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가 돌아왔다

‘밑바닥에서’는 타블로의 정규 음반 1집〈열꽃〉의 노래 제목이다. 수록된 10곡은 모두 그가 생의 밑바닥이라 여긴 순간, 마음의 밑바닥에서 흐르던 시(詩)다. ‘집이 되어버린 슬픔’속에서 만들어진 시의 바다가 만조에 이르렀을 때, 타블로가 돌아왔다.

케이프는 디올 옴므(Dior Homme), 팬츠는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at 10 Corso Como), 워커 부츠는 발맹(Balmain at 10 Corso Como).

내게 행복할 자격 있을까? 난 왜 얕은 상처 속에도 깊이 빠져 있을까? 사는 건 누구에게나 화살 세례지만 나만 왜 마음에 달라붙은 과녁이 클까?” 피아노 선율에 따라 혼잣말 같은 타블로의 읊조림이 시작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 논란 이후, 처음으로 듣는 타블로의 음악이다. 터져 나온다는 표현에 가까울 만큼 감정을 눌러 담은 그의 랩은 단단하고, 이어지는 이소라의 한없이 쓸쓸한 목소리는 “이젠 눈물도 없이 운다”고 노래한다. 타블로의 정규 음반 1집 <열꽃>의 첫번째 트랙 ‘집’이다. 수록된 열 곡은 모두 그가 생의 밑바닥이라 여긴 순간, 마음의 밑바닥에서 흐르던 시(詩)다. 그리고 ‘집이 되어버린 슬픔’ 속에서 만들어진 그 시의 바다가 만조에 이르렀을 때, 타블로가 돌아왔다. 지난 10월 21일과 11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된 <열꽃>은 미국와 캐나다 아티튠즈 힙합 음반 차트 1위를 차지했고, ‘Part 1’과 ‘Part 2’는 각각 빌보드 월드 음반 차트 2위와 5위에 올랐다. 1년 6개월여 만의 인터뷰를 위해 <보그>와 만난 타블로는 전보다 야위었고, 아직은 웃음이 어색했다. 사실, 소설가의 소설을 그의 실제 상황과 비교 해석하는 어리석음만큼 노랫말을 통해 뮤지션의 심경을 미뤄 짐작하는 일은 듣는 이의 감상적 착각일 때가 많다. 하지만 친구 봉태규의 목소리를 빌려 음악으로 대신하는 타블로의 물음은 진심처럼 들린다. ‘고마운 숨’에서 그는 묻는다. “이제 그만 아파도 될까? 그만 두려워도 될까? 눈물 흘린 만큼만 웃어봐도 될까?”라고. 이제 그래도 되는 걸까?

‘열꽃’이라는 제목 그대로의 음악입니다. 그 단어를 염두에 두고 음반 작업을 시작했던 건가요?
처음엔 누군가에게 들려줘야겠다 생각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들려줄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이것저것 계속 만들던 과정 중에 딸이 심한 몸살에 걸려 응급실에 간 적이 있어요. 아기의 몸에 열꽃이 펴 되게 당황했는데, 혜정이가 그러더군요. “열꽃이 펴야 몸이 낫는 거라고.” 그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나도 열꽃이 핀 상태였으면 좋겠다….’

음반 재킷도 인상적이었어요. 김남표 작가의 작품이더군요.
우연히 그분의 그림을 하나 봤는데, 무척 인상적이고 그림 속에 제 모습도 있는 것 같았어요. 작가 분께 연락해 가사를 미리 보여드렸죠. 음반의 내지는 원래 있던 작품을 재구성한 거고, 표지는 다시 그려주신 겁니다. 백호는 제가 부탁 드렸어요. 딸이 백호 해에 태어났고, 태몽도 거대한 백호였거든요. 진짜 백호 같아요. 되게 귀여운데 동시에 맹수 같은 면모가 있어요, 확실히.

‘밑바닥에서’의 마지막 부분에도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죠.
처음으로 ‘아빠’라고 했던 음성이거든요. 본의 아니게 쉬게 되었지만 그 시간 동안 제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을 함께하며 영상에 담았어요. 참 다행이죠. 지금은 뛰어다니고 춤도 춰요. 미안하면서도 너무 고맙죠.

