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겟츠비

40대가 된 정우성은 피츠제랄드의〈위대한 갯츠비〉에 어울리는 환상적인 삶을 산다. 친구와 여행과 파티와 비즈니스가 그를 기다리며, 다시 사랑할 만반의 준비도 되어 있다. 여전히 대한민국 여성 관객을 설레게 하는 성실하고 낭만적인 배우, 정우성을 만나보자.

화이트 셔츠와 다크 그레이 베스트, 모직 소재의 싱글 재킷, 체크 패턴 팬츠, 블랙 보 타이는 모두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갯츠비〉 보셨어요?
스튜디오에 와서 봤습니다.

우성 씨가 미세하게 움직일 때 톰 크루즈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겹쳐 보였어요.
하하. 제가 그들의 우성인자만을 닮았길 바라요.

오늘 촬영한 HD 동영상 프레임을 보니 <갯츠비〉 무성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더군요.
전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카메라가 멀리서 피사체의 움직임을 가만히 따라와줘서 좋았어요. 조용하게, 때로는 살짝 앞서서 제 리듬을 맞아주기도 하면서.

거울 앞에 선 것 같더군요. 인간이 저렇게 뻔뻔하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경이로웠어요.
하하. 고맙습니다.

40대에 들어서서일까요? 더 멋있어진 이유가?
글쎄요. 전 아직도 철이 없어서….

제가 보기엔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섹슈얼해지더라구요. 결혼한 남자 배우들도 그렇고.
전 그들을 다르게 느끼는데요. 킥킥.

결혼한 남자들이요? 혹시 그들이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보이나요?
아니요. 우리에 갇힌 소나 양처럼 보이죠. 하하.

저런… 그래서 결혼을 안 하시나요?
아니요. 아니에요. 주변의 수많은 노처녀와 게이 친구들이 아직은 제가 싱글이길 바라서죠.

서둘러 그들과 헤어지시길! 예전에 사막을 어슬렁거리며 바텐더나 하며 살고 싶다고 했었어요. 아직도 당신 인생은 여행 중인가요?
드라마 끝나고 역마살이 끼었는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중입니다. 뉴욕, LA, 상하이, 이태리, 아일랜드….

‘In The Air’의 삶이군요.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영화 <인디에어〉 아시죠?
그럼요. 제 마일리지도 그 정도 될 거예요.

정착하지 못하고 공중에 붕 뜬 느낌인가요?
아니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쓰고 있어요.

어디쯤 가고 계신가요?
철이 안 들어서 늘 시작인 느낌이에요. 매일이 새로워요.

2010년에 오우삼 감독의 <검우강호〉에 출연하셨죠? 거장에게 많은 걸 배웠나요?
길 가는 모든 사람이 제 스승이죠. 분은 끝없이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은 분이셨어요. 어찌 보면 빅 카메라 뒤에 엄청난 대군을 거느린 마초이기도 했고요.

감독들은 모두 내면적으로 마초 기질이 있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만든 김지운 감독도 그렇지 않던가요?
그분은 좀 고독한 소년 스타일이죠. 거친 현장에서 난이도 높은 촬영을 하면서 안전사고의 위험은 닥치는데 덩치 큰 배우들을 데리고 오버되는 예산 속에서 고독을 감내하는 소년. 영화라는 것 자체가 사실 고독하잖아요. 음반은 소규모의 몇 명이 움직이지만, 영화는 엄청나게 많은 인력과 돈이 들어가고 각자 표현의 손발이 맞아떨어져야 하고, 그걸 조율하는 건 감독의 몫이고.

그래서 감독 데뷔가 늦어지는 건가요?
본업이 배우이다 보니까 좋은 프로젝트를 만나면 배우 욕심이 앞서게 되죠. 요즘엔 자책하고 있어요. 그동안 왜 이렇게 게을렀나? 감독과 출연을 동시에 하면 8억 예산으로 멜로를 찍을 수도 있을 텐데… 오래전부터 준비해왔으니 빨리 하지 않으면 ‘양치기 소년’이 될 판입니다.

시간이 쏜살같죠?
철없이 까불까불 살다 보니 아직 그런것도 없어요. 작품으로 살고 감정 여행을 하다 보니 나이먹은 것도 모르겠어요. 영화 현장에만 가면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가 돼요.

일흔이 넘은 로버트 드니로가 자기를 찍은 사진가에게 그랬대요. “내 주름 하나라도 지우면 고소할 거야. 그게 다 굉장한 이야기라고.” 공감하세요?
자연스러운 걸 해치는 건 오염이에요. 여배우들이 주름을 보톡스로 조정하는 건 이해하는데 너무 팽팽하게 당겨버리면 자기 자신을 외면하는 결과죠. 그건 얼굴에 포장지를 씌우는 것과 같아요.

