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명 여성의 이야기 <3>

〈보그 코리아〉가 200호를 맞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동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120인을 선정했다. 장미희부터 김연아까지, 장한나부터 심수봉까지. 그것은 세대를 초월하고, 업적을 초월하고, 장르를 초월한 〈보그〉안에서의 여성들의 우아한 앙상블이라고 할 수 있다. 17년간 〈보그 코리아〉에 등장했던 수많은 여성 가운데, 용기와 인내와 설렘으로 자기 삶을 살아낸 이 매혹적인 여성들은 오로지 〈보그〉만의 감식안과 편애를 기준으로 선정되었다. 이들 중엔 이미 머나먼 미래로 떠난 사람도 있고, 현재 더 눈부시게 꽃을 피운 사람도 있다. 정치인부터 무용수까지, 배우부터 저널리스트까지… 120명 여성의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이 부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자부심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81 불온한 언어주의자, 배수아
취미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배수아에게서 문학적 엄숙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녀의 문장은 당혹스럽고 생경하며 파격적이다. 1990 년대를 풍미했던 이 이름은 2000년대를 경유하며 보다 견고하고 드높은 언어의 성채를 쌓았다. 언어의 성주로서 그녀는 소설가임과 동시에 탁월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최근작 <철수>보다 <사물의 안타까움성>이나 <나치와 이발사> <불안의 꽃> 같은 번역작을 읽는 것이 더 낫겠다.

82 진은숙이라는 멋진 신세계
진은숙이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음악상(그라베마이어 상)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논객 진중권의 누이라는 사실이 부각될 때는 그녀의 곡 중 가장 널리 연주되는 작품인 ‘말의 유희’가 거론될 때 정도. 진은숙의 음악은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이조차 ‘멋진 음악’으로 느낄 만큼 매혹적이며, ‘현대음악은 난해하다’는 편견을 일순간 잊게 한다. 새로운 음악을 낳기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다녀와야 한다는 확고한 예술적 신념으로 세계 음악계에 우뚝 선 진은숙. 2006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작곡가를 맡아 1년에 두 차례 ‘아르스노바’ 시리즈를 진행하는 그녀는, 비주얼마저 너무 현대적이다.

83 문장으로 야수파의 그림을 그리는, 한강
그녀의 글은 어둠이 흘리는 피처럼 참혹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애무와 상냥함도 있다. 문장으로 야수파의 그림을 그려낸다고 할까. 그렇게 한강은 외롭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생각은, 그녀의 상상력은 늘 외롭다. ‘무한히 번진 먹 같은 어둠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하듯이. 장롱 속에서 엄지손가락을 빨며 햇빛을 피하는 여자처럼. 소설 쓰는 사람이 더 많이 옳거나 더 많이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의문과 흔들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강의 머리 위로 절실한 물음표들이 범람한다. 2005년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84 천재에서 거장으로, 사라 장
사라 장은 세 살 때 1/16 바이올린을 잡은 이후로 다른 연주자들이 평생 해도 부족할 성과를 10대와 20대에 다 이뤄냈다. 다섯 살 때 이미 스물다섯 살이었고, 2~3일에 한 번씩 연주 여행으로 다른 시간대를 사는, 천재에서 거장이 된 사라에게, 시차를 느끼는 건 어쩌면 우리다. “저는 3~4년 후의 스케줄이 미리 나와 있어요. 음악을 업으로 택한다는 건 전 생애를 바치는 일이에요.” 그녀의 삶은 예정된 기다림이다. 브람스는 18세까지 기다렸고, 베토벤은 21세까지 연주를 미뤘으며, 쇼스타코비치의 곡은 스탈린 체제에서 살면서 썼던 곡이라 고통스러워서, 스물네 살까지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현의 시간 속에서 놓쳤던 일상의 시간도 탄식하지 않는다. 타고난 비범함이 일으킨 세상과의 ‘시차’를 평범하게 인정하며, 사라는 지혜롭게 음악 세상의 유토피아를 향해 갈 뿐이다.