CD는 한 장인데, 두 차례에 걸쳐 따로 음원을 발표했어요.
에픽하이도 그런 적 없고 YG에서도 처음이에요. 시기상으로 보면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가 Part 1이고 그 이후가 Part 2인데, 사실 만드는 입장에선 그냥 하나의 흐름이었어요. 결과적으로는 나누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음반이 좀 무겁잖아요. 나눠서 소화하는 게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희망과 행복의 소중함이라는 메시지도 더 확실히 드러난 것 같고.

자신의 음악이 외롭고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당신에겐 음악이 위로가 되었나요?
음악이란 단어 때문에 거창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답답하거나 뭔가 힘든 감정들에 덮여 있을 때 뜨개질을 할 수도 있고, 낱말풀이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시간을 때우면서 견뎌내는 거잖아요. 뜨개질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가장 처음에 만들어진 곡은 무엇이죠?
첫 번째 트랙인 ‘집’이요. 작년 6월 즈음인데, 당시 제가 곡을 쓸 여유가 없었어요. 컴퓨터를 켤 여유도 없었고. 곡 작업을 했다기 보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문장들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기가 태어난 지 한달 밖에 안 돼 손이 많이 가니까 뭘 적기는 힘들었어요. 하루가 지나가면 피곤해서 쓰러져요. 그냥 생각을 메모해두는 정도죠. 그러다 서서히 피아노를 두드리고. 집엔 악기가 피아노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이번 음반에 피아노 선율이 많아요. 가장 최근은 ‘고마운 숨’이에요.

이소라, 태양, 나얼, 봉태규 등 피처링이 화려해요. 어떤 식으로 참여가 이뤄진 건가요?
사실 전 이번 음반에서 조연 역할을 하고 싶었거든요. 각본과 연출은 제가 하되 감정과 내용은 다른 사람이 저 대신 전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쓰는 것까진 좋은데 이걸 스스로 표현해내기가 힘들더라고요. 대체로 저에게 힘이 돼준 분들로 채웠죠. 힘들 때 이소라 선배님이나 나얼이 형 노래를 들으면 위로가 되었어요. ‘집’과 ‘Airbag’은 애초부터 두 사람을 상상하고 쓴 거에요. 태양 군에겐 원래 다른 곡으로 피처링을 부탁했다가 YG와 일을 하게 되면서 아예 곡을 새로 썼죠. 다른 분들은 실질적으로 제 곁에 있어줬던 친구들이고.

YG라는 대형 기획사에 들어간 건 정말 뜻밖이었어요. 물론 아내인 강혜정 씨가 있긴 하지만, ‘에픽하이’ 데뷔 후 계속 같은 소속사에 있었고, ‘맵 더 소울’을 만들어 새로운 실험을 하다 다시 합쳤잖아요.
저에겐 의외도 아니고 뜻밖의 일도 아니에요. 가요계에서 완벽히 절단되었다가 긴 시간이 지나 다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내가 뭘 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논란이 시작됐을 때 바로 소속사를 떠났어요. 를 할 때도 소속사가 없었어요. 그 모든 일을 겪을 때 제겐 매니저도 없었고 완벽히 혼자였어요. 지금 저라는 사람에게 절실히 필요한건 스승과 가족 같은 환경이에요. 혜정이와 YG가 일하는 관계를 옆에서 지켜봤잖아요. YG에서는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때 외로웠거든요.

에픽하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5집 때부터 각자의 솔로 활동을 염두에 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음반에 써놨어요. 우리 음악 인생에 있어 별다른 일이 없었다 해도 그랬을 거예요. 에픽하이는 도태되어 있었거든요. 어느 순간 그자리에 머물러 똑같은 걸 계속 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의 향수를 우려먹는 그룹이 되고 싶진 않거든요. 발전을 위해 각자 길을 걸으며 각자의 세상을 만들 필요가 확실히 있다고 느꼈어요. 그러다 셋이 뭉치면 서로에게 더 힘이 되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고요. 투컷도 제대해서 본인 작업을 하고 있죠. 미쓰라는 군대 가기 전, 돌아오면 뭘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솔로 앨범을 꼭 하고 싶데요. 그럼 내가 너의 곡도 다 만들어 놓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만들어 놓은 곡도 많아요.

