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김민희의 특별한 조합

이선균과 김민희가 신용카드 사회의 어두운 실종자를 다룬 영화〈화차〉에 출연했다. 그동안 이미지로 인기를 대출하지 않고, 성실하게 제 몫을 다하는 영화계의 ‘신용카드’같은 두 배우가〈보그〉의 카메라 앞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선균이 입은 블랙 수트는 니나 리치(Nina Ricci), 화이트 셔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슈즈는 크로켓앤존스(Crockett&Jones). 김민희의 블랙 케이프와 심플한 블랙 드레스는 쟈뎅 드 슈에뜨(Jardin de Chouette), 크리스털 목걸이는 니나리치(Nina Ricci), 레드 원석이 박힌 볼드한 반지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오픈 토 힐은 슈콤마 보니(Suecomme Bonnie).

어깨 부분의 주름 장식이 유니크한 코트와 블랙 원피스는 꼼 데 가르쏭(Comme des Garçons).

내추럴한 광목 원단으로 만든 화이트 수트와 셔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잘록한 허리선이 돋보이는 바 재킷과 벨트, 시스루 블라우스는 모두 디올(Dior), 언밸런스 길이의 시폰 스커트는 릭 오웬스(Rick Owens), 스터드 장식의 스틸레토 힐은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그는 마리화나 같은 건 절대 시도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약을 한 적도 없을 거다. 머리 또한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게 시대의 규범에 맞춰 자르는 사내다. 학교는 한국예술 종합학교를 나왔는데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음에 틀림없다. 화를 내거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꼴(술을 거나하게 마신다 해도)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돼지 저금통에 저금을 하고 지금도 계속 개런티를 저축하면서 스포츠카나 섹시한 여자 따위엔 눈길도 주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미스 코리아 출신 아내와 가정을 이뤄 씩씩하고 귀여운 두 아들과 함께 산다. 일 년에 두 편 이상의 영화를 찍고 드라마 시청률도 높은 편이다. 이선균은 차로 말할 것 같으면 안전하고 신뢰감을 주는 볼보 같은 남자다.

천상의 눈보라가 지상의 대지 위에 내리치던 날,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이 눈부신 처녀가 태어났다. 엄마는 그녀를 ‘늘 바쁘게 옷을 갈아입던 아기’로 기억한다. 열여덟 살 때 그녀는 샤넬 패션쇼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스물두 살 때 그녀의 다이어리는 쇼핑 리스트와 스타일링 노트로 빼곡했다. 영화계 사람들은 영원히 제로가 되지 않는 마법의 신용카드를 쥔 것 같은 이 ‘패셔니스타’의 정체를 궁금해 했다. 어느 날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파티복을 벗은 그녀의 순결한 맨살을 보여줬다. 대중은 그녀에게 관능적인 ‘롤리타’를 원했지만, 그녀는 사랑스러운 ‘트위기’에 가까웠다. ‘아! 저 여자, 마인드 참 쿨하다.’ 사람들은 그 즉시 김민희에게 매료됐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 혼자 와인을 마시고 웃으며, 잠이 들었다.

위대한 영화감독 잉마르 베르히만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얼굴은 위대한 영화 소재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선균과 김민희의 얼굴을 보라. 어떤 인생이 떠오르는가. 우리는 최민식이나 고현정의 얼굴에 압도당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주눅들지 않는다. 그들의 얼굴에선 거대한 아우라를 찾을 수 없다. 물론 그와 그녀는 잘생겼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 선남선녀의 얼굴에선 거룩한 위인이 아닌 친밀하고 꾸밈없고, 평범하지만 자존감 있는 개인이 드러난다. 그들은 역사를 관통하는 대하드라마적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가는 선으로 그려진 김민희와 이선균의 얼굴은 현대적인 장르영화 속에서 일상적인 인물의 딜레마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웅변보다는 속삭임, 비명보다는 독백,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셰익스피어의 선언 보다는 ‘사는 데 필요한 건 인내심이죠’라는 안톤 체홉의 혼잣말이 어울린다. 물론 어떤 특정 감독의 페르소나로도 걸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스스로를 패러디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현대의 관객은 이런 투명하고 유연하며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배우들에게 끌린다는 거다. 선명한 안개 같다고나 할까. 유명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그들 존재 자체가 위협을 가하지 않는 순한 미스터리인 것이다(어쩌면 그게 21세기에 재정의된 영화 스타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얼굴은 작으며, 입술은 더욱 작다. 하지만 그들의 검은 눈동자는 엄청난 파워를 담고 있다. 배우가 갖는 존재감이 눈동자의 에너지가 갖는 자장에 달려 있다고 볼 때, 이선균과 김민희는 정말 평범해 보이는 비범한 배우들이다. 이선균은 언제나 스쳐 지나가는 남자였다.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건 순전히 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따뜻한 팥죽 같다고 생각했다. 잘 익은 팥 알갱이가 파삭하고 부서질 때의 기분 좋은 질감. 그의 목소리에는 마초적 뉘앙스가 없다. 전압을 조금 높이면 ‘버럭’ 신경질적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타인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성이 없는게 놀랍다. 그가 처음 내 눈 안으로 들어온 건 드라마 <하얀 거탑>이었고, 수상한 질감으로 다가온 건 영화 <파주>였다. 선이 굵고 감정의 진폭이 큰 메소드적인 연기를 하는 의료 기술자 김명민 옆에서 이선균은 평정심을 갖춘 따뜻한 의사였다. 그는 어린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댈 때는 손으로 살짝 청진기를 덥혔다 놓았다.

