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람> 김윤진, 김새론

평화롭던 일상이 공포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김윤진과 김새론이 주연을 맡은 영화<이웃사람>이 말하는 진짜 공포는 귀신이나 살인마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무관심과 소통의 부재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여인과 비밀을 간직한 듯한 소녀가 마주 앉았다.

김윤진의 화이트 롱스커트와 홀터넥 슬리브리스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 (Calvin Klein Collection), 크리스털 장식의 골드 뱅글은 모두 에어리스(The Heiress), 크리스털 반지는 HR. 김새론의 화이트 레이스 블라우스는 질 스튜어트(Jill Stuart), 서스펜더가 달린 네이비 플리츠 스커트는 토가 풀라(Toga Pulla at Published).

‘죽은 딸이 일주일째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겁에 질린 경희(김윤진)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영화 <이웃사람>은 연쇄 살인범과 그에게 살해 당한 소녀, 그리고 이를 눈치 챈 이웃 사람들 간의 사건을 담은 스릴러다.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영화의 원작이 된 동명의 웹툰 작가 강풀은 2008년 연재 당시 다음과 같은 작품 후기를 남겼다. “연쇄 살인, 납치 사건들이 유난히 많이 뉴스에 보도되던 해였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들었던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저렇게 되기까지 분명히 주변에서 누군가는 그놈의 정체를 일순간이나마 의심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그것이 <이웃사람>을 그리게 된 동기였습니다.”

진짜 공포는 귀신이나 살인마가 아니라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대사회의 무관심과 소통의 부재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작가의 문제제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오랜만에 짜임새 있는 앙상블 영화를 만났다”는 김윤진은 이번 영화에서 양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여자 경희를 연기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늘 그녀와 테이블 앞에 마주 앉은 열두 살 소녀는 생명력이 넘친다.

김윤진의 오프숄더 드레스와 벨트는 모두 라 쁘띠 S(La Petite S at Cesoir), 시계는 까르띠에(Cartier), 스터드와 크리스털 장식 팔찌는 주미 림(Joomi Lim at Published), 골드 스터드 레더 뱅글은 데레쿠니(Derercuny), 체인 팔찌와 체인 반지는 HR. 김새론의 플라워 프린트 케이프와 톱, 스커트는 모두 미우미우(Miu Miu), 실버 플랫은 레페토(Repetto).

옥인동의 좁은 골목길을 힘차게 달려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온 김새론은 반짝이는 빛의 결정체 같다. 무릎까지 올려 신은 긴 양말에 운동화, 활동성 좋은 반바지와 재킷을 입은 여자아이는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는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머리를 만지는 동안 바나나 주스를 마셨다. 배우 김지미가 마지막으로 살았다는 집을 박물관 겸 카페로 개조한 건물 내벽에서는 오래된 이끼 냄새가 났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곳곳을 돌아다니는 새론이는 긴장감마저 감도는 이 낯선 공간 안에서 가장 활기차게 움직이는 존재다.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뛰놀 때 행복해하는 모습은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지만, 이 깡마른 말괄량이 소녀는 카메라 앞에만 서면 신비로운 배우의 아우라를 발산한다. 칸 영화제에 초대 받은 최연소 한국 배우, 영화 <아저씨>의 헤로인. 원빈에게 키티 담요를 선물 받고, 설경구를 아빠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아이. <이웃사람>에서 새론이는 매일 저녁 새엄마 경희를 찾아가는 죽은 여선과 밝고 명랑한 수연, 1인 2역을 맡았다.

고등학생이었던 원작의 설정은 새론이가 캐스팅되면서 중학생으로 변경되었다. “감독님이 처음에 들어갈 때, 두 사람의 얼굴이 닮았으니 그만큼 연기로서 차이를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어렵진 않겠냐고 물었는데, 저에겐 새로운 도전이라 꼭 해보고 싶었어요.” 누구도 이렇게 말하는 초등학생을 만나본 적은 없을 것이다.

김윤진이라면? 타이트한 블랙 드레스를 입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현장 분위기를 휘어잡는 그녀는 16년 전, 달랑 트렁크 하나만 들고 태평양을 건너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그때나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지금이나, 그 열정과 탄탄한 몸매만큼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새론이 나이 때 전 꿈이란 게 없었어요. 이민 가서 한창 영어를 배울 때였고, 꿈에 대해 생각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거든요. 조용한 아이였어요.”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 오르고 연기를 시작한 건 조금 더 나이를 먹은 후였다. 그리고 많은 게 달라졌다. 할리우드 영화나 방송에 출연하는 자신의 모습을 막연히 상상만 했던 소녀는 정말 자신이 원했던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김윤진은 <로스트>에 이어 또 한 편의 ABC 드라마를 촬영 중이다. <미스트리스>의 캐스팅 소식을 들은 건 <이웃사람> 촬영 준비를 위해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을 때였다. “공항에 도착해 휴대폰 전원을 켜자 수십 통의 메일이 도착해있더군요. 그래서 알았죠.” 30대에 접어든 대학 동창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섹스 앤 더 시티> 이후, 여자들의 우정을 다룬 모든 미국 드라마가 그러한 것처럼 네 명의 여자가 주인공이다. 김윤진은 그 중 정신과 의사 카렌 로드 역을 맡았다. 사랑에 빠진 환자가 죽자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의 아들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대단한 여자다.

