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절정에 있는 비욘세 <1>

스타일 아이콘, 매혹적인 아내, 초보 엄마, 영화제작자, 비즈니스계의 거물… 비욘세의 이름에서 이니셜을 따, 그녀를 ‘퀸 B’라고 칭하자. 권력의 절정에 있는 여왕은 지금 자신만의 대본을 써내려가고 있다.

꽃 장식이 돋보이는 빨간 드레스는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머리가 헝클어질 것에 대비하세요!” 비 오는 뉴욕의 겨울 저녁, 강을 사이에 두고 미드타운과 마주한 넓은 영화 스튜 디오 안에서 비욘세 노울스(Beyonce Knowles)가 카메라 앞에 섰다. 그 녀는 검정 쥬세페 자노티 부츠를 신고 차분하게 클로즈업을 기다리고 있다. 로레알 TV 광고 촬영 중이다. 스태프들은 국회 청문회에 임하는 것 마냥 진지하게 머리 상태에 신경을 썼다. 비욘세의 머리는 모발 광고에서 으레 그래야 하듯 완벽하게 반짝였다. 이 광고감독은 ‘Single Ladies’ 뮤직 비디오(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Best Female Video’ 수상 소감을 밝히는 도중, 칸예 웨스트가 무대에 등장해 “비욘세의 것이야말로 역사상 최고의 뮤직 비디오 중 하나”라고 훼방 놓아 더 유명해진)에서 활약한 제이크 나바(Jake Nava)다. 그는 주머니에 에이스 카드를 숨기고 있는 남자처럼 차분하게 이번 촬영을 지휘하고 있다. 제품, 클라이언트, 바닥에 펼쳐진 비디오 스크린 등등 그를 둘러싼 복잡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감독인 제이크 나바는 비욘세에게 계속 집중했다. ‘이봐, 이건 비욘세를 위한 거야. 비욘세를 비욘세답게 내버려 두라니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카메라가 돌아가고 바람을 날리기 위한 기계가 켜졌다. 오디오에선 마이클 잭슨의 ‘Don’t Stop’ Til You Get Enough’가 쾅쾅 울려 퍼졌고, 그 곡이 끝나자 프린스의 ‘Lovesexy’가 흘러 나왔다. 비욘세는 광고를 보는 어린아이들의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딱 그 수준의 도발적인 암시를 담아 엉덩이와 어깨를 돌리며 육감적으로 입술을 내밀기 시작했다. 모니터 뒤에서 감독은 런던 악센트로 넉살 좋게 오스틴 파워식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와우!” “좋아, 그거야!” “근사해, 비욘세. 그거 정말 좋은데?” “좀더!” “다르게 표현해봐!”

감독은 구체적인 요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욘세는 그가 원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비상한 감각 덕분에 그녀는 수천만 장의 앨범을 팔고, 엄청난 홍보 계약을 따내고, 지금 세대의 가장 상징적인 엔터테이너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비욘세는 오래전 이름(성을 뺀)만으로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녀는 더 대단한 일을 해냈다. 단순히 음악을 만들고 가끔 영화를 찍는 팝계의 혜성을 뛰어넘어 잘 다듬어진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경쟁자들이 리무진에서 쏟아져 내릴 때 비욘세는 여전히 밤 11시까지는 집에 들어가는, 6인치 힐을 신는 매혹적인 스타 자리를 유지했다. 무모함보다는 책임감이 앞섰다.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은 이 슈퍼스타를 두고 “제 딸들에게 이보다 더 나은 롤모델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톱은 마르니(Marni), 팬츠는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

