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있는 로이킴과 정준영

서로의 보컬을 자극 삼아 패기 있는 ‘먼지가 되어’를 완성해내던〈슈퍼스타K 4〉의 로이킴과 정준영. 그들은 방송의 마술이 빛을 잃은 후에도 가수로서 야심 찬 미래를 맞을 수 있을까?

준영이 입은 화이트 셔츠와 버건디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서스펜더는 란스미어(Lansmere), 브라운 부츠는 구찌(Gucci).로이가 입은 화이트 셔츠와 버건디 팬츠는 우영미, 브라운 부츠는 구찌.

벨티드 코트와 프린팅 셔츠와 팬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실크 스카프는 구찌(Gucci), 슈즈는 우영미(Wooyoungmi),베이지 케이스의 앰프는 이그네이터(Egnater).

여심을 흔드는 남자의 조건이 몇 가지 있다. ‘노래 잘하는(악기 잘 다루는) 잘생긴 남자’라는 공식은 불멸의 페로몬이다. 그런 남자가 본토 발음으로 외국어 한마디까지 흘려주면 가중치가 붙는다. 그 모든 요소를 갖춘 로이킴과 정준영은 <슈퍼스타K 4> 제작진들에게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였다. 이번 참가자들이 정말 역대 최고 수준일까? 뜨거웠던 지난 두 해의 서바이벌을 겪은 내성 탓인지, ‘역대 최고’ 라고 치켜세우는 심사위원들의 말에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로이킴과 정준영은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도전자였다. 제작진이 굳이 그들을 방송 공식대로 조명하지 않았다 해도, <슈퍼스타K> 4년 차인 시청자들이 먼저 두 남자를 알아봤을 것이다. 총 지원자 208만 3500명(지난해 지원자 수는 196만 7000명 정도) 중에서 로이킴이 최종 우승을 차지하고, 정준영이 3위를 했다는 놀라운 수치상의 성적 이전에 그들은 참가자 중 누구보다 예비 스타였다.

대단한 서바이벌의 막이 내린 후, 로이킴과 정준영은 더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영광의 청춘들을 기다리는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연말부터 시작되는 전국 투어 콘서트를 준비해야 하며, CJ E&M 계열에서 방송되는 음악과 예능 프로그램의 프러포즈만 소화해도 정신이 없다. 쿡 찌르면 어리광 부리듯 앓는 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정준영은 저보다 잠 더 잘 수 있어요. 딕펑스 형들도 마찬가지구요. 내 스케줄 정도는 돼야 앓지.” 로이킴이 말했다. 정준영은 갑작스레 유명인이 되어 현기증이 난다거나 얼얼해 보이는 기색이 없었다. “촬영을 3개월 동안 했고, 그동안 비교적 적응할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로이킴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감이 있다고 했다. <슈퍼스타K>라는 고속열차에 타기 전부터 밴드 활동 등으로 뮤지션 생활의 근처에 가본 정준영과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대국민 오디션’에 지원서를 내본 로이킴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방송하는 동안 유명세를 타면서 주위 사람들이 ‘기분 좋겠다’ 할 때도 사실 별로 좋지가 않았어요. 사람들이 나를 많이 알아본다고 생각하니 눈치 보게 되고 혼란스러웠죠. 사실 이제 사회에 나가 혼자 걸어 다닐 일도 별로 없잖아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 같아요. 제가 우승이라니, 신기하기만 하죠.”

돌이킬 수 없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두 사람은 오늘처럼 <보그>가 오직 그들을 위해 꾸며놓은 스튜디오에서 화보 촬영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기자와 사진가가 촬영장을 분주하게 휘젓는 사이, 로이킴의 아버지가 잠깐 다녀갔다. 얼마간 집에 못 들어간 로이킴에게 ‘생필품’을 전달해주기 위해서다. 로이킴은 그의 가족에겐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졌을 음악에 대한 애정을 <슈퍼스타K 4>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슈퍼스타K 4>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로이킴은 미국에서 기말고사 준비를 하고 있겠다. ‘로이킴 과거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 일도 없었겠고. “그 과거 역시 제 것인데요, 뭘. 물론 저를 비롯해서 누가 봐도 지금의 제가 훨씬 낫고요. 모범적으로 공부해온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똘끼’도 좀 있죠. 그거 없으면 음악 할 수 있겠어요? 학교가 9월 개강인데, 어떻게 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아요. 일단 그 전에 음반을 내야 할 텐데…. 미국에서 학업을 마쳤던 박정현 선배님을 한번 뵙고 조언 들어보고 싶어요.”

로이킴이 내면의 ‘똘끼’와 상관없이 비교적 잘 다듬어진 청년으로 컸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정준영은 그 반대편 즈음에 있다. 로이킴과 정준영이 <슈퍼스타K 4>가 아닌 사회에서 만났다면 지금처럼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정준영의 인간적 매력은 생방송 무대 중 침대에 드러누워 노래 부르는 아이디어를 내는 깡, 예측 불가능함, 흐물거리는 말투(거기에 유년 시절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해외를 오가며 외로움을 느꼈다는 점이 조성하는 분위기) 등에서 온다. 그 역시 사람들이 자신의 ‘멘탈’에서 매력을 발견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오늘 촬영 소식을 기자가 트위터에 올리자 많은 이들이 댓글을 달았다. 그 질문거리들을 A4 용지에 정리해 보여주자, 정준영은 “그냥 제가 몇 개 골라서 답변 써볼게요” 하더니 쓱쓱 쓰기 시작했다. 패션 머스트 헤브 아이템은? “스키니.”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불면증은 언제부터 생겼나? “처음엔 돈이 없다는 점이 힘들었고, 불면증이라기보단 자기 전 알코올을 즐겨 늦게 잠드는 것이 습관이 됐다.” 심사위원들이 붙여준 ‘소프트 로커’라는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쨌든 로커라 기분 좋다.” 정준영은 로이킴을 향한 누군가의 질문에 대해서도 자신이 답을 썼다. 로이킴, ‘한동안 뜸했었지’를 부르고 나서 윤건 심사위원이 ‘경로잔치’라고 평했는데 기분이 어떻던가? “2:8 가르마와 빨간 의상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론 좋았다.”

