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섹스의 맛

자고로 돈맛을 보면 인간은 정신을 못 차린다. 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섹스 하려는 꿍꿍이가 넘쳐난다. 색정광 부르주아들이 넘쳐나는 이 저택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화제작〈 돈의 맛〉에 출연한 김강우, 김효진과 그 은밀한 내부를 들여다봤다.

김강우가 입은 블랙 레더 베스트와 슬리브리스 페이턴트 슈즈는 모두 디올옴므(Dior Homme), 블랙 슬랙스는 프라다(Prada), 플라워가 프린트된 시스루 셔츠는 장광효 카루소(Caruso), 뱅글은 모두 HR. 김효진이 입은 레드 원피스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볼드한 네크리스 블랙 뱅글, 미니 백은 모두 디올(Dior), 링과 뱅글이 합쳐진 독특한 주얼리는 샤넬(Chanel), 보석이 장식된 뱅글은 판도라(Pandora).

부르주아들에 대한 야유가 넘치는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 <고스포드 파크>를 본 적이 있나?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은 어떤가? 교외의 화려한 대저택에 모인 귀족들은 ‘누가 누가 더 부도덕한가’를 겨루는 진지한 도박꾼들 같다. <고스포드 파크>의 저택에선 부르주아들이 응접실에서 파티를 즐기는 동안 하인들도 저희들끼리 아랫층 부엌에서 주인의 지위에 따라 서열을 정한다. 그들은 내키는 대로 사람을 맛보고, 사람을 먹어댄다. 서로의 불륜을 모른 척 하는 가식적인 귀족의 두 얼굴은, 그룹섹스를 하듯 굿나잇 인사를 하는 <게임의 규칙>의 명랑한 복도 신에서 절정을 이룬다. 돈과 권력은 그러니까, 참 맛있다. 하지만 은행 직원이 수표를 먹지 않듯이, 부르주아들도 돈을 먹지 않는다. 돈의 맛은 곧 섹스의 맛!돈과 섹스를 탐하는 부르주아들의 우화를 다루는 데 로버트 알트만이나 장 르누아르 부럽지 않은 감독이 임상수다. 대리석으로 호화롭기 그지없던 <하녀>의 저택을 떠올려보자. 이 상류사회 저택을 보고 있으면 이기주의라는 둔중한 건축물이 대지진으로 흔들리는 기분이다. 하녀 ‘은 이(전도연)’가 집안 사람들을 저주하며 2층 샹들리에에 매달려 죽을 때, 아래층에서 그걸 쳐다보던 그 집 딸 ‘나미’의 시선은 충격적이다. 자, 그 부르주아 저택에서 그 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대한민국 상위 1% 슈퍼리치 백 회장 가문. 2층에 있는 아버지(백윤식)를 올려다보며 나미가 묻는다. “왜 엄마랑 결혼하셨어요?” “돈에 중독돼서, 끊기가 무섭거든…. 돈 펑펑 썼지 원 없이. 근데 그게 그렇게 모욕적이더라고.” <돈의 맛>의 저택에선 돈의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부잣집 딸과 한 넥타이족 청년의 쿨하고 성숙한 러브 스토리가 펼쳐진다.

패턴 재킷과 행커치프로 연출한 스카프는 모두 구찌(Gucci), 프린트 티셔츠는 폴 스미스(Paul Smith), 팬츠는 엠비오(Mvio), 블랙 에나멜 슈즈는 디올 옴므(Dior Homme), 금속 뱅글은 크롬하츠(Chromehearts).


모욕! 모욕을 조심해!


