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에 도달하기 전, 젊은 날의 초상부터 그려가야 할 20대.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통해 연기자로 도약한 성준과 김영광, 두 청춘이 궁금하다.

영광, simply cool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기중은 재수 없고 멋진 남자였다. 순정을 바칠 일이 있다면 여자보다 할리 데이비슨에게 바칠 그 남자가 생양아치로 보이지 않았던 건 김영광이 지닌 듬직한 인상 때문이다. 톱모델이었던 그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에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다. 런웨이나 브라운관 밖의 김영광은 굳이 자신을 어필하려 들지 않는다. 입이 무거운 사춘기 남자처럼 군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간 큰 입술로 활짝 웃는다. 그런 김영광에게서 감지되는 건 자기가 목표한 지점까지 밀고 나갈 은근한 뚝심이다. 그가 요란하게 속사정을 내놓고 광고하지 않아도, 늘 뒤에서 진득하게 노력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든다.

기중은 어려운 남자였어요. 자유 분방하고, 결혼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는 남자였죠.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엔자기 스타일의 결혼을 하지만요. 그런 남자, 실제로 주변에 있나요?
이 드라마는 사실 제가 알고 있는 범위의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들이었어요. 주변에 결혼한 친구도 거의 없어요. 친구 둘은 아직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고.

이런 작품을 만나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아, 결혼 참 힘들겠다. 내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까?’ 결혼이 이런 거라면 별로 안 하고 싶단 생각도 했어요.

덕분에 미혼 여자로서 드라마를 통해 면역력이 좀 생긴 기분이에요. 등장인물 모두에게 대사가 많은 편이었죠?극중에서 가장 다운된 톤으로 무심하듯 얘기하는 스타일이 었어요. 긴 대사가 그런 식으로 입에 붙기까지 쉽지 않았겠어요.
힘들었어요. 많다기보다, 한 문장이 길었죠. 작가님이 좀 꼬아서 쓰는 스타일이라 주어를 자꾸 문장 뒤에다 놓더라구요. 그러면 말이 두세 줄씩 갈 때 휙 이어가야 하는데 끊기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성준 씨보다 좀더 빨리 연기를 시작했어요. 아직도 연기 연습을 하나요?
연기 선생님 안 둔 지 꽤 됐어요. 혼자 해서 나올 수 있는 연기가 있으니까요. 스스로 고민해서 나올 때 깊은 연기가 잘 나오는 느낌이에요.

영광 씨의 얼굴은 연기자로서 어떤 것 같아요?
쓸만한 것 같아요, 하하.

큰 키는 어때요? 키 큰 남자 배우치고도 많이 크잖아요. 그건 배우로서 그냥 훤칠한 외모일 뿐인가요?
어쨌든 기본적인 신체조건으로 좋게 작용하죠.

모델 출신 연기자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모두 모델 활동할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들이니 은근한 신경전도 있을 테고. 같은 회사에 소속된 성준과도 투 톱으로 드라마를 했으니 두 남자를 비교해보게 돼요.
선의로도 경쟁하려면 비슷한 시기에 다른 작품을 했어야죠. 한 작품 안에서는 서로 협동해야만 해요. 성준이는 귀여운 동생이죠.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모델 출신 배우들의 행보는 의미 있는 레퍼런스인가요?
음, 우리 모두 ‘독고다이’ 식으로 일을 많이 해서…. 넓게 보면 선배들이 길을 잘 터 놓아서 잘 될 수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보지 않았을땐 특별히 영향을 받거나 그런 건 없어요. 우리들도 하면서 후배 신경 쓸 겨를이 없고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나요?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부분이 아주 많긴 한데, 그 좋음을 느끼기 전에 피곤함을 먼저 느낄 때도 있죠. 좋은 건 항상 다 끝나고 나서 밀려와요. 하는 동안에는 귀찮고 힘들 때가 많아요.

