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퍼스트 레이디 <2>

11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며 노다웃 멤버들과 유럽 홍보 투어를 시작한 그웬 스테파니, 그녀가 왕성히 활동하던 시절과 지금 세상은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록의 퍼스트 레이디다.

ELECTRIC COMPANY“우리들 사이엔 어떤 화학 작용이있어요”라고 스테파니는 말했다.(왼쪽부터)노다웃의 멤버 애드리언 영,톰 더몬트, 토니 커넬과 함께.스테파니가 입은 검정 슬리브리스톱과 흰색 파이핑이 들어간 검정 가죽팬츠는 에이엘씨(A.L.C.), 검정 부츠는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2012년 6월 로스엔젤레스에서 쇼핑에 나선 그웬 스텐파니. 남편 케빈 로스데일,아들 킹스톤, 주마(앞)와 함께.

2011년까지 스테파니는 L.A.M.B. 컬렉션을 디자인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보다 최근에 론칭한 10대를 위한 하라주쿠 러버스(Harajuku Lovers)와 어린이들을 위한 하라주쿠 미니(Harajuku Mini)-타깃(Target)에서 판매되고 있는-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킹스턴이 유치원에 들어가자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해 폴라 브래들리(Paula Bradley)라는 디자이너를 고용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10년 후에 제가 노다웃 음반을 만들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3개의 의류 라인을 갖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것도 동시에 말이에요! 그렇게 한다는 건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을 거예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당시에 제가 고민했던 건 변함없는 제 자신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저는 엄마예요.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요. 그런 내용이 이 음반 전체에 담겨 있습니다.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창의적인 나뿐만 아니라 새로운 내가 되려고 애쓰는 것 말이에요.”

곡을 쓰고 녹음을 하는 동안 무척 힘들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앨범이 예전보다 어둡지 않다는 사실이 그녀는 여전히 놀랍다. “스튜디오에 가서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 하면서 집에서 아이들을 재울 기회를 놓친다는 것. 뭐가 더 중요할까요? 정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지금 이순간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나 자신을 실망시키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너무 부족했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어떤 분위기의 앨범이 나올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걸 고려하면 음반은 정말 긍정적입니다.”

우리가 콜드워터 캐니언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가로지를 때 그녀는 킹스턴(현재 6세)이 태어났을 때부터 살고 있는 동네입구를 가리켰다. “계곡 경치가 끝내주죠. 예전에 우리가 살던 집과 정반대예요. 완전히 하얀 상자 같아요. 초현대적이고, 천장은 10미터에 달하고 바닥은 대리석입니다. 정말 좋아요. 제가 이런 집에 살 거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매일 ‘정말인가요? 진짜예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집은 제게 지나칠 정도로 좋아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마의 학교를 지나갈 때 그녀는 자신과 노다웃이 학교 기금 모금 행사 때 즉흥적으로 연주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3년 동안 연주를 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톰과 어쿠스틱 공연을 하려고 했어요. 그냥 듀엣 곡들로요. 그런데 ‘모두 같이 하는 건 어때?’라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초현실적인 상황이었지요.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가는 게 다소 묘하게 느껴졌어요. 오, 어색했어요! 하지만 정말 좋았습니다. 우린 정말 궁합이 잘 맞아요. 전기 같은 게 통하지요. 그냥 하면 돼요. 장소에 상관없이 말이에요.”

스테파니 인생의 아이러니 중 하나는 그녀가 의도치 않게 가족 안에 자기 밴드와 비슷한 역학구조를 재현했다는 것이다. “저를 빼고 모두 남자예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그녀가 로스데일과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노다웃의 오랜 저력에 대한 그녀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저의 자부심입니다”라고 그녀는 두 사람의 16년간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그들은 지난 9월에 결혼 10주년을 맞이했다). “자랑스럽게 느껴져요. 거기엔 많은 보상이 따르지요. 부단한 노력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배우게 되니까요. 그것은 계속되는 전쟁 같아요. 그러다가 그것을 통해 다른 지점에 도달하게 되지요. 와우, 하고 감탄하면서 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 관계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협업이에요. 우리 두 사람은 육아에 대해 아주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

2011년 로스데일의 밴드‘부시(Bush)’는 10년 만에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들은 앨범 홍보를 위해 거의 1년 가까이 투어를 했다. 아이들이 생긴 후 스테파니는 처음 혼자 있었다. “정신적으로 그는 제 곁에 있었어요.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어땠냐고요? 남자애들은 거칠어요. 잠에서 깨면서부터 서로 치고 박기 시작하죠!” 그녀는 웃었다. “우리 두 사람만 생각하면 함께 있든 떨어져 있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있으면 떨어져 있는 게 별로 좋지 않아요. 아이들에겐 아빠가 필요합니다. 가족이 생기면 모두가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죠. 그가 집에 돌아와서 정말 좋아요.”

