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타의 쿨한 인생

전직 축구 스타이자 패션이 사랑하는 셀레브리티, 나카타 히데토시. 잠시 한국을 방문한 그가 그라운드에서의 삶그 이후를 들려줬다.



‘스포츠 스타’는 그냥 ‘스타’라는 말보다 명백하게 다가온다. 실력과 기록으로 검증된 자에게만 붙는 그 타이틀은 흔해빠진 연예계 스타보다 희소성이 있다. ‘남자 스포츠 스타’는 건실한 이미지와 건강한 신체에서 연상되는 성적 매력까지 지닌다. 여자들은 박지성의 허벅지와 근면함을 얘기하지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논하지 않는다. ‘잘생긴 남자 스포츠 스타’라면 ‘언터처블’이다. 낮에는 그를 존경하는 초등학생들이 따라 다니고, 밤에는 그와 자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들러붙는다. 그가 밤을 어떻게 보내든 운동 실력 하나만 끝내준다면, 온 나라가 그를 지지한다. 나카타 히데토시(Nakata Hidetoshi)는 잘생긴 남자 스포츠 스타였다. 90년대 후반부터 일본 축구의 한 상징이자 차범근 이후 처음으로 유럽에서 이름을 떨친 아시아 선수. 사실 잘생겼다는 말보단 멋지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는 예전부터 패션에 눈이 밝았고, 단체복인 유니폼을 입고 있어도 헤어 스타일이나 수염이나 혹은 존재감 때문에 혼자 튀었다. 이탈리아로 진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역 없이 현지어로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축구도 그냥 잘하지 않고 멋있게 잘했다. 드리블을 할 땐 바닥의 공을 보며 달리는 게 아니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며 달렸다. 2000년 잠실에서 열린 한일전은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우리의 최대 적수인 나카타가 유독 거슬렸던 한국 대표팀은 공격도 수비도 하지 않고 나카타만 방어할 전담 마크맨을 붙였다. 친선전인데도 ‘모냥 빠지게’ 예민했던 한국 대표팀은(물론 이유가 있었다, 그전에 ‘도쿄대첩’이라 불린 대패를 비롯해 일본에게 2연패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 그날 1 : 0으로 이겼지만, 나카타는 여전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훌륭한 플레이어였다.



롱 니트 카디건과 블랙 데님 팬츠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퍼 트리밍 슈즈는 트루사르디(Trussardi at Mui), 네크리스와 시계, 반지는 모두 까르띠에(Cartier).