85 목소리라는 완벽한 악기, 조수미
“소리를 지르면 마지막 음까지 올라가는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음을 찾는 일은 마치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는 것과 비슷하다”고 조수미는 말한다. 그러나 정작 조수미의 노래를 들으면 탄식과 눈물이 앞선다. 그 어떤 악기도 인간의 목소리만큼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압도해버리는 조수미의 기교로 가득한 목소리.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의 ‘신이 내려준 목소리’라는 찬사와 ‘1세기에 한 두 명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는 주빈 메타의 극찬을 빌리지 않더라도, 조수미의 밝고 투명한 음색은 금세기 최고의 ‘콜로라투라’다.

86 오페라와 성가를 넘나드는, 신영옥
신영옥의 어머니는 네 살 난 딸의 손을 잡고 KBS 어린이 합창단을 찾아가 최연소 단원으로 뽑히는 기록을 세웠다. 일찍이 신영옥의 미성을 알아본 어머니 덕분에 그녀는 지금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반열에 올랐다. 1990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로시니 오페라 <세미라미데>의 공주 역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한 후, 리릭 소프라노의 화려한 서정을 꽃피웠지만, ‘리골레토’의 질다,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 등의 배역과는 다른 소박하고 성스러운 신영옥의 명곡은 ‘아베마리아’다.

87 바이올린을 든 무대의 암표범, 정경화
“무대에 선다는 것은 사람이 일생을 통해 느끼는 모든 두려움, 무엇보다 살아간다는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얘기했다. 그녀를 보면 암표범이 떠오른다. 일체의 군살을 떼낸 차가운 프레이징과 음색으로 무대에 서는 정경화. 반면 그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은 대단히 드라마틱하다. 마치 낭떠러지를 등 뒤에 둔 것 같은 그 숨가쁜 절박감과 긴장, 혹은 골똘히 사색하는 듯한 연주 포즈는 관객들을 극도로 몰입시킨다. 굶주린 암사자처럼 달려들다가도 어느새 청명한 사슴의 눈동자가 비칠 정도로 야누스의 표정을 띠며. 정경화는 요요마와 함께 아시아계 현악기 주자의 한 스타일을 서구에 알린 공로자이며, 카네기홀에 선 최초의 한국인이기도 하다.

88 첼로와 사람 사이, 정명화
정명화는 1969년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LA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데뷔했다. 1971년 동생 정명훈을 반주자로,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올해로 70세를 맞는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 마치 노장의 친절한 인생 강의를 듣는 듯하다. 첼로와 닮아가는 자신을, 사람의 온기를 닮아가는 음악을 사랑하는 정명화의 ‘현의 노래’는 장중하며 연약하고, 침묵 속에 격정을 담아낸다. 여전히 정경화(바이올린), 정명훈(피아노)으로 이어지는 정트리오 중 맏언니인 그녀의 존재감은 한국과 세계 음악계에서도 첼로만큼 묵직하다.



89·90·91 유쾌한 시스터, 안트리오
“우리에겐 독재가 없어요. 우린 셋 다 지휘자예요.” 마치 트라이앵글 같다. 모서리가 터져 있어 누구든 그 경쾌한 삼각형 안으로 끌어들이는 마법을 가진 트라이앵글. 그녀들은 악보 대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 진짜 음표가 숨겨져 있다는 듯이. 그 사이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잠을 잔다. 그리고 안젤라와 루시아와 마리아는 지휘봉을 들지 않고도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지휘해낸다. 그녀들의 선율은 첼로로, 혹은 바이올린으로, 혹은 피아노로, 따로 존재하지 못한다. 첼로와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한꺼번에 어우러지며 나오는 순간의 ‘화성’, 그것이 안 트리오라는 악기다.

