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명 여성의 이야기 <1>

〈보그 코리아〉가 200호를 맞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동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120인을 선정했다. 장미희부터 김연아까지, 장한나부터 심수봉까지. 그것은 세대를 초월하고, 업적을 초월하고, 장르를 초월한 〈보그〉안에서의 여성들의 우아한 앙상블이라고 할 수 있다. 17년간 〈보그 코리아〉에 등장했던 수많은 여성 가운데, 용기와 인내와 설렘으로 자기 삶을 살아낸 이 매혹적인 여성들은 오로지 〈보그〉만의 감식안과 편애를 기준으로 선정되었다. 이들 중엔 이미 머나먼 미래로 떠난 사람도 있고, 현재 더 눈부시게 꽃을 피운 사람도 있다. 정치인부터 무용수까지, 배우부터 저널리스트까지… 120명 여성의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이 부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자부심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1 우리 시대 모던 레이디, 장미희
장미희는 신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독창적인 ‘피조물’이다. 전성기 시절 장미희가 출연한 영화 <깊고 푸른 밤>은 이민자들의 불안이 모던한 푸른빛으로 흐르는 최초의 해외 올로케이션 영화였고, <황진이>는 세계 속으로 나가는 한국 영화의 개척자였다. ‘옛날’ 여배우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는 현대미술의 지적인 ‘컬렉터’로 <보그>에 그 첫 존재감을 과시했다. <보그>와의 두 번째 작업 파트너로 동물원 ‘라마’를 선택하는 모던한 판타지를 가진 여자, <보그> 스토리 화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 역할로 은발 머리를 휘날리며 외롭게 붉은 스테이크를 썰던 여자, 데리다의 해체 철학을 탐구하면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아방가르드를 입고, 노마드족의 출현을 숙고하며 드리스 반 노튼의 옷을 생활 속에 받아들이는 여자, 그녀가 우리 시대의 모던 레이디, 장미희다. 언젠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보그>가 뭐지요?” 그녀가 조명이 눈부신 듯 핸드백 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끼면서 말했다. “<보그>는 클래식입니다. 동시에 트렌드지요. <라이프>지가 전쟁과 역사를 다룬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보그>는 정중하게 패션을 다룹니다. 동시에 <보그>는 판타지입니다. <보그>의 악마는 언제나 넥스트 판타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고갈되기 전에 삶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겁니다.” 장미희는 여성으로서, 영화인으로서, 패셔니스타로서 게으르지 않았다. 목표가 있을 때마다 전력투구했고,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미련할 때까지 인내했다. 황진이와 윤심덕(<사의 찬미>)을 살았고, 한 여성 예인으로 곧추섰던 그녀들처럼 오십이 넘은 지금도 전혜린과 나혜석에 대한 연기적 열망을 버리지 않는다. 전성기 시절엔 가슴의 불꽃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머리의 불꽃으로 산다.

2 여배우라는 행동철학자, 이미숙
이미숙처럼 유머러스하게 히스테릭한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배우는 점점 만들어지고 있고, 그래서 어쩌면 점점 더 배우는 사라지고 있다고, ‘잔다르크’처럼 배우의 갑옷과 칼과 휘장이 필요하다고 연설하는 여배우 웅변대회의 그랑프리 수상자 같은 이미숙.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눈물짓던 <겨울 나그네>의 이미숙이나 6.25전쟁을 오뚝이처럼 살아냈던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이미숙이나 <정사>의 가슴에이는 불륜, <스캔들>의 요부까지 이미숙이라는 드라마는 끝이 없다. 이미숙은 연기를 할 때도, 일상에서도 상대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직시한다. 오십이 넘은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재미있고 신랄하며 강렬하다. “나는 한 번도 화려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욕망이 늘 나를 화려하게 해. 한 치의 긴장도 늦출 수가 없어.” 쾌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연기를 하는 건 패륜이라는 듯.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고결하며 위대한 종족이 여배우이며, 그녀는 여배우의 순결한 피를 유지하기 위해 50년째 전쟁 중이다. 그녀는 예순이 넘어서도 도자기처럼 희고 탄력 있는 가슴과 엉덩이로 우아한 베드 신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는 말이지 남자를 그렇게 존경하지는 않아. 때로는 남자라는 존재에 의해 내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한계에 부딪힐 거라는 걸 알아. 내가 받는 고통보다 상대가 받는 고통이 더 클 거야. 그보다 여배우이고 싶은 욕망이 크고, 여자이고 싶어서 질투가 많아. 그래서 나는 노화라는 암과 싸우고 있어. 여자라는 타이틀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방사선 화학 치료도 거부하고 아날로그로 투병 생활을 하는 환자라고.” 스스로 여배우라는 아름다운 행동철학자에게 사로잡힌 꾸밈없고 순진한 이상주의자, 이미숙.

3 여배우, 그 순수 혈통의 시작, 김지미
우리 시대 영화계에서는 다시 없을 여왕이자 여걸, ‘스타’를 인식시킨 최초의 여배우 김지미. 한국 영화사의 부흥기와 전성기, 역동적인 스크린쿼터 파동과 르네상스를 관통하며 여배우로서, 제작자로서 드라마틱한 74년 인생을 살아온 그녀는 한국 여배우라는 로열패밀리, 그 순수 혈통의 시작이다. 김지미는 미모와 스캔들(감독 홍성기,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이종기 의학박사와의 결혼과 이혼)이라는 양날의 칼을 쥔 파격적인 행보 속에서도 인기를 유지한 채 성좌의 자리를 지켰고, 배우로서 온몸으로 부딪쳐 리얼리즘적인 연기를 했다. <황혼열차>로 시작해, <토지><을화> <티켓> <길소뜸>을 거쳐 광물성의 저음으로 잡초처럼 세상을 떠도는 <명자, 아끼꼬, 쏘냐>에 출연한 것이 700여 편 필모그래피의 마지막이었다. 2010년 가을의 어느 날, 김지미의 <보그> 촬영을 위해 장미희가 파트너로 동행했다. 사자와 호랑이의 만남을 예상했지만, 모성애가 강한 개와 살가운 고양이의 만남 같았다. 한국영화계 최고의 여걸이었지만 그녀는 조금도 권위적이지 않았다. 담배 한 대 피울 때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과 영화에 대해 회고할 때는 단호했다. “사랑이란 뭐냐? 흰 종이야. 거기다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라구. 장미꽃을 그렸다가 시들면 없어지고, 다시 들꽃을 그리는 거지. 나는 특이한 성격이에요. 나는 끝까지 가버린다구. 어떻게든 그 사랑을 완성해야 하니까. 그게 대담한 스캔들이 되는 거지. 나는 내 사랑에 자신만만했어. 사람들은 어떤면에선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는가 봐요. 한국 영화 100년이면 내가 50년을 버텼어요. 언제나 대중들 곁에 있었다구.” 부산영화제가 그녀를 ‘리스펙트’하는 성대한 회고전을 열었을 때, 김지미는 여왕처럼 의자에 앉아 이제껏 그녀와 함께했던 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 조명 기사까지 모두 무대에 세워 감사를 표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분들은 저를 위해 희생해주신 분들입니다. 나를 아름답게 가꿔주신 촬영감독들입니다. 기다려준 나의 동료들입니다… 내가 겹치기 출연할 때 함께 싸우던 분들입니다… 여러분, 이분들을 위해 박수를 부탁 드립니다.” 그녀는 지금 LA에서 가족들과 찬란한 노후를 즐기고 있다.

