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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뜰 때

2016.03.17

by VOGUE

    아담이 눈뜰 때

    신이 에덴동산에서 첫 인간을 만들어‘생육하고 번성하라’하였으니, 그가 인류의 조상 아담이다. 주진모의 설화적인 외모에는 신이 배우를 창조했을 당시의 아우라가 있다. 너무도 진솔한 이‘순정 마초’의 만담에 귀를 기울여보자.

    블랙 시스루 셔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독특한 그레이 팬츠와 블랙 서스팬더는 장광효카루소(Caruso), 반지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왼쪽)투명한 PVC 재킷은 질 샌더(Jil Sander).(오른쪽)

    당신을 보면서 신이 창조한 첫 인간, 아담을 생각했어요. 일명 ‘아담이 눈뜰 때’가 컨셉이죠.
    <보그> 촬영할 생각을 하니 어젯밤 긴장돼서 잠이 안 오더군요. 하하.

    첫 컷을 찍을 땐 마치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데블스 애드버킷>에 나오는 타락한 천사 알 파치노를 연상시키더군요. 당신 얼굴은 어딘가 신화적인 데가 있어요.
    그 점이 지금 가장 딜레마예요. 제 외모는 현실적인 느낌이 떨어져요. 이 사회에 함께 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달까요. 그래서 남들보다 기회의 폭이 더 좁은 편이죠.

    애가 타시겠어요.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일상적인 남자가 되고 싶은 거죠. 하하. 어릴 때 동경하던 무게감 있고 심도 깊은 작품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마음 한 편엔 생활적인 배역을 해야 할 때란 생각이 들어요. 사람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참 간사해요.

    실례지만 몇 살이시죠?
    낼 모레면 마흔입니다.

    포지셔닝에 대해서 생각하시는군요.
    그렇죠. 이런 포지션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이 있죠. 하지만 저는 현재 이런 색깔을 가진 배우다,라는 답이 안 나오죠. 지금부터라도 저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요.

    의도하는 방향이 있나요?
    할리우드의 브래드 피트를 보면 초반엔 상업적인 대중배우였다가 어느 순간부터 대중들을 리드한다는 느낌을 받잖아요. 장르 영화와 예술영화를 오가면서… 정말 경이로운 배우죠.

    전 <쌍화점>에서의 주진모도 좋았어요. 당신이 영화의 중심을 잡았다고 생각해요. 육체적으로도 훌륭했고, 육중한 보이스톤도 좋았죠.
    그 영화를 기점으로 저는 생각의 틀이 바뀌었어요. 자신감이 생겼달까요. <쌍화점>은 다시 봐도 좋은 영화예요. 인간 심리의 다층적인 면을 보여줬죠. 그런 장르의 영화가 현대판으로 나오면 재밌겠어요.

    <해피엔드>와 <쌍화점>이야말로 주진모다운 색깔이 반영된 영화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 배역도 현실에서 다가가기 힘든 남자잖아요. 어릴 땐 영웅적인 면모가 있는 드라마틱한 역을 꿈꿨지만, 지금은 영화제작사 사람들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어디 나사 풀린 캐릭터 없어요?

    나사 풀린 캐릭터라면 초기에 <라이어>가 있었잖아요? 끝없이 거짓말을 해서 자가당착에 빠지는 택시 운전사 역할. 그런데 노란 택시 기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주진모는 정말 우스꽝스러웠어요.
    하하. 그건 코믹한 연극이 원작이었어요. 연극을 보고 나서 출연했는데, 정신이 오락가락했죠.

    영화배우 후배들이 무척 따르는 편이죠? 배우들에게 ‘진모 형님’으로 인정받고 계시더군요.
    선배도 후배도 저를 형으로 봐요. 목소리 때문인가? 사실 전 많이 풀어져 있는 사람이에요.

    꼰대 기질이 있으신가요?
    마초 기질이 좀 있는 편이죠. 항상 중심을 잡고 분위기를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거든요. 가령 누군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 대신 악역을 해서 상황을 해결하는 편이죠. 전 사실 여성적인 환경에서 자랐어요. 위로 누나가 셋인데, 군대 가기 전까지 그녀들을 ‘언니’라고 불렀죠. 제대 후에 ‘누나’라는 표현을 처음 썼어요. 그 이후로 남자들의 세계로 영입되면서 정의로운 골목대장 기질이 발동한 거죠.

    언제 스스로가 남자답게 느껴지나요?
    아무도 안 나서고 쭈뼛거릴 때, 내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면 기분이 우쭐해져요.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존경의 빛이 어른거리는 걸 볼 때죠.

