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잘 하는 여자들

연애 칼럼니스트가‘연애 잘 하는 여자들’을 대변해 고백한다. 운명적인 사랑의 순간들을 믿는 그녀들에게 내려진 축복, 혹은 저주.

연애하는 여자들은 그 어느 때든 연애를 하고, 연애 안 하는 여자들은 그 어느 때든 연애를 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연애하는 여자들이 더 매력적이거나 우월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결핍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고 단순하고 유치했다. 좋아하면 앞뒤 안 보고 몸과 마음을 주던, 상대 입장에선 참 편리하고 쉬운 여자가 나중에 가서는 버겁고 무서운 여자가 될 뿐이었다. 본전 생각도 안 했고 센 척도 못했다. 연애 잘 하는 여자들이 순수하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다. 날것 그대로 이기적으로 군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인정사정 없이 푹 빠졌다. 자나깨나 그 사람 생각으로 온몸이 ‘절임’ 상태가 되고, 매일 하루 반나절은 그 사람과 몸과 마음을 꼭 끼운 채로 보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어느덧 이런 말을 듣곤 했다. “너랑 연애하고 있으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가끔 그 남자와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나무라기도 했다. “넌 그냥 사랑을 사랑한 걸 거야.” 하지만 그것은 대상이 그 사람이었으니까 가능했다. 아무리 쉽게 빠진들 취향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치부하니 마음이 아팠다.

굳이 순순히 죄를 인정한다면 내 쪽이 상대를 처음부터, 혹은 도중부터라도 더 사랑했다는 점이다.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지는 것마저도 행복했다. 하지만 상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 그 어떤 연애라도 100% 상처 받는다. 연애를 ‘잘’하는 여자들은 그만큼 자주 차이는 여자들이다. 남자에게 늘 이별을 먼저 고하는 대단한 여자들? 풋, 그녀들이야말로 자기 좋다는 남자들을 ‘사귀어 주기만 한’ 저렴하고 불쌍한 여자들일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연애할 수 있을 때 연애하라’는 취지의 글을 써왔다. 하지만 ‘왜’ 연애할 수 있을 때 연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논리적으로 부족했고 설명도 충분치 못했다. 연애는 사실 위태위태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누군가를 사랑 안 하는 상태가 더 자유롭고 평화롭다는 사실을 나는 새삼스레 통감하고 있다.

“그럼 왜 연애해?” ‘연애 안 하는 여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사실 연애하는 여자들은 ‘운명적인 사랑의 순간들’을 느꼈다. 그 찰나의 황홀경을 느끼게 해준 순간들이 그 다음 사랑을 낙관적으로 꿈꾸게 할 만큼 깊고 강렬했던 것이다. 사랑이 반드시 가시적인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운명을 느끼게 만드는 그 순간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만들어 놓고 갔다면, 그녀들은 ‘그것으로 된 것이다’라고 자연스레 납득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과거에 상처를 줬던 남자들에게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배신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도 없다. 배신이라니, 그럼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어떻게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지? 대신 그 이름 모두를 기억해줄 수는 없었다. 앞으로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위해 공간을 좀 비워놔야 하니까. 늘 연애하는 여자들에게 구비된 최고의 차별적 특징은 어쩌면 이런 자가당착적인 ‘착각 능력’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