4 흐르는 강물 같은 여자, 김희애
차돌에 참기름 바른 것처럼 찰지고 단단한 여자, 김희애. 아직도 김희애를 생각하면 <아들과 딸>의 ‘후남이’가 떠오른다. 겨울 사과처럼 풋풋한 얼굴로 억척스럽게 운명을 개척하던 브라운관 속의 20대 김희애. 30대가 훌쩍 넘어서 김희애는 드라마 작가 김수현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한동안 김수현의 페르소나로 그녀는 진폭이 큰 여자의 일생을 살았다. <완전한 사랑>에서는 가족을 두고 병들어 가는 아내였고,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지고지순한 며느리였고,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친구의 남편을 빼앗는 뻔뻔한 여자였다. 그녀는 익숙한 걸 거부하지 않았고, 흐르는 강물같은 관습적인 인생을 살았다. TV 연기자로 충분히 자족하며 영화 예술에 대한 거창한 야망도 없다. “성질 급한 나는, 예술 한다고 반나절을 조명만 기다리는 영화 현장보다, 감정 잡을 때 빨리 캐치해주는 방송 카메라가 고맙기만 해요, 지금도.” 방송 대본을 들고 대사를 표현할 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야 할 때, 그녀는 매 순간 어색함을 이기고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 잘 늙어가는 것이 미모이고, 최선을 다한 후 박수 받는 일이 명예라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아름다운 중년, 김희애.

5 지금 이순간 몰입, 김여진
김여진이라는 이상한 배우가 한국 사회에 불시착했다.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발언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여배우. 그녀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캐스팅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녀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역’이 아니었던 적 또한 한 번도 없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에서 그녀는 짧지만 잡초처럼 생명력 넘치고 울창한 연기를 보여줬다. 장악력이 크고 짱짱한 에너지가 돋보이는 여배우 김여진. 그녀는 요즘 트위터의 소셜테이너로, 현실 정치 세계의 ‘어른’으로 열연 중이다. 2013년,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뜨겁게 존재하고 있는 이 여배우가 언젠가 꼭 하고 싶은 배역은 ‘세기의 미친년’이다.

6 장식 없는 육체파 배우, 문소리
배우로서 그녀는 과도한 장식을 죄악으로 여긴다. 이창동 감독 <박하사탕>의 들꽃 같은 첫사랑 여인으로 영화계에 등장한 문소리. 온몸을 비트는 뇌성마비 환자를 연기한 <오아시스>로 데뷔 초, 일찌감치 베니스영화제 신인 여우상을 탄 대한민국 대표 명배우다. 다양한 영화적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을 다해 리얼리티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리고 즐겁거나 고통스럽거나 배우는 인간을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 연기를 잘할 수 있도록 타고난 사람도 아니에요. 감수성과 예민함으로 버티면서 아주 조금씩 만들어갈 뿐인 걸요? 그런 면에서 배우는 순진하지도 순수하지도 않아요. 배우는 사악하죠. 그런데 배우보다 더 사악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감독이에요. 그 사악한 감독들의 비위를 맞추다 보니 남자에게 맞출 시간도 놓쳐버렸다니까요. 하하.” 확실히 문소리는 감독의 난해하고 변덕스러운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 매번 고통스럽게 스스로를 재부팅시켜 왔다. 그리고 그 행복한 결론으로 ‘천재적인’ 영화감독인 장준환과 결혼했다. 현재 세 살짜리 딸아이의 엄마로 배우 인생 2라운드를 열어가는 중이다.

7 언제나 아름다운 생존자, 김윤진
김윤진은 융통성이 없는 여자다. <쉬리>의 여전사 ‘이방희’처럼 목표를 향해 폭파 직전까지 돌진하는 ‘돌직구’ 스타일이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거물 프로듀서 JJ 에이브럼에게 발탁돼 ABC 방송국의 서바이벌 드라마 <로스트>의 마지막 생존자로 6년을 살았다. 그녀가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좌우로 재지 않고 직진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연기 선은 굵고, 그녀의 육체는 여린 듯 파워풀하며, 그녀의 중저음 목소리는 탄탄한 긴장을 조성한다. 김윤진은 그래서 ‘여전사 아니면 여전사 같은 강한 어머니’를 주로 연기한다. 만약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영화로 제작된다면, 여주인공 아오마메 역할은 김윤진의 몫이다. 군더더기 없는 성격에 쿨하게 육체를 사용하는 캐릭터, 게다가 섹스 없는 임신까지. 하지만 리얼리티 세계에서 그녀는 이제 엄마가 되기를 소망한다.

