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만불의 사나이> 박진영과 일당들

박진영과 일당들이 모였다. 박진영 주연의 영화〈오백만불의 사나이〉로 만난 인연들. 자연인이자 직업인으로서 오늘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은 박진영, 조성하, 조희봉, 오정세, 네 남자들이다. 영화가 어떻게 막을 내리든, 영화 밖의 이 사나이들은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조성하가 입은 셔츠는 반하트(Vanhart), 베스트는 제이미앤벨(Jamie&Bell), 팬츠는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레더 부츠는 프라다(Prada), 뱅글은 HR, 스카프는 구찌(Gucci), 조희봉이 입은 셔츠는 재희 신(Jehee Sheen), 팬츠와 슈즈는 디올 옴므(Dior Homme), 서스펜더는 제이미앤벨, 스카프는 장광효 카루소(Caruso), 박진영이 입은 셔츠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팬츠는 프라다, 슈즈는 체사레 파초티(Cesare Paciotti), 오정세가 입은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슬립톱과 팬츠는 재희 신, 슈즈는 디올 옴므, 선글라스는 듀퐁(St. Dupont).

박진영이 영화에 출연한다. 그냥 출연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인공이다. 이쯤 되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거침없음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궁금하다. 박진영이 빌보드 차트를 노리며 외국 가수들에게 줄 곡을 만들 때, 원더걸스를 데리고 미 대륙을 돌 때, 그 여정은 ‘사서 고생하는 꼴’이었다. 남들이 머리로 고민하고 망설일 동안 그는 늘 돌진했다. 그래서 허를 찔렀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허무맹랑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일들이었으니까.

영화 <오백만불의 사나이> 프로젝트 역시 박진영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했다(이젠 JYP라는 이름에 내성이 생겼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드라마 <추노>를 썼던 천성일 작가로부터 출발한 일이다. 언젠가 박진영의 콘서트를 본 천성일 작가는 박진영이 무대 위에서 탁월한 연기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박진영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 제작에도 참여했다. 누군가를 발굴하던 기획자가 뮤즈로 거듭난 사건. 신인 감독과 민효린을 비롯해 조성하, 조희봉, 오정세 등 현재 충무로에서 스케줄 잡기 힘든 배우들이 가세했다. 영화는 3월 중 크랭크 업 했다. 몇 개월을 함께했던 박진영과 세 배우들이 <보그> 촬영을 위해 다시 모였다. 스튜디오는 영화 보충촬영 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과 소음으로 가득 찼다. 조성하는 멀끔한 얼굴과 단정한 머리를 하고서 예정된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열일곱 살, 열 살인 두 딸과 부인도 함께 왔다. 일하는 현장에 온 가족을 대동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의 부인은 오래전, 무명배우 조성하의 팬이었다. “제가 잘생겨서 좋아했다고는 합니다.” 조성하를 이렇게 코 앞에서 대하면, 바로 최근에 개봉한 <화차>의 꼬질꼬질한 백수, <황해>에서 젊은 여배우와 베드 신을 소화해내던 무시무시한 사장의 모습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인자하게 잘 웃는 얼굴과 온화한말투는 그대로 <성균관 스캔들>의 임금 같다.

“제가 머리를 넘기면 좀 식자층처럼 보이나 봅니다.” 그는 <오백만불의 사나이>에서 박진영의 뒤통수를 치는 상사다. 일개 샐러리맨인 박진영은 상사가 시키는 대로 로비 자금 5백만불을 전달하러 길을 나서고, 조성하는 박진영을 죽이고 그 돈을 가로채려 깡패를 동원한다. 그러나 이 비열한 상사는 영화 촬영 중 틈틈이 박진영에게 춤을 배웠다. 한 라디오 프로에서 <화차>의 관객수가 300만을 넘을 경우 ‘셔플 댄스’를 추겠다고 공약을 걸었기 때문이다(<화차>가 250만 정도로 막을 내리면서, 댄스 수강도 멈췄다). 박진영은 조성하의 존재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아마추어가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둘러싼 상황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저 앞에 조성하 선배님이 서 있다고 쳐요. 그럼, 연기가 됩니다. 그의 눈을 보기만 하면 그냥 죽이고 싶더라니까요.”

