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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뜨겁게 달굴 뮤지컬 스타들

2016.03.17

by VOGUE

    연말을 뜨겁게 달굴 뮤지컬 스타들

    1세대 뮤지컬 배우 남경주의 등장 이후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오늘날의 뮤지컬시장을 이끌어 가는 뮤지컬 스타들은 누구일까? 올 연말을 뜨겁게 달굴 초특급 뮤지컬의 주인공들을 만났다. <레 미제라블>의 정성화,<맨 오브 라만차>의 홍광호,<두 도시 이야기>의 윤형렬이다.

    (왼쪽부터)홍광호의 화이트셔츠는 요지 야마모토(YohjiYamamoto), 화이트 팬츠는턱시도월드(Tuxedoworld). 정성화의블랙 턱시도 재킷과 화이트 셔츠는비아(Via), 블랙 팬츠와 블랙커머밴드는 턱시도월드,가죽 롱 부츠는 카루소(Caruso),윤형렬의 화이트 수트와 차이나칼라 셔츠는 송지오옴므(Songzio Homme).

    화이트 클레릭 셔츠는 자라 맨(Zara Man), 블랙 팬츠는 턱시도 월드(Tuxedoworld).

    정성화의 영웅 시대

    ‘개그맨 출신의 뮤지컬 배우’라는 부연 설명은 그에게 더 이상 필요치 않다. 뮤지컬 <영웅>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까지 오른 뮤지컬 스타, <라카지>의 사랑스러운 디바 앨빈, 세계적인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가 직접 선택한 초대 장발장! 세계 4대 뮤지컬의 마지막 작품으로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에 이어 오는 11월 한국어로 초연되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원캐스트 주인공을 따낸 정성화는 “<레 미제라블>은 끝도 없는 지평선 뒤에 있는 아득한 산이었다. 선망하며 믿음을 갖고 뮤지컬 배우로 살아온 끝에 산의 입구에 도달하게 되었다”며 벅찬 감회를 전했다. 물론 그 산 아래 서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울예대 개그동아리 회장이었던 정성화는 선배 신동엽의 추천으로 <기쁜 우리 토요일>에 첫 출연, 1994년 SBS 3기 개그맨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웃기는 아이로 소문났던 그였지만, 이후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교회 중창단 활동을 통해 갈고 닦은 노래 실력으로 ‘틴틴 파이브’ 멤버가 되었으나 스타성이 없다는 이유로 교체되었고, 드라마 <카이스트>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후엔 주인공 친구 전문 배우로 비슷한 역할을 전전했다. 배우 김수로, 이종혁 등 연극과 93학번 동기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사이,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낸 정성화는 뮤지컬을 만난 후 비로소 날아올랐다. 2006년, 뮤지컬 첫 주연을 맡은 <컨페션>에서 그의 대학 동기인 연출가 왕용범은 “20대 때는 세상을 한번 웃기고 싶으니 30대가 돼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이뤄진 셈”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데뷔 18년 차. 이제 그는 <레 미제라블>이라는 큰 산을 오를 준비를 끝냈다.

    장발장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듣던 순간의 상황이 궁금하네요.
    뮤지컬 <영웅>을 할 때였는데, 매니저 형이 전화로 그러더군요. “우리 성화, 정말 자랑스럽다. 잘해보자!” 낭보를 듣고 ‘앗싸!’ 이러면서우리끼리 술 한잔 먹었죠. 그리고 한 달 정도 런던에 가서 처음으로 음악 레슨을 받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뮤지컬이 <레 미제라블>이라고 들었어요.
    대학 시절 김생민 선배가 저를 데리고 다니며 공짜로 공연을 많이 보여줬어요. 롯데월드예술극장에서 처음으로 뮤지컬이란 걸 봤는데, ‘와~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만 대화를 하는데도 그 대사가 잘 들리는 게 신기하고, 대단해 보이고. 언젠가 저런 무대에 한번 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개그맨과 연기자 생활을 먼저 시작하셨어요.
    동네에 새로 생긴 빵집을 보고 언제 저길 한번 가봐야지 생각만 했지, 내가 그 빵을 만드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던 거죠. <카이스트>를 통해 연기를 경험한 후, 연극을 하게 됐어요. 표인봉 선배가 연출한 <아일랜드>였는데, 그 연극을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가 보러 온 거예요. 제 연기를 보고 뮤지컬 <아이러브유>의 대본을 주셨어요.