92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 장한나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듣는 첼리스트 장한나. 그 장한나가 줄리어드 음대가 아닌 하버드대 철학과로 진학해 우리를 놀래키더니, 몇 년 전부터 첼로를 켜는 대신 지휘봉을 잡는 것으로 두 번째 놀라움을 선사했다. 활을 잡을 때 장한나는 마치 첼로와 한몸으로 유체 이탈을 한 것처럼 무아지경에 빠져버리지만, 지휘봉을 잡을 때의 그녀는 오케스트라의 어머니처럼 사람들 사이에 놓인 음악을 끌어낸다. 지금 한나는 첼로의 바깥에서 첼로를 연주한다. 첼리스트가 아니라 음악가가 된 장한나는 현의 공간에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삶을 오버랩시켰다. 마침내, 올해부터 중동 오케스트라 수장(카타르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은 30대 여성 지휘자를 향한 세계 음악계의 관심이 뜨겁다.

93 천사의 악장, 곽정
천사의 악기라 명명되는 하프. 총 150㎏의 육중한 무게에 7개의 페달을 밟으며 연주해야 하는 난해한 악기지만, 하피스트 곽정의 표정은 꿈꾸는 자의 황홀경이다. 주빈 메타와 함께 무대에 오르며 세계적인 음악가로 발돋움한 이후, 하피스트로서 그녀의 행보는 다방면으로 거침 없었다. 개인적으로 클래식한 하프 연주가인 ‘곽정’과 전자 하프 연주가 ‘하피스트K’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는 그녀는, 10년째 ‘하피 데이 앙상블’의 리더로 하프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열정적이다.

94·95 그 여자, 박정자와 나, 윤석화
대한민국 연극사에서 가장 클래식하고 위엄 있는 두 여배우가 들국화처럼 웃고 있다. <페드라>와 <꿀맛>이라는 데뷔작 이후로 박정자와 윤석화의 삶 자체는 연극이었다. 너무도 배우이다 보니 모든 인간사 그 자체가 박정자와 윤석화에게는 연극으로 보이거나 연극의 대상이었다. 그녀들의 우정, 연애, 슬픔, 기쁨과 고통… 모든 일상의 감정과 고유한 행동조차도. 사진은 16년 전, 1997년 봄 박정자의 <그 여자, 억척어멈>과 윤석화의 <나, 김수임>이 동시에 대학로 담벼락에 폭죽처럼 나붙었을 때, <보그>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두 사람은 어느 날 한복을 갖춰 입고 <보그> 카메라 앞에 정갈하게 서기도 했지만, 붉은 립스틱을 칠하고 치아를 드러내고 웃던 이때가 가장 예뻤다.

96 최고의 뮤지컬 디바, 최정원
어릴 때부터 ‘내일은 무슨 노래를 흉내 내서 박수를 받을까?’를 고민하는 게 즐거웠다던 최정원. 최정원은 열아홉에 <아가씨와 건달들>의 춤 잘 추는 여섯 번째 아가씨로 데뷔한 이래 <맘마미아> <시카고> <토요일 밤의 열기> 등 유명 뮤지컬 레이블에 그 이름이 빠진 적이 없었다. 남경주와 함께 한국 뮤지컬 1세대로 불리며 독보적인 크레딧을 쌓아오던 세월 동안 종마처럼 단련된 튼튼한 근육으로 아이를 낳을 때조차 욕조에서 수중분만으로 그 몸의 순리를 따랐다. 자신의 공연이 암세포도 치료한다는 감동 물질 ‘다이돌핀’을 끌어내길 바라는 그녀는 오늘도 춤추고 노래한다.

97 여자다운 여장부, 손숙
69세가 될 때까지 손숙은 연극과 방송계와 시민사회를 종횡무진했다(김대중 정부 시절 6대 환경부 장관을 거쳐). 활자 중독증인 채로 신문을 5개나 보면서 라디오 DJ로도 구성진 딕션을 보여주면서. 연극배우로 <신의 아그네스>도 하고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도 했지만, <느릅나무 밑의 욕망>이나 <뇌우>처럼 도발적인 배역이 잘 어울렸다. 살펴보니 손숙만큼 여성성이 두드러진 연극배우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물처럼 연극 데뷔 50주년을 맞았고, 그 기념으로 2013년 2월, 대학로 대극장에서 이윤택의 <어머니>를 올린다. 연극은 하면 할수록 겸손해진다는, 아직도 너무 예쁜 ‘어머니’ 손숙.