사실 이선균은 종종 인터뷰 자리에서 “저는 로맨틱한 남자 아닙니다”라고 공언해 왔다. 드라마 <파스타>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호통을 치면서도 애정을 표현하는 그의 로맨스 기질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이유정 감독의 드라마 <커피 프린스>에서나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에서나 그가 프레임 안에서 배우들과 맨들맨들하게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전형적인 TV 로맨스에서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나이스한 조연을 연기할 때도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작가주의 영화감독의 찌질한 남자 주인공 역할을 할 때도, 같은 감도를 유지한다는 게 놀라웠다. 그건 그가 ‘투 샷’ 커뮤니케이션에 능하기 때문이다. 이선균이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 독특한 음성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저는 상대와 대화와 호흡으로 사실적인 공기를 만들어 가는 걸 좋아해요.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주는 대로 잘 받는 편이죠. 저는 공격적인 연기를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여배우들과 많이 작업하는 편인지 모르죠. 공효진, 최강희, 윤은혜, 서우, 정유미, 김민희… 나와 일하면 여배우들이 돋보이나요? 하하.”

김민희는 <뜨거운 것이 좋아> 이후부터 섹슈얼하고 ‘똘끼’ 충만하고 자전적인 내용이 무성한 영화 정글 속을 거침없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영화 <여배우들>에서 김민희의 존재감이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등 더 위력적인 배우들에 의해 미미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너는 그래도 계속 영화 찍잖니?”라고 김옥빈에게 신경질을 내는 장면에선, 저 정도로 진심을 드러내도 되나 싶을 정도다. 김민희는 10대의 어느 날 “내가 니꺼야? 난 누구에게도 갈 수 있어!”라는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발성으로 TV CF에 등장했다. 김민희는 배우로 성공하기엔 목소리 톤이 너무 높고 말투가 유아스러웠다. 김민희는 감독보다는 포토그래퍼들이 더 좋아하는 여배우였다. 그녀는 <보그> 영화 화보의 단골 모델이었으며 <연인>의 제인 마치, <팩토리걸>의 에디 세즈윅, 심지어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 <유령 신부〉의 유령 역할까지 해냈다. 한마디로 목소리 없는 배우였다. 노희경 작가가 <굿바이 솔로>로 진실되고 개운한 그녀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주기 전까지.