    어떤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나요?
    남자들은 보편적으로 예쁜 여자를 좋아합니다. 저는 그녀들이 자기 몸에 밴 전문성을 싹싹하게 보여줄 때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비서든 가구 디자이너든 자기 직업을 사랑스럽게 프레젠테이션하면 근사해 보여요.

    철이 들어보니 사랑이란 무엇이던가요?
    예전엔 예쁜 여자가 나한테 반하는 모습에 우쭐했죠. 여자는 내가 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사랑은 운명이라고 밖에 못하겠어요. 어느 순간 뒤통수를 맞고 그냥 아기가 되는거죠.

    결혼은요?
    다들 사랑은 판타지지만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더군요. 전 아기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현실을 이겨내고 싶어요.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죠?
    지극히 평범하고 말이 없으셨죠. 대화를 거의 안 해봐서 어떤 분인지 잘 모르겠어요.

    부모 중 누구의 영향을 받았나요?
    두 분 다 천사였어요. 수줍고 쑥스러움이 많으시고, 연세가 드신 지금도 순한 분들이세요. 저도 그런 면이 있어요. 겉으론 과해 보여도 마음은 여립니다. 전 약하기 때문에 강하게 대응해요. 마초 기질이 있는 남자들은 사실 속이 여려요. 물불 안 가리는 사람들은 오히려 돋보기 안경을 쓴 모범생과죠.

    주진모를 재발견한 감독은 누구죠?
    재발견은 없었어요. 이제까지 저라는 기본 재료를 잘 사용했다고 할 수 있죠. 어쨌든 저와 작업했던 감독들이 다시 하자고 할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당신을 사용한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곽경택, 유하, 김용화, 장윤현 감독에 대해서.
    곽경택 감독은 저와 마초적인 기질을 공유하신 분이죠. 남성성의 코드가 맞다 보니, 열 마디 말도 한 마디로 가는 거죠. 디렉션이 안 맞을 때도 서로 눈빛을 보고 “그자? 알제? 다시 함 해보까?” 그러고 가는 거예요. 곽경택 감독의 <사랑>을 끝내고 <쌍화점을>을 하고 보니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확실히 다르더라구요. 유하 감독은 겉은 마초인데, 속은 세심한 소녀였어요. 유하 감독은 저녁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말 한마디의 뉘앙스를 설명하는 분이세요. 시인이신 거죠. 나중엔 저한테 섭섭하다는 건지, 실망했다는 건지, 겁을 주는 건 지조차도 모호해질 때,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잘해라!” 유하가 액션부터 컷까지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을 다 잡아낸다면, 곽경택은 임팩트만 뽑아내는 스타일이에요.

    반면 <미녀는 괴로워>의 김용화 감독은 가장 현대적인 주진모를 만들어냈어요.
    맞아요. 제 영화 중 가장 정상적이었죠. 김용화 감독은 저를 친구처럼 대했고, 디렉션도 편안했어요. 가령 “너 술 마실 때 이렇게 했잖아. 그거!”

    눈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주진모도 매력적이더군요.
    배우는 정말 감독의 요구에 따라 바뀌는 존재예요. 저는 특히 제 연기에 자신이 없어서 연출자가 길안내를 잘 해줘야 해요.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라도 연출자가 가이드를 잘 못하면 마네킨이 될 거예요. 저한테 감독이 “알아서 잘 해주세요” 하면 저는 정말 몰라서 막 하게 돼요.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감독이 “바둑 훈수 둘 때 옆에서 깐죽거리는 사람 꼭 있잖아. 그 사람처럼 해볼까?” 그러면 그건 정확한 디렉션이에요. 그런데 “이 인물이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쫓아오면 그 기분이 어떻겠어? 알겠지?” 이러면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속으론 “뭘, 어쩌라는 거야?” 싶은 거죠. 눈물을 흘리라는 건지, 화를 내라는 건지….

    화이트 칼라가 클래식한 블랙 코트와 팬츠,플라워 프린트의 블랙 슈즈는 모두 프라다(Prada).는지, 저게

    소통의 기술이 정말 중요하군요. <가비>를 함께 했던 장윤현 감독은 어땠나요? 소통의 측면에서요.
    그분은 제게 공동 연출자의 몫까지 허락했어요. 하지만 이야기의 고난은 감독의 몫이지, 제 능력은 아니었어요. 배우는 장면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죠.