좋다. 그 미모와 그 목소리(그녀의 친구인 앨리샤 키스는 ‘놀라운 목소리’라고 평한다), 그리고 팝계에서 비욘세의 위치를 생각해보자. 현재 그녀의 위치는 트렌디하다기보다 어른스럽고 영구적이다. 프로듀서인 팀 발랜드(Timbaland)는 비욘세가 여왕이라고 치켜세운다. 비욘세는 그녀가 지닌 ‘여왕다움’을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레일 위의 카메라가 기습적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시도하면 흐트러져 보이지만 그녀가 하면 근사해 보이는, 머리를 극적으로 확 젖히는 동작을 했다. 감독이 시원하게 외쳤다. “컷!” 그러자 비욘세는 미소를 지으며 헤비메탈 광팬처럼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아이언 메이든의 콘서트장 맨 앞줄에 서 있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양 손으로 악마의 뿔(중지와 약지는 내리고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위로 올린 모양) 동작을 하면서 말이다. 스태프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머리가 완전히 헝클어졌다.

지난달에 나는 비욘세와 만나는 것이 교황과 테니스 시합을 하는 것만큼 힘들다는 걸 알았다. 몇 주 동안 우리 스케줄은 계속 엇갈렸다. 내가 시간이 되면 그녀는 저 멀리 라스베가스에 있었다. 그녀의 가족이 캐리비언에서 휴가 중일 때는 내가 초대받지 못했다. 그러나 광고 촬영 중 휴식 시간을 맞은 비욘세와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 나는 스튜디오로, 라이트 붐 밑으로, 꼬인 전선들 너머로, 그리고 비욘세 일행이 그녀의 시중을 들고 회색 수트를 입은 경호원들이 문을 지키고 있는 좁은 복도로 그녀를 졸졸 따라 다녔다. 잠시 후 나는 작은 소파가 놓인 창문 없는 개인 분장실에서 그녀를 제대로 만났다. 테이블 위에는 무인 비디오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늘 그렇듯, 비욘세의 일상을 찍기 위한 비디오 카메라다. 쟁반 위의 과일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예쁘고 달콤했고, 비욘세가 벗은 부츠는 바닥에 단정하게 세워져 있었다. 여전히 검정 노마 카말리 보디수트와 헬무트 랭 팬츠 차림인 그녀는 누군가에게 가운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하얀 가운이 도착하자 비욘세는 담요를 두르듯 귀엽게 그것을 어깨에 둘렀다. 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볼 준비를 하는 10대처럼 보였다.

비욘세는 서른한 살이다. 그리고 곧 자신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만났을 땐 그녀가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가(‘The Star-Spangled Banner’)를 부르기 몇 주 전이었다. 그녀가 대통령 취임식에 서는 영광을 누리는 건 두 번째다(첫 번째는 미국 첫 흑인 대통령과 영부인이 된 오바마 부부에게 ‘At Last’라는 곡을 선물했던 2009년 대통령 취임 축하 공연이다). 취임식 후엔 2013 슈퍼볼 하프타임 쇼가 기다린다. 전 세계 수억 명이 지켜보는 짜릿한 공연이 될 것이다. 2월 중순엔 그녀가 공동 감독한 흥미로운 HBO 다큐멘터리 <Life is but a Dream>이 공개된다. 8년 만에 재결 합하는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신곡도 나온다. 그리고 대망의 비욘세 솔로 앨범! 완벽주의자인 비욘세는 지금 이순간에도 여전히 앨범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약간 수정할 거예요.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어요.”

bringing up baby비욘세가 그녀의 하나뿐인 딸, 블루 아이비와 함께 산책 중이다.