“애기도 낳고 싶었고 결혼도 하고 싶었지. 근데 친구야, 언니야. 내가 원하는 걸 하는 게 사랑이 아니야. 그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사랑이지.” 경계심이 없는 막내 여동생 목소리를 가진 속 깊은 어른이 김민희였다. 그리고 스물 일곱에 <뜨거운 것이 좋아>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탔다. 그녀는 그 뒤로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처음 ‘화차’라는 제목을 받아 들었을 땐 시뻘건 석탄을 태우며 시베리아 유형지를 향해 달리는 겨울 눈밭의 기차를 떠올렸다. 눈과 냉기로 시각적 방점을 찍으면서 이선균과 김민희의 뜨거운 정념을 표현하는 로맨스 영화. 그런데 ‘화차’의 정체는 그게 아니었다. 화차란,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를 뜻한다. 영화 <화차>는 미야베 미유키 원작의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 책은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하고 ‘잃어버린 10년’이 본격화된 1992년에 출간됐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결혼 약속을 하고 준비를 하던 중 여자에게 신용카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카드를 발급 받으려다 여자가 과거에 신용불량자였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 후 갑자기 여자는 종적을 감춰버렸다. 비범할 것도 없어 보이는 서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점점 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결과를 향해 나아간다. 슬쩍 삐져나온 실밥 한 줄을 당기자 맥없이 무너져내려 버린 스웨터를 보는 기분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빚 때문에 도망자가 되어 다른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던 한 여자의 처지를 화차에 올라탄 것으로 비유했다. 살기 위해 신분을 훔친 자본주의 사회의 무력한 개인, 김민희의 연기는 거짓과 광기로 터져버릴 것만 같다. ‘사회적 욕망 속에 실패한 괴물’ 김민희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약혼자 이선균만이 그녀의 존재를 안타깝게 부각시키며, 무정한 채권자들과 비교된다.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의 맥시 드레스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가죽 라이닝이 들어간 블랙 수트와 베스트, 블랙 티셔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윙팁 슈즈는 크로켓앤존스(Crockett&Jones).

“전체 구조는 미스터리지만, 저의 행보는 멜로였습니다”라고 이선균은 설명했다. <화차>를 만든 변영주 감독은 맥스 무비와의 인터뷰에서 이선균과 김민희에 대해 언급했다. 이선균은 본인이 잘생긴지 너무 모르는 남자, 자기가 연기만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서 꼭 뭔가를 하려 드는데, 사실 가만 있어도 감정을 일으키는 매력이 있다. 김민희는 어떤가. “이 친구는 고맙게도 나를 믿어줬던 것 같은 게 현장에서 제 표정만 봐요. …영화에서 민희가 많은 부분 나오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영화의 정서를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김민희는 공부 안 하는 천재 같아요. …세 번째 테이크를 지날 때면 ‘그래 이거였구나’라는 느낌으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영화 끝나고 민희가 “전도연 언니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요?”라고 묻기에 운동하라고 했어요. 테이크를 여러 번 가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니까요.”

“오빠랑 저는 정말 낯을 가려요. 좋고 싫음이 금세 얼굴에 표가 나요.” “그러니까 저희는 토크쇼를 해도 MC가 아니라 패널 같은 사람들이에요.” 이선균과 김민희는 성향이 맞다. 남을 지배하려는 에너지가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들이며,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사람의 특징이 그렇듯, 어떤 상황에서도 천부적으로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낸다. “둘 다 말을 안 해도 강요하지 않고 이해해줘요.” “전 그냥 가만히 있는 건데 자꾸만 ‘민희야, 괜찮니?’하고 걱정하면 불편해요. 전 어디서든 편하게 잘 적응해요. 히히.” “누가 원맨쇼를 하기 시작하면 그거에 맞춰 리액션을 해주기도 좀 힘들거든요”

나는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에서 엄태웅의 ‘절친’으로 출연한 이선균을 보고 깜짝 놀랐다. 타인의 에너지에 영향 받지 않으면서 영리하게 흐름을 타고, 욕심내지 않으면서 제 몫을 하는 이선균은 ‘주인공’ 스타일의 왕자 캐릭터와 대조돼서 더욱 의젓해 보였다. 아마 김민희가 <1박 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빛을 발할 것이다.

