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디자이너들과의 로맨틱한 만남

디자이너가 되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여전히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옷을 아름답게 잘 만드는 것이다. 데미 꾸뛰르 시대를 이끄는 당대 파리 디자이너들과 <보그>의 로맨틱한 만남!

커다란 크리스털 원석을 촘촘히 박은코트 드레스와 흰색 트레이닝 팬츠 룩이지암바티스타 발리 부티크의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우리는 ‘꾸뛰르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 놓은 옷을 볼 때면 꼭 한번 이렇게 말한다. 프레타 포르테와 오뜨 꾸뛰르 사이에 놓인 ‘데미 꾸뛰르’ 덕분이다. 한 벌 한 벌이 모두 작품인 알렉산더 맥퀸, 수많은 비즈와 진주를 옷감에 섬섬옥수 수 놓는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발맹, 사소한 상상력을 예술적으로 발전시키는 로다테의 멀리비 자매 등등. <보그>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스케치하고, 옷감 위에 초커로 패턴을 그리며, 손으로 시침핀을 꽂아 입체재단하며 패션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들 데미 꾸뛰르 디자이너들 가운데 유독 세 팀을 주목했다. 호사스러운 이브닝 드레스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이제는 꾸뛰르 컬렉션을 론칭한 지암바티스타 발리, 할스톤에 이어 로샤스에서 특유의 로맨틱한 모던 꾸뛰르를 선보이고 있는 마르코 자니니, 보다 젊어진 발렌티노 숙녀들을 위해 성실하게 재능을 투자하고 있는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와 마리아 그라지아 치우리. 흥미로운 사실은 파리에서 패션쇼를 선보이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것. 그들의 패션 뿌리인 알타모다의 장인 정신에 파리 꾸뛰르의 환상을 더한 데미 꾸뛰르 시대의 주역들을 <보그>가 만났다.



리본 아플리케 장식 크롭트 톱과 스커트를 입고발리 옆에서 포즈를 취한 모델 곽지영.촬영을 위한 의상은 디자이너가 직접 고른 것.


GIAMBATTISTA VALLI


3월 5일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가을 컬렉션이 끝난 후, 패션 평론가 수지 멘키스는 “꾸뛰르와 기성복 컬렉션을 분리하는 데 완벽히 성공했다”라고 품평했다. 또 미국 <보그>는 “‘발리 걸’의 성공적인 진화”라고 전했다. 브랜드 론칭 8년 만에 최고의 찬사가 지암바티스타에게 쏟아졌다. 1988년 로베르토 카푸치의 어시스턴트로 패션계에 입문한 그는 펜디, 크리지아, 웅가로를 거쳐, 현재 자신의 레이블 외에 몽클레르 감므 루즈까지 맡고 있다. 파리 패션위크 마지막 날 오후 몽클레르 감므 루즈 쇼까지 끝난 후, <보그>는 그를 만나기 위해 부아시 당글라스의 아틀리에를 방문했다. 커다란 거울과 오래된 목재 가구, 고풍스러운 금색 몰딩이 돋보이는 이곳은 한때 이태리 태생의 프랑스인 오페라 작곡가 장 밥티스타 륄리가 살던 곳이다. 1층에는 단 하나뿐인 지암바티스타 발리 부티크, 위층에는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새 컬렉션을 선보이는 쇼룸, 그리고 맨 꼭대기는 디자인실이 있다. 구석구석 빛 바랜 레코드와 향초, 오래된 잡지에서 채집한 이미지들이 가득한 이곳이 바로 지암바티스타의 아지트였다.

VOGUE KOREA(이하 VK) 아틀리에가 정말 멋지다. 딱 지암바티스타 발리 느낌!
GIAMBATTISTA VALLI(이하 GV) 1층 부티크도 꼭 들러보길 바란다. 내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로 꾸몄다.