98 불멸의 트로트, 심수봉
언젠가 정우성도 ‘백만 송이 장미’를부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트로트가 클래식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심수봉. ‘그때 그 사람’ ‘사랑밖엔 난 몰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했고, 어쩌면 다음 세대까지 영원히 불려질지 모르는, 너무도 모던한 신파주의자 심수봉. 한국 정치사에 연루된 삶을 살았고(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 당한 그날, 궁정동에서 노래했다는 이유로), 그래서 삶과 노래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악극의 주인공 같은 심수봉. 어느 날 그녀가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재즈를 공부하고, 로큰롤을 연주했던 젊은 시절의 심수봉이 보여 깜짝 놀랐다. 참, 그녀는 제2회 대학가요제 출신이다.

99 150cm R&B의 작은 거인, 박정현
박정현은 두 살 때 처음으로 오르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즉흥 노래를 불렀다. 목사인 아버지는 “우리 리나가 너무 잘하잖아!”를 연발했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음악 경연대회를 휩쓸던 그녀에게 노래는 물이나 공기와 같았다. 그녀의 키는 150cm에서 성장을 멈췄다. 콤플렉스 따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박정현의 키는 놀랄 정도로 작지만, 그녀의 작은 몸이 무대 위에서 폭발할 때 사람들은 백만 볼트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기억할지 모르지만, 2002년에 박정현은 한국과 일본 도쿄 돔을 오가며 월드컵 로컬송을 불렀다. 일본의 R&B 가수 케미스트리, 소웰루, 특히 브라운아이즈의 나얼, 윤건과 함께. 10년 후, <나는 가수다>는 박정현을 R&B의 요정으로 포지셔닝했지만, 사실 그녀의 장르는 무한대다.

100 항상 미래가 더 밝은, 윤미래
말재주가 뛰어난 것도 아닌데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으로는 이효리보다 인기 있는 윤미래. 90년대 힙합 뮤직을 대표하는 그룹 ‘업타운’의 여성 멤버 윤미래. 머릿속으로 계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랩, 가슴 깊이 파고드는, 파워풀한 고음의 발라드를 들으면 윤미래, 티샤니 혹은 T, 그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최고의 뮤지션으로 그녀를 새삼 인정하게 된다. 미국 텍사스 주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인 흑인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DJ 활동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다. 타이거 JK와 결혼 후 아들을 낳고, 그 가족의 삶으로 더욱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된 윤미래는, 2011년 10월 미국 MTV ‘전 세계 최고 여자 래퍼 톱 12’에 선정되는 쾌거도 얻었다.

101 무대 위의 잔다르크, 이은미
이은미를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게 된다. 자부심 넘치는 조류의 깃털 같은 머리카락이나 원시시대 포유류처럼 펄쩍펄쩍 도움닫기를 하는 맨발까지. 이은미는 신촌블루스 시절 객원 보컬로 활동하다 1992년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그리고 3년 전 2009년 데뷔 20주년을 맞았을 때 공연 600회라는 기록을 세워, ‘맨발의 디바’의 명성을 이어갔다. 무대 위의 이은미는 열창 끝에 절명할 것만 같은데, <위대한 탄생>의 멘토나 <나는 가수다>의 MC 역할을 할 때는 또 굉장히 차분하다. 박정현이 그랬다. “이은미 씨는 노래할 때 영혼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아요.”

