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씨의 그림일기

조영남과 스페인의 비디오 아티스트, 그리고 〈보그〉가 함께 두 편의 명작을 오마주했다.〈명작 스캔들〉로 인연을 맺은 ‘에스팀’의 아름다운 모델들도 출연한다. 도대체 환갑을 훌쩍 넘은 이 괴짜 예술가는 또 무슨 재미난 놀이를 궁리하고 있는 걸까?

벨라스케스의  화가 조영남의 셔츠는 자라, 턱시도는 여백, 구두는 프라다. 왼쪽 시녀 이혜정의 치마와 저고리는 여백. 오른쪽 시녀 진정선의 저고리와 치마는 백옥수, 마고자는 차이 김영진, 헤어밴드는 모두 마드모아젤 희. 공주 엘라의 저고리와 스커트는 차이 김영진, 뱃씨댕기는 백옥수. 난쟁이 광대 조영남의셔츠는 손성근, 보라색 배자와 바지, 행전은 백옥수, 워커는 토즈.문 앞에 선 조영남의 옷과 구두는 모두 프라다, 검정 두루마기는 여백.거울 속 왕비 이혜정이 입은 저고리와 치마는 차이 김영진.왕 조영남의 차이나 칼라 재킷은 카루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휴 헤프너가 된 조영남의 가운은 프라다. 왼쪽 첫 번째 바니걸의 톱은 스팽스.두 번째, 슬립과 브라는 아장 프로보카퇴르, 쇼츠는 에피타프. 세 번째, 브라는 아장 프로보카퇴르, 케이프는 문영희. 네 번째, 튜브톱은에피타프, 목걸이는 루이 비통. 다섯 번째, 원피스는 보테가 베네타. 여섯 번째, 브라와 보디 수트는 스팽스, 목걸이는 루이 비통.일곱 번째, 톱은 샤넬. 여덟 번째, 브라는 스팽스, 목걸이는 샤넬. 아홉 번째, 톱은 보테가 베네타, 목걸이는 블랙 뮤즈와 제라르 다렐.열 번째, 스커트는 봄빅스 엠무어, 목걸이는 제라르 다렐. 열한 번째, 브라는 아장 프로보카퇴르, 스윔수트는 스팽스, 스타킹은에밀리오 카발리니, 구두는 마놀로 블라닉. 테이블 앞 열두 번째 바니걸의 슬립 원피스는 스팽스, 뱅글은 모두 샤넬, 스타킹과 가터벨트는아장 프로보카퇴르, 구두는 디올. 모델들의 네크피스는 모두 문영희.

조영남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건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스페인에서 온 젊은 비디오 아트 작가랑 공동 작업을 진행하려고 해요. 두 편의 명작을 오마주할 건데, 촬영 장소는 우리 집이 되는 거지. 기왕 하는 거 <보그>랑 함께하면 더 좋고.” 전화를 끊고 난 후, 그가 언급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렸다. 아직은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는 꽤 즉흥적인 스타일일 것이다. 화가이자 가수, 최유라와 함께 매일 오후 4시면 라디오 부스에 앉아 사연을 읽어주는 입담 좋은 연예인, 60년대 대중음악 시장을 이끈 ‘쎄시봉’의 주축 멤버이자 장안의 스캔들 메이커, 故 김수환 추기경과 만담을 하고, 도올 김용옥을 디스코텍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인물, 한동안 바퀴 달린 운동화를 신고 다니던 기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에 산다는 강남 사나이, 스스로도 ‘턱도 없이 운 좋은 삶’이었다고 말할 만큼 억세게 운 좋은 한량, 재미에 죽고 사는 자칭 ‘재미니스트’. 조영남을 특별히 대단한 예술가로 포장할 생각은 없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희대의 인물이다. 도대체 환갑을 훌쩍 넘은 이 괴짜 예술가는 또 무슨 재미난 놀이를 궁리하고 있는 걸까?