    막상 뮤지컬을 시작해보니 어떻던가요?
    2개월 연습해서 2년 정도 공연을 했어요. 아예 공연장 근처에 방을 하나 잡아서 왔다 갔다 했죠. 자연히 연습밖에 할 게 없었어요. 남경주라는 걸출한 선배와 함께 작품을 하다 보니 숙제도 많았고요. 처음엔 재미있는 경험을 한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첫 공연이 시작되고 관객들의 박수를 받고 나니,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직업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맨 오브 라만차>에서 더블 캐스팅이었던 조승우 씨는 이미 뮤지컬계의 스타였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당시 승우가 얼마나 유명한지, 또 내가 얼마나 안 유명한지에 대한 체감이 없었어요. 무작정 열심히 한 거죠. 이번에도 공연장 근처에 방을 잡고 남들보다 일찍 나와 연습했어요. 그런데 한번은 승우가 그걸 본 거예요. ‘저 형 장난 아닌데? 나도 1시간 일찍 나가야지.’ 그런데 다음날 제가 1시간 30분 일찍 나와 이미 옷을 입고 혼자 연습 중이더래요. 나중에 술 먹으면서 그 얘길 하더라고요. 징글징글했다고. 흐흐.

    덕분에 지난 8월에 열린 ‘예그린어워드’에서는 스태프들이 뽑은 배우상, 배우들이 뽑은 배우상, 연기예술 부문 남우주연상까지 3관왕을 차지하셨더군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또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요?
    뭔가를 기대하면 절대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해요. 배우로서 무대 위에 어떻게 존재할 것 인가에 대해서만 집중해야죠. 배우에겐 매 작품이 도전의 연속이고, 그 도전엔 넥스트 레벨이라는 게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나이 들어서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할아버지 배우로 남고 싶습니다.

    마침 영화 <레미제라블>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합니다. 휴 잭맨의 장발장과 정성화의 장발장은 어떻게 다를까요?
    글쎄요. 일단 휴 잭맨은 영어로 노래를 부르지만, 저는 한국말로 합니다. 그리고 저는 휴 잭맨보다는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므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있어서는 여러모로 제가 승산이 있겠네요. 흐흐.

    블랙 레이스 셔츠는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제작한 것.

    홍광호, 꿈꾸는 돈키호테

    2010년 최연소 팬텀으로 <오페라의 유령> 무대에 오른 홍광호 앞엔 매번 ‘최연소’라는 타이틀과 ‘미친 가창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계원예고 시절부터 오직 뮤지컬만 바라보고 살아온 뮤지컬 키드, 무려 1300 : 1의 경쟁률을 뚫고 <지킬앤하이드〉 주인공을 따낸 대형 신인에겐 당연한 찬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작은 평범했다. 2002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런던 웨스드엔드 공연에서 스무살의 홍광호는 깃발을 든 신하를 연기했다. 군 제대 후 숱한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앙상블 중 한 명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탈락을 거듭한 끝에 <미스 사이공>에서 뜻밖의 기회가 왔다. 주인공 크리스 역을 맡은 마이클 리의 목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 커버 배우였던 그가 주연으로 무대에 오르게 된 것. 스타 탄생을 위해 짜인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이후, 영화 <고고 70>에서 조승우는 밴드 데블스에서 색소폰을 부는 막내 준엽으로 그를 추천했다. 계원예고 선배이자 친형 같은 존재인 조승우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홍광호는 지구에서 노래를 제일 잘한다. 그에 비하면 내 노래는 쓰레기다”라는 파격적인 발언으로 홍광호라는 이름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신성 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극작가 세르반테스가 자신의 소설 <돈키호테>로 죄수들과 함께 즉흥극을 벌이면서 시작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홍광호는 베테랑 연기자 황정민, 서범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이룰 수 없는 꿈’ 같았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쉰 살이 넘은 슬픈 수염의 기사 돈키호테를 연기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했나요?
    남산에 있는 연습실과 저희 집 사이에 탑골공원이 있어요. 쉬는 날이면 선글라스를 낀 채 공원에 앉아 관찰했죠. 거기 계신 할아버지들
    중 열에 아홉은 돈키호테예요. 무용담을 말하실 땐 눈빛부터 달라져요. 걸음걸이,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 많이 따왔죠.