남자 모델계에선 톱이었어요. 오늘 촬영할 때도 모델 포스가 여전히 드러나던데요? 하지만 연기자로선 아직 가야 할 길이 있죠.
모델 생활은 일반적인 사회 경험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연기 생활을 하다 보니 무시 당하고 짜증나서 가끔 열 받는 경우가 있었죠.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잘 해내서 남들보다 잘 나가야겠단 생각은 해요. 하다 보니 일이 재밌기도 하고요.

‘잘나가고 싶다’라! 그게 꿈인가요?
꿈이라고 하긴 뭐한데 그리는 바는 있어요. 저는 딴 거 없어요. 어떤 배우가 되자, 뭐가 되자, 이런 것보단 일단 내가 편해야죠. 충분히 벌어서 편안하게 사는 게 목표예요.

속된 말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빡세게’ 일해서 미래에 편하자?
근데 막상 또 그렇게 안 돼요. ‘몇 년만 굴러서 나중에 편하게 살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가까운 미래가 눈에 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 일 거예요. 우리 같은 경우는 어찌 될지 모르잖아요.

지난해 성준 씨가 독립영화 <나는 공무원이다>를 찍었다면, 영광 씨는 아주 대중적인 상업영화 <차형사>를 찍었어요. 그건 그저 각자에게 들어온 시나리오에 따른 타이밍 문제였나요?
그렇죠.‘5년 뒤엔 어떤 이미지의 배우가 돼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잡고 가진 않아요. 드라마는 꼭 미니 시리즈가 아니라 단막극이어도 좋고, 독립영화도 좋은 거 있으면 콜이에요. 할 수 있는 폭을 최대한 넓혀놓은 다음에 미친 듯이 달려도 될 거라고 생각해요.

KBS <그들이 사는 세상>이나 MBC <트리플> 같은 작품에서 작은 역으로 시작해, KBS <사랑비>, 채널A <총각네 야채가게>로 점점 비중을 넓혀갔어요. 신인에게 좋은 기회인 저녁 시트콤(MBC <볼수록 애교만점>)도 했죠. 시트콤을 하던 때와 지금의 만족도를 비교하면 어때요?
그때는 워낙 더 못하고, 더 몰랐을 때죠. 어쨌든 여전히 만족감은 별로 없어요. 이번 작품을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일단 연기를 하면서 만족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어요. 자기 연기에 만족하는 배우란 얼마 없을 거예요. 연기자가 스스로 만족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그건 좋은 태도지만, 때로는 자기 합리화가 될 수도 있겠어요. 그래도 매번 작품 들어갈 때 이번엔 끝내놓고 좀더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 않나요?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보단 남의 만족이 중요한 경우가 많죠. 전 생각보다 고지식한 편이에요.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면 안 하고.

말 없이 표현하는 모델로 잘 살아서 그런지, 영광 씨는 자신을 어필하려는 타입이 아니군요. 회사 면접 지망생이었으면 불리했을 거예요. 한 가지 명확한 이미지로 쉽게 파악되지도 않고.
평탄해 보이죠? 흐흐. 제가 좀 그런 성격이긴 해요, 굳이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나도 피해 입지 말자는. 어린 친구들 보면 어떤 자리에서 예를 들어 ‘내가 좀 웃겨야겠다’ 이런 의도가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전 편한 게 좋아요. 오버하는 것도 싫고요.

고지식한 스물일곱 살이라도 돈 많이 벌어 잘나가고 싶은 20대라면,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미리 작성해두진 않나요?
전 딱히 꽂히는 게 없어요. 인정받고 잘 되는 게 멋있는 건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타이틀 있는 남자가 멋있어 보인 적은 있어요.

이런 건 어때요? ‘난 꼭 포르쉐 타는 남자가 될 거야.’
처음 모델 일을 시작했을 땐 멋지다고 생각한 것들이 참 많았죠. 지금은 뭘 봐도 아, 좋다, 그러고 넘어가요. 다시 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어요. 해탈한 기분이에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