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꼴 사나운 패피들의 식습관 열전

안 먹고, 덜 먹고, 골라 먹고, 하나만 먹고…마른 몸 신드롬 광풍에 휩싸인 패피들. 먹는 걸로 장난치니 인생이 박복할 수밖에. 고백하기 낯 뜨겁고 밝히기도 부끄러운 가지각색 눈꼴 사나운 패피들의 식습관 열전.



패션 피플들은 어린아이 같은 존재다. 마음에 드는 건 꼭 사고야 말고, 촬영할 제품 예약과 촬영 스태프 경쟁에서 쓸데없는 경쟁심을 발휘하며, 마음이 동하거나 컨디션이 난조일 땐 뒷일이야 어찌되든 잠수 타기 일쑤니까(물론 근면성실한 다수도 존재한지만).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음식을 대하는 자세 역시 철부지 어린애 못지않다는 것. “내가 이걸 먹을 것 같아? 나 이거 먹으면 일 못한다구. 땅 속에 묻히는 날이 오면 그때나 먹겠어!” 밥 먹기 싫다고 투정하는 일곱 살처럼 밉살맞기 그지없는 대화는 <뉴욕 매거진> 패션 저널리스트와 오뜨 꾸뛰르 수집가 인터뷰 중에 들려온 외마디다. 식사 시간이 되어 개인 비서가 파스타를 권하자 신경이 날카로워진 누군가가 (평소 습관대로)소리를 질렀다. 21세기 앤드로지너스 모델의 아이콘 안드레 페이직과 오뜨꾸뛰르 컬렉터 다프네 기네스는 디자이너 의상을 입기 위해 늘 허기진 상태를 유지한다고 고백했다. 케이트 모스는 지난 2009년 “아무것도 안 먹는 건 마른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다”란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음식 귀한 줄 모르고 가정 교육 잘못 받았다”고 지적 받기 십상인 한국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밥상머리에서 밥맛 떨어지게’ 만드는 까탈스런 식습관은 국내 패피들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

스타일별로 나누자면 첫 번째는 “난 안 먹을래요”족이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집단 내에서 밉상으로 찍히기 딱 좋은, 혼자 굶는 스타일. 패션지 편집부마다 한두 명씩 존재하며,여배우나 여자 아이돌 그룹 촬영장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안 먹는다는 잔소리 듣기 싫어서 샐러드를 주문해 놓고 안 먹거나 ‘방금 먹었다’고 둘러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부정적인 효과는 정상적인 식습관을 가진 이들(특히 여성)에게 죄책감을 유발하며 그걸 전염시킨다는 점(예를 들면 ‘쳇! 나도 내일부터 밥 안 먹을래!’). 이들을 향한 주위의 불만과 비난의 눈초리가 극에 달할 때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다. 새침하게 눈을 내리깐 채 메뉴판을 손가락 끝으로 밀어내며 “안 먹을래요”라고 얄밉게 입을 달싹거리는 걸 보는 순간,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동시에 가슴 속 밑바닥에서 뭔가 솟구쳐오름을 느낀다. 두 번째는 맞춤 주문족이다.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유난스럽게 본인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설파하는 스타일. “까페라떼, 저지방 두유로!” “생과일 주스, 시럽 없이 100% 원액으로만!” “김치볶음밥, 고기랑 햄 빼고!”가 주로 하는 말로, 주문을 담당하는 이(보통 막내 기자 혹은 어시스턴트)가 가장 꺼려하는 대상이다. 365일 다이어트 중이라는 어느 패션 기자는 마감 때 야식 사러 가는 어시스턴트에게 ‘생식용 두부와 마를 갈아 넣은 우유’를 구해오라고 주문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해외로 브랜드 출장을 간 모 뷰티 기자는 모두가 스테이크와 생선을 시킬 때 혼자 채식을 주장해서 출장 기간 내내 호텔 셰프가 그녀만을위해 구운 채소 요리를 따로 준비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늘씬한 몸매로 소문난 모 패션지 편집장은 일명 황제 다이어트 마니아. 탄수 화물이 들어간 음식은 일절 사절이다.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빵엔 손도 대지 않을 뿐더러 초밥집에서도 밥은 떼어낸 채 생선만 간장에 찍어 먹는다나? 세 번째는 디저트 다이어트족.이들은 디저트를 ‘안’ 먹는 부류와 디저트 ‘만’ 먹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얼마 전 사과파이가 맛있기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기자 행사가 열렸다. <보그>팀과 반갑게 인사하며 합석한 스타일리스트는 사과파이를 권하자 “디저트는 절대 안 먹어요”라며 눈을 질끈 감고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디저트만 먹는 부류는 단것은 좋아하지만 포만감을 극도로 싫어하는 고열량 다이어트족. 전형적인 예로 <보그> 뷰티 에디터의 친구는 점심식사 대신 초콜릿을 섭취한 다음 그 열량을 소비하기 위해 2시간씩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쏟는다.네 번째는 디톡스족이다. 몸에 좋은 음식만 섭취해 건강에 도움이 되는 듯싶지만 사실상 하루에 섭취하는 총 칼로리가 기초대사량을 밑돈다. 아침식사로 도라지와 더덕, 요구르트, 꿀, 우유를 믹스한 셰이크를 마시고 점심과 저녁은 한 줌의 견과류로 끝내는 어느 모델 에이전트의 지인이 이에 해당한다. 부득이 식사를 해야 할 경우 염분 섭취를 최대한 줄이고 밀가루 음식은 아예 안 먹는 게 철칙. 어느 잡지의 뷰티 에디터는 ‘내부 장기를 쉬게 해서 신체 기능을 활성화하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효소 다이어트에 푹 빠져 있다. 식용 야생 풀의 진액을 10배로 희석해서 열흘 동안 그것만 마시는 것. 디톡스라기 보단 일주일이 넘도록 한 끼에 500ml씩 하루에 총 1.5L의 희석액 외에 먹을 수 있는 건 토마토가 전부인 극한의 다이어트다.

패션 관련 케이블 TV의 마케팅 팀원 중엔 이런 사람도 있다. “그녀는 늘 음식의 반을 남겨. 분식집에서도, 비싼 음식점에서도, 심지어 먹고 싶은 양만 덜어 먹을 수 있는 뷔페에 가서도 반을 남기는 거야! 일종의 강박관념 같아. 몸무게가 늘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적게 먹었다는 걸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거지.” 패션계는 맹목적인 마른 몸 신드롬에 빠져 있고, 패션업계 종사자 대부분이 다이어트 식단의 경험을 공유한다. 원인과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의학적으로 자신의 평균 무게보다 살이 더 찌게 되는 주요 원인은 불규칙한 생활과 비정상적인 식습관. 실제로 패피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 몸무게가 늘었다’는 것. 야근이 잦고 출퇴근 시간은 뒤죽박죽인데다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과 거식을 오가는 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이제부터 자신 있게 바른 생활을 시작하겠노라 선언할 수 있을까!

신체 리듬을 망치는 데 일조하는 식습관에 목숨 걸기보다 마음부터 편하게 먹자고 설득하고 싶다. 먹는다고 구박하는 커피 소년의 ‘칼로리송’ 보다 소란의 ‘살 빼지 마요’ 속 연인처럼 통통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누군가가 있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