박진영이 입은 루즈한 슬립톱은 재희 신(Jehee Sheen), 스트라이프 팬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조성하가 입은 페이즐리 패턴 셔츠와 타이는 에트로(Etro), 베스트는 반하트(Vanhart), 팬츠는 인터메조(Intermezzo), 스트랩 워치는 벨앤로스(Bell&Ross), 슈즈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미소 짓는 조성하를 보면서 박진영이 말한 그 눈빛을 짐작하긴 어렵다. 그가 어떤 남자로 보이는가? “저는 어느 정도 갖춰진 집안에서 꿈을 가지면서 정상적으로 자라질 못했어요. 너무나 없는 가정에서 늘 혼자 도전하고해결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화차>가 개봉한 이후에야, 조성하가 나이 들어서도 택시 기사나 배추장수 등 온갖 장사를 하며 밥벌이를 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배우 외에 다른 직업을 생각했다면 그 길에 집중했겠죠. 하지만 연기를 놓지 못하니까, 이 길을 유지하기 위해 직업을 자주 바꿔야 했어요. 도망자였죠. 도망자들은 계속 하는 일을 바꾸면서 위장하고 살잖아요.” 조성하에겐 밥벌이의 두려움이 없다. 송강호나 설경구 같은 또래 배우들과는 또 다르게 어떤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 느긋하고 예민하지 않은 이 중년. “엎어져도 일어났고, 없어도 살아냈어요. 이제는 꽤 풍족해졌지만, 여전히 DDM을 사랑합니다. 동대문이요. 저한텐 그저 막걸리 한 병만 주어지면 됩니다.” 어쩌면 배우 조성하의 삶은 지금이 화양연화다.

조희봉이 입은 셔츠는 에트로(Etro), 팬츠와 뱅글은 라 피규라(La Figura), 짧게 연출한 타이는 던힐(Dunhill), 서스펜더는 제이미앤벨(Jamie&bell), 오정세가 입은 수트는 솔리드 옴므(Solid Homme), 셔츠는 포체(Foce), 타이는 제이미앤벨.

조성하가 그의 여자들을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며 여기저기 움직이는 동안, 주로 한 구석에 가만히 있던 조희봉은 먼저 말을 걸 때 외에는 달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첫 영화 <싱글즈>를 기억한다. 조희봉의 광대뼈는 그때보다 지금 더 두드러진다. 그 광대뼈와 묵직한 턱 선이 조희봉의 얼굴을 정의한다. 그는 정두홍 감독과 정말 닮았다. 아직도 그와 정두홍 감독의 얼굴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반응, 나쁘지 않습니다. 그분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잖아요. 아, 성공하는 사람의 골상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뿌듯함이….” 그의 얼굴로 거친 역할을 했어도 꽤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 <블라인드>에서 경찰로 등장했을 때도 동네 아저씨 같은 경찰이었다. 물론 무섭게 보였을 때도 있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마지막 회까지 이름 없이 ‘한가놈’으로 등장하다가 ‘한명회’라는 본명을 밝힐 때는 오싹했다.

“하드보일드나 스릴러 같은 장르엔 어느 정도의 정형성이 있죠. 그래서 배우가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줄어들어요. 저는 휴먼 드라마처럼편안한 장르가 좋습니다. 웃겨도 되고, 울려도 되고.” <오백만불의 사나이>에서 조희봉은 조성하가 기용하는 조직 폭력배 두목이다. 이 ‘조폭’도 마냥 거칠지 않다. 무식한 깡패처럼 보이는 걸 싫어하는 조폭. 조직의 기업화를 꿈꾸는 수장.

조희봉은 살사 동호회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했다. “남자 친구와 같이 살사를 배워보면 좋을 거예요. 살사를 하면 긴장을 놓을 수 있어요. 온전한 즐거움에 취해요. 원래 커플끼리 추는 춤이에요. 콜럼비아에서는 남자가 춤추다가 함부로 모르는 여자에게 손을 내밀면 총 맞는대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살사를 얘기하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캄캄한 연극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며 까만 우주 안에 떠 있는 지구를 상상했던 남자다. 비행기 위에서 육지를 내려다볼 때마다 끊길 듯 기지 않고 살아남는 도로의 유한함을 경이롭게 생각하는 남자다.

