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얼굴

세계평화 따윈 관심 없는 송중기는 언젠가 아버지에게 좋은 집을 사드리고, 자신의 여자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 것이다. 여기, 다 자란 남자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말간 청춘의 얼굴이 있다.

그레이 카디건과 후드 카디건, 화이트 티셔츠는 존 바바토스(John Varvatos), 체크 팬츠는 코데즈 컴바인 포 맨(Codes Combine for Men), 허수아비가 입은 카디건은 폴 스미스(Paul Smith), 티셔츠는 엠비오(Mvio).

체크 롱 코트는 벨 앤 누보(Belle&Nouveau), 누빔 체크 재킷은 랙 앤 본(Rag&Bone at Bleecker), 니트 티셔츠는 키츠네 메종(Kitsune Maison at Bleecker), 체크 팬츠는 커스텀멜로우(Customellow), 하이톱 슈즈는 고메(Gourmet), 허수아비가 입은 티셔츠는 칩 먼데이(Cheap Monday), 헤드폰은 인케이스(Incase).

코트, 베스트, 티셔츠는 모두 로리엣(Roliat at San Fransisco Market).

<성균관 스캔들>은 여자들의 남자 취향을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옵션이었다. 선준(박유천)은 바르고 절제된 미남이었으며, 문재신(유아인)은 터프하고 상처 깊은 반항아였다. 송중기가 연기한 구용하는 꽃다운 미모에 유들유들한 날라리였다. 여자 다루기에 능숙한 ‘여색제왕’, 뭐 재밌는 일 없나 어슬렁거리다 얄밉게 한마디 툭 던지고 사라지는 ‘깐족지존’. 개인적 취향으로 구용하에게 끌리진 않았지만, 송중기가 등장할 때마다 화면이 화사해지는 것은 인정했다. <성균관 스캔들>의 송중기는 딱 그 나이의 청춘에게만 허락된 캐릭터였다. 너무 어렸다면 능청스러움 대신 미숙함만 도드라졌을 테고, 스물 여섯보다 성숙했다면 싱그러움이 덜했을 캐릭터. 그러나 구용하가 장난기 많은 표정을 짓는 어떤 순간은 그것이 계산된 연기가 아니라 본능과 직관에서 나온 표정으로 보였다. 연기력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그저 송중기가 흘린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질 때마다 실제의 그는 가녀린 외모를 반전시킬 만한 다른 성격을 가졌을 거라고 짐작했다.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옷 매무새를 다듬던 송중기가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어머니, 둘째 아들은 지금 열심히 일하는 중입니다. 예.” 드라마 대사를 나르듯, 혹은 어머니를 어르고 달래 듯 계속 말을 섞는 그를 보니 까불거리면서도 예의 바른 아들의 모습이 상상됐다. “어머니도 송중기 씨 얼굴 보고 예쁘게 생겼다고 하세요?” “예쁘다는 말씀이 부쩍 늘었어요. 통장 입금액이 늘어나면서.” 송중기의 마스크는 전형적인 꽃미남 스타일이다. 아마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꽤 오랫동안 했던 쇼트트랙을 계속 하면서 그때 친구들처럼 국가대표 선수로 컸다면, 큰 대회가 중계될 때마다 ‘꽃미남 선수’로 회자됐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 얼굴이 예쁘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 제 별명이 ‘쌍판’이었어요. 친구들도 제가 기생 오라비같이 생겼다고 했거든요. <성균관 스캔들>에도 비주얼 때문에 캐스팅됐죠. 어렸을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위에서 하도 곱다고 말해주니까 저 스스로 그렇게 안 보이려고 행동했던 점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21세기의 대중들이 줄곧 선호했던 이런 꽃미남 류의 마스크가 사극에도 잘 어울린다는 점은 의외다. 10월 첫째 주부터 방송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송중기는 세종대왕의 청년 시절을 연기했다. 이순신 장군과 유관순 누나와 더불어 초등학생도 아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그러나 세종대왕 이전의 청년 ‘이도’는 태산 같은 아버지 태종의 그늘에 눌려 무력하고 두려움이 많은 젊은이였다. 의상비에만 1억원 이상을 들인 <성균관 스캔들>의 날라리 유생이 화사한 꽃이었다면(당시 제작진에 의상을 깐깐하게 주문한 당사자도 바로 송중기다), 송중기의 하얗고 가냘픈 얼굴은 그 자체로 언제 저버릴지 모를 애잔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했다.