102 아이돌의 모범적인 미래, 보아
빌보드 메인 차트에 첫 진입한 K-POP 스타는 ‘아시아의 별’ 보아다. 보아는 2009년 3월 미국 정규 1집 <보아(BoA)>로 앨범 차트 ‘더 빌보드 200’에서 127위에 들었다. SM 엔터테인먼트가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키워온 작고 예쁜 비밀병기였던 보아. 그런 보아가 이제는 SM의 대표 프로듀서가 되어 에서 양현석, 박진영과 새로운 아이돌을 발굴한다. 영민하고 민첩한 검은 고양이를 닮았던 소녀 보아가 이제는 고상한 기품이 흐르는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성장했다. 스물여덟살, 보아는 아이돌의 모범적인 미래다. 패스트푸드처럼 대중에게 소모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가 증식하는, 패셔니스타로서도 ‘시크한’ 보아.

103 연극적인 너무나 연극적인, 한영애
<나가수>는 한영애의 노래 실력을 검증할 수 없다. 지직지직 흘러나오는 허스키한 목소리의 한영애를. 때로는 저돌적으로 콧김을 뿜으며 먼지 나는 사막을 돌진하는 ‘코뿔소’였다가, 고무신을 신고 물길을 자박자박 걸어가는 ‘여울목’의 목소리이기도 한. 한영애의 노래를 들으면 그건 가사가 아니라 문장이나 대사라는 생각이 든다. 몇 개의 단어들이 가슴의 수로를 타고 심장으로 흘러 들어온다. 아! 나는 지금 굽이치는 청춘의 여울목에 서 있구나. 한영애의 노래를 들을 땐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된다. “덧없는 세월 속에서 거친 파도 만나면, 눈물겹도록 지난날의 꿈이 그리워, 은빛 찬란한 물결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 그녀는 늘 담담하고 온화하게 끝을 맺는다.

104 청춘의 몽상가, 이상은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를 부르던 꺽다리 가수가 이토록 깊고 사색적인 음악가가 될 줄 몰랐다. 그녀의 6집 <공무도하가>와 7집 <외롭고 웃긴 가게>는 청명하되 우울한 가을 하늘처럼 대중의 마음을 만졌다. 그리고 <서른 즈음에>를 빼놓고 김광석을 이야기할 수 없듯, <언젠가는>을 빼놓고 이상은을 논할 수 없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지금이 지나면 다시 오지 못할 순간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청춘이 죽도록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이상은의 노래를 듣고서 알았다.



105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 , 윤복희
윤복희는 특유의 우는 듯한 환희의 표정을 짓는다.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윤복희의 표정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한 무대다. 그녀로 말하자면 세 살 때부터 미8군 무대에 섰고, 열다섯 살 때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워커힐 공연을 했던 뮤지컬계의 지존. 그리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패션 리더, ‘한국의 트위기’로 이 땅에 서구의 모더니티(모더니즘이 아닌)를 이식한 주인공으로 기록된다. 결혼식에서도 미니 드레스를 입었던 자유로운 뉴스메이커 윤복희. 1977년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그린 <빠담 빠담 빠담>을 시작으로 이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에서 ‘노래하는 배우’로 살았던 그녀의 히트곡 ‘여러분’은 우리에게 윤복희만한 친구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106 불꽃 같은 집념의 여배우, 방은진
영화 <태백산맥>의 가녀린 외서댁으로 등장한 방은진은, 연극 무대가 영화계에 준 큰 선물이었다. 박철수 감독의 컬트 영화 <301 302>에서 애견을 냄비에 삶아버리는 공포를 안겨줄 때조차도. 그렇게 방은진 연기의 한 축이었던 그로테스크와 리얼리즘은 감독 방은진의 세계에도 이어졌다. 충무로의 뚝심 있는 여자 감독으로 방은진은 미래가 탄탄하다. <오로라 공주>나 <용의자X> 모두 여성 주인공의 밀도가 높은 스릴러였고, 다음 작품인 <집으로 가는 길>엔 전도연이 캐스팅될 거라는 소문이다.