후드 스웨터는 준지(Juun. J).

‘유통기한’의 가사를 보면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 될까 봐, 더 이상 듣지 않는 음악이 될까 봐 두렵다는 내용이 나와요.
연인 사이에서도 ‘내가 이 사람한테 언젠가 더 이상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면 어쩌지?’ 이런 생각하고, 어쨌든 모두가 늙어가니 ‘나이들어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되면 어쩌나’ 그런 생각도 하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한번 버림 받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으니까, 내 뜻과 관계없이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두렵지만 받아들이는 거죠.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노래로 옮긴다는 것, 그 벌거벗은 마음을 다시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죠?
고마운 말이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용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용기는 정말 내가 아닌, 나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큰 무언가를 위해행하는 거잖아요. 단지 제 감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을 용기라고 하기엔 너무 과분한 것 같아요.

‘고마운 숨’에서 말하는 고마운 존재들에 대해 얘기해보죠.
버킷 리스트 같은 걸 작성한 적이 있어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사실은 되게 사소한 것들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드라마를 보고 있어요. 드라마의 결말이 궁금해요. 그걸 보려면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해요. 그게 끝나면 또 재미있는 게 하나 나와요. 그게 세상이에요. 예능 프로를 보면서도 너무 즐거웠고, 그런 별거 아닌 것들이 힘을 주는 원천이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어요. 그래서 한숨조차도 고맙다는 표현을 쓰고 싶었어요. 어쨌든 그것도 숨이잖아요. 제가 숨을 쉬고 있는 거잖아요.

이번 음반을 작업하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은 없나요?
음반 작업 자체는 즐거웠던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이 일을 통해 제가 좀더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그로 인해 제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다시 마음을 베풀 수 있다는 게 즐거웠죠. 음악을 만들 땐 사실 외로웠어요. 피처링 할 때를 제외하면 녹음까지 저 혼자 했던 거니까.

어떤 사람들은 ‘신이 타블로에게 아픔을 주었다면 그 음악을 듣는 우리에겐 감동과 위로를 주었다’고 얘기하더군요.
그 말이 만약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제가 아파야 하는 거라면, 예전에는 ‘고작 음악을 위해 사람이 그렇게 아플 필요가 있을까?’ 했을지 몰라요.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어 그런 것도 있지만, 지금은 달라요. 이왕 힘든 거, 나로 인해 긍정적인 뭔가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백조도 죽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하잖아요. 물론 안 아프면 제일 좋겠지만.

트위터를 다시 시작하셨더군요.
네. 1년여 만에. 그런데 예전처럼 많이 하진 않죠. 아무도 팔로잉을 안 해요. 그 이유가 팔로잉이 있으면 사람들이 그걸 타고 들어가서 그들을 괴롭히더라고요. 저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제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까지 괴롭힘을 당하니까 그때 다 끊었어요.

인터넷으로 인해 가장 안 좋은 경험을 했던 당신이 다시 SNS를 한다는 게 의외였어요.
세상 어느 것이든 악용하려 하면 악용할 수 있는 거라, 인터넷으로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없는 듯 생활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인터넷엔 좋은 이야기와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는 좋은 공간도 많거든요.

그래도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죠?
음악을 연예계랑 하나로 생각을 해야 한다면, 네. 다 그만두고 싶었어요. ‘음악은 듣기도 불편했었다’고 가사에도 썼지만, 정말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흥얼거리더라고요. 어쩔 수가 없나 봐요. 하기 싫은데도 계속 떠오르니까 이게 습관인지 버릇인지, 아마 둘 다일 수도 있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그만뒀죠.

다행이네요. 덕분에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네. 여러모로 지금 이순간이 다 다행인 거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라디오에서 타블로의 ‘밀물’이 흘러나왔다. 프로그램 진행자인 듯한 아이돌 가수는 몇 번씩 가사를 곱씹어 읽어주었다. ‘위기에 처한 그대, 다 떠밀려 가는데 물결에 저항을 해. 세상은 어항인데. 어느덧 스물인데, 낚싯바늘을 피해 안도의 숨을 쉬네. 세상은 그물인데.’ 밀물처럼 타블로의 노래가 세상으로 흘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