8 천부적으로 반짝이는 글래머, 김혜수
결혼한 김혜수를 상상할 수 있는가? 웨딩 드레스를 입은 김혜수가 머리에 그려지는가? 섹슈얼한 룩이 오히려 김혜수에겐 안전장치다. 김혜수는 지나치리만큼 도발적이고 상상 이상으로 순진하다. 그런 김혜수가 사랑에 빠지는 부류는 아티스트다. 뭉크, 앤디 워홀, 듀안 마이클, 칼 라거펠트, 퍼프 대디, 스웨이, 빔 반데부르스키… (예술에 편견이 없는 그녀는 뮤지컬 <헤드윅>의 트랜스젠더 역할까지 탐냈을 정도). 김혜수가 ‘천재적으로 반짝이는’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반면, 대한민국의 영화감독들은 ‘천부적으로 반짝이는’ 글래머 김혜수를 사랑한다. 배우로서 김혜수가 가장 김혜수다웠던 건 <얼굴 없는 미녀>부터였다. <얼굴 없는 미녀>에서 그녀는 사자처럼 부풀린 머리에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정신병원의 네온 계단을 또각또각 오르내린다. 그녀에게 진짜 ‘얼굴’을 찾아준 사람은 <타짜>와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이다. 최동훈 감독에게 김혜수는 ‘동양의 모니카 벨루치’였다. 여전히 김혜수는 중간이 없는 극적인 삶을 산다. “전 그 중간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큰데, 눈에 보이는 김혜수는 언제나 극단이죠.” 김혜수는 여전히 파격적인 뉴스메이커다. 그녀가 가슴골이 다 보이는 드레스를 입을 때도, 유해진이라는 남자와 사귈 때도, 시사 다큐멘터리 ‘W’를 진행할 때도, 자연스럽게 팜므파탈을 연기할 때도. 김혜수는 40대가 된 지금에서야 찬란한 영화 전성기를 누린다.



9 청순한 파이터, 강혜정
강혜정이 출연한 〈올드보이〉는 영화계에 영원토록 보물로 남을 영화 중 하나다. 창조적 영감과 세심한 기교로 가득한 이 작품은 원죄와 복수에 대한 영화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섹스에 대한 영화다. 감독 박찬욱의 세련된 냉소주의가 섹스라는 요소와 비밀리에 손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해요, 아저씨!” 죽고 죽이는 근친과 복수의 알레고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순수한’ 승자는 강혜정이다. 강혜정은 신랄하고 위협적이며 공격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배우다(물 속에서 아이를 낳던 데뷔작 〈나비>에서부터 〈올드보이〉와 〈연애의 목적>의 불건전하고 신랄한 베드 신을 떠올려보라!). 마치 백만 볼트와 제로 볼트의 감성과 지능을 오가는 트랜스처럼, 폭발적인 전압에서 순식간에 일곱 살 지능의 여자 아이(<허브〉), 완전한 백치 상태(<웰컴 투 동막골〉)까지 스스로를 방전시킬 수 있는 여자다. 남자의 몸 위에 올라타 섹스할 줄 아는 여자의 세상과 남한군과 북한군도 구분 못하는 소녀의 세상은 서로에게 별천지다. 대부분 남성인 영화감독들은 여성을 목표, 전리품, 숙적, 연인, 친구로만 바라봤다. 그러나 강혜정이 출연한 영화들은 그녀가 영화의 핵심 인물임을 잘 보여준다. 강혜정은 한 번도 대놓고 성적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여성을 연기한 적이 없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남녀 관계에서 ‘파이터’ 기질을 발휘했다. 그런 강혜정이 타블로와 결혼 후 스스로가 청순하다고 믿는다. 영화적 성취만큼이나 가정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집단, 구속, 익명의 대중 대신 가족, 신랑, 이웃집 아줌마들을 더 사랑하는 귀여운 보헤미안. 땅에 발 디딘 독특함으로 배우 인생 두 번째 그라운드를 시작한 강혜정이다.

10 우윳빛 커튼 너머의 그림, 심은하
안개 낀 유리문 뒤에 서있다가 갑작스럽게 기차를 타고 떠나버린 것 같은 심은하. 심은하는 그녀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에 대한 명성보다 그녀 자신이 누구인가, 때문에 기억되고 재생산된다. 여백이 많은 얼굴에 비음 섞인 처연한 목소리까지, 그녀는 그 자체로 타고난 예술 작품이었다. “당신, 부숴버릴 거야!” <청춘의 덫>에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리칠 때도, 영화 <인터뷰>에서 물끄러미 센 강을 쳐다볼 때도,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제복을 입고 주차위반 딱지를 뗄 때도, 심은하는 우윳빛 커튼 너머에 있는 그림처럼 아련했다. 그리고 그녀는 결혼 후 액자 너머로 사라졌다. 아니 반대로 그녀 자신이 그리는 동양화처럼, 스스로를 액자 속의 작품으로 응고시키면서 대중과 ‘신비화’의 룰을 유지해왔다. 앞으로도 심은하는 영원히 대중을 애달프게 만드는 제2의 ‘정윤희’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백만 분의 일의 가능성으로 심은하가 컴백한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의 멜로가 되길 바란다.

11 순수한 서정, 신세경
어쩌면 모든 배우는 아역일 때 가장 위대한 연기를 한다. 깨끗하게 빈 채로 무엇이든 담겨지길 기다리는 비커처럼. 신세경은 드라마 <토지>에서 서희의 아역으로 등장했다. 그녀의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순수한 서정’을 유지한다는 데 있다. 신세경을 보면 문근영이 생각난다. 아니, 이젠 그 반대다.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 나온 문근영을 보면 <패션왕>에 나왔던 신세경이 생각나니까. 어쨌든 신세경은 이젠 좀더 분명한 자아 선언을 해야 할 때다. 말없이 주어진 배역을 맡는 게 배우라지만, 배역을 통해 자신을 설명해내는 것도 배우다. 시트콤<지붕 뚫고 하이킥>의 가련한 식모, 영화 <푸른 소금>의 거친 킬러,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실어증에 걸린 궁녀와 항공영화 까지, 신세경이 우리에게 보여준 건 아직까진 페이소스라기보다 ‘겸손한’ 애티튜드다.

12 고소영이라는 ‘트루먼 쇼’
고소영의 직업은 고소영이다. 많은 배우들이 ‘직업 연기자’를 앞세우며 캐릭터 뒤로 숨는 반면, 고소영은 거의 유일하게 그녀 자신이 캐릭터인 경우다. 대중들은 마치 CF 드라마를 보듯 고소영이라는 여자의 삶을 구경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녀가 <트루먼 쇼>의 주인공과 다른 점은 그녀 자신이 그걸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장동건의 아내가 된 후 그녀의 캐릭터는 더욱 개연성 넘치고 풍부해졌다.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 고현정의 동생으로 나와, 책임감 강한 맏이였던 고현정과 달리 제멋대로 신나게 제 인생을 살았던 고소영. 영화 <이중간첩>에서 연기했던 이중간첩 ‘수미’가 거의 유일하게 고소영답지 않게 진지하고 중의적인 캐릭터였다.

