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져도 사랑스러운 여자들 Part 2

‘아메리카노’와 ‘패션 넘버 5’팀은 전례 없이 팀 플레이로 웃기는 여자들이다. 오늘도 개그우먼으로 살고자 망가질 대로 망가지는 여자들. 이 웃긴 여자들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fashion NO .5 (오른쪽)허안나의 페이크 모피 코트는 프라다, 슈즈는 에피타프, 볼드한 목걸이는 마리아 프란세스카 페페(at Daily Project). (왼쪽)박나래의 도트 패턴 페이크 모피 코트는 푸시 버튼, 스팽글 미니 드레스는 박윤수, 에나멜 싸이하이 부츠는 구찌. 장도연의 코르셋이 장식된 롱 코트는 푸시 버튼, 가죽 쇼츠는 쟈니 헤잇 재즈, 앵클 부티는 지니 킴.

fashion NO .5 장도연의 단청무늬 드레스와 프린트 레깅스는 이상봉, 박나래의 화이트 슬리브리스 톱은 자인송, 가죽 라이더 베스트는 에피타프, 블랙 패딩 베스트는 데무, 허안나의 블루 컬러 수트는 쟈뎅 드 슈에뜨, 화이트 T-스트랩 슈즈는 지 초이.

‘패션 넘버 5’에서 가장 놀라운 건 옷 자체다. 모두 방송사 의상팀이 제작했다고 보기엔 그 투자 시간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개그 콘서트> 회의실 풍경부터 보자. 다른 팀들은 테이블 위에 대본을 놓고 연습한다. ‘패션 넘버 파이브’팀 쪽은 야간 작업 중인 의상학과 학생들 수준이다. 개그 검사를 하던 PD(학부에서 의상을 전공한 몸이다)는 개그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스팽글이 어떻고 장식이 어떻다는 의견을 낸다. “너희들, 프라다에서 아이템 좀 뒤져봐.” “남들은 못 알아들어도 패션 피플은 알아듣게!” 허안나는 매주 선보일 기괴한 패션을 스케치하는 ‘허실장’이고(어릴 때 만화가 지망생이었다), 키가 174cm인 장도연은 피팅 모델, 박나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큰 작업은 의상팀이 해주지만, 패션이 그것으로 멈출 순 없어서 모두 모여 재봉틀을 돌리고 손바느질을 시작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머릿속의 아카이브를 꺼내놓을 땐 깜짝 놀랐다. “알렉산더 맥퀸, 레이 카와쿠보, 빅터앤롤프, 이세이 미야케 옷들을 잘 뒤져봐요. 제가 머리에 물방울 장식을 하고 나온 적 있는데 갈리아노 컬렉션에서 힌트 얻은 거예요. 허안나가 입술을 까맣게 칠하는 것도 2010년도 맥퀸 쇼에서 따왔고요.” 허안나는 성에 차는 립스틱 색상을 못구해서 아이라이너나 보디 페인팅 재료를 쓴다. “이러다 입술에 착색되는거 아닌가 몰라요. 건조해서 개그하는 도중에 입술이 쩍쩍 갈라질 것 같아요. 패션의 메마름.” 장도연은 <보그> 섭외 연락을 받고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우리가 추구하는 것의 종착역.’