베이지색 터틀넥 니트와 벌키한 베이지색 니트는 에르메스(Hermès),오트밀 베이지색 팬츠는 코넬리아니(Corneliani), 블루 그레이색부츠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준영이 입은 브라운색 벨티드 롱 코트와 머플러는 코넬리아니(Corneliani), 로이가 입은 그레이 모피 칼라 트리밍 코트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실크 스카프는 구찌(Gucci).

로이킴과 정준영이 가장 화제가 된 순간은 ‘슈퍼위크’에서 듀엣으로 ‘먼지가 되어’를 불렀을 때다. ‘달려라 하니’가 라이벌인 나애리와 같이 뛸 때 훨씬 잘 뛰는 것처럼, 소절을 나눠 주고받던 이들은 서로의 보컬을 자극 삼아 패기 있는 ‘먼지가 되어’를 완성해냈다. 이후 로이킴은 생방송 경연에서 이문세의 ‘휘파람’,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을 불렀다. 처음 로이킴을 봤을 땐 잘 자란 교포 청년 특유의 건강함을 지닌 존 박이 떠올랐다. 그러나 존박이 팝적인 느낌의 보컬이라면, 로이킴은 옛 가요의 정서를 잘 살려내는 보컬이다. 90년대 생인 로이킴이 ‘통기타 가수’의 고전적 감수성과 그 음악이 품은 정서를 알고 좋아한다는 건 놀라운 점이다. “어머니가 김광석, 이문세, 김현식의 팬이에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 차를 타고 다니면서 그 음악들을 자주 들었어요.” 벌써부터 뚜렷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는 없지만, 마음이 향하고 있는 큰 방향은 있다. “기술을 뽐낼 수 있는 음악보다 좀 덜 꾸며진 음악을 하고 싶어요. 본연의 목소리가 가진 힘으로 밀고 나아갈 수 있는 음악이요. 앞으로가 두렵진 않은데, 딱히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제 마음이 기우는 방향이 옳은 선택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이 대중음악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는 장르라고 기대해 본다. 그가 서바이벌에서 충분히 보여줬던 장점, 즉, 인위를 덜어낸 보컬과 복고적이면서도 세련된 정서에 요즘 사람들이 굶주려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준영은 오로지 록이다. 그에게 록의 사운드가 좋은 건지, 록이 상징하는 자유로운 정신이 좋은 건지 물었다. “둘 다예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록을 만나면서 밴드 사운드에 익숙해졌고, 그렇게 계속 록을 하면서 록이 지닌 스타일이 더 좋아진 점도 있어요. 저는 록스타가 되고 싶어요.” 심사위원 이승철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가 단체 생활에 적응할지 걱정이다’라고 짐작한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정준영은 결승전을 앞두고 탈락하면서 숙소를 떠날 때 아쉬움보다 후련한 감정을 더 크게 느꼈지만, 어떤 울타리 안에 있었기에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는 시간과 대면할 수 있었다. “진정성이 뭔지 조금 느꼈어요. 그런 합숙 생활 안 해본 사람은 모르죠, 다시는 갈 수 없으니까 더 미련이 생기고 추억거리로 남기도 하고요.” 그는 처음 <슈퍼스타K 4>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좀더 얼굴을 알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솔직히 말했다(떨어지면 ‘쪽팔리니까’ 친구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불안한 가창력을 더 다듬고 키워야겠죠. 일단 트레이닝 같은 건 받을 생각이 없어요. 난 로커니까, 흐흐. 주변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진 않을 거예요. 어떤 음악을 어떻게 할지는 앞으로 혼자 천천히 생각해서 결정할 문제예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약을 먹으며 버텼던 로이킴(“목 아플 때 먹는 약, 감기 기운 있을 때 먹는 약, 피부가 망가지면 먹는
약… 꼭 약쟁이가 된 기분이에요”)과 실력을 옥죄는 긴장감 없이 매번 날것의 모습을 드러낸 정준영. 서바이벌을 치르는 그들을 볼 때면, 로이킴은 심사위원들의 충고를 하나하나 흡수해 외연을 넓혀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고, 정준영은 타인과 타협하지 않고 이미지닌 매력으로 승부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남자 솔로 가수 둘을 동시에 만났다는 점은 여전히 흥미롭다. “음‘학’적인 부분을 배워보고 싶어요. 저는 프로다운 준비를 미처 못했으니 아무래도 차이가 나잖아요. 워낙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로이킴. “이제부터 모험이라고 생각해요. 분명 다른 세상이 오겠죠,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연초에 ‘TOP 12’ 투어 콘서트가 끝나면 그때부터 슬슬 시작이에요” -정준영. 방송이 전파를 타는 동안 승승장구했던 로이킴과 정준영. 그들은 방송의 마술이 빛을 잃은 후에도 가수로서 야심 찬 미래를 맞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