13 언제나 동화처럼, 최지우
<겨울연가>로 90년대 ‘한류 스타’의 면류관을 쓴 최지우.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 그녀는 외모만으로도 타고났다. 그건 김희선이 나 황신혜처럼 자로 잰 듯 황홀한 비례를 이뤘다거나, 심은하나 이영애처럼 여운이 많아 더 애가 닳는 그런 미모가 아니다. 여고 시절 점심 시간에 학교에서 가장 예쁜 아이를 몰래 보러 갔을 때의 그런 친밀한 경외감을 준다고나 할까. ‘지우 히메’라는 별명처럼 그녀는 타고난 공주다. 최지우는 거친 리얼리즘 세계 속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내고 싶은 팅커벨 같은 존재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그녀의 동화적인 삶이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절로 든다.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의 아침>의 오드리 헵번이 영원하듯, <겨울연가>와 <스타의 연인>에서의 최지우가 아직은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

14 스스로를 풍자하는 불세출의 연예인, 고현정
고현정은 ‘케미스트리’가 특별한 사람이다. 안방극장에서는 <선덕여왕>과 <대물>이라는 상투적인 ‘폼’ 안에 들어가 대중들이 원하는 ‘여왕놀이’를 즐겼고, 야외극장에서는 홍상수의 나른한 영화와 페이크 다큐멘터리<여배우들> 속에 몸을 던져 스스로를 풍자했다. ‘정수리 쇼’라는 일부 악평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의 토크쇼 ‘GOshow’는 한 여배우가 온몸으로 열연한 리얼리티쇼였다. 냉정한 자기 객관화와 함께 개인을 대중 속에 존재시키는 잔다르크 스타일의 직업 정신을 바탕으로!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전생에 용기가 넘쳤던 ‘켈트족 전사’다. 미인 대회의 소비상품으로 세상에 나와, 현대사의 비극을 관통한 <모래시계>의 비장한 여자로 키워지고, 재벌가의 초호화 며느리 직을 사퇴할 때까지. 그녀는 공인으로서 우리가 적당히 짐작해야 할 부분과 자연인으로 웃고 떠들어도 될 부분을 현명하게 조절했다.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대중과 함께 동경, 연민, 카타르시스라는 세 개의 클라이맥스가 있는 롤러코스터를 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불세출의 연예인인 이유다.

15 영화계의 시지프스, 전도연
전도연은 한 번도 액자 속으로 들어가 신화 속의 인물이 된 적이 없다. 그녀는 영화 <밀양>으로 제6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라는 자신의 시지프스적인 노동에 응당한 대가를 누렸을 뿐이다. 그것은 전 세계 영화기자가 인정한(어떤 외국 평론가는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지 않는다면 영화제 단상에 뛰어올라가 난동을 부리겠다고까지 했다) 고결한 노동으로, <타임>이나 <이브닝 스탠더드>는 ‘칸 영화제를 빛낼 열정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는 여배우, 황금종려상을 능가할 여우 주연상’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녀는 어느 순간 스스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규정했던 ‘여배우의 순애보’에서 멜로 여왕의 눈물의 왕관을 벗었다. 순정 소녀 같은 역할을 연기했던 <접속>의 시대가 끝나고, 불륜에 빠진 전문직 여성(<해피엔드>), 잡초 같은 생존자(<피도 눈물도 없이>), 에이즈에 걸린 매춘부(<너는 내 운명>), 자존심 강한 과부(<밀양>)를 연기하는 동안 전도연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졌다. 결혼 후 출연한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전도연의,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 영화였다. 팬시하고 도발적이지만, 사랑받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전도연.

16 마돈나를 넘어서, 엄정화
작년에 개봉한 영화 <댄싱퀸>은 엄정화 스스로에 대한 패러디이자 오마주였다. 왕년에 댄싱퀸이었던 여자가 중년에 다시 댄스 가수에 도전한다는 스토리는, 그 주인공이 엄정화였기 때문에 생생했다. 엄정화는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유하 감독의 영화로 데뷔했지만, 흥행 참패 후 ‘여배우’보다 ‘가수’의 이름으로 뿌리내렸다. 그녀는 트렌드의 전방에 선 ‘게이’들이 가장 추종하는 ‘마초적 여걸’이었고, 패션 피플들이 인정하는 스타일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사이키 조명 아래 여신으로 절정을 이룬 그순간, 엄정화는 계단을 내려와 영화라는 거친 갯벌로 걸어갔다. 무대 위의 엄정화는 카멜레온이 울고 갈 정도로 변화무쌍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당대의 디바, 정열의 엔터테이너지만 카메라 앞에 서면 내추럴한 여배우가 된다.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부터 힘 센 스릴러까지, 그녀의 연기 폭은 무한대다. 어쩌면 엄정화는 그녀가 그토록 경외하는 ‘마돈나’를 진작에 뛰어넘었는지도 모른다.



17 서구적인 미인의 시작, 황신혜
그녀라면 진짜 집에서 거울을 보고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물을 법하다. ‘컴퓨터 미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세상에 나왔고 아직도 그 타이틀이 썩 잘 어울리는 황신혜. 미인의 계보도로 보자면 서구적인 미인의 시작점에 그녀가 있다. 헬스로 단련된 날씬한 다갈색 몸, 실크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 얼굴 살이 빠져서 더 커 보이는 눈… 드라마에서 그렇듯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악다구니를 부릴 때의 차갑고 표독스럽고 냉담한 표정은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80년대 배창호 감독의 <우리 기쁜 젊은 날>이나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에서 작가주의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는 ‘홀연한’ 존재였고, 90년대 TV드라마 <애인>과 <위기의 남자>에서는 식어버린 유부남들의 가슴에 다시 불을 지핀 매혹적인 중년 여자였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초연하거나 그것을 지겨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시키고 싶어 하는 황신혜.