조영남과 <보그>, 그리고 모델 에이전시 ‘에스팀’의 인연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조영남은 <보그>와 에스팀의 제안으로 톱모델 송경아와 함께 한밤중의 미술관에서 생애 첫 화보를 촬영했다. KBS1<명작 스캔들>을 통해 3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친구가 된 두 사람이 화투의 ‘비광’을 재현한 모습은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179cm의 키에 하이힐까지 신은 키다리 모델과 나비 넥타이를 맨 꼬마 신사. 그는 마치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의 벤자민 버튼처럼 우스꽝스럽고 기이해 보였다. 예의 그 나이 또래의 점잖은 어른이라면 이 파격적인 컨셉에 난색을 표했겠지만, 그에겐 조금의 불쾌한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재미있어. 이건 페인팅하고는 또 다른 차원의 아트야!” 마르셀 뒤샹의 미술관 퍼포먼스 <체스를 두는 뒤샹>을 패러디한 장면에서는 파면 당하기 직전의 신부 같은 모습으로 요염한 수녀로 변신한 송경아와 함께 신나는 한 판 체스 게임을 벌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지만 지친 기색도 없었다.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닌 게 분명했다.

조영남을 다시 만난 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영동대교 남단의 그 유명한 빌라에서였다. 그의 설명을 빌리자면 이웃한 건물엔 요즘 젊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클럽이 있다. 현관문을 열자 바로 작업실이었다. 채 마무리하지 못한 태극기 그림과 화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그는 요즘도 하루 6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겐 두 가지 꿈이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왕의 남자가 되는 것인데, 옛날에 벨라스케스 같은 궁정 화가가 왕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고. 난 대중가수에 불과한 광대이지만, 돌이켜보면 영의정의 친구, 대제학의 친구 정도는 됐지. 그래도 그게 어디야?” 전 국무총리이자 서울대 총장이었던 정운찬, 대선 후보를 뽑는 민주당 경선에서 2위로 탈락한 손학규와 친구사이임을 빗대 하는 얘기다. “두 번째는 휴 헤프너가 한번 돼보고 싶었어요. 난 그 친구가 참 부러웠어.” 그 사이, 미리 주문한 ‘스쿨푸드’의 소고기 볶음밥이 도착했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좌식 나무 테이블마저 스페인 작가팀이 치수를 재기 위해 어딘가로 가져간 후라, 음식은 그대로 대리석 바닥 위에 깔렸다. 아이디어는 눈 앞의 인스턴트 식품처럼 즉석에서 튀어 나왔다. “최후의 만찬을 위한 식탁엔 정크 푸드가 잔뜩 깔렸으면 좋겠어.” 조영남이 먼저 말했다. 현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보여주자는 게 그의 뜻이었다. “좋아요! 대신 12명의 제자들(유다를 포함해 13명이어야 하지만, 편의상 12명으로 정리했다)은 모두 여자로 가보죠.” <보그>의 흐뭇한 제안은 그 역시 바라던 바였다.

촬영은 코엑스에서 열리는 아시아 아트페어와 내년 초 개인전에 출품할 스페인 작가의 영상 작업과 <보그>와의 화보 촬영, 두 가지 버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조영남에게 이번 작업을 제안한 에프라인 멘데즈 타바레스는 사회적 주제를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파인 아트 작업을 해온 사진&비디오 아트 작가다. 타임 슬랩이라는 저속 촬영 기법을 이용한 그의 영상은 언뜻 보면 사진 같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정지된 배경 속에서 아주 느리게 인물들이 움직인다. 에프라인은 전시를 위해 찾은 청담동의 한 갤러리에서 우연히 조영남의 화투 작업을 보았다고 했다. 직접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눈 후 이번 작업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조영남은 스페인의 국민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같은 느낌이에요. 물론 그는 화가가 아니지만 나이도 비슷하고, 둘 다 독특한 스토리가 있죠.” 여기서 잠깐,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에 대해 설명하자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처 프리 실라와 약혼하는 등 숱한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닌 이슈 메이커이자 스페인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인기 가수이며, 놀랍게도 전직은 프로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뜻밖에도 그 이전엔 캠브리지 대학의 법학도였다. 운도 좋았다. 인기를 끈 노래 중 상당수가 리메이크 곡이라는 불편한 진실 역시 공통적이다. 물론 조영남은 여기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히트곡이 별로 없는 가수, 번안 가수라는 점에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밑천 안 들이고 돈 벌어먹는 게 지금 이 시대에 가장 경쟁력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던 그다. 피카소도 말하지 않았던가? “저급한 예술가는 베끼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훔친다!”

