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빛을 창조했다

스와로브스키가 제16회 부산영화제에 쇼룸을 열었다. 단 사흘간 부산에 머무르는 레드 카펫 에디션을 위해〈보그〉는 4인의 레드 카펫 여신을 캐스팅했다. 예지원, 정유미, 민효린, 조여정이 참여한 스와로브스키 화보 기금으로 내년에 한 편의 독립영화가 제작된다. 여배우와 보석과 영화, 그 빛의 삼위일체!

파워숄더 실루엣이 당당한 크리스털 미니 드레스와 블랙 크리스털 프린즈 이어링, 브레이슬릿 모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 빈티지 컬렉션(Daniel Swarovski Vintage Collection), 실버 오픈토 힐은 펜디(Fendi).

저지 롱 드레스는 강희숙(Kang Hee Sook), 빈티지 모자는 제이미 앤 벨(Jamie&Bell), 볼드한 크리스털 장식 네크리스와 링, 청록빛이 신비한 로즈 장식 크리스털 클러치 모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 빈티지 컬렉션. 스타일리스트 / 박명선 헤어 / 김승원(르네휘테르) 메이크업 / 맥(M. A. C.)


예지원


부산영화제는 더 이상 하룻밤 오락거리가 아니다. 초대된 별들에겐 생애 최고의 나날이며, 브랜드들에겐 치열한 스타 마케팅의 각축전이고, 부산으로 보자면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다. 영화제 오프닝 행사가 열리는 10월 6일 오전 10시. 긴장감 도는 열기가 해운대 그랜드 호텔(부산에서 1년 중 가장 중요한 한 주 동안 비공식적인 패션본부 역할을 하게 될 장소)을 집어 삼켰다. 맥 메이크업팀은 메이크업 트롤리를 밀며 19층 객실 끝을 점령했다. 장안의 잘나가는 포토그래퍼와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들, 스타일리스트들이 몽땅 이곳 로비와 복도를 오가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객실은 의상 레일들로 정신없고, 엘리베이터도 스타들로 꽉 찼다. 오다기리 조, 장근석, 소지섭… 멋진 남자들과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끼여 몸을 맞대는 기분도 나쁘진 않다. 긴장감이 고조됨에 따라 호텔 내에는 어떤 스타가 누구의 옷을 입고 머리는 누가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물론 스와로브스키에 대한 소문도! 세계적인 주얼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가 영화제를 위해 쇼룸을 차린다는 뉴스가 흘러나가자 배우와 스타일리스트들은 꿀 냄새를 맡은 벌처럼 이곳으로 날아들었다. “벌써 28명의 여배우들이 이곳에 와서 주얼리와 클러치를 가져갔어요. 반짝이는 미니 드레스들은 모두 탐을 내고 있지만 걸을 때 위험하다고 망설이더군요.” 스와로브스키 홍보 담당 이지연이 말했다. 칸과 오스카를 돌며 톱 여배우들의 주얼리 스타일링을 해온 스와로브스키 PR 매니저 피에릭은 지금 엠마 톰슨, 오드리 토투, 마리앙 꼬띠아르, 캐서린 제타 존스, 소피 마르소, 힐러리 스웽크 등의 뒤를 이을 그의 한국인 여배우를 기다리고 있다. “칸에서도 스와로브스키와 샤넬만 쇼룸을 열지요. 여배우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드레스를 입고 스와로브스키 쇼룸에 들어와 마지막 스타일링을 합니다. 우아한 미소를 밝혀줄 마지막 조명을 고르는거죠.” 반짝이는 크리스털 목걸이와 귀고리를 걸고 거울 앞에 서면 비로소 나만을 위한 1천 개의 조명이 켜진다. 그런 다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클러치를 골라 쥔다. 여배우에겐 레드카펫의 붉은 바다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줄 밧줄 같은 클러치!

