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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의 모놀로그

2016.03.17

by VOGUE

    윤석화의 모놀로그

    윤석화가 영화 <봄 눈>에서 암에 걸린 어머니를 연기했다. 연기 인생에서 세 번째 삭발도 했다. 특유의 멈출 수 없는 기관차 같은 화법으로, 두 아이를 향한 모성, 영국 웨스트엔드에서의 놀라운 성공 신화, 영화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50대 후반, 윤석화의 장밋빛 인생.

    블랙 롱 코트는 릭 오웬스(Rick Owens).

    블랙 드레스는 문영희, 네일은 데보라 립만(Deborah Lippmann).

    “윤석화가 얘기할 땐 누군가 얘길 들어줘야해. 그냥 맞붙어서 이야기하는 건 오산이야”라고 연극배우 박정자 선생이 말했다. 윤석화의 이야기는 언제나 모노드라마다. 입을 삐죽거리고 우는 어린아이였다가, 브리티시 악센트의 근엄한 연출가였다가, 때로는 노래도 부르고, 아! 이젠 윤석화로 돌아왔나 싶을 때도 폼 잡은 연기인지 힘을 뺀 수다인지 구분이 안 된다. 경적을 울리고, 터널을 지나고 꼭짓점이 되는 몇 개의 드라마틱한 정거장을 거쳐 지금은 절정의 50대에 오른 윤석화라는 증기 기관차. “나날이 발전하는 여성이 돼야 해요”라고 부드럽게 연설하며. 3월에 영화 <봄 눈> 개봉과 함께 세계 공연의 메카 웨스트엔드에서의 모노드라마 데뷔를 앞둔 윤석화는 압축적 폭발력과 노동의 긴장을 숨기지 않았다. 위대한 비전에 결박 당한 나르시시스트도 아니고, 두 아이를 키우는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업적을 이뤄낸 그녀가 놀라울 뿐. 관용과 겸손, 신성한 광기가 어우러진 윤석화의 모놀로그.

    몇 해 전에 <보그>에서 찍은 그 사진, 난 참 좋아. 홍콩 바닷가에서 였지.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아가랑 노래 부르던 모습. 그건 배우 윤석화가 아니고 그냥 엄마 윤석화야. 또 하나 기억나는 사진은 연극 <덕혜옹주> 할 적에 삭발하고 조세현 선생 앞에서 찍은 것. 거기에 반은 자연인 윤석화지만, 반은 또 배우야. 그래서 그 사진을 내가 영정 사진으로 써야겠다 그랬어요. 오늘같이 작심하고 찍는 사진은 사실 안 익숙해요. 그래도 난 프로페셔널이니까, 이 페이지가 필요로 하는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거지.

    일상에서의 나는 완벽한 전업 주부야. 자기 치장에 인색하고 동네 슈퍼는 세수도 안 하고 간다구. 난 선글라스랑은 친해. 이젠 늙어서 눈이 아픈데 선글라스를 끼면 좀 시원해지거든. 화장을 안 해도 선글라스만 끼면 좀 커버가 되잖우. 사실 수민이 때문에 라식 수술을 했어. 어릴 때 아기들은 3시간마다 깨서 우유를 먹는데, 밤에 자다 깨서 머리맡을 더듬어 안경 찾아 끼고 그럴 겨를이 없더라구. 나이 쉰에 입양한 아가니까. 모성애는 강한 거야. 겁 많은 내가 라식을 다 했으니까. 이제는 돋보기를 써요. 라식을 안 했으면 안경 두 개를 번갈아 쓰면서… 아휴~ 생각만 해도 머리 아파. 그런데 나는 배우가 아니었더라면 더 패셔너블했을 거야. 여고 시절에도 명동 뒷골목에서 <보그>랑 <글래머>랑 그런 거 구해 보고 천을 끊어다가 동네 양장점에서 맞춤옷을 해 입었어요. 그런데 배우로 알려지면서 튀는 게 좀 거북스러워. 더 겸손하게 하고 다니게 돼. 선글라스 하나면 되는 거지.

    난 요즘 런던에서 아주 바쁘게 지내요. 서울과 홍콩과 런던. 남편 일, 내 일 때문에 이렇게 세 개의 지점을 정신없이 오간다구. 영화 <봄 눈> 찍은 것도 런던에서 20일 짬을 내서 서울 와서 찍은 거야. 런던에서는 애둘 학교 보내고 간수하랴, 뮤지컬 프로듀서 하랴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요. 우리 딸 수아는 수민이 네 살 때 입양했어요. 내가 원한 건 딱 두 가지였어. 수민이랑 닮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혈액형이 우리 부부랑 맞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 기관에서 수민이 닮은 아가가 있대. 딱 보니까 이건 말도 안 돼. 하나도 안 닮은 거야. 그런데 태어난 지 2주 된 못생긴 아가가, 글쎄… 나를 빤히 봐.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아가인 거지. 자라다보면 닮을 테고. 그런데 신기한 게 진짜 닮아가요.