107 한국 여성 감독의 현재, 임순례
일찍이 80년대 이미례 감독의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이후로 끊긴 여성 감독의 명맥을 90년대 임순례 감독이 이어갔다. 감독 임순례는 한국 여성 감독의 수난과 쟁취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초기부터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어둡고 뭉클한 음악영화에서 황정민, 박해일, 류승범 같은 보석을 가려내더니, 핸드볼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선 문소리, 김정은의 땀방울로 놀라운 앙상블을 끌어내 각종 영화상과 여성 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최근작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사랑스러운 아나키스트 김윤석을 등장시켜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여성 감독으로 임순례는 영화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한다. 영화계 대표적인 동물애호가 이기도 해서 촬영장에서도 동물의 권리를 위한 실제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108·109 웰메이드 영화의 종부, 심재명과 심보경
영화제작사 명필름 대표 심재명과 보경사 대표 심보경. 이 영화인 자매가 없었더라면 한국영화계는 뻔하고 공격적인 남성 영화 일색이었을지도 모른다. 10년 동안 제작 거절을 당하던 <건축학개론>을 세상에 길어 올린 것도 심보경과 심재명 자매. 과거를 더듬어 심재명의 기획력과 심보경의 마케팅 능력이 빛을 발한 최초의 작품이 〈접속>이라는 것은 기억할 만하다. 웰메이드 필름의 종부로 그녀들은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프로젝트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제작된 영화들은 한국영화사에 작은 기념비를 하나씩 남겼다. 새로운 시선의 분단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가족영화 <바람난 가족>, 여배우들의 땀방울에서 진정성을 끌어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앞으로도 심재명, 심보경의 손에서 빚어질 한국 영화가 기대된다.

110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석지영
한국인에게 석지영에 관한 이야기는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만큼이나 많이 알려져 있다.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뒤, 미국 최고의 뉴욕 발레 학교를 다니며 발레리나의 꿈을 키웠고, 학업을 이유로 발레를 중단한 뒤에는 카네기홀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다. 고교 3년간 학교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 그녀는 예일 대학에서 영문학으로 학사를,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하버드 법대에서 법학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현재 아시아 최초의 하버드대 여성 종신교수다. 이것만으로 부족한가? 같은 대학 법대 종신교수이자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유대인 남편, 아들, 딸 두명의 자녀. 이보다 완벽한 롤모델이 어디 있나. 그런 그녀가 이런 멋진 삶의 결론까지 내렸다. “성공은 행복의 터널을 통과해야 만날 수 있다!”

111 문학은 장애를 넘어, 장영희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 됐지만 거뜬히 장애를 딛고 영미문학자이자, 수필가의 길을 걸어왔던 장영희. 그녀가 번역한 영미 시를 추려 모은 시선집 <생일>과 <축복>에는 생전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화가 김점선의 그림도 함께 볼 수 있다. 문학을 사랑했고, 친구를 사랑했던 장영희는 2009년 <살아온 날의 기적, 살아갈 날의 기적>이라는 유고 에세이집을 남기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삶을 ‘천형(天刑)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도리어 자신의 삶은 누가 뭐래도 ‘천혜(天惠)의 삶’이라는 유언을 남긴 채.

112 미국 사교계의 유명 인사, 에바 차우
혈통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녀는 자신이 패티 김의 조카로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 미국 사교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에바 차우는 현재 국내에 아트 컬렉터로 소개된다. 그녀가 2012 광주비엔날레에 배우 이병헌, 임수정과 함께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거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이사 자격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구찌의 문화 예술 보존 활동을 벌인다거나 등등. 에바 차우는 유명인사들에게 유명한 존재다. 에바와 그녀의 남편이자 레스토랑 사업가 미스터 차우는 오랫동안 패션과 예술의 하이 테이스트 심벌로 플래시 세례를 받는 것에 더없이 만족해 한다. 데이빗 호크니와 줄리앙 시나벨, 바스키아 등 현대 작가들이 그린 자신들의 초상화를 거실 벽에 걸어두고 흐뭇하게 감상하며.