“<라비 앙 호즈>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마리앙 꼬띠아르가 특히 기억에 남는군요. 오스카가 첫 번째 레드 카펫이었는데, 할리우드에서 프랑스 여배우가 상을 받았잖아요. 인생이 바뀐 첫 무대에 스와로브스키가 함께했죠. 칸의 여왕 전도연 씨도 특별했어요. 제가 방으로 보낸 클러치를 받고 너무 기뻐 침대에서 펄쩍펄쩍 뛰었다고 하더군요. 칸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그녀의 사진을 찍은 사람도 스와로브스키 팀이었어요. 한국 사진기자들은 그녀가 수상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던 거죠.” 여배우들의 친필 사인과 땡큐 레터가 빼곡한 다큐멘터리북을 소중히 가슴에 안은 홍보 담당자들을 보니, 스와로브스키의 스피릿이 영화와 레드 카펫이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단 3일간 부산에 머무르는 레드 카펫 에디션을 위해 <보그>는 고심 끝에 네 명의 레드 카펫 여신을 캐스팅했다. 예지원, 정유미, 민효린, 조여정! 첫 번째 주인공인 예지원에게 전화를 걸자 그녀는 오늘 밤에 열릴 영화제 오프닝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오늘 촬영 알고 있죠?” “그럼요,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잖아요. 영화로 좋은 은혜를 많이 입었으니 이제 제가 영화에 빚을 갚을 차례죠.” 그러나 1시간 후 그녀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컨트롤하기 위해 방문을 열었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중요한 순간에 영화제 공식 후원사라는 이유로 맥 메이크업팀이 방을 점령한 채 과정 컷을 찍는다고 여기저기서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꽉 막힌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보그> 스타일리스트가 미리 보낸 촬영 시안에 대해서도 모른 체 했다. “볼터치 하나도 더 해드릴 수 없어요.” 이럴 수가! 갑자기 이 빛의 도시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레드 카펫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모두가 신경쇠약 직전이었다. 어쨌든 나는 앞으로 이틀 동안 스와로브스키 쇼룸에 머물며 안쪽에 비밀스럽게 마련된 <보그> 화보 세트와 여배우들의 방을 오가야 한다.

“걱정 마세요. 제가 잘할게요.” 다행히도 예지원이 건강한 보디를 빛내며 쇼룸으로 걸어 들어왔다. “제 몸에 크리스털 드레스가 잘 맞을 거예요. 오늘을 위해서 며칠을 굶었거든요.”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예지원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축제로 만드는 여자. 에티오피아에서 티셔츠를 입고 난민을 구제할 때도,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걸을 때도 그녀는 언제나 같은 액세서리를 걸친다. ‘사랑과 축복’이라는 액세서리. 그리고 그랜드 호텔 19층의 이곳 스와로브스키 쇼룸도 선의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에서 영화를 한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게다가 힘들어서 꿈을 접을지 모르는 젊은 감독들에게 이 기금으로 구체적인 꿈의 기회를 준다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예지원은 지금 매니지먼트 없이 혈혈단신 부산에 와 있다. 현재 영화제의 대모 격인 강수연의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그녀를 케어해주고 있다. 나는 사랑스러운 그녀를 위해 스와로브스키가 아끼고 아끼던 최고의 미니 드레스 한 벌을 골라주었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탐내던 그 드레스는 예지원의 몸에 꼭 맞았다. 크리스털 치파오를 입은 중국 여자 같았다. “하나하나가 다 예술 작품 같네요”라고 그녀는 감탄했다. 역시나 예지원은 예술적인 보디 액션으로 첫 슈팅을 멋지게 완성시켰다. “스케줄이 꽉 차 있지만 부산에 오면 왠지 들떠서 꼭 술에 취한 기분이 든다니까요.” 영화의 전당이 영화제 전용관으로 공개되는 역사적인 오프닝에 예지원은 엄지원과 함께 공동 MC를 보고, 내일은 <옹박>을 만든 태국 감독과 함께한 해외 프로젝트 <더 킥>도 이번 부산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알다시피 많은 영화인들이 부산영화제 기간에 쇼케이스를 열고 싶어 한다. <오직 그대만>과 <마이 웨이>와 <너는 펫>과 <더 킥>과 홍상수와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까지.

오후가 되자 창밖으론 해운대 푸른 바다가 창날 같은 가을 빛을 받아 눈부시게 부서지고, 쇼룸에는 여전히 스타일리스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레드 카펫은 배우 한 사람만이 아니라 스타일리스트들의 자존심을 건 전쟁터다. 그동안 쌓아왔던 브랜드와의 밀월 관계, 패션계의 예민한 파워게임이 이곳에서 펼쳐진다. 그들은 이곳에서 뭔가 결정적인 영감을 얻기를 바랐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한 스와로브스키의 첫 PPL ‘도로시 슈즈’라던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와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스완>과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한 이 반짝이는 크리스털 주얼리가 자신의 여배우들에게 말을 건네길 기대하면서.