18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영화 <마더>에서 엄마 김혜자는 아들 원빈에게 말한다. “너는 나야.” 이토록 불가해하고 순정한 대사를 내뱉을 수 있는 여배우가 대한민국에 누가 있을 수 있나. 빤히 쳐다보면 홀린 듯이 빨려 들어가는 김혜자의 순진하고 히스테릭하며 불꽃 같은 눈. 그 눈에 이 영화의 핵심이 있다고 봉준호 감독은 말했다. 영화 초입, 거친 들판에서 추는 김혜자의 신들린 듯한 춤과 엔딩에서 황혼 녘 관광버스 안에서 추는 막춤은 또 어떤가. 영화 <만추>에서 탕웨이가 맡은 그 역할을 연기했던 우아한 멜로 배우였던 김혜자가, 한동안 광고에서 ‘고향의 맛’으로 신뢰받는 무성의 인자한 국민 엄마로 사랑받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듯 괴물 같은 모성 에너지를 드러냈다. 일흔이 넘은 김혜자는 여전히 월드비전 홍보대사고, 아프리카 아이들을 돌보며 쓴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는 그녀의 여리고 따스한 감성이 녹아 있으니, 배우의 피와 인간의 피의 온도는 이렇게 다르다.

19 김희선의 장밋빛 인생
90년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통통튀는 막내로 얼굴을 알린 김희선. 김희선은 송혜교와 김태희와 전지현이라는 미녀 트로이카 이전에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절대 미녀였다. 송혜교의 둥근 이마와 김태희의 또렷한 콧날, 전지현의 긴 팔다리에, 필터링이 없을 정도로 솔직하고 분방한 성격을 지녔다. 과거 김희선은 스필버그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오디션 제안을 받았었다. 그녀가 <게이샤의 추억>에 나왔더라면, 장쯔이가 아닌 김희선이 할리우드에서 사랑을 받았을까. 프랑스의 유명한 패션 사진가 파올로 로베르시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테판 마레, 헤어 아티스트 줄리앙 디스와 사진집 ‘Marvelously Kim Hee Sun’를 작업한 첫 한국 여배우. 싱그럽게 압도하는 듯한 에너지와 신비로운 미모는 결혼과 출산 후 훨씬 부드럽고 현실적으로 여인의 것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장밋빛 인생을 사는 김희선.

20 코믹한 철학자 같은, 김수미
그녀는 코믹 연기의 대가다. 예순이 넘은 대한민국 여배우 중 김수미처럼 코믹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은 없다. <1박2일>의 ‘여배우 편’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김수미라는 무게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녀 앞에선 남녀노소 불구하고 하룻강아지처럼 온순해지는 걸까. 그녀에게는 육체적 나이를 능가하는 달관의 힘이 있다. 한때 <전원일기>의 ‘일용 엄니’였던 그녀가 점점 더 활동 영역을 넓혀 지금은 예능 버라이어티와 영화계에서 액티브한 에너지를 떨치고 있다.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괴팍한 흡혈귀를 연기할 때나,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조폭 대모를 연기할 때나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치매 걸린 할머니를 연기할 때나 김수미의 힘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품위’와 ‘부드러움’이다. 그게 음식으로 남을 두루 섬겨온 사람의 미덕인지, 독서로 오랫동안 자기 관리를 해온 사람의 품성인지 알 수 없지만. 새로 시작한 드라마 <돈의 화신>에서 엄청난 기를 뿜어내고 있는 김수미.

21 내 누이 같은 여배우, 최진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진하듯 배우로 사는 일은 불안과 싸우는 일이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니까요!”라는 새침한 광고 한 편으로 스타가 된 최진실. 그녀를 띄워준 광고 카피와는 정반대로 결혼 이후 최진실의 삶은 사건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똑순이’ 스타에서 정상에 오르고,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위로 받았기에, 최진실의 죽음은 아직도 전 국민적인 트라우마다. 어쨌든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한 뒤 최진실은 국민들에겐 오뚝이였고, 배우들에겐 워너비였으니까. 가난하지만 따뜻한 과거를 추억하듯 가끔은 최진실이 출연했던 드라마(<장미와 콩나물> <그대 그리고 나> <별은 내 가슴에>)를 보며 주말을 보내던 90년대를 떠올린다. ‘우리 가족 중에 저렇게 억척스럽고 귀여운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기대를 품게 했던, ‘내 누이 같은 여배우’ 최진실.

22 영화계의 퍼스트레이디, 강수연
그 자신의 것이라기보다는 스크린의 통역자 같은 삶을 살아온 강수연. 미숙과 과숙 사이에서 모던한 열정을 유지했던, 이름만으로 ‘레이블’이 되었던 우리 시대 최초의 월드 스타. 붉은 입술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스무 살의 그녀가 <씨받이> 과부촌의 들판을 종마처럼 뛰어다니던 장면을 떠올려보라. 반대로 임권택 감독의 드라이한 종교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에서 파랗게 머리를 밀고 인광이 일렁이던 비구니 강수연은 한 덩이의 처연한 바위처럼 보였다. 1987년 <씨받이>로 그녀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었던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단이나, 1989년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던 모스크바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이 극단적인 ‘육체성’이 어떻게 한 여배우에게서 나왔는지 늦게라도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 매니지먼트의 손때가 묻지 않은 채, 감독이 채굴하는 대로 인심 좋게 원석을 드러내며, 제 나름의 현대적인 낙천성을 온몸으로 퍼덕이던 강수연. 그렇게 강수연의 육체는 여전히 불가사의한데, 스크린에선 점점 더 그녀를 볼 수 없다. 안성기, 박중훈과 함께 부산 영화제를 대표하는 퍼스트레이디일 뿐인 게 아쉽다.