    10년 전,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주인공과 앙상블로 처음 만났던 서범석, 그리고 연기파 배우 황정민과 트리플 캐스팅이에요.
    정민이 형은 계원예고 12년 선배예요. 범석이 형도 저랑 띠동갑이고요. 전부 개띠죠. 그래서 농담 삼아 이번 돈키호테를 ‘도기호테’라고 불렀어요. 저한테는 어마어마한 선배들인데 잘 챙겨주셔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형님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공유하나요?
    <맨 오브 라만차>라는 작품의 주제가 진지하고 심오한 만큼, 지루할 거란 편견을 깰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가자는 거였어요. 사실, 저도 처음 봤을 땐 좀 그랬거든요. 작품을 이해할 만한 수준에 못 미칠 만큼 어리기도 했고요. 이번에 작품을 하면서 비로소 작품이 주는 어마어마한 메시지를 깨달았습니다.

    돈키호테와 당신은 어떤 점이 닮았죠?
    이상주의자라는 것. 저의 이상은 제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겁니다. 알돈자가 돈키호테에게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미친 짓들을 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하죠. “세상에 자비를 더하고 싶을 뿐이요.” 저도 그런 마음이고요.

    영화나 연기를 통해서도 할 수 있죠. 뮤지컬 <첫사랑>에서 당신과 더블 캐스팅된 조정석은 <건축학개론>의 ‘납득이’로 영화계의 기대주가 되었어요.
    결국은 목표의 차이인데, 제가 가진 달란트로 가장 잘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는 게 뮤지컬이니까요. 굳이 모든 가능성을 닫아두겠다는 건 아니지만, 전 지금이 행복합니다. 하고 싶은 연기를 하고, 무대에 설 수 있고, 개인으로서의 삶도 누리니 ‘땡큐’죠.

    뮤지컬 <닥터 지바고> 공연 땐 마지막에 목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성대결절이었어요. 조승우 형이 몇 차례 대신 공연해주었어요. 장기 공연을 하다 보면 아플 때도 있지만, 배우에겐 불명예로 남죠. 최대한 긴장하고 목 관리를 위해 항상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요?
    술은 원래 못 하지만, 커피나 우유 같은 것도 잘 안 마셔요. 목을 건조하게 하니까. 물은 많이 마시는 것보다 목을 적실 정도로 머금고 있는 게 중요하고요. 도라지차, 오미자차, 비타민도 꾸준히 챙겨 먹고, 잠을 많이 자야 해요.

    팬들에게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2년 전 <보그>에서 촬영한 사진을 크게 액자로 만들어 보내주셨어요. 멀리서 보면 그 사진인데, 자세히 보면 전부 다른 사진들을 모아 모자이크한 거예요. 정성이 대단하죠. 화초 키우는 게 취미라 화초 선물도 많아요. 오늘도 물 주는 날이라 아침에 화초들이랑 대화도 좀 나누고 몸에 좋다는 것도 챙겨주고 나왔네요. 모두 감사합니다.