효진 <하녀>에서 그 하녀가 불 타 죽을 때, 무표정하게 지켜보던 나미를기억해요? 나미는 하녀를 따랐고, 돈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 하녀의 몸부림을 목격했어요. 그래서 다시 태어났죠.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의 권력을 거부할 수 있는 인물로. 나미도 욕망이 있는 여자지만, 부모의 모습이 부끄럽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게 중요해요. 죄책감! 나미는 잘 자랐어요. 그래서 이 집안에 들어온 청년 비서 영작에게 말해요. “나, 엄마 아빠 부끄러워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난 일을 선택할 때도 돈과 권력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해요. 돈이 없으면 못살지만, 또 돈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유혹에 휘둘리게 되죠. 나미도 그걸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돈이 아니어도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영화에서 ‘모욕’이라는 말이 자주 나와요. 아빠가 신음처럼 내뱉는 말이에요. 아빠는 다 버리고 필리핀 하녀 에바를 선택해 떠나요. 전 아빠의 로맨스를 이해하죠. 아빠의 말도 이해가 가요. “너, 모욕! 모욕을 조심해라” 그건 곧 돈 맛을 조심하라는 경고예요.

강우 전 야구를 좋아해요. 변화구 없는 직구가 좋죠. 임상수 감독의 영화가 그래요. 가식과 위선이 없거든요. 냉정하죠.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해요. 이 영화는 <하녀>와 비슷할 순 있지만, <하녀>보다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섹스, 더 많은 현금이 나오죠. 전 모녀지간과 연애합니다. 감춰진 욕망을 직구로 던지는 거죠.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현실에선 더하겠죠.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마구 쏟아지는 가족을 보고, 저도 처음엔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누군들 돈과 섹스를 마다하겠어요. 전 비자금을 관리하는 비서지만, 대단한 스펙을 가졌어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마치고 회장의 신임을 받아 이 집안에 들어왔죠. 기업에서 가장 신임 받는 CEO가 되는 게 영작의 꿈이었어요. 그런데 그 이상의 욕망을 보고 당황하죠. “감독님, 이거 이렇게 까발려도 되나요?” “뭐가 문제야. 이건 블랙코미디야!” 제가 처음 도착해서 하는 말이 “무시무시한 집안이구만!” 이 저택의 문은 닫혀 있지만 살짝 볼 수 있고, 비밀이지만 ‘너만 알고 있으라’는 식입니다. 저는 점점 더 안으로 빨려 들어가요. 백금옥 회장(윤여정)이 던지는 말! “얘! 키워보자. 어디까지 올라오나.” 돈맛을보고, 점점 빠져 들어가다 고민하는 시점이 와요. 대체 이게 내가 원했던 맛인가?


리본이 장식된 화이트 블라우스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퍼플 팬츠와 플라워 프린트 벨트는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슈즈는 프라다(Prada), 골드 체인 뱅글은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동물모양의 뱅글과 링은 구찌(Gucci), 골드 링은 제이미앤벨(Jamie&Bell), 클러치백은 펜디(Fendi).


먹어도 먹어도 더 먹겠대!


효진 오해하시는 것처럼 난 팜므파탈이 아니에요. 오히려 감독님은 제 낮은 목소리톤을 좋아하셨죠. 가끔 나오는 소년 같은 분위기도. 영화 내내 난 화장기 없는 ‘맨눈’이에요. 나야말로 고정관념을 버렸어요. 재벌집 딸이라고 대놓고 화려하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거죠. <하녀>에서 윤여정 선생님이 ‘하녀’ 역할을 하다가 이번엔 재벌집 마나님이 되셨는데, 연기가 달라질 필요가 없었어요. 그 모습 그대로, 화통하게. 여러분도 ‘은이’에서 나를 볼 거예요. 당당하고 쿨하고. 내가 좋아하게 된 남자와 엄마의 관계를 알게 됐을 때도 반응이 그래요. “그건 엄마가 잘못한 거지. 엄마가 강간한 거잖아!” 영작에게도 마찬가지죠. “이런 엄마를 둬서 미안해요.” 어쩌면 나미는 어린 시절 ‘하녀의 죽음’ 이후로 독해졌어요. 욕망의 요새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할 줄 아는 인간이 된 거죠. 엄마 아빠가 “먹어도 먹어도 더 먹겠대”라고 할 때의 위험신호를 감지한다고 할까요. 현실에서도 그걸 조절하려고 노력해요.