    수민이는 이제 우리 나이로 아홉 살, 수아는 다섯 살. 남편 일 때문에 가긴 했지만, 애 키우기엔 런던이 참 좋아요. 게다가 영국은 공연예술의 메카잖아. 웨스트엔드에 비하면 브로드웨이는 아무것도 아니지. 처음에 영국 갔을 땐 브리티시 악센트 알아듣는 것만도 벅차더라구. 이젠 팀라이스랑 같이 일해요. 팀 라이스가 누구야? 내가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라이언 킹> <아이다>의 작가인데… 감격적이죠. 하나님의 은혜랄 수밖에. 그렇게 일하는 과정에서 공연계의 일류 선수들을 만나게 됐어요. 올 7월엔 웨스트엔드에서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라고 연극을 올려요. 영국인들이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는 연극이야. 1차 대전 때 독일이 점령한 영국 참호에서 벌어지는 3일간의 이야기인데, 그게 내가 작년에 송일국을 캐스팅해서 한국에서 올린 연극 <나는 너다(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준생 이야기)>랑 비슷한 거야. 그래서 ‘어? 그 이야긴 한국판 <나는 너다>네.’ 그럼 함께 프로듀서 해보지 뭐, 그렇게 된 거지. 내가 작품 얘기할 땐, 영어를 엄청 조리 있게 다다다다 하거든. 그거 끝나고 할 게 <탑 햇>이라는 뮤지컬이야. 이게 또 기가 막혀요. 보통 영국에서 뮤지컬이 두 가지 시스템이에요. 80억 정도 투자해서 바로 웨스트엔드로 들어 가서 돈 놓고 돈 먹기로 승부를 보든가, 아니면 20~30억대 예산으로 지방 공연을 돌다가 반응이 좋으면 웨스트엔드로 입성하든가. 그런데 <탑 햇>이라는 뮤지컬은 지방 공연에서 엄청 명성을 날렸거든. 다 끝나기도 전에 빅 5 극장 중 하나인 올드 위치에서 전화가 온 거야. <더티 댄싱> 내리고 그거 하고 싶다고. 2012년 4월 부터 바로 들어오라는 거야. 이건 보나마나 대박이야. 프로듀서 자격으로 난 이미 많은 걸 배웠는데, 투자 권한도 주더라구.

    아직도 안 끝났어.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작품을 내가 한국에서 처음 초연을 했거든. 아놀드 웨스카 작품이에요. 그런데 내가 1993년도에 런던 국립극장에서 연수할 때 아놀드 웨스카를 만났었잖아. 그때 런던에서 공연할 기회를 줬다구, 그분이. 그런데 그때는 엄두를 못냈어. 아유, 감히 내가? 그리고 런던 무대에 서는 대신 결혼을 했지. 사랑을 택했다구, 내가. 몰라. 그만큼 용기가 없었던 건지. 세계적인 연출가 로버트 윌슨이 우리나라 와서 <바다의 여인>을 올리면서도 나를 캐스팅했는데, 그걸 가지고 외국으로 나가자고 했을 때도 못 그랬어. 그런데 내가 이번 2012년 9월에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리게 됐어요. 지금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와이 낫? 안 될 게 뭐 있어. 서른네 살 여자, 모노드라마, 일단 Go 하는 거야. 그런데 결심은 했지만 이게 보통 일은 아니에요. 영화 <킹스 스피치> 봤죠? 영화에서는 스페셜 코치가 용기를 주면서 연설을 하도록 이끌고 가잖아요. 나는 ‘액터스 스피치’예요. 완벽한 현지 영어를 구사해서 연극을 올려야 되는 거죠. 그 누구에게도 흠 안 잡힐 만큼 완벽하게. 물론 저는 코치를 쓸 거예요. 그리고 런던에서 꿈을 이룬다면, 영국이 자랑하는 어떤 여배우보다 더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레드 크롭트 롱 재킷은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그런 와중에 서울에서 시나리오 한 편이 날아온 거예요. 첨엔 꺼내서 읽어볼 엄두도 못 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열어보니, 제목이 <눈물이 아름다워>야. 저는 눈물의 힘을 믿는 사람이거든요. 정말 울어야 할 사람이 완악해지는 세상이니까. 일단 읽었어. 그런데 거기부터가 작은 기적이야. 집에서, 난 정말 바빠요. 애들 학교 갔다 와서 간식 주고, 숙제 시키고, 게임하고 좀 놀게 하고 저녁 주고 나면, 목욕 시키고 재우기 전에 잠깐 숨돌릴 시간이 생겨, 30분쯤. 그런데 그날 따라 1시간 넘게 “마미, 마미, 이거 해줘요. 저거 해줘요…” 수민이 수아가 날 안 찾아. 그냥 조용하게 몰두했다고. 펑펑 울면서. 감독이 시나리오 표지에 그렇게 썼더라구. ‘이 영화를 새벽 첫 차를 타고 떠나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칩니다.’ 세상 모든 엄마가 가장 먼저 일어나잖아. 애들 먹이려구. 애 때문에 하루를 연다구. 아, 이 영화 속 엄마가 힘들게 살고 지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엄마로서 희망을 남겨 놓으려는구나.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을 위로 하는 역할이네. 고난이 축복이라는 성경 말씀도 생각나고. 남편은 이왕 영화를 할 거면 칸, 베를린, 베니스 갔으면 좋겠다, 이게 단 한 번의 카드가 됐으면 좋겠다, 난 아냐. 그 생각을 버리는 게 우선이더라구. 내가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 영화라는 게 중요해. 그리고 난 영화는 잘 모르잖아. 신인이라구. 그렇게 조용하고 나직하게 하고 싶었어.