“그런 것 하나하나가 인간의 창의적인 노력이 포함된 불가항력이라고 봐요. 살고 있고, 느끼고 있고, 그걸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 그런 일들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영원히 남을 것 같아요. 연기하는 것도 그런 일이죠.” 그는 ‘여자를 봐도 별로 후끈해지지 않는 40대’를 잘 보내기 위해 연기 외의 ‘무언가 하나 더’를 찾고 있다. 그건 목공일 수도 있고, 봉사활동이나 악기 연주일 수도, 혹은 자식일 수도 있다. 악기 하나를 배워도 그걸로 뭘 연주 해볼까 설렐 수 있는 인생. 아버지에게 눈물 자국으로 연출한 장문의 편지를 써가며 이 직업을 택한 그가 오래, 잘 살아가기 위해 꿈꾸는 인생이다.

조희봉과 오정세는 서로 위치와 동작을 바꿔가며 꽤 오랫동안 싸움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스튜디오에는 박진영이 틀어놓은(배우나 가수를 맞을 때면 그들과 관련된 음악을 틀어놓는데, 자신의 음악 컬렉션을 직접 트는 인물은 처음 봤다) 80년대 음악이 쩌렁쩌렁한 볼륨으로 울리고 있다. 마돈나, 웸, 듀란듀란, 컬처클럽의 리듬과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리듬으로 잽을 날리는 둘. 배우는 코믹한 상황을 꾀할 때도 그 태도가 진지하다. 남자 둘이 눈을 맞추며 주먹을 뻗으면 한번쯤 웃음이 터질 법하건만, 웃는 건 그저 스태프들과 관중이었다.

오늘, 오정세도 그의 다섯 살 딸과 함께왔다. 이 귀여운 아이는 워낙 조그마해서 인파를 뚫고 그 사이로 활발하게 잘도 움직였다. 잇따라 “아빠!”를 외치면서. “오늘 저 ‘친구’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데리고 왔어요.” 5년 전이었다면, 밖에서 그를 지나쳐도 내가 영화 속에서 본 배우인지 못 알아봤을 것이다. 깡패를 뽑는 오디션에 가면 얼굴만 봐도 깡패 같은 인물들이 수두룩하고, 잘생긴 남자 역할을 뽑는 오디션에 가면 각자의 스타일대로 잘생긴 인물들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오정세는 처음에 배우 하기 힘들단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저런 역할에 도전해도 어색하지 않은 자기 얼굴이 언젠가 장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사진가 강혜원은 그가 스튜디오에 들어섰을 때, 너무 미남이어서 놀랐다고 귀띔했다).

유남규를 모델로 한 <코리아>의 탁구 선수, <커플즈>의 흥신소 직원, <방자전>의 비굴한 호방, <부당거래>에서 류승범을 상스럽게 만들 뻔한 상스러운 기자. <오백만불의 사나이>에서 오정세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민효린과 하룻밤 사랑을 꿈꾸다 민효린이 그의 다이아몬드를 들고 튀어버리는 바람에 추격전에 합류하는 깡패다. “저는 15년 전부터 쭉 바쁘게 살았어요. 쉴 때 훨씬 지쳐요. 배우들은 1년을 빠듯하게 일할 때 보다 1년 동안 작품이 없을 때 더 지치고 힘들 거예요.” 조성하와 조희봉과 오정세의 출연작들을 사람 수로 치면, 연병장 4열종대 앉아 번호로 몇 바퀴나 나올지 궁금하다. 이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도 늘 어떤 자리에 있었다

그레이와 와인 컬러가 믹스된 수트, 화이트 셔츠, 타이, 슈즈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오정세는 <커플즈>가 개봉할 무렵, 예능 프로 <놀러와>에 나와 그의 얼굴만 알던 사람에게 이름까지 각인시켰다. <놀러와>는 오정세의 입담이 마음에 들었는지 몇 개월 후 그를 다시 불렀다. 초등학교 첫사랑인 짝꿍과 결혼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사실이긴 하다.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철들까 봐 걱정하기도 했어요. 그러긴 싫었거든요. 하지만 문득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낄 때면, 다 나의 건강한 가족들이 자리하고 있는 그림 속이에요. 그 감정을 첫 연극할 때 처음으로 느껴봤거든요. 커튼이 올라가고 불이 꺼지는 순간, 수도꼭지 튼 것처럼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라고요. 행복하다라는 흔한 말의 뜻이 이런 거구나 싶어서.” 단역을 하든 비중 있는 역할을 하든, 15년을 바쁘게 살았다는 그에게서 생활형 배우가 기계적으로 전진하는 느낌을 찾을 수 없었다. 철 드는 걸 두려워하는 남자 배우가 살아서 파닥거릴 수 있는 환경이 바로 촬영 현장일 테니까.