강우 이 영화에서 난 일종의 ‘하남’이에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그 호칭에서 자유롭지 않죠. 다들 조직사회에서 윗사람에게 수없이 모욕을 당하고 살잖아요. 인격 있는 성인들이라면 서로 모욕을 주지 않아도 될 텐데, 오랫동안 쌓여온 ‘굴종’의 관습이죠. 그걸 비틀고 싶어요. 그게 돈맛에 길들여지지 않는 젊은 육체로 표현되지만, 실은 젊은 정신인 거죠. 이 영화는 나의 행동보다 반응을 보여주고 있어요.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지금까지 없던 클래식하고 섹시한 모습이 드러나는 거죠. <태풍태양>에선 이유없이 반항하는 야심 없는 청춘이었고, <식객>에서는 부드럽고 건강한 직업인이었어요. <마린 보이>도 업그레이드된 아웃사이더였는데, 이젠 <돈의 맛>으로 어른이 된 거죠. 영화 연기 10년째, 내 나이도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슬슬 재미가 붙었어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기고 연기의 맛도 알게 되고. 난 아직도 대중들의 시선에선 남성적이진 않아요. 마초보다는 야생마에 가깝죠.

김효진이 입은 골드 재킷은 구찌(Gucci), 화이트 원피스와 골드 스트랩 슈즈는 디올(Dior), 네크리스는 엠주(Muzz), 뱅글은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손목에 찬 수갑은 제이미앤벨(Jamie&Bell). 김강우가 입은 화이트 차이나 셔츠와 브라운 레더 뱅글은 디올 옴므(Dior Homme), 광택이 독특한 블랙 팬츠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klein Collection), 레오퍼드 로퍼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그린컬러의 뱅글은 프라다(Prada), 스터드가 장식된 뱅글은 제이미앤벨(Jamie&Bell).


알고 보면 탐욕은 맛이 없어!


효진 알면 알수록 탐욕은 끝이 없어요. ‘왜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까?’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브레이크가 없죠. 나미는 돈을 숭배하는 집안에서 자라 돈 없인 못살죠. 주어진 환경에 따르는 ‘재벌집 이혼녀’이기도 해요. 얼마전엔 루이스 브뉘엘의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를 봤어요. 그 감독이 부르주아를 많이 비꼬거든요. 아래층 위층의 경계가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연상시키죠. 감독님은 로버트 알트만의 <고스포드 파크>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영화 연기를 빼놓곤 점점 더 불필요한 생각을 접고 남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요즘엔 동물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다 보니, 탐욕은 맛이 없어요. 반대로 뉴스를 보면 악에 받치죠. 동물과 아이들을 괴롭히는 사람을 보면, 인간이라는 종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어릴 때와는 다르게 점점 원하는 삶으로 가고 있어요. 난 돈 때문에 고통을 받은 적은 없어요. 보통으로 자랐거든요. 난 내가 좋은 게 남과 비교하지 않고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알아요. 나만 위해 기도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강우 난 아직 돈과 모욕의 덫에 걸리진 않았어요. 그게 나의 힘이에요. 내가 당당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말콤 글레드 웰의 <아웃라이어> 아시죠? 1만 시간을 투자해야 자기 일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 예술도 그래요. 카메라 앞에 선 시간이 길수록 그게 내 힘인 거죠. 난, 말론 브란도 정말 좋아해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지옥의 묵시록>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그를 보면 열등감이 들어요. 요즘엔 서른 다섯이 되고 보니, 진짜 청년으로 느껴져요. 매번 내가 이만큼 돈을 받아도 되나,하고 되묻게 되고. 재산을 모으는 재주는 없지만, 돈도 부족하진 않아요. 더 젊었을 땐, 이 일이 귀한지 몰랐어요. 쪽팔리고 싶지 않은 승부욕에 연기를 했죠. 지금은 배우 일이 참 좋고 기분이 점점 더 좋아져요. 연기 한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워지는 백윤식, 윤여정 선생님이 존경스럽고, 감독님이 ‘지금까지 만난 여배우 중 최고’라고 치켜세운 김효진도 근사했어요.