지난 칸 영화제에서 이 소식을 들은 국내 언론들은 잔뜩 흥분했다. 동양계 여배우가 미국 드라마에서 동양계에 한정되지 않은 여주인공 역을 따낸 건 루시 리우 이후 처음이라고도 했다. 담담한 건 오히려 김윤진이었다. “그게 축하하고 환호할 일인가요? 솔직히 저에겐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에요. 그건 제가 잘나서도 아니고, 그냥 배우가 드라마에 캐스팅되어 새로운 드라마에 들어가는 것뿐이니까. 간단해요.”

김새론의 니트는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Marc by MarcJacobs), 어깨에 두른 칼라 장식은 마르니(Marni), 스커트 형태의 레드 쇼츠는 발렌티노(Valentino), 레드 스트랩 플랫슈즈는 레페토(Repetto).

<미스트리스>의 파일럿 촬영을 마친 후, 김윤진은 곧장 LA에서 부산으로 건너왔다. <세븐 데이즈> <하모니> <심장이 뛴다>에서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액션과 스릴러, 휴먼 드라마 모두를 보여준 그녀는<이웃사람>에서 또 한번 아이와 헤어질 운명에 처한다.
“경희는 굉장히 불쌍하고 소극적인 여자예요. 만약 적극적인 사람이었다면 죽은 여선이와도 사건이 있기 전에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겠죠.” 지금까지 김윤진이 맡았던 용감하고 적극적인 캐릭터들과 달리 경희는 직접 살인 사건을 파헤치거나 제 손으로 범인을 잡는 인물이 아니다. 다만 용기를 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껏 꿈틀거릴 뿐이다.

<쉬리>의 강인한 여전사를 본 적 없는 새론이에게 그런 김윤진은 연약하고 따뜻한 엄마다. 보름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새론이는 김윤진을 ‘윤진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다. “촬영 현장에서 항상 힘들진 않냐, 춥진 않냐, 핫팩까지 챙겨주며 걱정을 많이 해 주셨어요. 엄마처럼 정말 좋았어요.” 물론 두 살 때부터 베이비 잡지 표지를 장식했던 새론이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아기 땐 아무것도 몰랐지만, 연기는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놀이처럼 재미있고 힘들어도 찍고 나면 뿌듯한 게 있으니까. 그래서 엄마랑 자기 소개를 연습하고 함께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1000 : 1의 경쟁률을 뚫고 우니 르콩트 감독의 영화 <여행자>의 주연으로 발탁된건 우연이 아니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송강호와 양익준, 그리고 자신의 영화 <공기인형>에 출연했던 배두나와 더불어 김새론을 꼭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만남 이후, 감독은 “기적이 이뤄진 것 같다. 아이의 느낌보다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고, 살짝 웃을 때의 매력이 대단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새론이의 마지막 어린이날을 기념해 김윤진은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했다. 물에 젖은 무거운 가발을 쓰고 고생하는 어린 배우가 안쓰럽고 대견했을 것이다. “사실, 이번 작품에서 제 분량은 굉장히 적어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김윤진은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끔찍하고 잔혹한 사건 사고들에 대해 말했다. 오늘의 뉴스만 봐도 그랬다. 왕따 문제와 학교 폭력, 밤길을 위협하는 각종 범죄들, 가정 불화와 아동 학대… 어쩌면 영화보다 현실에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불행의 단면들이다. “문제의 해답은 아니지만, <이웃사람>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결국은 유일한 희망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할 수는 없어요.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도 없죠. 하지만 작은 관심과 용기가 한 아이를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윤진의 블랙 레이스 카디건은 NO.21(at Supernormal), 퍼플 컬러 뷔스티에와 실크 스커트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뱅글은 오헬리 비더만(Aurelie Bidermann at Celebration), 골드 샌들은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평화롭던 일상이 공포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선량한 웃음을 짓던 어제의 이웃이 굳이 살인마로 변신해 눈 앞에 흉기를 들이 밀지 않아도, 거짓된 자기 위로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급조된 평화란 너무도 연약해서 언제든 깨지기 쉽다. 촬영이 끝난 후, 다시 운동화로 갈아 신은 새론이는 골목길을 내달렸다. 이번엔 진짜 엄마를 만나러 갈 차례다. 새론이의 엄마는 13년차 베테랑 주부다. 결국 모두가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며 이웃이다. 문득 궁금하다. 당신의 이웃은 누구인가?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네는 일은 어쩌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