올해 레드 카펫은 특히 더 많은 해프닝이 있었다. 한 신인 여배우가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토플리스에 가까운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논란을 일으켰고, 그녀는 명품 브랜드들이 자신에게 드레스를 빌려주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똥파리>의 여배우 김꽃비는 고공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노동운동가를 지지하기 위해 작업복을 입고 붉은 융단을 밟았다. 점점 더 타블로와 닮아가는 강혜정은 매니시한 턱시도를 입고 나타났다. 그리고 실버 그레이로 싱싱하게 빛났던 예지원과 고혹적인 블랙으로 레드 카펫의 정답을 보여준 조여정, 그리고 누디한 시폰 드레스로 글래머러스 했던 민효린까지.

개막식이 끝나자 스와로브스키는 홍상수 감독과 이재용 감독, 이현승 감독, 여배우 윤여정, 강수연, 예지원 등 톱 클래스 영화인을 초대해 이곳 쇼룸에서 프라이빗한 와인 파티를 열었다. 순수하고 생산적인 모임이었고, 영화와 영화제를 위한 캐주얼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느라 뜨거운 밤이었다. <여배우들 2>에 대한 즐거운 상상,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만드는 트로피에 대한 이야기… 처음엔 브랜드에 색안경을 끼고 보던 영화인들이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소통했던 꿈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헴라인이 관능적인 크리스털 장식 미니 드레스와 빅 사이즈의 다이아몬드 실루엣 크리스털 이어링 모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 빈티지 컬렉션(Daniel Swarovski Vintage Collection), 여우털 볼레로 재킷은 퓨어리(Fury).

울 소재의 블랙 미니 드레스는 문영희(Moon Young Hee), 진주 장식의 청키한 네크리스와 전면에 크리스털이 파베 세팅된 스퀘어 클러치는 모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 빈티지 컬렉션. 헤어 / 한수화(제니하우스 도산점) 메이크업 / 장혜정(제니하우스 도산점)


민효린


자, 이제 민효린을 만날 차례다. 물론 아침 9시 40분에 여배우의 방을 방문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객실에 들어서자 민효린은 부드러운 메이크업 가운을 입고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엔 한적한 바닷가에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고 방 안에 웃음과 햇살이 가득했다. 민효린은 <보그>에서 보낸 몇 벌의 드레스 중 약간 아방가르드한 펠트 블랙 드레스를 골랐다. “전 대종상, 청룡, 부산영화제까지 레드 카펫 행사를 즐기는 편이에요. 어제도 차태현 선배님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촬영하다 와서 레드 카펫을 밟았어요”라고 그녀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갸르릉댔다. 민효린은 영화 <써니>로 인기도 얻고 자신감도 얻었다. 영화 시나리오도 쏟아져 들어와 현재 두 편의 영화를 촬영 중이다(박진영과 함께 <오백만불의 사나이>라는 영화도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레드 카펫에선 완벽하게 하고 나가도 늘 해프닝이 생겨요. 늘 걱정되는 건 드레스가 내려가면 어떡하나, 그 드레스 자락을 밟으면 어떡하나. 전주드라마페스티벌 MC를 보러 갔을 때 그런 일이 생겼어요. 가슴에 붙인 양면테이프 접착력이 떨어진 거죠. 급히 올렸지만 사진가들은 그런 묘미를 잡기 위해 계시잖아요. 저 때문에 인터넷이 뜨거웠어요. 그때 생각하면 아찔해요. 시집 다 갔다고 울고 불고… 하하.” 우유를 마시고 웃는 페르시안 고양이 같았다. 그녀가 레드 카펫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고와 네티즌들의 격한 반응에 소심해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관객들은 그런 소동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아요. 브라를 일부러 보이게 해도 ‘옥에 티’처럼 지적하고 좋아하시더라구요. 드레스만 해도 그렇죠. 저는 그날 피팅한 것 중 최고 예쁜 것, 컨디션이 좋은 것을 고르는데 카메라는 이슈를 위해 은근히 노출하길 바라죠.” 민효린은 레드 카펫에서고 나면 10년은 더 늙는 것 같다고 깔깔댔다. 어쩌면 영화제 레드 카펫은 디즈니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같다. 처음엔 불안과 공포를 안고 타지만 내릴 때는 숨을 몰아 쉬면서 이렇게 말하게 된다. “와, 다시 타도 돼요?” 클러치는 여배우에게 안전벨트 같은 거지만, 민효린은 클러치를 쥘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활기차다. “클러치가 없을 땐 레드 카펫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고 악수를 하면서 걸어가죠. 하하.”