김효진이 입은 블랙 롱 드레스와 스트랩 슈즈는 구찌(Gucci), 이어링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뱅글은 모두 샤넬(Chanel), 보석이 장식된 링은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실버 링은 모두 스톤 헨지(Stone Henge). 김강우가 입은 네이비 턱시도 재킷과 블랙 벨트는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페이즐리 패턴의 셔츠는 에트로(Etro), 와인 컬러 팬츠는 구찌, 골드 네크리스는 제이미앤벨(Jamie&Bell), 블랙 체인 링은 HR, 스틸 워치는 태그호이어(Tag Heuer).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마


효진 푸아그라, 캐비어, 트리플? 세계 3대 진미요? 난 푸아그라 혐오해요. 억지로 거위를 살찌게 학대해서 지방간을 만들잖아요. 내 미각이 다른 생명체에 고통을 주는 건 싫어요.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굳이 3대 진미를 원할까요? 난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걸 좋아해요. 두부, 낫또, 김치, 현미밥… 지태 오빠(유지태)랑 취향이 잘 맞죠. 요즘엔 집에서 화초를 가꿔요. 아파트라 공기 순환이 잘 안 되면 깎지벌레가 끼거든요. 가지도 치고 잎도 열심히 닦아줬는데 벌레 때문에 민둥나무가 됐어요. 그런데 봄이 되어 날씨가 포근해지니까 거기서 새순이 올라오는 거예요. 하하하. 그런 거 보면 정말 행복해요. 오빠랑 일 끝나고 저녁에 커피 한잔 하는 것도 행복해요. 내가 오랫동안 갈망했던 작품에, 오빠가 더 신이 나서 응원해줄 때 너무너무 행복해요. 오빠는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고 나는 칸 영화제에 갈 생각을 하니 또 행복하고…. 그런데 촬영이 끝나고 나니 약간 공허한 기분이 들긴 해요. 아무래도 이 영화의 기가 너무 강해서겠죠?

강우 사랑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백금옥과는 목적 있는 섹스를 하고, 딸 나미와는 마음의 관계를 맺고… 나미와 영작의 사랑은 돈이 길들일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희망인 거죠. 아내에게 “내가 상속남이고 네가 며느리면 행복할까?” 하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아내는 “돈 있으면 좋지 않아?” 그러더라구요. 하하. 난 돈 있다고 해도 그런 삶은 사절이에요. 내가 받은 가장 큰 유산은 부모님의 사랑이었어요. 아들을 낳고 두려웠던 것도 내가 받은 사랑만큼 아이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였죠. 내 부모가 했던 것처럼 아이에게 어둠과 좌절을 안 겪게 해줄 수 있을까. 난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인데…, 그게 겁이 났어요. 임상수 감독과 촬영 후엔 여유가 생겼어요. 그 양반의 쿨한 기를 받았죠.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맞나 틀리나 주눅들지 않아도 되는구나. 요즘엔 아내에게도 나를 좀 풀어놔달라고 해요. 난 배우인데, 연애도 결혼도 너무 안정적으로 한 것 같아서. 사실 맘껏 풀어놔도 겁이 많아 저지르지도 못하는 남자거든요. 하하.

여러 형태의 섹스, 여러 형태의 벗은 몸이 보여지는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을 지면에 구현하기 위해 <보그>는 엄청난 식재료를 준비했다. 초대형 크기의 바닷 가재 세 마리와 두 궤짝의 암꽃게와 붉은 멍게와 피 흘리는 립아이 스테이크, 가지가 휘어지도록 탐스럽게 매달린 열매 과일과 충분한 포도주, 은쟁반과 모조 다이아몬드 해골, 그리고 맹수처럼 사나운 검정 도베르만 세 마리… 노골적이고 잔인하고 음란한 영화 속에서도 결코 오염되지 않고 살아남은 두 남녀를 위해! 돈과 권력을 쥐고 높은 전망대에서 우릴 내려다보는 바람난 부르주아들에게 ‘욕망의 조절’을 가르쳐줄 두 사람을 위해! 이 건전한 유부남, 유부녀의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돈걱정병에 걸린 평범한 우리 소시민의 카타르시스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