113 웃기고 자빠질 때까지, 김미화
그녀는 자신의 묘비에 ‘김미화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새겨주길 원한다. 어릴 적부터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고, 죽는 순간에도 코미디언이길 원하는 김미화. 김미화에게 언제부터 행복했느냐고 물으면, 불행한 가운데서도 항상 행복을 찾았다고. 수유리 판자촌에 살던 어릴 적에, 어머니가 일 나가신 후, 폐병으로 각혈하는 아버지 병수발을 들다가도 동네 전파상에서 마이크를 가져다 공터에서 공연을 했다던 김미화. 그때부터 데뷔 30년 차가 된 지금까지 그녀는 인기의 맛을 아는 행복한 스타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제도권에서 밀려난 개념 방송인으로 산전수전 다 겪으며, “마음의 욕심을다 지나왔기 때문에, 비굴하게 살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한국의 여자 채플린.

114 지구집에 사는 지구인, 한비야
언젠가 굿하는 인간문화재 김금화 씨가 한비야에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사주에 역마살은 없어. 대신 가슴에 새가 한 마리 들었네.” 서른 다섯에 세계 여행의 짐을 꾸리고, 마흔셋에 긴급 구호 활동가의 삶에 들어선 한비야, 바람의 딸은 언제나 자신과 정면 대결해왔다.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고등학교 때, 친구들끼리 지은 한비야의 호가 이길 패 자에 독수리 취 자 ‘패취(覇驟)’였다. 그리고 ‘패치’는 영어식으로 보면 ‘기운다’는 뜻. 지금 한비야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에 의해 ‘국제구호학’이란 정식 과목이 국내에 처음으로 생겼다. 한국 사회에 맞게 용어도, 이론도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쳐 재탄생하고 있다. 도전이 일상인 한비야는 여전히 지도 밖으로 행군 중이다.



115 전사의 눈, 정은진
그녀의 카메라는 피에 젖어 있거나 폭우 아래 있거나 지진을 향해 진행 중이다. 그녀는 전쟁과 시체와 붕괴와 재난을 찍는 동시대의 사진가. 그것을 숭고한 고발이라고 할까. 2004년 <뉴스위크> 1면 톱으로 실린 정은진의 쓰나미의 기록, 2008년 강간이 일상이 된 콩고 여성 인권을 고발한 ‘콩고의 눈물’은 페르피냥에서 피에르&알렉산드라 불라 상을 선물했다. “제가 찍은 사진들이 단숨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 안 해요. 하지만 끈기를 갖고 약자들이 도움을 받을 때까지, 위정자들이 마음을 바꿀 때까지 셔터를 눌러야 해요.” 그녀를 보면 서바이벌에 능한 ‘맹수’ 같기도 하다. 가자 지구 피난민촌으로 이스라엘의 탱크가 몰려올 때도, 티베트의 절벽을 달릴 때도 살아난 정은진은, 똑같은 현장에서도 ‘파괴’보다는 ‘평화’를, ‘분노’보다는 ‘슬픔’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찍는다. 그리고 그 앵글이 더 강하게 마음을 만진다.

116 위대한 아줌마 저널리즘, 김영미
그녀의 비행기 티켓은 늘 편도 오픈이다. 이라크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은 김영미는 언제 돌아올지, 어떻게 돌아올지는 늘 하나님께 맡기고 내려놓는다. 김영미는 카메라 한 대를 들고 혼자 움직이는 프리랜서 프로듀서다. 동티모르에서 그랬고, 아프간에서 그랬고, 카슈미르(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 지역)에서 그랬듯이. 아이를 낳은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총부리 앞에서 웃을 수 있는 그 저널리즘의 뿌리가, 한국의 아줌마 정신이라고 한다. 2011년엔 아들을 위해, 아프리카 소말리아부터 남미 콜롬비아까지 전쟁과 가난으로 평화가 멈춘 절망의 땅 13곳을 취재하며 기록한 이야기 <세계는 왜 싸우는가>라는 책도 냈다. 세계는 점점 극과 극으로 가고 있고, 인간 방패로 막아 서기에 국제 사회는 너무 오래 침묵해왔다. 김영미는 후대를 위해서라도 그 어리석은 정치를 고발하고 싶어 한다.

