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워

루시드폴의 앨범은 늘 공기가 차가울 무렵에 나왔다. 스튜디오엔 지나치게 달지도, 서늘하지도 않은 그의 정갈한 노래가 흘렀다. 꽃보다 아름다운 시간이다.

의상 / 꼼 데 가르쏭

루시드폴의 앨범은 늘 공기가 차가울 무렵에 나왔다. 그가 연말이면 꾸준히 공연한 지 8년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6년여의 유학 생활 동안 휴가를 얻을 수 있는 기간이 늘 연말이었으니까. 서늘한 온도에서 듣는 그의 노래는 가수가 의도하지 않았을 적당한 온기를 품고 있다. 정갈하고 조곤조곤한 소리들이 흐르고 쌓이면 주변이 조금 따뜻해진다. 아마 루시드폴 식의 목소리는 우리 무의식이 평온함을 원할때 기대고픈 소리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취향과 별개로, <나는 가수다> 같은 음악 프로그램 때문에 ‘나는 성대다’를 뽐내는 목소리들에 둘러싸이고 질린 것과 상관없이.

역시 공기가 싸늘한 지난 연말, 루시드폴이 5집 앨범을 들고 나왔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어느 평론가가 쓴 글을 인쇄해 갔다. 루시드폴 음악이 대변하는 취향을 ‘90년대 고급가요를 경험한 계층의 팬덤’이라고 분석한 A4 6페이지 분량의 글이었다. 그는 노래를 부를 때와 다르지 않은 단아하고 일정한 톤으로(심지어 만나 뵙게 돼서 ‘전라남도 영광’이라는 스위스 개그를 할 때의 목소리 톤도 노래할 때와 비슷하다) 나지막이 말했다. “별로 읽고 싶지 않은데요.” 90년대 후반 밴드 ‘미선이’로 시작해 가수로서 적지 않은 앨범을 낸 루시드폴은 음악을 진지하게 해석하는 것, 음악만으로 뮤지션에게 선입견을 갖는 것들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에게 루시드폴 자신과 루시드폴 음악이 얼마나 다르거나 비슷한지 물으면서 ‘당신의 음악을 듣고 당신이 마초 스타일이라고 짐작하긴 힘들지 않나’라고 덧붙였을 때도 그는 정색하고 반문했다. “왜요? 이를테면 그런 선입견들이 웃기다는 거죠. 한창 연애 중일 때 외롭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면, 연애하는데 왜 외롭냐고 묻는 질문도 바보 같고요. 음악은 너무나 다층적인 한 사람이 내보이는 일부일 뿐이에요.”

루시드폴은 곧잘 자신이 시인으로 불리면 참 좋겠다고 말해왔다. 시인을 꿈꾸는 싱어송라이터의 노랫말은 그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단서인가. 그렇게 루시드폴 음악을 그저 듣는게 아니라 평했던 사람들은 그가 서정적인 멜로디에 동시대상을 나르는 뮤지션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가 그저 음악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꾸만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가사를 쓴 의도,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요? 어떤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는 의도가 강했을 때라면 몰라도. 노래가 그 의미를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장르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시를 대하는 그의 감정이 각별하다는 걸 아는 이상, 그의 음악에서 시의 은유와 시인의 감성을 떼어놓긴 어렵다. 루시드폴 노래에 들리는 악기 소리들은 양감이 풍성할 때도 결코 보컬의 목소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정갈하게 정돈된 그 질서 때문에, 굳이 노랫말을곱씹지 않아도 시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유명한 시인에게 진짜 시인이 되는 방법이 뭔지 답을 구한 적도 있다. 신춘문예, 문학지 추천, 배고픔, 공부 등 현실적인 단어들이 돌아왔다. 그저 세상의 여러 호칭 중에서 시인으로 불리는 게 참 영예롭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살 뿐인데. “시와 가사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지만 공통점이 있죠. 산문이 아니잖아요. 제한된 공간에 가사를 배열하려면 시가 지녀야 하는 탄력성, 압축성이 필요해요.” 루시드폴을 ‘음유시인’이라고 불러줘 봤자 그는 시큰둥하다. 오히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루시드폴은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음유시인이라는 말의 정확한 기원은 뭐지?’

루시드폴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을 때 ‘로잔연방공과대학대학원 생명공학 박사’라는 한 줄이 떠 있는 장면은 봐도 봐도 이상하게 비현실적이다. 그는 이미 3년 전 유학 생활을 마치고 전업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연구 논문을 쓸 때와 음악 작업을 할 때 작동시키는 뇌와 감정 영역이 얼마나 다른지 여전히 궁금했다. 그가 박사 과정을 밟으며 했던 일은 프로젝트를 세우고 어떤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 연구는 목표가 있고 미션을 이뤄내야 한다는 점에서 음악과 달랐다. 그는 영화 <해변의 여인>에서 여자와 현학적인 대화를나누던 김승우가 도형을 그리며 설명해주던 것처럼, 노트에 원소와 원자 구조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친절하고 쉬운 설명이 뒤따랐다. 원소 기호가 노트에 점처럼 뿌려지고 하이드로카본이란 단어도 등장했다. 그의 작은 강의를 듣고 있자니, 직관을 응용해서 실험하고 만들어 보이는 연구 과정과 음역대에 따라 소리를 어떻게 배치했을 때 탁월한지 얹어 보고 빼보기도 하는 작업 과정이 묘하게 교차됐다. 5집 타이틀 곡 ‘어부가’의 아코디언 솔로를 지나, 유희열이 편곡한 마지막 트랙의 현 소리가 잠시 귀에 스쳐갔다.

녹색 나뭇잎이 흐드러진 사진을 실은 앨범엔 <아름다운 날들>이란 제목이 붙었다. 앨범 속지에 담긴 푸른 숲은 지금은 붙잡을 수 없는계절의 풍경이어서 더 아련하다. 이 아련한 감정을 안고 루시드폴 음악을 들을 때면 조금은 위로 받는 느낌이 든다. 정작 그는 ‘나 외의 무언가가 어떻게 나를 위로할까, 한편으로는 위로 받는 걸 포기했다’는 말이나 늘어놨지만. 그에겐 인생에서 아름다운 날들이라고 부를 만한 시기가 꽤 있다. 최근 1~2년, 밴드를 처음 만들 무렵,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 처음 유학 가서 미친 듯이 연구를 시작하고 몰두했을 때. “안녕, 안녕 아름다운 날들/ 언제 우리 만나게 될는지 알 수는 없지만/ 별빛 사라진 하늘에 난 말하고 싶었지/ 안녕, 안녕 참 고마웠다고 사랑했다고.” 이건 앨범의 문을 닫는 마지막 곡, ‘여름의 꽃’ 가사 일부다. 여러 의미로 읽힐 수 있는 가사 앞에서 의도 따위 중요치 않다던 그는 역시나 ‘아름다운 날들’이란 이미 지나간 날들일 수도 있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이 앞에선 괜히 자의적 해석을 꺼내놓고 싶다. 이것은 돌아갈 수 없는 날들에 이별을 고하는 안녕이 아니라,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기 위한 안녕이라고. 사진 촬영을 거북해하는 그에게 꽃을 한아름 안겨줬다. 스튜디오엔 지나치게 달지도, 서늘하지도 않은 그의 정갈한 노래가 흘렀다. 꽃보다 아름다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