1·3 타임 슬랩 기법을 이용해 촬영한 스페인 밴드‘팜므파탈’의 뮤직 비디오 스틸 사진. 2·5 과을 오마주해 조영남의 청담동 집에서촬영한 결과물의 일부다. 4·7 21세기 사회의 야만성을보여주는 시리즈 작업 중 하나인 [Plastic Surgery]와[Technology in Humans]. 6 알록달록한묘지 [Chichicastenango Cementery]는 과테말라중서부의 옛 도시에서 촬영한 것이다. 8 스페인 록밴드‘Diluvio’의 음반 재킷 사진. 9 2006년 건축사진 스튜디오 ‘Archframe’을 만들어 제작한 시리즈 중하나인 .

조영남의 방 안엔 유명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그중엔 조지 부시와 고르바초프, 故 김수환 추기경, 백남준, 젊은 시절의 조용필과 나훈아, 쎄씨봉 친구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느덧 스물네 살이 된 딸의 어릴 적 모습, 노래 대회에서 1등을 한 까까머리 조영남과 록 오페라 <에비타>의 주인공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80년대 초반의 조영남, 그리고 첫사랑도 있다. 전부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조영남이 17세기 스페인 바로크시대에 살았다면 벨라스케스와 나란히 선 그림을 침대 옆에 걸었을 것이다. 피카소와 달리, 고야, 드가, 마네 등 20세기 거장들이 셀 수 없이 반복해 그리고 또 영감을 받았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완벽한 원근법적 구도나 빛을 사용한 방식도 훌륭하지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문사회학자들에게까지 오랜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마르가리타 공주와 그녀를 수행하는 시녀들, 난쟁이를 비롯 궁중 사람들을 그린 이 그림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대형 캔버스 앞에 선 화가 자신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화가는 지금 무엇을 그리고 있는 걸까? 푸코의 해석에 따르면 그는 뒤편의 작은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라캉은 문 밖 계단 위에 선 정체불명의 염탐꾼에 주목했다. 가장 멀리서 몰래 상황을 지켜본 그는 이 모든 호기심의 욕망을 풀 비밀의 열쇠를 지닌 자다. 반면, 소설가 박민규는 가장 앞쪽에 있지만 누구에게도 주목 받지 못하는 우울한 표정의 난쟁이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소설을 썼다. <보그>와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그림을 들여다본 조영남은 1인 4역을 맡아 이 모두를 연기하기로 했다. 집의 천장이 낮아 세트는 부득이하게 스튜디오에 마련됐다. 당연하겠지만 첫 번째 역할은 그토록 원했던 궁정 화가! 집에서부터 붓과 팔레트를 가져온 그는 코밑에 즉석에서 콧수염까지 그럴듯하게 직접 그려 넣었다. 순수 귀족 혈통만이 가입할 수 있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 도전을 거듭한 벨라스케스가 마침내 자격을 획득하고, 그 상징으로 옷에 그려 넣은 붉은 십자가를 대신해, 조영남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십자가 목걸이를 걸었다.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그가 출간한 <예수의 샅바를 잡다>는 한때 꽤 논란이 된 바 있다. 바로크시대의 화가들이 귀족이 되고 싶어 했다면, 현대의 미술가들은 돈과 명예를 누리는 스타가 되고 싶어 하고, 조영남은 예술의 마법을 통해 무엇이든 되고자 한다. 두 번째는 거울 속의 왕이었다. “왕이라면 다들 근엄함을 떠올리겠지만, 왕도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서 고정관념을 깬 예술이 탄생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는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 다음은 문 밖에 선 미스터리 맨.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그는 이 모두를 기획한 감독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드레스를 입은 난쟁이는 광대 조영남 그 자체가 되었다. 당시 궁정에 살았던 광대와 난쟁이는 익살스러운 장난으로 왕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존재들이었다. 모델 이혜정과 진정선은 기꺼이 아름답고 우아한 시녀가 되어 잠이 덜 깬 꼬마 공주 엘라를 어르고 달랬다.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적 요소가 뒤섞인 의상을 입은 모델들의 뒤편으로는 트럼프 카드와 화투가 공존하는 조영남의 그림들이 걸렸다.