117 코리안 휴머니스트, 강경란
아이러니하게도 대문 밖 일들은 모른 척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양심, 존엄성’에 대해 각성하게 한다. 바로 그 추악한 전쟁이! 158cm, 48kg의 연약한 체격을 지닌 강경란 PD는 1년의 절반을 분쟁 지역에서 보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미얀마, 라오스… 그 오지, 분쟁 지역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게 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말했다. “깨끗한 시트가 있고, 따뜻한 국물을 마실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어요.” 깨끗한 시트에 누워 편히 잠들고, 가족과 함께 차를 마시는 오후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일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게 한다. 2009년, 5부작 시사 다큐 <인간의 땅>으로 ‘올해의 피디상’을 받았다. 22회째, 독립 피디로는 첫 수상이다.

118 얼음의 여왕, 김연아
허리 부상을 입고도 13시간 이코노미를 타야 했던 눈물 겨운 시절이 언제였던가. 빙상 위에서 007 본드걸 포즈를 취하던 김연아는 이제 싸이의 말춤도 춘다. 앞으로 김연아가 국제 대회에서 어떤 신기록을 세우든지, 그건 그녀 자신과의 싸움일 뿐. 우리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김연아라는 피겨 아티스트를 보며 자랑스러워 하기만 하면 된다. 2010년 동계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이후 미국 <타임>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된 김연아. 여전히 펼쳐 보이는 아이스쇼에서 김연아는 얼음 위에서 직선으로 일어서고, 맹렬하게 돌다, 우아한 곡선으로 닿는다. 그녀의 스케이트는 인간의 체온으로 빙점의 극한을 채우고, 그녀의 연기는 닿을 수 없는 빙하의 전설을 노래한다.

119 밀리언달러 베이비, 최현미
공이 울리면 튕기듯이 나아가 펀치를 날리고 훅을 맞는다. 탈북자 신분으로 WBA 여자 페더급 세계 챔피언에 오른 최현미. 3.8선이라는 시대가 그어준 웃기는 줄을 넘어선 최현미에게 ‘링’을 제외하고 정해진 ‘땅’은 없다.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인생의 ‘사각지대’에서 맞닥뜨린 복싱. 그 두 주먹은 얼마나 청결하고 희망적인가. “링 위에 올라갈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해요. 어떤 상대를 만나도 포기하지 않을 의지를 주세요.” 머릿속에 설계를 하면 그대로 주먹이 나간다. 몸에 밴 본능 중 하나가 순식간에 튀어나가는 것이다. 트레이너에게 배운 기술을 썼을 때는 숨막힐 것처럼 기쁘다, 말콤 글레드웰의 <아웃라이어>처럼 1만 시간을 ‘복싱’에만 집중해온, 그래서 링 위에서 스물두 살 소녀는 울지 않는다.

120 그녀의 아름다운 손, 장미란
5.9㎏으로 태어나 어머니를 고생시킨 장미란. 아버지의 강권으로 뒤늦게 시작한 역도였지만 바벨을 잡은 지 열흘 만에 출전한 강원
도내 중학생 대회에서 덜컥 우승했다. 그리고 2004년 처음 출전한 아테네 올림픽 역도홀에서 그녀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송진가루에 범벅이 된 장미란의 손에서는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장미란은 그 손으로 용상 172.5㎏을 들어올려 은메달을 땄다. 그녀의 ‘핏빛 투혼’은 전 국민을 울렸다. 장미란은 세계역도선수권을 4회 연속 제패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땄다. ‘여자 헤라클레스’였지만, 일상에선 천진난만한 소녀였던 장미란. 2013년 1월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손은 드디어 바벨의 무게에서 놓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