화이트 컬러 턱시도 셔츠는 발렌티노(Valentino at Je ne Sais Quoi), 네이비 컬러 턱시도재킷은 마이클 바스티앙(Michael Bastian at Je ne Sais Quoi).

신은 왜 배우를 창조했을까요?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없죠. 매일 거울을 보며 희로애락을 느낄 수도 없구요. 그래서 배우가 필요한 거죠. 남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느끼고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당신을 무에서 유로 이끈 작가는 누구죠?
<데미안〉을 늦게 읽은 편이에요. 이걸 내가 10대 후반에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작년 겨울에 헤르만 헤세를 통해
10대 시절의 저를 만날 수 있었어요.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한다’는 구절에 오래 머무르셨겠어요.
아프락사스는 이중적 자아를 겪는 청소년기에 돌출되잖아요. 헤르만 헤세는 어떻게 10대의 감수성으로 그 놀라운 이야기를 썼을까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대단한 작품이에요.

정우성 씨는 아직도 청소년기에 대한 연민이 강하게 남아 있네요. 당신 필모그래피도 성장영화의 느낌이 있어요. 〈아스팔트 사나이〉 <비트〉 <태양은 없다〉만 봐도….
하루하루의 꿈이 그렇게 달콤하고 간절했던 때가 없었어요. 쓴물에서 단물이 살짝 배어 있던 그 시절을 잊기 힘들어요. 한동안 잊었고, 잊으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청소년기에 집착할까? 그럴 필요없는데. 기억도 성장하는 거 아세요? 그러면서 내 마음을 다시 해석할 수 있다면, 청소년기를 내동댕이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더군요.

최근작인 노희경 드라마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소리〉의 강칠이는 청소년기의 감정으로 연기했죠?
그렇습니다. 엄마(나문희)와 티격태격하며 추억을 만드는 신이랄지, 정지나 씨(한지민)와의 멜로도 그렇고. 돌이켜보면 저는 미성숙한 남자 역할을 많이 했어요. <내 머릿속의 지우개〉정도가 성숙한 남자였고, <비트〉도 <똥개〉도 다 사랑에 대해서 어쩔 줄 모르는 녀석들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진짜 나예요.

그레이 컬러 베스트, 바이올렛 컬러 더블버튼 재킷, 머스터드 컬러 팬츠, 행커치프와 만년필은 모두 프라다(Prada), 페이즐리 문양의 스카프는 구찌(Gucci).

사랑에 대해서 어쩔 줄 모른다?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에선 좀 나아 보이던데요?
그건 첫사랑을 나이 먹어 만나서 좀 ‘까진’ 마음을 표현했던 거죠.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갯츠비〉 스타일의 플레이보이를 해야 할 때예요. 맞습니다. 패륜아만 아니면 악역도 좀 도전해 보구요.

드디어 악역을 시도할 결심이 섰나요?
청소년기에 대한 애정이 크다 보니 악역을 자제해왔어요. 전 그들에게 좋은 형이 되고 싶었죠.

<비트〉의 민이는 반어적인 공감을 주긴 했지만 바람직한 청춘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팬들이 “형! 저 형 오토바이 타는거 흉내 내다 다리 여러 번 부러졌어요.” “담배 형한테 배웠잖아요.” 이러면 어깨가 무거워져요. 어릴 때 TV에서 본 서부극의 총잡이가 제 우상이었어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지만 정의의 수호자인 그들을 보면서 꿈을 키웠죠. 그렇게 영웅에 대한, 바른 마음에 대한 애착이 있었어요. 제 마음의 중심에는.

그래서 일탈을 안 하고 사는 건가요?
전 인간에게 애정이 많아요. 나를 가두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도 늘 사람이 궁금하고 신기해서예요. 공항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하나하나가 다 역사가 있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특별한 사랑을 한다는 게 되게 신기해요. 왜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살고, 어떤 사람은 천국에서 사는지도 궁금하죠.

결론은요?
다 자기 생각대로 살고 있던데요.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연기 톤이 좋아져요.
이를 테면 몸이 통나무에서 버들가지가 되는 거죠. 살랑살랑 힘도 풀리고.

<구미호〉의 ‘통나무 연기’로 시작해서 18년 동안 주인공으로 지내는 기분이 어떤가요?
어릴 때부터 멋진 남자가 되어야지, 라고 결심했고 그건 변함이 없어요. 그런데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늘 주인공으로 추대되는 건 재미가 없어요.