“제가 먼저 캐스팅돼서 기다리는데, 김민희가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여배우 분량이 적은 편이라서.” “원래 분량은 신경 안 써요. 한국 영화에서 이런 여자 캐릭터는 드물어요. 임팩트가 강해요. 히히.” “지금 영화계에 소문이 자자하죠. 김민희 연기 끝내준다며? 제 얘기는 아무도 안해서 섭섭하다니까요.” “연기한 게 티가 확 나는 신들이에요. 다 감정 신이니까. 중간에 빈 여백을 선균 오빠랑 조성하 선배님이 다 채워주죠. 엄청 자기 중심적인 연기죠. 하하.” “민희랑 용산역에서 클라이맥스를 촬영할 때 정말 놀랬어요. 사람들은 통제되지 않고 해는 넘어가고, 최악의 상황이었죠. 그런데 전 첫 테이크에서 전율을 느꼈어요. 이제껏 연기하면서 최고의 쾌감이었어요.” “오빠와 하면 연기가 그냥 술술 나와요. 선균 오빠는 참 좋은 배우예요. 우린 베드신 리허설도 안 했어요. 오빠가 “민희야~ 나, 그런 거 잘해!” 그러고는 현장에서 정말 잘 만들어주는 거예요. 크크.” “여배우라면 보통 보이지 않는 날이 서 있는데, 민희는 그런 자기 보호막이 전혀 없어요. 따뜻한 기운이 졸졸 흘러요. 정말 최고였어요.” “선균 오빠는 젊고 풋풋하고 부드럽고 자유롭고… 절대 아저씨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예요.”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면 군대에서 이등병 때 제 좌우명이 ‘자유로운 인간이 되자’였어요. 하하.”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했다는 사실에 살짝 흥분하고 심지어 감동한 눈치였다. 김민희는 와인 한잔을 마신 것 같은 기분 상태가 됐다. “나 은근히 튈 것 같죠? 그런데 어떤 남자 옆에 붙여놔도 잘 어울려요. <굿바이 솔로>의 이재룡부터 <순수의 시대>의 고수까지 다 잘 어울렸어요. 그쵸? <모비딕> 같이 했던 황정민 오빠가 저랑 멜로 하고 싶대요. 와이프가 그러더래요. 어떤 여배우보다 저랑 어울린다고. 저랑 있으면 남자 배우들이 더 남자처럼 보인대요. 그런데 저 여자하고도 잘 어울려요.” 영화 <여배우들>을 할 때도 그녀는 선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스스럼이 없었고, 콤플렉스가 없었고, 애교가 많고 눈치가 빨랐다. “제가 성격이 좋아요. 킥킥. 남들 귀찮게 안 하고 분위기를 잘 맞춰요. 그래서 누구랑 커플 해도 잘 어울려요.”

이선균과 김민희를 보면서 어디서든 잘 섞이는 사람들이 ‘연기도 잘하는’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포인트>와 <체포왕> 같은 남자 영화에서도, <커피 프린스>나 <파스타> 같은 TV 드라마에서도, 스스로의 간을 알맞게 조절해서 맛을 내는 이선균. 그는 지금 굉장히 바쁘다. “저는 지금 방전 상태예요. 여유가 없죠. 〈화차>가 개봉되면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홍보해야 하고, 연이어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를 찍어야 하죠. 결혼 전엔 한 작품 끝나면 술을 마시거나 여행을 갔지만, 이젠 집에서 두 아들 목욕 시키고 밥도 먹여야 해요. 육아가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투덜대는 것 같지만, 아이를 낳은것도, 일이 끊이지 않는 것도 무척 행복해 하고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한번쯤은 선 굵은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 “로맨틱 가이로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액션 연기도 사극 연기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김민희는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채우고 있다. “저는요, 뭔가 할 때 재미있으면 겁이 없어요. 빠지면 뭐든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와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밀레니엄>의 루니 마라를 독하게 훈련시켰다면서요? 저는 감독님이 그렇게 안 시켜도 돼요. 재밌으면, 저 혼자 훅 거기까지 가거든요. 히히.” 하고 싶은 연기가 많았는데, 자꾸 작품이 엎어지는 바람에 집에서 놀면서 펑펑 울었다는 김민희. 이제는 가질 수 없는 것에 욕심내지 않지만, 그래도 몇 년째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는 변함없다.

사실 <보그> 인터뷰 화보를 진행하면서 오늘처럼 긴장해 본 적이 없다. 두 사람이 화보 속에서 전혀 섞이지 않을 거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한 사람은 너무 모범적이라 꾸밀 수가 없고, 한 사람은 해볼 건 다 해봐서 새로울 것이 없다. 아무리 균형을 잡아 연출해도, 본전도 못 건질 게임일 게 뻔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선균이 물고기를 잡으려 들면 김민희가 검은 그물 속에서 퍼덕였고, 이선균이 가시나무를 손으로 잡으면 김민희가 겁도 없이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선균은 이야기를 만들고 김민희는 판타지를 만드는 말없는 분업. 이선균이 손에 쥔 엉킨 실타래가 그녀의 검은 웨딩 드레스를 포박하고 있는 그림은 도식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선균이 베일에 휩싸인 김민희를 안고 있을 땐 절박한 사랑이 느껴진다. 틀림없이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빼어난 보통 사람들이다.

김민희가 입은 잔잔한 꽃이 수 놓인 레이스 드레스는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크리스털 꽃 귀고리는 프라다(Prada). 이선균의 화이트 셔츠와 네이비 수트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