그가 그녀의 창작 과정에 한몫을 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는 정말 바쁜 사람이에요. 늘 곡을 쓰죠”라고 그녀는 말한다. 스테파니는 항상 미루면서 스스로를 고문하는 스타일이다. “개빈은 말합니다. ‘오, 당신은 당신이 하는 걸 하면 돼.’ 그러면 저는 ‘하나도 떠오르는 게 없어. 곡을 쓰고 녹음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 게 힘들 뿐이야. 나는 곡이 저절로 떠오르고, 신의 계시를 받는 프린스 같은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라고 말합니다. 저는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곡을 쓰지 않아요. 하지만 개빈은 늘 곡을 씁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천재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마침내 베벌리힐스 호텔의 폴로 라운지에 도착했다. 날이 쌀쌀했기 때문에 정원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스테파니는 레드 와인 한잔과 수프를 주문했다. 그녀는 두 가지를 조금씩 음미하며 먹었다. 우리는 엄마 역할이라는 주제로 돌아갔다. “엄마가 되는 건 아주 재미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이러이러할 거라고 예측하는 것과는 달라요. 변화는 아주 서서히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생활이 전혀 달라지지 않아요. 아주 귀여운 아이가 생겨서 어디든 차에 태우고 다니며 자랑하죠. 정말 근사해요. 그러다 아이가 점점 커 가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맙소사,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요. 학교에 가고 1학년이 되고 책 읽는 법도 배워야 하고요.” 그녀는 웃었다.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하죠. 결국 아~~~! 하고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그녀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돌아버릴 것 같은 아이의 유아기를 견디면서 그 모든 것을 하다 보면… 어떤 면에서 저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어요. 우리 밴드는 대학을 함께 다녔고, 첫 음반을 냈고, 그 후 거품 속에서 살았으니까요. 밴드 안에 있을 때는 시간이 멈추게 됩니다. 유예된 유년기 같은 거죠. 정말 근사합니다. 하지만 가족이 생기면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어요.”

늘 그렇듯 그웬 스테파니는 트렌드의 최첨단에 서 있다. 야후 신임사장이자 CEO인 마리사 메이어-아이를 낳고 2주 만에 중역회의실로 돌아갔고, 작년에 1000개의 에세이와 블로그 포스트를 올린-처럼 그녀는 ‘모든 것을 다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스테파니의 직업이 육체적으로 부담이 아주 크다는 것일 것이다. “임신하고 있을 때 첫 솔로 음반을 내고 투어 중이었어요. 노래를 부르는 동안 토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어떤 옷은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죠. 거의 고문 같았습니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임신 4개월 반 때까지 투어를 했어요. 그 후에 집으로 돌아와 쉬다가 킹스턴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킹스턴이 8개월 됐을 때 다시 투어를 시작했어요. 14개월 동안 그 아이를 보살폈습니다. 말 그대로 머리와 메이크업을 하고 버스로 돌아와 아이를 돌보고 재운 다음 무대에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100회 공연을 했어요.”

아마도 이것이 스테파니의 솔로 프로젝트에 모든 사람이 열광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 그 안에 온전히 담긴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을 괴롭힌 또 다른 문제는 백댄서들-이 시기에 괴짜 같은 의상을 입고 스테파니와 함께 종종 무대에 등장했던 네 명의 일본 여성으로 이뤄진 하라주쿠 걸스-의 마돈나풍의 잘못된 문화적 전용이었다. 코미디언 마가렛 조가 그 댄서들을 동양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더욱 강화시키는 일종의 ‘민스트럴쇼(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와 흑인들의 삶을 희화한 쇼)’라고 부를 정도였다. 노다웃이 최근 이런 실수를 반복했다는 사실-이번에는 ‘Looking Hot’ 뮤직 비디오에 묘사된 과장된 카우보이와 인디언 테마 때문에 미국 원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그들은 즉시 비디오를 인터넷에서 내리고 사과했다-은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그토록 명민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왜 유독 이 한가지 부분에선 무딜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런 작은 문제(내가 여기서 말할 수 있는 이 비디오의 유일한 죄악은 그것이 셰어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만 제외하면 그웬 스테파니는 건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다시 록스타가 된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사실 일회용 댄스 음악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그것은 심각해선 안 됩니다”라고 스테파니는 말한다). 그러나 위대한 록밴드는 영원하다. “우리는 늘 우리 만의 길을 걸어온 것 같아요. 우린 어디에도 속한 적이 없어요. 90년대 그런지밴드도 아니었고 걸밴드도 아니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솔로 활동을 했지만 어떤 면에선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가짜 버전 말이에요. 하지만 노다웃 안에서 저는 진짜 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