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존감 <1>

〈내 딸 서영이〉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이보영. 약해서 민폐 끼치는 상투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운명을 개척하고 주변을 성장시키는 타이틀 롤을 소화한 그녀, 이 아름다운 자존의 여배우를 〈보그〉가 만났다.

블랙 커팅 원피스는 구찌(Gucci),블랙 네크리스와 장미 모양 링 모두벨앤누보(Bell&Nouveau).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에요.
토요일이면 가족들이랑 앉아서 드라마를 보거든요. 그때 여기저기서 “보영이 나온다”고 전화 오고, 집안이 시끌벅적 잔칫집처럼 들썩여요. 저희 가족이 ‘재미 없으면 봐줄 수가 없다’고 꽤 냉정한 편인데, 남동생도 다음 내용이 궁금한 적은 처음이라고.(웃음)

타이틀 롤을 맡는다는 것은 여배우에게 어떤 정도의 무게로 다가오나요?
출연료를 많이 받잖아요. 아무래도 돈값은 해야죠. 어린 친구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조언도 하게 되고, 더 유난을 떨어요.

스크린보다 브라운관에 더 친밀감을 느끼죠?
저는 지구력이 없어요. 순발력은 좋은 편이죠. 그래서 드라마에 잘 어울려요. 영화처럼 깊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는 면은 부족해요.

남자들은 아직도 ‘아시아나’ 모델로 ‘어여쁜’ 이보영에 대한 로망이 있더군요.
다들 진짜 승무원인 줄 알았다고 해요. 아시아나 모델은 10년 전 데뷔하자마자 했어요.

오디션을 봤겠네요.
운이 좋았어요. 오디션 보기 전에 <노춘향 VS. 안몽룡>이란 단막극에 잠깐 출연했는데, 방송 날 비가 와서 그런지 그게 시청률이 22%로 말도 안 되게 높게 나왔어요. 아시아나 광고대행사 담당자, 지금도 기억하는데, 손 대리님이(웃음), 그걸 보고 적극 저를 밀었대요. 그즈음에 원빈, 신하균 씨랑 나오는 영화 <우리 형>도 동시에 오디션을 봤어요. 그때부터 거의 쉬지 않고 일했어요.

끝없이 부름을 받는 비결이라도 있나요?
글쎄요…, 신인 때는 사무실에서 그냥 시키는 대로 했어요. <대장금> 하셨던 이병훈 감독님 부름 받고 사극 <서동요>도 찍고… 그런데 일이 잘 되면 잘 될수록 행복하지가 않더라구요. 제가 준비된 사람이 아니어서….

어떤 준비가 필요했을까요?
연예인이 되겠다는 욕망이 없었어요. 남 입에 오르내리는 거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연기도 좋아하지 않았어요. 얼떨결에 휘몰아치듯 왔더니 감당이 안 되더라구요.

미스코리아 충남 진 출신인데, 미인대회는 자발적으로 나간 것 아닌가요?
그건 그냥 재미있는 경험이겠다 싶어서(웃음)… 제가 이래 봬도 겁이 없어요. 뭐든 기회가 되면 도전해 보려고 해요. 그때가 아니면 못하는 것은 특히… 그런데 서울 대회 나가서 떨어졌어요. 그때 김사랑 씨가 진이 됐어요. 그날 떨어진 애들은 다들 울며불며 집에 갔는데, 나는 웃으면서 끝까지 사진까지 찍고 나왔어요. 그거 떨어졌다고 울고 싶진 않더라구요.

자존심이 센 편이네요.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처럼. 혹 분하진 않았어요?
아뇨. 전 저를 꾸밀 줄 몰랐어요. 머리도 할 줄 몰라서 정수리에 부분 가발을 붙였는 걸요.(웃음)

예쁜 줄은 알지만, 예뻐 보이는 데는 큰 관심이 없군요. 단아한 첫사랑의 이미지를 넘어서 당신이 갖고 싶어 하는 배우로서의 어떤 목표가 있나요?
더 이상 첫사랑이 될 수 없는 나이가 되다 보니, 이제야 제 경쟁력을 생각하게 돼요. 아! 연기를 잘 해야겠구나. 저는 제가 깨달아야 발전이 와요. 새벽 2~6시까지 CF 찍고, 아침 9시에 촬영장에 가야 할 땐 저는 연기를 ‘해주는’ 걸로 생각했죠. 그래서 누가 나한테 요구하는 게 화가 나고 이상했어요.

신인 때부터 연기력은 안정돼 보였어요. 절박감이나 장악력은 없었지만.
그게 문제였어요. 저는 적어도 캐릭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하고 연기했어요. 발음도 정확한 편이라 혼이 안 났죠. 그래서 발전도 없고 재미도 없었던가 봐요. 바닥도 쳐봐야 했었는데….

좀 교만했었군요.
교만하진 않았어요. 까칠했지. 뭘 찍을지도 모르는 현장에 나를 데려다 놓으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때는 다들 나를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이 있었어요. 회사에도 화가 많이 났어요. 일은 쉼 없이 하는데, 밥도 비싼 거 못 먹게 하면, 사람이 유치해지고 서러워져요.

지금은 괜찮아요?
회사 나와서 독립했다가 다시 좋은 파트너를 만났어요. 저는 주고받는 것도 확실하고, 할 말도 다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연예계 생활이 힘들었어요. 누가 나한테 함부로 하면 저는 조근조근 따져요. 친밀한 건 좋지만 그걸로 기선 제압하려는 건 싫어요. 대접을 바라는 게 아니라 존중 받으며 일하고 싶은데, 이 세계가 그러질 못해요. 나는 해명이나 사과를 원하는데, 상대는 “보영이 예쁘다 예쁘다~” 이렇게 나오면 나를 저렇게 단순화해버리나 싶어서 화가 나죠. 지금은 좋아요. 존중받으면서 일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