    러플 장식의 블랙 셔츠는 카루소(Caruso), 블랙 팬츠는 더 클래스(The Class)

    윤형렬, 노래하는 흑기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윤형렬이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를 불렀을 때, 사람들은 짐승처럼 울부짖는 그를 보고 콰지모도 그 자체라고 말했다. 뮤지컬 데뷔작이 된 한 편의 뮤지컬과 인상적인 노래 하나로 윤형렬은 그 해 뮤지컬 어워즈 남자 신인상, 남자 인기상을 모두 휩쓸었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것이다. 그 대가로 윤형렬은 허리 디스크와 짝짝이가 된 눈을 얻었다. 등뼈가 활처럼 휘고 두 다리는 제멋대로 뒤틀린 절름발이, 애꾸눈 콰지모도를 연기하기 위해 구부정하게 등을 굽히고 얼굴을 찡그린 탓이다. 그만큼 절실한 작품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록밴드 활동을 해온 그는 자작곡으로 2003년 유재하 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먼저 데뷔했다. 하지만 가수로서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콰지모도 역의 적임자를 찾던 관계자가 우연히 그의 노래를 듣고 먼저 오디션 제의를 해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뮤지컬 배우 윤형렬은 없었을 것이다.

    군대 문제로 2년간의 공백을 가진 그가 <두 도시 이야기>의 주인공 시드니 칼튼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밝힌 찰스 디킨스의 동명의 소설을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숭고한 사랑을 보여준 노트르담의 꼽추는 프랑스 혁명 당시의 광기와 혼돈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다시 한번,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어둠의 기사를 자처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어떻게 보았나요?
    실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걸 잠시 잊고 봤어요. 그런데 인민 재판 장면이 마치 저희 작품 같더군요. 그러다 영화 말미에 장례식에서 게리 올드먼이 낡은 책을 인용해 사자를 향한 추모사를 읊는데, 바로 시드니 칼튼의 마지막 대사였어요. “지금 이순간, 나는 내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난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안식보다 훨씬 더 평안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그땐 좀 짜릿했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이후,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콰지모토’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난생 처음 하는 추남 연기에 거부감은 없었나요?
    처음엔 그랬죠. 가수는 무조건 멋있어 보여야 하니까. 그런데 그만큼 제 상황이 급박했어요. 음반은 냈는데 활동은 못하고, 내 인생이 너무나 절망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콰지모토는 당신에게 정말 특별하겠군요.
    제대로 살게 해준 인물이죠.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는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 노래 한 방이 없었다면 전 그냥 이름 없는 가수로 묻혔을지도 몰라요.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와 보니 무엇이 달라져 있던가요?
    일단 공연장에서 절 알아보는 팬들이 확 줄었다는 것. 잊혀질까 불안했고요. 또 <모차르트!> <엘리자벳>의 경우처럼 클래식했던 뮤지컬 음악이 굉장히 팝적으로 변한 부분도 있어요. 무엇보다 가장 달라진 건 아이돌 가수들의 대거 진입이죠. 물론 실력 있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의 참여는 대환영이죠. 하지만 무대를 우습게 여기는 경우엔 기분 나빠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는 오디션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거죠?
    지난 2월부터 배우들 사이에선 꽤 소문이 났어요. 보통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지 한참이 지났거나 아예 잘 안 된 공연일 때 넘어오는데, 이번 작품은 2008년 초연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잖아요.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바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세계에서 가장 많이팔린 소설로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절판돼 완역본을 구하기도 힘들었어요.

    <두 도시 이야기>는 노래의 난이도가 높고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더군요.
    전반적으로 쉽진 않아요. 리듬 반주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오케스트라 음악이라 박자를 한번 놓치면 소위 말하는 ‘멘붕’이 오죠. 노래를 부르기 어려운 게 아니라 맛을 살리기가 까다로워요.

    무대 아래의 당신은 로커 같은 모습이에요. 찢어진 청바지에 부츠, 모히칸 헤어 스타일까지. 아직도 가수에 대한 꿈이 있나요?
    평생 뮤지컬을 떠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다른 활동을 통해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어요. 8천원이면 영화 한 편을 보는데, 6만~12만원 하는 돈을 내고 뮤지컬을 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올해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일단 예전만큼의 감을 찾는 것. 쉬는 동안 잃었던 자신감을 찾고, 연말까지는 그렇게 나를 다 잡아가려고 해요. 그 중심에 있는 게 <두 도시 이야기>입니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미혜
      포토그래퍼
      강혜원
      스탭
      스타일리스트/이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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