 진심이 없으면 티가 나요.

    여자한테는 어떤 남자인가요?
    이 일을 해서 더 안 좋은 남자가 된 것 같아요. 마음만큼 행복하게 못 해줘요. 단순한 예로, 사람들 많은 곳에서 데이트를 하면 저는 편하게 해준다고 노력해도 불편한 게 얼굴에 다 드러나니까 상대도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결혼을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2의 연애를 하는 그런 느낌으로. 결혼하고 싶어요.

    연애할 때 여자에게 잘 못했던 남자는 결혼하고도 못한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래도 더 많은 걸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촬영하느라 얼굴을 못 보면 서로 조바심이 날 텐데, 결혼을 하면 일단 집에는 가잖아요. 그러니까 결혼하면 더 편하다는 거지. 그리고 남자가 너무 집에 있어 봐요, 여자들은 싫어한다니까요?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면 알아요. 맨날 집에만 계셔서 어머니가 스트레스 좀 받으셨어요.

    아까 보수적인 성향이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기운이 좀 느껴지네요.
    네, 보수적입니다.

    40대에 접어든 김주혁에겐 중요한 두 가지 미션이 있네요. 어떤 작품을 만나서 예전과 좀 달라지느냐, 어떤 여자를 만나고 결혼하느냐. 일과 사랑은 사실 우리 모두의 화두인데요.
    그래요, 그 둘은 연관돼 있을 거예요.

    앞으로 10년을 잘 보내셔야겠는데요?
    어우, 아주 잘 보내야 돼요, 그럼. 앞 세대들은 우리보다 더 조숙하게 살았나 봐요. ‘서른 즈음에’란 노래도 내가 볼 땐 마흔 즈음이나 돼야 와 닿을 수 있는 노래거든요. 마흔이 되니까 비로소 청춘이 좀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30대는 가슴으로 느껴지는 나이가 아니라 머리로 느껴졌던 나이 같아요. 지금은 더 새롭고 즐거워요.

    멀티 컬러의 체크 셔츠는 스펙테이터(Spectator at Msk Shop), 포근한 앙고라 소재의 니트 스웨터와 코듀로이 팬츠, 가죽 벨트는 모두 구찌(Gucci), 글렌 체크 패턴의 블레이저 재킷은 란스미어(Lansmere), 스웨이드 소재의 투 톤 레이스업 슈즈는 크로켓 앤 존스(Crockett&Jones).

      에디터
      권은경(2011년 10월호 '농담과 진담사이')
      스탭
      스타일리스트 / 정윤기(Jung Yu n Ki), 김고은, 보미, 헤어/임진옥, 메이크업/이경은
      기타
      세트 스타일리스트 / 최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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