23 엄마의 바다, 고두심
영국 같으면 고두심 같은 배우에게 작위를 줘야 한다. 고두심이 <전원일기>에 묶여버린 세월이 22년이다. 웃어른 공경하고 아랫사람 살뜰하게 보살피는 넉넉한 ‘맏며느릿감’으로 22년을 묶여 있는 동안, 그 좋아하는 담배도 맘껏 피우지 못했다고 언젠가 고두심이 말했다. 낮고 굵은 보이스 덕에 일찍부터 노역을 해왔지만,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어머니의 모습은 ‘꽃보다 아름다운’ 그것이었다. 여전히 고두심은 엄마의 선한 목소리를 등대 삼아 바다를 항해하다, 뭍으로 나가 ‘나, 여자예요’라는 마음의 불을 지르고, 나이 오십이 넘어 다시 엄마의 바다로 돌아왔다. “언젠가 엄마하고 바닷가에 손 잡고 가다가 내가 엄마한테 그랬어. “엄마, 우리가 죽어서 환생하면 내가 엄마 몸 빌어서 태어날게. 엄마는, 엄마는 이 생에서 힘들었으니까 내 딸로 태어나라, 그러면 내가 엄마한테 진 빚 갚을게. 내가 자식 낳고, 배우 일 하면서 살아봤지만, 세상살이에서 가장 고달픈 게 엄마 역할이더라.”

24 주저하는 신비, 신민아
오리지널 ‘베이비 글래머’라고 할 수 있는 신민아는 여배우로서 아직까지도 미개척의 원시림이다. 이나영처럼 대중이 파악하기 ‘어려운’ 배우도 아니고, 송혜교처럼 사랑과 질투를 동시에 받는 ‘거물’도 아니며, 김민희처럼 ‘롤리타’의 옷을 벗으려 들지도 않고, 수지처럼 ‘첫사랑’의 색깔이 분명한 소녀도 아니다. 그녀는 화보 비주얼에서는 그 누구보다 강한 여자 냄새를 피우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아직도 ‘나, 여자예요’라는 강력한 선언을 한 적이 없다. 도리어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사랑스러운 유아성을 드러낸 채. 어쩌면 그렇게 ‘주저하는 신비’ 그 자체가 신민아일지도 모른다. 모든 판단을 유보시키는 마력을 지닌 여자 아이, 그래서 남녀노소 모두가 신민아를 좋아한다. 페넬로페 크루즈의 작은 두상과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진 신민아. 문득 선도 악도 모호하지만, 오로지 ‘돌이킬 수 없다’는 이병헌의 절박한 스펙터클이 화면의 리듬을 장악했던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 기억난다. 오롯이 가장 느린 화면으로 첼로를 켜는 무심한 소녀 신민아야말로 대중이 원하는 신민아가 아닐까.



25 미니멀한 연기 아티스트, 배두나
워쇼스키 감독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오픈됐을 때 <더 뉴요커>는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배두나의 연기를 호평했다. 배두나는 박찬욱(<복수는 나의 것>)과 봉준호(<괴물>)의 사랑을 받아온, 대한민국에서 가장 미니멀한 여배우다. 어쩌면 한국의 틸다 스윈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복제될 수 없는 DNA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해외 작가주의 감독들에 의해 인형(<공기인형>)이나 사이보그(<클라우드 아틀라스>) 같은 역할에 주로 캐스팅됐다. 영화 <코리아>를 보면 배두나의 미니멀한 파워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스포츠와 국가주의와 남북한이 통합된 ‘신파’의 결정판이 될 뻔한이 영화에서 무언가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조바심을 내는 배우와, 묵묵히 있어도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배우의 신체 에너지는 뚜렷이 구별된다. 신념은 있지만 편견은 없는 배두나, 승부 근성은 있지만 승부욕은 없는 배두나, 그리하여 ‘공존의 기쁨’과 ‘고독의 능력’을 동시에 손에 쥔 이 낙천주의적 배우가 놀라울 뿐이다.

26 다시 없을 명성황후, 이미연
“내가 조선의 국모다!” 대한민국에 ‘명성황후’는 오직 한 사람, 이미연이다. 이미연처럼 그 삶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솔직하며, 배포가 크고 용기 있는 여배우는 고현정을 제외하고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둘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이며, 동갑내기 친구다). 그래서 ‘미실’ 고현정과 ‘명성황후’ 이미연이 함께 출연하는 작품이 기획된다면, 진정한 여왕의 진검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연은 1987년<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하이틴 스타가 됐고, 그때부터 20년간 대중들의 관심 속에 있었다. ‘여자 최민수’라는 별명답게 이미연에게는 ‘불꽃 같은’ 어떤 지점이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며, 결혼과 이혼이라는 여성으로서의 통과제의를 누구보다 통렬하게 지나왔고, 그럼에도 사랑을 믿는 멜로적인 감수성이 풍부하다. 몇 년 전 플랜코리아의 주선으로 <보그>와 함께 네팔에 가서 현지의 고통 받는 소녀들을 만나고 위로했는데, 어느 신문의 오보와는 달리 그 큰 눈이 매 순간 사랑과 연민의 눈물로 가득 차곤 했었다. 그녀는 언제라도 명성황후가 될 수 있는 그런 배우다.

27 스스로 빛나는 보석, 이영애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미미한 손동작 하나까지 그림이 되었던 심은하의 부재 속에서 이영애는 대중들에게 또 한번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탄식을 안겨주었다. <청춘의 덫>과 <8월의 크리스마스> 시절은 가고, <불꽃>과 <봄날은 간다>의 시절이 온 것이다. 비정한 숙명 뒤에 숨어서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투명한 자의식을 열어 보이는, 쌍둥이 엄마가 된 이영애. 그녀가 거울 앞에서 자세를 바꿀 때면 반은 아이 같고, 반은 요부 같다. 누에고치에서 갓 나온 명주실들이 저희들끼리 바람결에 부비며 내는 것만 같은 가늘고 청결한 보이스, 그 ‘현의 노래’ 같은 목소리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조에서 장조로, 장조에서 단조로 오랫동안 오고갔다. <봄날은 간다>를 연출했던 허진호 감독이 그랬다. 이영애의 연기를 보는 건 감독으로서 참 재밌는 경험이라고. 자기가 연기한 걸 모르고 “제가 그랬어요?” 하는 식.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파면 팔수록 더 새로운 디테일을 보여주는 그 미궁 뒤편의 순정. 다갈색 눈을 내리깔며 분필을 부러뜨리듯 <친절한 금자씨>에서 “너나 잘하세요!”라고 천천히 말할 때도. 이영애가 드러내는 선악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한때 <대장금>에 함께 출연했던 ‘한상궁 마마님’ 양미경의 말대로. “이영애는 스스로 빛나는 보석이에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스스로 빛나죠.”