박진영의 몸엔 밧줄을 감았다. <오백만불의 사나이> 속 주인공은 상사의 음모로 도망자 신세가 되는 샐러리맨이다. 영화 속에서도 수난을 겪는 그를 곱게 놔두고 싶지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린 천하의 JYP라니, 얼마나 통쾌한가? 그가 드라마 <드림하이>의 양진만 선생으로 ‘신들린 허당 연기’를 선보였을 때도 쾌감이 있었다. “양진만의 모습은 연기라고 할 수 없어요. 그건 그냥 저였어요. 이번에는 완전한 정극, 블랙 코미디예요. 저는 영화 속에서 전혀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 보시는 분들은 웃길 거예요.”

박진영은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연기 수업을 따로 받지 않았다. 워낙 몰입을 잘하는 성격이라(오디션 프로에서 무대를 보던 그의 표정을 떠올려보라. 그는 표정으로 먼저 심사한다), 연기하면서도 정말 무아지경에 빠지곤 했다. 그가 가수를 안 했다면 그렇게 살았을 수도 있을 법한 샐러리맨, 평생을 대기업 샐러리맨으로 산 아버지와 양복 입고 출근하는 친한 친구들을 떠올리면 그렇게 낯선 역할은 아니다. “노래와 연기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필요한 기술이 달라요. 제가 해석한 것과 감독님이 생각한 게 맞으면, 대개 진심으로 몰입해서 연기해낼 수 있었어요. 문제는 우리의 해석이 다를 때 생기더라고요. 전문 배우들은 감독님이 주문하는 게 있으면 아, 그거? 하면서 척척 해내는데 저는 몰입하는 방식 외에 쓸 수 있는 기술 밑천이 없으니까. 그럴 때면 아주 미쳐버리는 거죠.” 박진영은 그 자체로 거대한 텍스트다. 20년 가까이 살아 남은 엔터테이너이고, 명확히 진보하고 있다. 이러다 언젠가는 우주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선언할지 모른다.

“자신감 하곤 달라요. 자신감은 될 거라는 생각에서 나와요. 저는 뭐든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어요. 다리 한 쪽을 잃고 멕시코 깡촌에 던져진다 해도 재밌게 잘 살 걸요? 지금 엔터테인먼트 회사들 중에 우리 회사 재정이 가장 안 좋아요. JYP는 무조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에요. 하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노하우와 지혜가 있으니, 설사 망한다 해도 살아남을 수 있죠.” 에서 양현석이 자신이 제 작한 가수들에 대한 뿌듯함을 말할 때, 박진영은 ‘나는 내가 잘할 때 제일 좋다’고 말했다. 약이 없어도 음악 할 때의 쾌락만으로 쾌락지수가 극한에 도달한다는 남자. 그건 끼와 재능과 두뇌만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그는 매일 아침 7~8시쯤 일어나(건강한 신체와 뇌에 산소 공급이 활발해야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는 지극히 생물학적이고 상식적인 사실에 기반한) 첫 번째 서랍에 있는 영양제와 두 번째 서랍에 있는 견과류를 먹고, 15분 만에 아침식사를 해결한 뒤, 58가지 동작으로 구성된 체조를 한다. 드레스룸엔 ‘라운드 반팔’ ‘검정 바지’ ‘중요한 옷’ 등의 라벨이 눈에 잘 보이게 붙어 있다. 이 무시무시한 규칙성과 효율성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것이다. 사실 박진영처럼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말수도 많은 유명인은 결과적으로 손해를 볼 때가 많다. 그는 천진하게 직구만 던질 줄 알지, 정제되고 은근한 방식으로 자기를 포장하는 여우가 아니다. ‘한마디로 나는 잘났으니까 잘난 놈’. 잘난 사람이 거침없이 내뱉을 때 결론은 그런 것이 되기 쉬웠다. 2년 전까지는 그랬다. “제가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어땠을까요?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정말. 그 교만함과 무식함… 맞아요, 저는 제 잘난 맛에 살았어요. 예전 인터뷰들을 보면 다 내가 현명한 결정을 해서 일이 잘됐다는 말이나 하고 있죠.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결정한 건 하나도 없는데.”