그가 현역에서 물러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비공식적으로 잠시 한국을 방문한 그와 이렇게 단독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을 만큼, 나카타는 현재진행형 아이콘이다. 이제 그는 전직 축구 선수이자 각종 파티가 원하고 패션이 사랑하는 셀레브리티다. 나카타는 2008년 서울환경영화제가 열렸을 땐 상암 CGV에서 기자간담회 시간을 갖더니, 1년 전 베이징에서 필립 림 패션쇼가 열렸을 땐 사진 촬영을 원하는 사람들의 청을 일일이 들어주고 있었다. <보그 코리아>와 나카타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6년, 나카타는 서울에서 모델 장윤주, 이영진, 이유, 최여진 등과 화보 촬영을 한 적이 있다. 그를 만났던 패션 디렉터에게 전해 들으니, 그는 취향이 뚜렷하고 여간 깐깐한 게 아닌 인물. 경험자의 전언이 아니더라도 이 자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카타의 매니저가 요구하는 것들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친절하고도 신속하게 촬영과 인터뷰 일정을 마치려 했던 우리의 계획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위기를 맞았다. 그를 위해 한국인 지인이 준비했다는 리무진이 ‘커뮤니케이션 착오’로 자취를 감춘 것. 우리가 천진하게 나카타를 기다리는 사이 그는 호텔 로비에서 무려 40분을 허탕쳤고, 나는 상황을 파악한 뒤부터 마음속으로 꽃잎을 하나씩 뜯으며 ‘나카타는 부아가 치밀었다’ ‘나카타는 젠틀하게 행동할 것이다’를 반복했다. 드디어 등장한 나카타, 일단은 미소 지어주는 모습에 안심. 줄곧 미소를 유지하며 생각보다 깐깐하게 굴지 않는 모습에 ‘이것은 분노의 또 다른 표현인가’ 싶었지만, 촬영 중 상반신 노출을 슬쩍 제안하자 결국 ‘OK’ 해줬다. 그것으로 오늘의 여정이 잘 흘러가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나카타와 그의 에이전시 관계자가 서울을 찾은 건 지금 추진 중인 대규모 이벤트 때문이다. 내년이면 놀랍게도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린 해로부터 10년이 된다. 나카타가 만든 자선단체 ‘테이크 액션’은 한일 월드컵 10주년 자선경기를 계획하고 있다. 이건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얘기.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건 없어요. 막연히 희망만 갖고 있는 단계죠. 하지만 한일 대표팀 대 세계 대표팀의 경기를 꼭 열어보고 싶어요.” 나카타는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현역 혹은 전직 톱 클래스 선수가 자선단체를 꾸리고 의미 있는 경기를 개최하는 건 종종 벌어지는 행사이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 경우 주축이 되는 인물의 파워와 인맥이 중요하다. 경기 자체보다 모금에 의미가 있는 만큼, 이런 자선경기들엔 각 나라의 유명 선수들은 물론 이목을 끌기 위한 셀레브리티들도 동원되곤 한다. 나카타가 2008년 일본에서 연 자선경기에 배용준을 초대한 것이나 박지성이 올해 베트남에서 연 자선경기에 시아준수가 선수로 참여한 것이 그런 예다. “자선경기 같은 자리가 활발하게 마련 돼야 전체적으로 규모도 커지기 때문에, 모두가 웬만하면 스케줄을 맞춰서로 도우려고 합니다. 자선경기로 벌어들인 수익을 어딘가에 꼭 돈으로 전달하는 건 아니에요. 구호물자나 아이들을 위한 축구공 몇만 개를 기부하기도 해요.” 나카타가 계획 중인 한일 월드컵 10주년 경기가 현실화 된다면, 경기는 내년 6월 한국과 일본에서 한번씩 열릴 것이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6년 동안 선수로 뛰던 시절 쌓은 인맥이 만만치 않으니 유럽의 스타 선수들이 방한할 수도 있다.

나카타는 2006 독일 월드컵 때 갑작스레 은퇴를 선언했다. 일본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한 직후다. 77년생이 내린 결정이었으니 모두가 의아해 할 만했다. 그때 홈페이지에 올린 장문의 글에서 나카타는 ‘인생이란 여행이며, 여행은 인생이다’라고 했다. 축구라는 여행을 시작한 지 2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자신의 새로운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도 썼다. 그라운드를 떠나 지난 5년 동안, 그는 비유적으로 전과 다른 여행길에 올랐으며 물리적으로도 숱한 여행을 했다. 나카타는 100여 개 나라를 다녀봤다고 한다(100여 개 ‘도시’가 아니라 ‘나라’다). “저는 세상 어디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각지에 친구들이 많거든요. 낯선 곳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도 경험해 봤고요.” 그의 얘기를 듣는 순간 영화 <인 디 에어〉가 떠올랐다. 하늘을 지붕 삼아 싸구려 기내식과 출장 생활에 더 안식을 느끼는 조지 클루니,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아다니며 천만 마일리지를 모은 남자. <인디 에어>가 입밖에 나오는 순간부터 나카타는 실실 웃더니 말했다. “하하, 그 영화 봤어요. 주인공이 느끼는 정서가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 삶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바이커 재킷은 유즈드 퓨처(Used Future), 니트 터틀넥과 슈즈는 YSL, 바이커 데님 팬츠는 발맹(Balmain at Mui).