스와로브스키의 스타일 디렉터 띠에리는 이 붙임성 좋은 처녀에게 완전히 반했다. 그녀가 거울 앞에서 보석을 들고 취하는 미미한 제스처, 하이힐에 발을 집어넣을 때의 나른한 경련은 고압전류가 흐르는 숨가쁜 영화제 속에서 이곳이 옹달샘 같은 ‘패션 낙원’임을 느끼게 해준다. 분위기가 좋아진 틈을 타 저지에 보석을 붙인 스와로브스키의 핫미니 드레스에 모피까지 입혀주자, 민효린은 또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독립영화 <똥파리>가 이 기금으로 촬영된 거라면서요? <보그>와 스와로브스키, 여배우들의 이름으로 투자되는 거예요? 와! 시나리오만 좋다면 출연까지 해도 좋겠어요.”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스와로브스키 오감만족 키트(초콜릿, 향수, 선글라스, 클러치 등등이 들어 있는)를 선물 받은 후엔 흥분해서 방명록에 ‘영화여! 영원히!”라고 적었다.


골반 라인을 드러낸 원 숄더 블랙 롱 드레스는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li), 로프 형태의 블랙 크리스털 장식 네크리스와 손목을 감아 연출하는 시크한 브레이슬릿, 볼드한 블랙 크리스털 링과 클러치 모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 빈티지 컬렉션(Daniel Swarovski Vintage Collection).

폭스 베스트는 사바티에(Sabatier), 에메럴드 빛 크리스털로 장식된 튜브톱, 청키한 크리스털 네크리스와 다양한 디자인의 크리스털 뱅글은 모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 빈티지 컬렉션. 헤어 / 민애선(라떼뜨) 메이크업 / 황세연(라떼뜨)


조여정


조여정의 방으로 가던 엘리베이터에서는 세 명의 여배우를 더 만났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윤지와 김규리와 성유리. 오늘 오후 수학여행 온 것 같은 저 귀여운 별들이 다 떠나고 나면 호텔은 샹들리에 아래서도 빛을 잃겠지.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여정이 가운을 입은 채로 방 안을 서성이며 뭔가 대접할 게 없나 싹싹하게 예의를 차렸다. 작지만 탄탄한 몸의 에너지가 가운 밖으로도 느껴졌다. “굶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일주일 동안 웨이트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제 레드 카펫 사진 보여드릴까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 속에서 조여정은 완벽했다. “얼마 전에 새 영화가 결정됐거든요. <방자전> 다음으로 <후궁>이라고 김대승 감독님 작품에 캐스팅됐어요. 김민준과 김동욱 사이의 여자인데…, 사극이라고는 하지만 옛날 공간을 빌려서 요즘 연애 이야기를 하는 거라 기대가 커요. 전 <후궁>이 결정되자마자 스타일리스트를 만나 레드 카펫 드레스를 의논했어요. 작품 캐릭터와 연장선상에서 가고싶었거든요. 그러니까 품위 있는 레드 카펫 스토리가 필요했지요.” 나는 이런 다양한 욕망이 실려 레드 카펫이 더 드라마틱하고 의미 있어진다고 생각했다. 디자이너 맥 앤 로건이 만들어준 드레스는 한 치의 빈틈도 없는 기모노처럼 조여정의 몸을 고전적으로 풀어주고 또 조였다.

“저도 작년 부산에서 실수를 했어요. 접착테이프를 밟아서 발이 구두에서 빠져버린 거죠. 순간 아! 이건 꿈이겠지…, 다행히 요가를 해서 넘어지지 않고 잘 수습했어요.” 조여정에게 잘 어울릴 만한 블랙 롱 드레스와 스와로브스키 톱, 롱스커트를 건네주고 주얼리를 점검하러 잠깐 쇼룸으로 갔더니 내가 점 찍어 둔 가슴이 깊게 파인 은갈치 드레스가 그새 없어졌다. 아깝다! 저 드레스를 조여정에게 입히면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처럼 멋질 텐데. 스와로브스키가 시상식만을 위해 만든 그 하이라이트 드레스를 차지한 여배우는 과연 누굴까? 은갈치 드레스 대신 그녀의 목과 팔에 주얼리와 팔찌를 주렁주렁 걸었더니 명민한 그녀는 얼른 매혹적인 손 연기를 펼쳤다. 모니터를 보니 이자벨 아자니와 모니카 벨루치를 섞어놓은 듯 청초하고 섹시한 얼굴이었다.