에너지 소모가 많아 피로하시겠죠.
아뇨. 그것보다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남자 배우가 정우성이 조연인 영화에 함께 출연하고 싶을까요? 어떤 감독이 정우성을 조연으로 쓸 용기를 낼까요? 영화계 입장에서는 그것도 참 난감하네요.
그래서 요즘 주변에 제가 얘기를 좀 하고 다녀요. 제가 잠깐 출연해도 그게 스크린에 활력소가 되면 좋겠다는 거죠.

오랜 친구인 이정재 씨의 경우가 모델이 될 수 있겠네요. 처음 <하녀〉에 출연할 때만 해도 분량도 적은 조연이라고 말들이 많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그 이후 <도둑들〉 <신세계〉 등 남자들의 앙상블 영화로 캐스팅 순항 중이니까요. 우성 씨라면 어떤 남자 배우와 어울릴까요?
전 다 잘 어울려요.

다른 남자 배우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손해 본다고 생각 할 수도 있죠.
하하. 그런 분들과만 안 어울려요.

정재 씨와 다시 찍어보는 건 어때요? <태양은 없다 2〉를 기획해보는 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블랙 턱시도 셔츠는 구찌, 베스트와 금사로 프린팅된 벨벳 재킷과 모직 팬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페이턴트 슈즈는 체사레 파치오티(Cesare Paciotti), 골드 네크리스는 크롬 하츠(Chrome Hearts).

당신의 화려한 시절은 언제였나요?
지금이요. 지금이 가장 화려하고 제일 중요해요.

한국 사회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의 소회를 얘기해주세요.
지금 시절이야말로 꽃피는 봄이죠.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개나리처럼 화사한 느낌이에요. 배우에 대한 사회적 통념도 바뀌었고, 엔터테인먼트와 비즈니스 환경도 점점 더 확장되고 있죠. 다만 화려한 명성에 비해 저작권이나 작품에 대한 존중은 더 깊어져야 합니다.

과거에 출연한 작품 중 세 편만 골라서 후대에 남긴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어요?
<놈놈놈〉 <무사〉 <태양은 없다〉.

<비트〉를 빼셨네요?
<비트〉는 영원한 청춘이 초상이지만, <태양은 없다〉로 인생의 친구를 만났으니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무사〉는 뜻밖이군요.
<무사〉는 당시에 대단한 시도였어요. 중국 오지를 떠돌며 그 시대 고려 무사들의 행로를 그대로 밟아갔지요. 정말 멋진 영화였어요. 개봉 일주일 만에 9.11이 터지지만 않았더라도.

미국의 정치 문제가 한국 영화 스코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군요.
극장에서 스펙터클을 보지 않고 안방에서 실사로 보시더라구요. 다들 <무사〉가 웬말이냐 내가 무사해야지, 이런 심정이었겠죠.

우성 씨는 9.11 때문이라지만, 당시 여성 관객들은 입장이 다를 수도 있어요. 봉두난발한 노예 무사를 연기하는 정우성을 보는 게 성에 차지 않았을 수도 있죠. 반짝이는 외모를 가진 배우들은 자신을 거칠게 다루면서 역설적 성취를 이루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장동건 씨도 시행착오를 겪었고. 비주얼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남사스러운가요?
딱히 의도한 건 아닌데 전 제 외모를 그렇게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겁없이 그런 시도들을 하는 거겠죠. 엇박자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똥개〉도 신나게 소통한다고 했는데, 관객들은 “전 그 이야기 듣고 싶지 않거든요”라고 하셨죠.

예측불허의 사나이예요.
만년 철부지죠.

정해진 건 있나요?
가을에 영화 한 편 들어가요. 범죄자 역인데 공식적인 발표는 제작사에서 해야 맞겠죠.

여자와 사랑에 대해선 정리가 좀 되셨나요?
사랑, 해야죠. 전 늘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사랑에 언제나 목마르죠. 목이 많이 말라요.

다시 시작하셔야죠?
어릴 적엔 사랑을 지고지순하고 정의로운 감정으로 생각했어요. 한 여자로 결정하고 나면 속이 문드러질 때까지 지켜보고, 섭섭해도 참고, 어설프게 착한 척을 했죠. 지금은 감정에 솔직하고 할 말을 다 하는게 맞다고 봐요. 그게 사랑을 더 깨끗하게 하죠.

노희경 드라마 <빠담빠담〉 이후에 달라졌나요?
네. 강칠을 연기하면서 달라졌어요. 나는 생각만 했지, 내뱉지는 못했구나… 상처를 안 주려면 할 말 다하면서 사랑해야겠구나….

강칠에게 위로를 받았군요. 사랑은 정직해야죠.
그렇습니다. 그에게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랑에 대해 마지막 조언을 해주세요.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세요. 최선을 다하기 쉽지 않지만, 최선을 다한다면 관계는 더 돈독해져요. 만약 익숙해졌다고 생각되면 더욱 최선을 다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