송중기의 데뷔작 <쌍화점>부터 시작해 유독 사극 속 송중기가 좋다는 한 여자는 흥분하며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송중기의 머리에 갓을 이식시켜야 한다.” 챙이 넓고 검은 갓 아래 작고 흰 얼굴이 도드라지는데다 선이 굵은 남자가 한복을 입었을 때보다 단정함이 더 살아서 매력적이라는 거다. “<성균관 스캔들> 이후 사극이 많이 들어왔어요. 사극은 힘들어서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사극이 주는 섹시함이 있어요. 영상과 한복 빛깔 등에서 나오는 섹시함이요. 사극 대사가 주는 느낌도 묘해요.” <뿌리깊은 나무>에서 송중기가 나오는 분량은 고작 4회. 작가들도 송중기가 캐스팅을 받아들여서 놀랐다고 했다. 송중기는 꼿꼿한 눈빛으로 자신이 그저 해사함이 무기인 생각 없는 젊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주변에서는 왜 지금 아역을 맡으려 하냐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웬만한 미니 시리즈 주인공보다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태종이란 감옥에 갇혀 있다가 그걸 깨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제 몫이에요. 제가 깔아놓은 베이스가 있어야 한석규 선배님이 연기하는 좀 풀어진 모습의 세종이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야사를 많이 봤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 이미지와 다른 면을 많이 보여줄 드라마거든요. 세종대왕도 섹스를 좋아했어요.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4회 분량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송중기를 보니 그는 자기 촬영분이 끝난 후에도 한석규를 모니터링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잡지가 나올 때쯤 드라마에선 송중기가 한석규로 나이 들어 있겠지만, 11월 수능일이면 송중기가 첫 주연을 맡은 영화도 개봉한다. 한예슬과 함께한 <티끌 모아 로맨스>다. 여러분은 콘돔 살 돈 2천원도 없는 찌질한 청년백수 송중기를 보게 된다. 아마 송중기가 지금만큼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그는 연예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대기업에 원서를 내며 어중간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을 만나면 아무래도 취업 얘길 많이 해요. SAAT, CPA, 이런 얘기들도 하고. 그 세계를 모르진 않아요. 학교에서는 아나운서를 했고, MBC 피디 공채에 지원한 적도 있거든요. 계속 이 언저리에 관심이 있었던 셈이죠.” 송중기가 평범한 성균관대 경영학과 학생이었을 때 TV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장면을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운동을 하다 경영학과 학생이 됐고, 친구들이 취업 준비를 시작하던 무렵 연기 학원에 다니면서 보조 출연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그는 어릴 때부터 끼가 많아서 천상 연예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타입과는 좀 다르다.