    초기엔 연기 실력이 형편없었다고 인정하시죠?
    <댄스댄스>를 할 때 정말 못 했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운 좋게 주연에 발탁됐어요. 지금도 연기를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몸이 캐릭터를 빨아들인 만큼 갈 뿐이죠.

    화려한 날들은 언제였나요?
    아직 맞이하지 못했어요. 30대 초, 중반에 올 줄 알았는데, 안 오더라구요. 제 기준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편이죠?
    네. 예전엔 욱했지만 지금은 많이 둥글둥글해졌어요. 소통을 하면서 위치를 찾아가는 중이죠.

    잘생긴 외모가 인생에 방해가 되었나요?
    네. 외모 콤플렉스가 있어요. “잘 생긴 놈이 뭐가 불만이야?”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제 강한 인상이 싫었어요. 진하게 생기다 보니 한정된 배역을 맡게 됐죠.

    유물론적인 시각에서 보면 신화적인 외모가 신파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 셈이죠. 어떤 대안을 갖고 계세요?
    우리나라에서 저 같은 외모를 사용하기 힘들다면 외국으로 가야죠.

    어디로 가시나요?
    이제 곧 중국 드라마를 시작합니다. 제가 맡은 배역은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음악가입니다. 중국 안에서도 외국인이라고 할 수 있죠. 모든 걸 다 갖춘 남자가 사랑과 죄의식, 희생과 권력욕 사이에서 갈등하죠. 제목이 <꽃이 아닌 꽃, 물이 아닌 물>인데,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스토리가 될 거예요.

    좋은 대우를 받으셨나요?
    한국에서 활동할 3년 치 출연료를 주더군요. 환경은 할리우드 시스템과 동일하고, 촬영 장소도 파리나 상하이 등 대도시예요. 제대로 터지면 중국에서 전용기 하나 내줄 거라고 하더군요. 하하.

    정말 멋지네요.
    배우가 안 됐으면 낚시나 하면서 인생을 보냈겠죠.

    한량 기질이 있죠?
    네. 대신 게으르지만 한번 발동이 걸리면 집중력이 높은 편이죠.

    20대 때 김기덕 감독의 실험작 <실제 상황>을 찍으셨죠? 하루 만에 촬영을 해서 영화를 만들다니 놀라워요. 김기덕 감독이 다시 제안하면 응할 생각이 있나요?
    배우는 감독의 역량에 따라 가지만, 시나리오도 중요해요. 그때 저는 그림 그리다가 거리로 나가 무작정 사람들을 죽여요. 그리고 다시 돌아와 그림을 그리죠.

    김기덕 감독의 무의식이 반영된 캐릭터네요.
    20대 중반엔 그게 멋있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겉멋이었죠. 지금 봐도 공감이 안 되더라구요. 그 분이 다시 하자고 하면 살인마가 될 만한 이유를 만들어달라고 하겠어요.

    한국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의 소회를 말씀해주시죠.
    피곤한 일입니다. 인기가 없으면 안 되죠. 대중들이 찾아주지 않으면 내 생각을 펼칠 수 없어요.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관리를 해야 하니까 그게 또 힘듭니다.

    예능 기질이 다분하시잖아요?
    예능 프로에 나가 까꿍까꿍 하고 싶지 않아요.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데, 그게 또 배우다운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와 싸우셨나요?
    매번 다른 상대와 싸웁니다. 싸움이라기 보다는 의견 충돌이죠. 해석의 차이를 극복하고 교집합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죠. 전 베이스가 착해요. 감독님들도 남의 인생을 관찰하는 분들이라 그걸 아시더라구요. 하하.

    어떤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나요?
    나보다 잘나가고 선량하고 가식적이면 다 질투나죠.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니 여배우들보다 남배우들이 더 질투가 심하더군요. 아무래도 승부욕 때문이겠죠? 맞아요. 그런데 잘나가는 사람들은 그 좋은 기류를 탄 거니까 또 인정해요. 나도 그 파도를 탈 때가 있을 테니까 기다리는거죠. 예전엔 부정하고 시기했는데, 그게 나한테 다 실이 되더라구요.

    신은 왜 배우라는 직업을 창조했을까요?
    내가 왜 배우가 됐을까, 생각해보면 그저 감사한 운명이에요. 배우는 선택 받은 직업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배우가 되고 싶어 하지만,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겸손해져요. 그 운명의 택함을 받았다는 것에 말입니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지수
      포토그래퍼
      조선희
      스탭
      스타일리스트 / 김하늘, 헤어&메이크업/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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