28 사슴처럼 깊고 투명했던, 이은주
이은주를 세 번 만났다. 정준호와 <하얀방>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한석규와 <주홍글씨>를 찍을 때, 그리고 제8회 부산 영화제의 마스코트로 양조위와 함께 <보그> 화보를 찍을 때. 똑 부러지는 음성에 사슴처럼 깊고 투명한 눈을 지닌 여자였고, 남자 배우를 먼저 보듬어 안는, 선천적으로 모성이 발달한 여자였다. 영화에 관해서라면 이상주의자적인 비전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가 있었기에 살아 있다면 전도연 같은 배우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나, 옛날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숟가락의 받침은 디긋이고 젓가락의 받침은 시옷일까? 혹시 아니? 나, 옛날부터 그게 참 궁금했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은주의 대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2005년 2월 안타깝게 하늘나라로 떠났고, 그녀의 부재는 많은 사람을 슬프게 했다.

29 행운을 불러들이는 영민함, 송혜교
뉴욕의 송혜교가 <페티시>라는 독립영화를 찍었고, 중국의 송혜교가 왕가위 영화 <일대종사>를 찍었다면, 파리의 송혜교는 전설적인 패션 대가들과 계속해서 꿈을 찍는다. 사진가 칼 라거펠트의 <리틀 블랙 재킷> 모델이었고, 사진가 파올로 로베르시의 <보그 코리아> 표지 모델이었던 송혜교. 그녀는 <보그 코리아> 표지를 두 번이나 장식한 행운의 여배우다(파올로 로베르시의 카메라 앞에서 2007년 16세기 조선의 슈퍼모델 ‘황진이’를, 2011년 모던한 아시아 신여성을 연기했다). 패션이라는 판타지 세계와 드라마라는 리얼리즘 세계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프리패스를 가진 여배우. 송혜교는 지금, 연예계나 패션계의 트렌드에 휩쓸려가는 레드 오션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인 소신 있는 블루 오션을 개척하고 있다. 결혼하거나 이혼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 채로, 지금의 20대 여배우들이 먼 훗날 참고할 만한 코스모폴리탄으로! 조인성과 함께 출연하는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두 번째 출연하는 노희경 작품으로, 또 한번의 ‘송혜교’ 열풍을 예고하고 있다.

30 예쁘기보다 사랑스러운, 공효진
난폭 운전자를 향해 ‘퍽큐’를 날릴 수 있는 여자, 록 페스티벌에서 바닥에 누워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여자, 웬만하면 슬픔에 잘 빠지지 않는 여자, 여배우라는 직업을 능가하는 매력을 지닌 보통 여자가 공효진이다. 공효진은 연기 생활 초기부터 콤플렉스가 없고 스트레이트한 여자를 연기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사랑에 올인하진 않지만,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대사로 가장 쿨하게 표현할 줄 아는 여자였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관계를 정리할 줄 아는 공효진의 짱짱한 목소리는(“야! 너 걔 좋아하냐?” “어쩌냐! 나도 걔 좋아하는데.”), 언제나 브라운관을 겨울 하늘처럼 쨍하게 만들었다. 그런 톰보이 공효진에게 ‘엄마의 자격’을 주고, 모성애를 끌어낸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거쳐, 그녀는 마이너리그 개성파 배우에서 전국민 호감형 이웃집 여배우로 안착했다. 그리고 사랑스럽게 남자의 애를 태우는 공효진의 사실적인 연기는 드라마 <파스타>와 <최고의 사랑>에서 절정에 이른다. 인형처럼 예쁜 여배우들이 TV에서 물고기처럼 대사를 뱉을 때, 공효진은 정곡을 찌르는 솔직하고 분방한 대사를 시청자의 가슴에 꽂는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자존감 있는 여자로.

31·32 영화 <여배우들>의 모던 걸, 윤여정과 김옥빈
<보그> 화보 촬영장이 배경이 된 <여배우들>은 이후 영화계 트렌드가 된 ‘떼 샷’ 영화의 시발이 됐고, 동시에 전무후무한 ‘여성’ 떼 샷 영화로 남았다. 거기서 가장 연장자였던 윤여정과 가장 어렸던 김옥빈. 그녀들이야말로 감독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던한 캐릭터의 여배우다. 윤여정은 말했다. “여배우의 가장 큰 매력은 자기 성격이에요”라고. 동시대의 어떤 관습적인 지점에서 독특하고 삐죽하게 팽창한 여성, 자기 욕망에 솔직한 채 기존에 없던 윤리를 툭 던지듯 내놓는 모던한 화법의 여자들로 그녀들은 매우 적합하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돈의 맛>에 나온 윤여정이나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나온 김옥빈은 우리 주변에서는 죽었다 깨도 볼 수 없는 경천동지할 인물들 아닌가. 그녀들 안에는 대체 얼마만큼의 나른한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는 걸까? 예측 가능한 ‘애완용’ 스타로 대중과 만나길 거부하는. 여배우로 나이 들어간다는 건 신동이 자기 초능력을 조절해 가는 것처럼 내면에 기나긴 절제와 고독의 습자지를 쌓아두는 일이라는 걸, 윤여정과 김옥빈을 보면서 감히 예감해본다.