그러나 청춘의 인상이 대개 모호함과 불안함을 안고 가는 반면에 송중기에겐 그런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끼 없음’에 대한 콤플렉스를 얘기하다가는 “콤플렉스 있는 게 배우에겐 더 좋은 것 같아요. 그게 없으면 고민할 게 없어지잖아요?” 연예인으로서, 연기자로서 지금 자신의 좌표에 대해서는 “남들이 배우를 평가할 땐 어떤 단계가 있다고 생각들 하는데 저는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는 거죠 뭐” 같은 식이다. <티끌 모아 로맨스>에서 국보급 짠순이로 등장하는 한예슬은 쉬는 시간이면 송중기에게 ‘너, 너무 더럽다’고 농담을 던졌단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지난날 거울 보며 단장하던 ‘꽃돌이’ 대신 야식으로 부은 얼굴의 백수를 떠올리며 “멋있거나 달달한 모습을 보여준 후엔 한번쯤 망가지는 모습도 보여주는 게 스타로 가는 정석이죠”라고 얘기했을 때는 이런 반응이 왔다. “인기를 얻으려고 그렇게 하는 건 단기적인 방법 같고요, 흔히 말하는 스펙트럼을 넓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봐야겠죠. 그런 추세에 따라가려는 건 짧은 생각이에요.” 맙소사. 혹시 우리는 미소가 달콤한 남자의 얼굴을 보며 그의 성정도 마냥 달콤할 거라고 착각하진 않았나. 하기야 스위트함과 스마트함이 공존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그러니 송중기가 능글맞은 구용하를 연기했을 때 슬쩍 흘렸던 여유로운 내공은 응당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화는 이렇게 흘렀다. “사회정의, 세계평화, 저는 이런 데 별로 관심 없어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만 생각하다 죽어도 짧은 생이에요.” 여기서 개인의 행복이 실현되려면 당신이 살고 있는 구조가 행복해져야 가능하다는 반론은 제기할 필요가 없겠다. 그는 짧은 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 거기까진 생각 안 할 것이고, 언젠가 아버지에게 좋은 집을 사드릴 것이며, 자신의 여자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 것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런닝맨>에 함께 출연했던 이광수와 희희덕거리고 놀 것이다. 인터뷰 중에도 이광수에게 전화가 왔다. “빈 시간엔 광수와 놀아요. 광수랑 놀고, 또 놀고….” 송중기는 부러운 연기자 선배로 차태현을 꼽았다. 연기하는 스타일로 본 차태현은 송중기의 롤 모델이 아니다. 그러나 차태현의 한결같음, 굳이 어떤 이미지를 만들려는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굳어진 배우의 모습이라는 점을 부러워한다. 아마 그건 차태현의 얼굴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연기와 캐릭터에 대한 말이 나오자, 송중기는 드라마 <하얀거탑>을 떠올렸다. 그가 전 회를 열 번 가까이 봤다는 드라마. 성공을 위해 극한으로 치닫는 김명민의 치열한 캐릭터가 탐이 나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힘들 때는 시골 엄마 집에 가서 대문만 한 번 보고 돌아서는 김명민을 보며 저렇게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도 결국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여린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느끼고 매력을 느꼈다. 아마 몸의 껍데기만 남긴 채 캐릭터의 영혼으로 그 속을 채우는 배우가 맡음직한 역할을 송중기가 맡으려면, 싱그러운 청춘을 즐기고픈 우리들에게도, 송중기에게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야기는 다시 송중기의 얼굴이 풍기는 곱상한 이미지로 돌아왔다. “그걸 깨보려고도 했고, 더욱 살리려고도 해봤어요. 이번 영화를 선택한 것도 망가지는 걸 하면서 깨보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더 망가졌어도 될 뻔했어요.” 송중기는 외모가 주는 뉘앙스보다 훨씬 단단하고 어른스러우며 때로 냉소적이다. 그 때문에 건방지다는 오해도 받지만, 굳이 자신을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보시다시피 마냥 순진한 남자는 아니기에. “사람들이 으레 짐작하는 제 모습이 있잖아요. 막상 저를 만나면 생각과는 다르다는 얘길 많이 해요. 저 스스로도 그런 반응을 즐기고 재밌어 하는 것 같아요. 약오르지롱, 이런 거죠.” 연예인 송중기와 인간 송중기가 크게 다르지 않길 바란다더니 모순 아닌가. “음, 차태현 선배 얘길 꺼냈던 이유도 그런 경계가 없는 분 같아서예요. 언젠가 그 둘이 충돌하면 그때 가서 고민이 생기겠죠. 근데 뭐 충돌해 보라죠.” 그렇다면 그걸 부러워하면서 짐짓 무심한 듯 즐기고 있는 건 또 뭔가. “네, 재밌잖아요.” 송중기라는 젊은 배우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지금으로선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의욕에 넘쳐 야심을 티 내지 않는 것에서 솔직하면서도 정돈된 청춘의 모습을 확인할 뿐이다. 다 자란 남자들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말간 청춘의 얼굴 말이다.

레이어드한 체크 셔츠들과 허수아비가 입은 체크 셔츠는 모두 시리즈(Series), 팬츠는 로리엣(Roliat at San Fransisco Market), 슈즈는 케즈(Keds by Mark McNa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