(왼쪽부터)조희봉이 입은 더블 브레스트 재킷은 라 피규라(La Figura), 셔츠는 프라다(Prada), 쇼츠는 빈폴(Bean Pole), 슈즈는 크로켓앤존스(Croket&Jones), 보타이는 제이미앤벨(Jamie&Bell), 뱅글은 HR, 안경은 알로(Alo), 조성하가 입은 수트는 장광효 카루소(Caruso), 셔츠는 CK 캘빈 클라인(CK Calvin Klein),슈즈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타이는 타임 옴므(Time Homme), 안경은 알로, 오정세가 입은 수트는 캘빈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셔츠는 니나 리치(Ninna Ricci), 슈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타이는 던힐(Dunhill), 페도라는 제이미앤벨.

그는 얼마 전 SBS <힐링캠프>에 나와 좀 황당한 소리를 좀 했다. 아니, MC들과 시청자의 귀에 황당하게 들렸을 것이다. ‘이 세상은 누가, 왜 만들었는가.’ 요즘 그가 매달리고 있는 화두다. 돈, 명예, 자선이라는 대명제를 향해 차례대로 에너지를 쏟았으나, 그것도 인생의 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후 만난 화두. 그는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주인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 물음을 풀기 위해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성경, 불경, 코란, 빅뱅이론, 상대성이론, 양자 물리학을 붙든다. “내가 뭔가를 해서 결과가 나는 게 아니라, 내가 뭔가를 한 것에 대해 하늘이 결과를 내려줍니다. 어떤 때는 성공의 형태로 주는데 그게 독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실패의 형태로 주지만 그게 득일 수도있죠” “저는 신앙을 찾는 게 아니고 정확한 사실을 찾고 있는 거예요” “이런 걸 깨달은 것 자체가 운이에요.엄청난 축복이죠.” 그럼 하늘이 내리는 운이란 건, 복불복인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공부를 하는 거죠. 누구한테 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지만 인간의 위치에서 감히 그 해답을 찾긴 힘들 거예요.”

‘도를 아십니까’와 같은 대화의 연속. 늘 뭔가를 말하고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말을 늘어놓으면, 듣는 사람은 황당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는 지금 자신의 깨달음과 달라진 내면 때문에 가슴이 벅찰 정도라는 거다. 만약 언젠가 그가 ‘답’을 찾아낸다면, 그가 만드는 모든 노래에 ‘JYP’라는 목소리 대신 그 ‘답’을 응용한 인장을 새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여전히 여자, 강아지,어린이, 노약자 등 ‘약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그는 아직도 한눈에 서로 ‘퍽’하고 스파크가 튀는 사랑을 기다린다. 한쪽이 구걸해야 한쪽이 마음을 여는 사랑, 그는 키우지 않는다. “비욘세와 제이 지를 파티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 둘은 절대로 이혼 안 합니다. 서로의 눈에 서로밖에 안 보이는 눈빛을 봤어요. 서로가 서로를 최고로 쳐야 해요. 여자가 자기 옆의 남자를 두고 원빈이나 장동건이 잘생겼다고 하면… 그 남자가 너무 초라해 보여요. 저는 제가 최고인 줄 알았던 여자를 만나봤어요. 그런 여자를 알기에 아직도 포기할 수가 없어요.”

박진영은 어떤 주제로 말하든, 자기만의 이유와 논리가 탄탄해 막힘이 없다. 그래도 그에게 충고해줄 것은 있었다. ‘확신은 일개 인간의 마음일 뿐, 하늘의 뜻은 다를 수도 있으니 적어도 세 번은 대시하라’. 마지막으로 네 남자가 모였다. 수난의 중심에 있는 박진영과 그에 얽힌 추격자들. 듀란듀란이 부른 <007>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진영아, 이 노래 지금 촬영과 딱인데?” 조성하는 즐거워서 연신 웃었다. <오백만불의사나이>는 7월 중순,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같은 날에 개봉한다. 이런 잔인한 운명이라니! 하지만 자연인이자 직업인으로서 네 남자는 오늘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영화가 흥하든 망하든, 영화 밖의 이 사나이들은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스튜디오를 떠나며 박진영은 할리우드 대작과 맞붙는 소감을 말했다. “아, 전 이런 거 너무 좋아요. 안 되도 평생 변명하기 좋잖아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매진돼서 <오백만불의 사나이> 보는 사람도 있을 거고… 딱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