하기야 이 남자, 온전한 ‘집’이 없다. 나카타는 일본에 머무를 때도 호텔에서 산다. 그러니까 그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남자다.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게 싫은 건 아니에요. 일을 할 때는 한 곳에 거점을 두고 하는 게 더 낫다고 봐요. 그 외에는 돌아다니면서 살 때 확실히 삶이 풍부해지고 아이디어를 잘 얻는 면이 있어요.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지구촌이 하나라고 해도 간접적으로 얻은 정보는 직접 경험한 것만 못해요. 패션쇼에 굳이 가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카탈로그만 보면 어떤 디자인의 옷이 나오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죠. 4대 도시 컬렉션을 하면 금방 인터넷에 정보가 뜨잖아요. 하지만 그 장소에 가서 경험해 보고 느끼고 얻는 것은 달라요.” 예를 들어도 패션쇼로 들다니, 발맹과 구찌와 디스퀘어드 등을 사랑하고 많은 디자이너들과 친분이 있다는 인물 맞다. 그래서, 수많은 여행을 통해 체험한 것들은 그의 피부에 어떻게 와 닿았을까? 2012년이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루머도 있는데 세상은 평화롭던가? 웃자고 한 질문이었는데 그는 오래 생각하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뉴스에서는 전쟁이다, 기아다, 여러 흉흉한 얘기들이 나오죠. 세상이 평화로운지 아닌지 단정하긴 힘들지만 인간이 강하다는 건 느낍니다. 저는 여행을 하면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뉴욕 같은 대도시에 살면서 굉장히 불행한 얼굴을 갖고 있는 사람도 봤고, 아프리카 오지에 살면서 행복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는 사람도 봤어요. 뭐가 평화고 뭐가 행복인지 답하진 못하겠지만요.”

나카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동영상 링크가 여러 개 걸려 있다. 그건 나카타가 참여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방송 <리밸유 니폰 프로젝트 (Revalue Nippon Project)> 영상이다. 리포터가 각지를 떠돌며 여행지를 체험하고 소개하는 ‘산 따라 물 따라’ 식의 방송. 나카타는 지금 넓고 깊게 일본을 파고들며 충만한 여정을 쌓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행한 시간과 선수 생활 기간을 포함하면 안 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로 많이 돌아 다녔어요. 그런데 정작 내 나라인 일본은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방송을 시작하게 됐죠. 3년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일본 내 30개 정도의 시와 현을 둘러봤어요. 앞으로 1년만 더 하면 대장정이 끝나요.” 경건하고 신중하게 일본 국토 여행에 임하는 그는 일본 전통 공예와 농업, 전통 여관, 신사 등을 눈여겨보고 있다. 일찍 이탈리아로 진출해 ‘유럽 스타일’에 눈 뜬 인물이 고향으로 다시 눈을 돌리는 건 일종의 회귀 본능이다. 그 때문일까? 이곳 저곳 떠돌며 산다는데도 그는 붕떠 보이지 않고 땅에 머물러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떠남은 있지만, 벗어나려는 기운은 크지 않은 삶. 여행자에게서 확신과 안정감이 느껴진다니,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 속에서 도전하고픈 소재를 얻었다는 건 나카타 히데토시답다. 그는 사케 브랜드를 런칭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에는 1,200개 정도의 사케 브랜드가 있습니다. 일본을 둘러보면서 일본 문화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게 사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에서도 일본 음식이 인기 있지만 그 문화까지 알려져 있진 않죠. 제가 사케 브랜드를 만들어서 문화까지 담아내고 알려주는 역할을 할 거예요.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사케를 만들고 싶어요. 종류도 다양하면서, 내 고집과 생각을 담은 좋은 사케.”

20대 초반 시절 나카타는 국가대표팀 마크를 달고도 애국심을 내세워 나라에 아부하지 않는, 당시로서는 도발적인 신세대였다. 이탈리아에서의 소속 클럽인 AS 로마와 국가대표 경기가 겹치자 단호하게 클럽 경기를 뛰고 싶다고 말하던 청년이었으니까. 그는 여느 운동 선수와는 DNA부터 다른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톱 클래스 선수가 되려면 운동 하나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살아야 했을 텐데, 당신의 많고 큰 욕구들을 어떻게 컨트롤하면서 살았냐고 묻자 그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프로 축구 선수는 하루 평균 두 시간만 트레이닝 하면 됩니다. 그 외의 시간 동안 내 안에 많은 관심사와 에너지를 축적해 뒀죠. 사실 은퇴 이후 뭘 하며 살지 아직도 못 정한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축구 선수를 안 했다면 과연 뭘 하고 살았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여행하며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멀리서라도 지지하고 싶은, 명백하게 쿨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