33 황홀한 영화적 육체, 전지현
전지현은 데뷔 초기에 그녀가 가진 가능성의 정점을 찍었다. 1999년 대중들은 테크노 춤을 추면서 팔다리를 마음대로 흐느적거리던 CF 속 미녀에게 환호했다. 2001년 영화<엽기적인 그녀>는 내숭 없고 발랄한(지하철 안에서 만취 상태로 토해도 여전히 귀여운) 21세기 신여성 전지현을 대중 앞으로 좀더 가까이 끌어냈다. 그 후 10여 년간 전지현은 신비주의라는 거품 속에서 과대평가된 주식으로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쉼없이 명성에 걸맞은 작품을 내보이고자 절치부심했다. 그 중 할리우드 진출작인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오리엔탈리즘 색채 속에서도 페이소스 짙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결혼 이후 드디어 전지현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떼 샷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한국의 ‘본 시리즈’로 명명되는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에선 감정연기가 놀라웠다. 액션 비주얼이 탁월하고, 무엇보다 기질이 명랑한 이 여배우를 쓸 줄 아는 감독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34 유목의 인생을 살았던, 장진영
우리에게 장진영이란 여배우는 축복이었다. 보헤미안 컬러를 지닌 천부적인 패셔니스타였고, 영화 연기의 물리적 매력을 아는 스타 여배우였다. 장진영은 2009년 9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배우로서 가장 찬란한 생의 위엄을 보여줬다. 화사하고 낙천적인 모습으로 투병 생활을 했고, 하늘나라로 떠나기 한 달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늘 극기 훈련 하듯 인생을 살았다. “조선 최초의 여류 비행사 역으로 <청연>을 하면서 인간에게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내가 한정 짓는 대로 목표하는 대로 그릇이 만들어진다는 신념이 있어요.” 전도연의 에너지가 여성적인 응축이라면, 장진영은 남성적인 폭발에 가까웠다. 영화 <소름>과 <청연>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통해 그녀는 남성 감독이 꿈꾸는 ‘강한 여자’로 거듭났다. 가끔은 그녀 자신, 스스로를 너무 혹독하게 다뤄서 병을 부른 것은 아니었나 반추해보곤 한다.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병실에서조차 김추자 전기 영화에 관해 감독과 전화 통화를 하던 그녀였으니 말이다.

35 속 깊은 트위기, 김민희
김민희는 감독보다는 포토그래퍼들이 더 좋아하는 여배우였다. 그녀는 <보그> 영화 화보의 단골 모델이었으며 <연인>의 제인 마치, <팩토리 걸>의 에디 세즈윅, 심지어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 <유령 신부>의 유령 역할까지 해냈다. 한마디로 목소리 없는 배우였다. 노희경 작가가 <굿바이 솔로>로 진실되고 개운한 그녀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주기 전까지. 대중은 그녀에게 관능적인 ‘롤리타’를 원했지만, 그녀는 사랑스러운 ‘트위기’에 가까웠다. ‘아! 저 여자, 마인드 참 쿨하다.’ 사람들은 그 즉시 김민희에게 매료됐다. 막내 여동생 목소리를 가진 속 깊은 어른이 김민희였다. 그리고 스물 일곱에 <뜨거운 것이 좋아>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탔다. 그녀는 그 뒤로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싶었다. 영화 <여배우들>에서 “너는 그래도 계속 영화 찍잖니?”라고 김옥빈에게 신경질을 내는 장면에선, 저 정도로 진심을 드러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신용 불량 사회의 지옥도를 그린 <화차>에서 김민희는 ‘불안이 인간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사실적으로 연기해서 호평 받았다.

36 시의 육체를 연기하는, 윤정희
1967년 <청춘 극장>으로 데뷔할 때부터 윤정희는 1200:1의 경쟁률을 뚫고 50만원의 개런티를 받은 신데렐라였다. 그 뒤로 서울과 파리를 오가면서 윤정희는, 또 하나의 자아인 남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함께 40년 동안 아름답게 늙어갔다. 시인과 소설가와 음악가와 영화감독… 정통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내적인 우아함을 지닌 채.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노년에 이르러 이창동 감독의 <시>로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시의 육체로,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노인을 연기하면서. 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 사회에, 그 낮고 연한 파동으로, 부드러운 양심의 기척을 느끼게 해준 윤정희.

37·38·39 여배우라면 이들처럼, ‘염정아, 임수정, 문근영’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영화 <장화 홍련>을 인연으로 세 명의 여배우가 <보그>에 나왔다. 30대 염정아, 20대 임수정, 10대 문근영. 세 여배우를 한자리에 모아 슬프고 공포스러운 뉘앙스를 만들어낸 사람은 김지운 감독이다. 이제는 다들 40대, 30대, 20대의 여배우가 됐지만, 그날의 맑고 청량한 에너지를 잊을 수 없다. 그때만 해도 임수정과 문근영은 통칭 ‘애기들’로 불렸고, 촬영이 끝나면 함께 부대찌개를 먹으러 갈 정도로 격의 없었는데… 지금 세 여배우는 각자 톱의 자리에서 섬광처럼 빛난다. 임수정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수다쟁이로 30대 염정아의 몫을, 문근영은 <청담동 앨리스>로 20대 임수정 몫을 해냈으며, 40대 염정아는 ‘예민한 아줌마’로 계속 자가 변신 중이다.

40 패션 기본 문법의 창시자, 노라노
과거라는 것, 역사라는 것은 패션계에서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해방과 전쟁, 분단과 근대화라는 지난한 역사를 지닌 우리에게 패션은 과연 어떤 형태로 존재해왔을까? 1950년대 명동, ‘노라의 집’이라는 부티크는 전쟁 중에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반도 어느 구석에서는 총성이 멈추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한 재봉틀은 돌아가고 패션도 계속됐다. 세계경제가 얼어붙은 2013년, 청담동 ‘노라노’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2012년, 패션 인생 65년을 맞아 회고전을 열었고, 장안의 유명 인사와 패션 피플들이 한국 패션의 살아 있는 전설인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노라노와의 패션 여행은 우리가 패션에 대해 들뜨고 환호했던 현재가 이미 과거였던, 그리고 그 과거가 위대한 미래를 품고 있었던 독특한 역주행의 시간 여행이었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패션계에 혁명을 일으킨 세 사람이 있어요. 첫째는 샤넬. 2차대전 이후 패션에 실용성을 가미해 획기적인 여성성을 창조했어요. 그리고 아르마니. 사회적인 심벌로서 패션을 정착시켰죠. 여자도 남자처럼 멋진 팬츠 수트를 입을 수 있게 됐구요. 그리고 프라다. 소재 혁명을 일으켰으니까요. 세계 패션사와 함께하면서 나 또한 그 흐름과 함께해왔어요. 지금까지 내 옷을 지탱하고 있는 문법은 패턴과 피팅이에요. 좋은 옷의 근본이죠. 싸구려 옷을 입으면 체격이 나빠집니다. 소재와 핏이 좋은 심플한 옷을 입으면 체격이 예뻐지죠. 패션은, 단순한 논리예요.” 우아하게 나이 드는 사람들도 있고, 끔찍하게 나이 드는 사람들도 있으며, 노라노처럼 아주 천천히 노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