    물론 <딸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맞닿아 있지. 연극 작품 속의 주인공은 가수이고 미혼모야. 삶에 대한 긍정, 가수에 대한 꿈과 열정을 고스란히 지닌 부족한 젊은 엄마. “얘야, 기억나니?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것도 많지만, 어렸을 때 내가 너한테 자장가도 많이 불러줬잖니?~” 그러면서 노래도 하고. 그러니까 나는 2012년엔 젊은 철부지 엄마도 되고, 나이 든 희생적인 엄마도 되는 거야. 머리 삭발한 거는 내가 감독한테 애기했어. 이 신에서는 머리카락을 잘라야 한다. <덕혜 옹주> 때도 <위트> 때도 잘랐지. 머리카락, 자르면 또 나는 거잖아. 머리카락 자를 때…, 어느 순간 서럽지만, 다시 수습하고 냉정해져. 가위로 내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자르니까, 온 스태프들이 엄숙해져. 그야말로 거룩한 긴장. ‘아! 배우가 이렇게 거룩할 수 있는 거구나!’ 적어도 내가 배우로서 거룩을 맛봤구나. 그런데 갑자기 애들이 보고 싶더라구.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고.

    영화는 맘에 들어. 제목을 <봄 눈>이라고 바꿔서 3월에 개봉이야. 난 1차 편집본을 봤는데, 약간 독일이나 그리스, 이란 영화 느낌이 나더라구. 삭발하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머리에 햇빛이 비쳐드는 느낌도 좋고. 김혜자 선생님의 <마더>나 윤정희 선생님의 <시> 하고는 달라. 그렇게 세련되진 않고 하여튼 단편 소설 읽는 것 같아요. 영화 찍는 내내 노메이크업 하다, 사진관에 영정 사진 찍으러 갈 때 립글로스 한번 발라봤어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주책이지. 그런데 그냥 빠져들게 돼요. 여배우로서의 삶, 엄마로서의 삶. 그 극대화된 행간에서 힘들어요. 가랑이가 찢어져요. 처음 수민이 키울 땐, 홍콩에 아이를 두고 내가 일주일마다 서울과 홍콩을 오갔어요. 연극 끝내고 부리나케 갔다가 새벽에 비행기 타고 오고. 어려움과 함께. 이만큼 해내고 살아낸 거죠. 난 진짜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평화, 평화로다! 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삶이었어요. 난 지금은 런던에서의 삶도 너무 좋고. 그래서 서울에서 연극하는 젊은이들 다 데리고 런던 무대에도 세우고 싶어. 런던에선 나를 30대 중반으로 보거든. 호호. 서울에서도, 서울에서도 눈물 나게 행복해. 내가 한옥에 사는데, 아주 작아요. 대지가 마흔 평이니까. 쬐끄매. 삼청동에, 손바닥만한 집 앞마당에 백두산에서 가져온 이끼를 심어놨다구. 그거 봄에 파릇하게 돋는 거 보면 너무 좋아. 소름이 돋아.

    나는 요즘에도 새벽 2시에 들어가도 최소한 1시간은 가만히 앉아 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도 마찬가지야.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니까 더 필요한 시간이야. 뭘 할 여력도 없으니까 그냥 가만히 가슴을 내려놓고 있는 거야. 아! 오늘 내가 살아 있으니 참 감사하다. 그러고 잠이 들면서 그러지.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지수
      포토그래퍼
      조선희
      스탭
      스타일리스트/박명선 , 헤어&메이크업/홍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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