이런 일들은 비욘세가 다시 세간의 관심 속으로 돌아오는 걸 의미한다. 조심스러운 컴백이라기보다 충격과 공포의 연속으로 느껴지는 그런 귀환이다. 비욘세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당신의 삶 속에 들어올 것이다. 그녀의 음악, 얼굴, 그리고 실생활이 굴뚝을 타고 떨어져 마룻바닥까지 스며들 것이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보도도 엄청날 것이다. 비욘세는 자신이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인정한다. 그런 감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아주 불안해요. 엄청난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작은 방 밖에서 순하고, 귀엽고,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 아기의 부드러운 울음 소리. 비욘세는 새 앨범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가 잠시 말을 멈추고 아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눈에 띄게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순간 그녀에게 커리어와 비즈니스도 중요하지만, 그녀의 삶이 영원히 바뀌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기는 곧 잠들 거예요” 라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 아기는 2012년 1월 7일 비욘세와 힙합 거물인 숀 카터(우리가 아는 제이 지) 사이에서 태어난 ‘블루 아이비’다. 뉴욕에서 딸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보통 왕실 아기에게나 쏟아질 법한 그런 관심이 쏠렸다. 곱슬머리 아가씨인 블루 아이비는 비욘세에게 빛이자 영원한 동반자이자 그녀의 텀블러(Tumblr,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결합한 형태의 SNS)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그 아이는 제 절친한 친구예요.”

과거 비욘세는 세세한 사생활에 대해 아주 신중하게 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성애라는 것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녀에게 완전히 억누를 수 없는 주제인 것 같다. 낮 시간대 싸구려 TV 프로그램 사회자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녀에게서 기쁨이 뿜어져 나온다. 그녀의 행복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고, 본래 신중하기로 유명하지만 이젠 굳이 신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임신 8개월쯤 됐을 때 제 안의 모성애를 강하게 느꼈어요.” 비욘세가 회상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모성애를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기가 채 태어나기도 전,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그런 감정을 다시 느꼈죠. 아기에게 아주 강한 유대감을 느꼈거든요. 진통을 겪을 때 아기가 아주 무거운 문을 밀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 작은 아기가 그 모든 일을 혼자 해내고 있다는 상상을 했죠. 그래서 제 고통에 대해선 생각할 수도 없었어요. 우리는 얘기를 나눴죠.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아기와 대화를 하고 있다고 느꼈답니다.” 비욘세는 임신이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잘 통제된 삶에 익숙하다.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멤버인 켈리 롤랜드는 비욘세가 의상 단추 같은 작은 문제들을 처리하느라 콘서트가 열리는 날 새벽 4시까지 깨어 있는, 완벽주의자 그 이상이라고 묘사했다. ‘그녀는 모든 일에 관여한다’는 게 롤랜드의 설명이다. 이제 비욘세는 인생의 가장 예측 불가능한 여행을 시작했다. 아기들은 엄마가 슈퍼볼 공연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아기들은 그래미 시상식 애프터 파티에 가겠다고 하지도 않는다.

병원에서 비욘세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아기를 낳을 때 가족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 있었어요. 분만실에 들어서자 저를 두렵게 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죠. 그래서 마음을 놓았고, 정말로 모든 진통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날이 제 생애 최고의 날이었어요.” 켈리 롤랜드는 비욘세가 어렸을 때부터 늘 엄마의 본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비욘세는 블루가 태어나자 그 자연스럽고 편안한 역할에 쉽게 적응하는 것 같다. 이제 일상생활은 새로운 가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비욘세와 제이 지의 가정이 피곤에 지친 초보 부모의 정신없는 집과 비슷하다고 상상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그녀가 말한다. “저를 훨씬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생긴 것 같아요. 가족은 항상 중요했어요. 늘 어머니와 아버지와 남편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건 그저…” 그녀는 말을 멈췄다. “삶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들 중 어떤 걸로도 정의할 수 없지요.” ‘이것’에는 물론 관심, 돈, 명성, 우리 손끝에 있는 이 놀라운 과일 같은 것 등등을 의미한다. 비욘세가 30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녀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보냈다. 하지만 반항적인 시기를 겪거나 자기 파괴적인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다. 팝스타의 의무처럼 보이는 부끄러운 헤드라인들은 그녀와 거리가 멀었다. 켈리 롤랜드는 말했다. “가끔 비욘세를 보면, 그녀 또래보다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그녀가 어머니의 미용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그 미용실에서 성장했어요. 비욘세와 저는 수많은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