같은 시각, 조영남의 집 안 작업실에서는 영상 촬영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실제 작품의 무대 역시 알카자르 궁전 한편에 마련된 화가의 작업실이었으니, 이 편이 훨씬 더 작품에 충실한 셈이다. 에프라인은 조영남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하고 있는, 이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느 대상을 카메라로 설정했다. “작은 거울 속의 왕과 왕비는 실제로 이들 앞에 존재한 게 아니라, 작품이 완성되고 난 후 다시 그려 넣었다는 주장도 있죠. 사실, 공주의 표정도 부모가 아니라 낯선 뭔가를 보고 놀라는 느낌이거든요.” 조영남은 이번엔 화가로서의 임무에만 충실했다. 여기에서는 조영남의 친구 중 한 명인 베테랑 연기자 조형기가 난쟁이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화가의 작업실에 들어선 어린 공주는 눈앞의 카메라를 보고 깜짝 놀라 화투를 집어 던졌다. “오늘날까지도 이토록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입체적인 작품을 완성했으니, 이게 벨라스케스의 어마어마한 천재성이죠.” 조영남은 새삼 그 위대한 화가에게 경의를 표했다.

다음 날 아침, 12명의 바니걸이 조영남의 집에 도착했다. 에스팀의 새로운 얼굴들이다. 마치 천국처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새하얀 거실엔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피자와 도넛, 일회용 접시에 담긴 과자, 플라스틱 포크, 통조림 따위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낯선 사람들이 거실을 점령하거나 말거나 태연하게 샤워를 마친 집주인은 파자마 차림으로 느긋하게 걸어 나와 콜라를 가득 따른 스타벅스 머그를 들고 식탁의 중심에 앉았다. “난 세상 모든 음료수 중에 이 콜라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다이어트콜라는 안 먹죠.” 실제로 그는 끼니 때마다 물 대신 콜라를 마셨다. 집 안에는 이미 여러 개의 스타벅스 컵들이 굴러다녔다. 디자인이 깨끗하다는 게 선택의 이유였다. 곧바로 이어진 영상 촬영에서는 포기김치와 햄버거가 나란히 좌식 테이블 위에 올랐다. 이번에도 화투장이 날아다녔다. 에프라인은 스페인에서 본 영화 <타짜>를 통해 화투를 기억했다. “강렬한 색감과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신기했죠. 한국에서 화투는 명절날 가족들이 모여 함께 즐길 만큼 대중적이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는 걸 알고 있어요. 조영남과 대화를 하다 보니 화투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더군요. 젊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그에게 예술이라는 놀이의 재미를 받아가는 거죠.” 남녀노소, 일본과 한국, 서양의 경계없이 화투장은 공중비행을 했다. 사실 에프라인은 물론 조영남도 화투를 칠 줄 모른다. 그보다 재미있는 건 강남 한복판, 자본주의와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청담동 고급 빌라에서 이런 장난스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Dreams came true!” 이틀간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조영남은 기지개를 켜듯 시원하게 소감을 말했다. “이 일이 피곤하다면 살지를 말아야지.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어떻게 피곤하겠어요?” 휴 헤프너가 되지 않는 한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모델들과의 휴대폰 인증사진도 빼놓지 않았다. “앞으로 누가 물으면 60세부터 19세까지 ‘여친’이 있다고 자랑할 거예요.” 그는 아이처럼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촬영 현장에는 유인경 기자는 물론, ‘최고령 여친(조영남은 실제로 누군가를 그렇게 소개했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친들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작업실에 딸린 주방 안은 삼삼오오 모인 여친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는 여름날 빨래터였다. 또 한 차례 ‘스쿨푸드’의 소고기 볶음밥이 대리석 바닥에 깔리고, 그의 배달음식 예찬론과 함께 마침내 파티는 끝이 났다. 우연히 맞은편에 놓인 <묘비명>이라고 적힌 작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조영남-노래 부르다 말다 그러다 웃다 죽다.’ 누가 조영남에게 돌을 던지랴! 몇 년전, <요셉 보이스와 영남 보이스>전 오프닝 행사의 장례 퍼포먼스가 떠올랐다. 농담 섞인 유언 속에 마지막 문장은 “내 인생은 한판 놀이였다. 재미있게 잘 놀다 간다”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어떤 인물로 기억될까? 명작(名作)은 시간을 초월한 감동을 주고, 유쾌한 수작(酬酌)은 웃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