정유미 빅 사이즈의 세퀸 장식 미니 드레스는 프라다(Prada), 캔디 컬러의 볼이 연결된 사랑스러운 네크리스와 링, 빅 크리스털 장식의 핑크 새틴 클러치는 모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 빈티지 컬렉션(Daniel Swarovski Vintage Collection).

리본 장식이 달린 비즈와 튤 드레스와 골드 앵클 부츠는 이상봉(Lie Sang Bong), 크리스털 장식 헤어밴드와 블랙 크리스털 이어링, 미니 사이즈의 옥타곤 클러치 모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 빈티지 컬렉션. 헤어 / 박정은(고원) 메이크업 / 이명선(고원)


정유미


정유미는 마크 제이콥스 캠페인 티셔츠를 입고 나를 맞았다. <내 깡패 같은 연인> 이후 1년 만에 만나는 터라 반가워서 포옹에 비주까지 했다. 그녀는 어제 왔지만 레드 카펫 행사에 참석하진 않았다. “뭐랄까, 저와는 어울리지 않더라구요. 두세 번 참석했는데 아! 여긴 내가 설 곳이아니구나,라고 직감했죠. 한번은 노란색 원피스, 한번은 한복 드레스를 입고 감독님들하고 우르르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녀는 어젯밤 TV에서 여유롭게 레드 카펫 드라마를 관람했다. <도가니>가 개봉된 이후 정유미는 지금 전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킨 <도가니> 신드롬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으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손익을 벗어나서 사람들이 외면한다면 나는 참 외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 거다, 그런 생각은 했죠. 그런데 정말 예상을 벗어났어요. 법도 바뀌고, 사람들이 막 움직이는 게 느껴져요. 와! 우리 사회가 아직은 괜찮구나.” 그녀는 <도가니>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다. “영화에서 거창한 연기를 하진 않았지만, 그게 꾸며내서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잖아요.

영화 속 캐릭터만큼 내가 정의로운 사람인가, 그런 고민을 하게 돼요. 저는 찰랑찰랑해야 하는 사람인데, 뭔가 빡빡하게 조여든 느낌도 있고요.” 그녀는 미장센영화제에 출품된 단편 <플라로이드 작동법>으로 영화계에 알려졌다.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내달리는 통에 핸드헬드로밖에 잡을 수 없는, 그 백지 같은 천진성 때문에 속절없이 카메라가 보호자처럼 잡으러 다니게 된다는 정유미. 영화의 모든 조명을 자신에게 끌어당기는 게 목적인 성인 여배우들 속에서 조명 밖으로 뛰어다니는 정유미의 ‘천재적 유아성’은 경이롭다. “전 레드 카펫이 아닌 스와로브스키 독립영화 프로젝트 때문에 부산에 왔어요. 그 외에 몇 가지 일정이 더 있긴 하지만, 이 일이 아주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헤어밴드를 하고 빈티지 클러치를 손에 쥔 정유미의 사진은 고전적인 초상화처럼 보였다.

이윽고 모든 일정이 끝났다. 전 세계에서 한 피스만 있는 스와로브스키 레드 카펫 드레스와 주얼리는 내일이면 부산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10년 전 내가 여배우들의 영화제 드레스를 취재할 때만 해도 클러치라는 존재는 낯설었다. 디자이너 이정우가 신인 여배우에게 매니시한 흰 백을 쥐어주며, “아무것도 넣지마. 그냥 그걸 의지해서 당당하게 리무진에서 내려”라고 가르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제 주얼리와 클러치가 없는 영화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3일간 쇼룸의 찬란한 빛의 세례 속에서 여배우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고 행복에 겨워했다. 드레스의 스파클링을 압도했던 예지원의 강렬한 카리스마, 은밀한 발레 같았던 민효린의 클러치 포즈, 관능적인 요가 수행자 같았던 조여정의 클래식한 뉘앙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수 없는 정유미의 무중력의 매혹… 이들 여배우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참여한 스와로브스키 화보 기금 5천만원으로 내년에 한 편의 독립영화가 제작된다. 여배우와 보석과 영화… 그 빛의 삼위일체,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