일단 ‘분장’을 지우면 박나래와 허안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메이크업을 해주던 스태프도 맨얼굴의 허안나가 얼마 전까지 <개그 콘서트>에서 에로배우 출신 가수 지망생 ‘세레나 허’로 나온 인물이라는 걸 못 알아봤다. ‘망가짐’에 대해 박나래는 말했다. “사실 아무리 심한 개그를 한다 해도 여자는 여자예요. 웃기려고 대머리 가발 쓰는 개그우먼이요? 그 와중에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는 꼼꼼히 바른다니까요.” 개그맨 세계의 특징이 있다면, 단점이 처절하게 까발려진다는 것. ‘직언’을 넘어 ‘막말’로 개그의 일상화를 노리는 그들 사이에서 말은 유독 여자에게 콕 박힌다. 어느 날 여드름이 많이 났던 박나래는 한 남자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바퀴벌레가 이마에 알 깠냐?” 개그 대신 성형 수술로 인터넷에서 이슈된 적이 있는 박나래다. 그녀가 성형 수술 후 처음 맡은 역할은, 할머니. 박나래의 말마따나 개그우먼의 남자 친구들은 그 여자에게 푹 ‘꽂힌’ 남자일 것이다. 키가 크고 날씬한 장도연이 개그맨 시험을 보기 전 생각대로 지금 공무원을 하고 있다면, 그녀는 ‘모델 공무원’으로 불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개그우먼에겐 신체 특징도 개그 소재다. 덕분에 장도연은 <개그 콘서트>의 옛 코너 ‘키 컸으면’에 나와 이수근 옆에서 춤추며 처음 얼굴을 알릴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이 여섯 여자 중 대부분이 자기가 개그우먼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교수 추천으로 얼떨결에 시험을 봤다가 합격한 안영미는 1년만 버티고 관둘 생각이었다. ‘그냥’ 시험에 한번 도전해본 장도연은 재미 없다고 나가라는 심사위원 앞에서 머리카락에 불을 붙이며 ‘아침이슬’을 불렀다. 정주리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어머니 의견에 따라 과거 피부관리 자격증을 땄다는 건 알려진 얘기. ‘아메리카노’가 그들 코너에서 말로 웃길 때, 정주리는 신체로 웃긴다. 무대에 올라 말 없이 머리를 감거나 욕조에 빠지는 역할은 그녀 몫이다. 물론 정주리는 버라이어티쇼에 나와 예쁜 몸매를 감추지 않고, 공들여 했을 메이크업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런 정주리에게 언젠가 조혜련은 말했다. “너 예뻐지려고 하지 마. 나도 예전에 ‘배우병’ 걸린 적 있었어.” 몸매를 반쪽으로 만들면서 특유의 캐릭터도 약화된 이영자 역시 간단히 이랬다. “야, 나 봐.” 어떤 식으로 나타나든, 적어도 방송에서 개그 ‘연기’를 하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악의는 없다는 것. 날카로운 풍자마저 그 너머에는 공감이라는 긍정이 자리한다. 누군가를 웃기려는 사람이 될 줄 몰랐던 평범한 여섯명은 지금 여자이자 개그우먼이다. 예뻐지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여자의 삶, 동시에 망가질 땐 한없이 망가지려는 개그우먼의 삶. 그 둘을 이분해서 생각하면 개그우먼의 삶은 다분히 이율배반적이지만, 어쩌면 해답은 김미려의 말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개그 캐릭터는 비주얼을 떠나서 귀여운 데가 있어야 해요. 미운 짓을 해도 밉지 않도록. 보는 사람이 내 새끼 처럼 느껴야죠.” 그리고 아이 같은 얼굴을 분장으로 지워갈수록 자신감이 차오르는 안영미 같은 개그우먼이 있다.

웃기는 여자들 덕분에 우리는 밥알을 내뿜을 정도로 실컷 웃는다. ‘아메리카노’가 현실에서 봤을 법한 캐릭터들을 예리하게 콩트로 승화시킬 때면, 그 개그는 안젤리나 ‘졸리’ 섹시하고, 이런 ‘CGV’ 같은 상황 속에서도 웃음 포인트를 찾아낸다. 성대결절 때문에 변해버린 안영미의 목소리도 약에 취한 듯 과격한 캐릭터를 입을 땐 장점이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있었던 ‘패션 넘버 파이브’ 팀의 시작은 <해피 투게더>에서 찜질방 옷을 리폼해 입고 나온 모델 장윤주를 봤을 때였다. ‘일반인들이 입는 스타일을 넘어서는 패션 피플.’ 그 명제가 개그와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는 순간, 하의 실종을 넘어선 상의 실종 패션이 탄생하고, ‘이제 대세는 44 사이즈가 아니라 4세 사이즈’라는 정의가 탄생한다. 진정한 시스루 룩은 속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살 속을 보여주는 것이며, 패션리더라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입음으로써 ‘국영수 패션’의 장을 연다. ‘아메리카노’와 ‘패션 넘버 파이브’ 팀은 전례 없이 팀 플레이로 웃기는 여자들이다. 오늘도 개그우먼으로 살고자 망가질 대로 망가지는 여자들. 이 웃긴 여자들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