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화보

레드카펫을 위한 여배우들의 뷰티 작전

2016.03.17

by VOGUE

    레드카펫을 위한 여배우들의 뷰티 작전

    12월 시상식을 위해 여배우들은 다이어트와 마사지, 부기를 막기 위해 저염식까지 불사한다. 동시에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SNS로 전달 받은 드레스 사진을 보며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한다. 이제 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

    “청바지에 셔츠를 입어도, 돌체앤가바나의 블랙 롱 드레스를 입어도 어울리는 헤어&메이크업이 지금 레드 카펫 스타일이죠.” 이희 헤어&메이크업 이희 원장은 6~7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레드 카펫 스타일이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내추럴 메이크업에 긴 생머리를 사뿐하게 늘어뜨리고, 레드 립스틱에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여배우들이 화려한 롱 드레스를 휘날리며 레드 카펫 위를 걷는다. ‘헤어&메이크업은 자연스럽게, 드레스는 화려하게’가 요즘의 레드 카펫 공식이다. “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목 위로 화려함이 차고 넘쳤죠. 무조건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눈과 입술을 모두 강조한 100% 풀 메이크업은 기본, 여기에 사자머리, 닭 벼슬머리, 이단분수머리까지 그야말로 헤어 스타일의 아방가르드 시대였죠.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김혜수죠.” 1999년 청룡영화제 MC를 맡았던 김혜수는 본디 입술보다 크게 립 라인을 그려 입술을 강조하고, 가운뎃가르마로 나눈 긴 앞머리를 커튼처럼 내려 턱을 가리고(당시 동그란 얼굴형을 드러내면 얼굴이 커 보인다고 생각했단다) 긴 뒷머리는 사자처럼 부풀렸다. 가슴골이 드러난 구찌의 화이트 드레스로 레드 카펫 드레스 전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2000년도 마찬가지. 강렬한 깃털 장식, 반짝이는 보랏빛 아이 섀도가 화려하게 동원됐다.

    부풀린 헤어 스타일 부문에선 고두심도 빠질 수 없다. 2004년 각 방송사 연기대상을 휩쓸었던 고두심의 위용만큼이나 사자 갈퀴처럼 부풀린 헤어 스타일은 화제가 됐으니 말이다. 이경민 원장도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메이크업을 하면 배우들이 ‘하다 말았냐’ 그랬다니까요. 하하. 정교하고 완벽한 메이크업과 헤어가 트렌드였으니까.” 드레스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 여배우들은 글리터, 컬러, 볼륨으로 무장한 화려한 헤어&메이크업으로 자신이 레드 카펫 여왕임을 드러내려 했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제니하우스 이선주 원장은 무엇을 덜어내고 어디를 생략해서 가장 자연스럽게 개성을 드러내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터닝포인트는 수애였어요. 모두가 휘황찬란하게 꾸미던 레드 카펫 위를 내추럴하고 단아한 이미지로 나타나 단번에 드레스의 여왕으로 등극했죠. 10년 전에도 내추럴 메이크업이란 말을 했지만, 사실 지금의 내추럴과는 딴판이었죠. 당시엔 A부터 Z까지 완벽 메이크업을 해야 예뻐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가령 고준희, 윤진서는 눈밑 다크서클을 완벽하게 커버해 버리면 오히려 눈이 작고 평면적으로 보이죠. 인상이 화려한 박시연은 가짜 속눈썹, 마스카라를 모두 생략하고 자신의 속눈썹만 살리는 게 더 예쁘고요. 또 코가 크다면 파운데이션을 아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코가 더 커 보이죠.”

    이경민 원장은 HD 텔레비전이 등장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HD시대가 되면서 피부 표현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죠. 동양인들은 얼굴이 입체적이지 않지만 피부가 무척 곱기 때문에 그 윤기와 결을 살려야 예쁜데, 과거에는 그렇게 메이크업을 해놓으면 카메라 감독들부터 번들거린다며 난리였어요. 무조건 파우더로 ‘꼭꼭’ 눌러주는 완벽 커버를 요구했죠. 그런데 지금은 촉촉하고 윤기 있는 피부를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이 메이크업의 80%를 차지합니다. 과거 엄정화, 이정현처럼 색감이 강하고 화려하기보다는 소녀시대처럼 예쁘고 자연스러운 메이크업, 색조는 줄이고 포인트는 라인과 마스카라가 담당하는 시대죠.”

    보디 메이크업도 마찬가지. 94년 청룡영화제 대상을 받은 김태희는 튜브톱 드레스를 입었는데 데꼴떼와 팔 등을 글리터로 치장해 샛별공주처럼 반짝였다. “몸 전체에 번쩍이는 글리터로 치장하는건 구시대적 유물이죠.”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고경희 원장이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윤지는 노란 드레스를 선택했는데, 특이한 절개 라인으로 복근이 강조되는 드레스였기 때문에 까무잡잡한 피부톤과 매치가 잘 되고 미끈한 보디라인이 돋보이도록 보디 메이크업을 했습니다. 건강하고 윤기 있어 보이도록 브론저와 보디 로션이 대량 사용됐죠.”

    심지어 어떤 시상식보다 특별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한 영화제에서조차(드레스부터 화려함이 다르다) 팔색조처럼 변신해야 한다는 건옛말이 됐다. “문채원, 윤진서, 이다혜처럼 깨끗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배우들은 그 분위기를 레드 카펫 위에서도 유지합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더라도 헤어&메이크업은 심플하게 선택하죠.” 김선희 원장에게 모든 여배우들이 하나같이 머리를 질끈 묶고 시상식장을 찾은 이유에 대해 묻자 “요즘 드레스 스타일링에선 무심한 듯 세련된 이미지가 중시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랄하게 평가되는 베스트 워스트 드레서 순위 프로그램도 여기에 한몫 하죠”라고 답했다. 괜히 파격적인 새로운 걸 시도했다 입방아에 오르내리느니 무난하게 중간이라도 가자는 것이 중론이라는 것. 실제로 ‘늘 내추럴한 스타일이 후하게 점수를 받는데, 괜히 노력했다가 ‘스타의 안티’ 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고 아티스트들은 입을 모았다. 조금만 튀어도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문화 아래선 대한민국에 레이디 가가 같은 핫 아이콘의 출현은 불가능하다는 말씀.

    “우리나라 여배우들의 시상식 룩은 이제 세계에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 됐어요.” 이희 원장이 강조했다. “그렇지만 전 60년대 여배우들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네요. 문희, 남정임, 윤정희, 김지미…. 아이라인을 강조한 메이크업에 불고데기(가스불에 철을 달군 고데기)로 매끄럽고 풍성하게 매만진 헤어 스타일을 한 여배우들에게선 아름다움은 물론 개성, 그 시대가 지닌 멋스러움까지 뚜렷했죠.”

    12월,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수많은 시상식으로 눈이 호강하는 시기. 여배우들은 수개월 전부터 다이어트와 마사지, 부기를 예방하기 위해 저염식까지 불사하며 카운트다운에 돌입한다. 동시에 SNS로 여배우의 드레스 사진을 전달 받은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한다. 레드 카펫을 걷는 몇 분간 최고로 빛나기 위해. 올해는 과연 어떤 레드 카펫 스타일이 등장할까? 여전히 드레스에 머리를 질끈 묶은 내추럴 스타일뿐일까? 결말은 제야의 종소리가 들릴 때쯤 드러날 것이다.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이화진
    포토그래퍼
    차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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