VK 며칠 전 올가을 컬렉션을 끝냈는데, 어떤 컨셉으로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나?
GV ‘소년, 소녀를 만나다’란 봄 컬렉션 주제를 좀더 발전시켰다. 맨해튼의 소년이 파리 리브 고시의 소녀를 만난 느낌? 이브닝 드레스 위에 파카를 입는 식이다. 사실 난 러브 스토리를 아주 좋아한다.

VK 로퍼도 인상적이었다.
GV 요즘 소녀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만들었다. 시폰 드레스와 로퍼의 매치가 동시대적이지 않았나? 이번 컬렉션의 핵심 아이템이다. 개인적으론 오프닝 룩이 가장 맘에 든다. 이번 컬렉션을 함축한다. ‘완벽’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헤어&메이크업, 음악까지 거의 완벽했다.

VK 봄 컬렉션의 ‘발리 걸’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GV 지난 시즌이 월 스트리트의 ‘증권맨’을 만나는 소녀였다면, 이번엔 좀더 캐주얼한 파리지엔 느낌일 것이다.

VK 이번 쇼가 당신의 컬렉션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알고 있나?
GV 시간이 없어서 몇몇 존경하는 몇몇 평론가들의 리뷰만 읽었다. 최고의 컬렉션이라기 보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컬렉션 아니었을까? 품평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 스스로의 만족감이 가장 중요하다.

수작업으로 꽃을 그려 넣고,정교한 레이스 장식을 더한 드레스에서발리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VK 2005년 3월 데뷔했는데, 당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한 계기는 무엇인가?
GV 다른 브랜드의 언어를 통역하는 게 아닌, 나만의 언어로 패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패션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중요한 순간이었다. 발렌티노를 비롯해 많은 대가들이 하우스를 떠나고 하이더 아커만, 알렉산더 왕 등 새로운 디자이너가 등장했다. 7년마다 인생에 변화가 찾아 온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진화를 원할 뿐 혁신이 필요한 게 아니다. 고객에게 위험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VK 2년 전부터 꾸뛰르 컬렉션을 선보인 이유는 무엇인가?
GV 현실과 꿈을 구분하고 싶었다. 웅가로를 그만두고 내 브랜드를 론칭하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다들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꾸뛰르 때도 다들 반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시의 적절한 선택이었다. 베르사체도 돌아오고, 돌체앤가바나도 뛰어들지 않았나? 디자이너들은 이 드레스가 몇 백 시간 동안 몇천 개의 비즈를 손으로 달았다는 얘기를 즐겨 한다. 하지만 이제 꾸뛰르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입는 순간 ‘내 옷’이라는 특별한 기분이 들어야 한다. 기성복이 나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면, 꾸뛰르는 내 판타지를 표현한 것이다. 몽클레르 감므 루즈는? 나의 오락이다! 컬렉션을 준비하다 보면 영화감독이 된 기분이다. 엄격히 말하면 몽클레르는 나일론 재킷을 만드는 브랜드일 뿐이지만 무척 재미있다.

VK 테일러드 팬츠, 시폰 드레스, 미디 스커트 등은 당신을 상징하는 아이템이다.
GV 비앙카 브란돌리니, 리 랫지윌처럼 ‘발리 걸’로 불리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8년 전엔 파티를 즐기는 소녀였지만, 이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엄마가 됐다. 그래서 처음엔 파티 드레스가 내 시그니처 아이템이었지만 점차 변하게 됐다. 이번 시즌 로퍼처럼! 리틀 블랙 드레스, 오버 사이즈 파카, 그리고 이번에 론칭한 발리 백은 그들의 옷장에 꼭 갖춰야 할 품목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액세서리는 멋진 남자 친구다.

VK 이번 시즌 처음 선보인 ‘발리 백’이 궁금하다.
GV 하우스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100% 확신이 있어야 한다. 고객이 만족하고 내 디자인 철학이 제대로 담긴 가방을 만들기 위해 오래 기다렸다. 모든 백 안에는 미니 파우치를 마련해 따로 지갑이 필요 없게 했다. 고유의 디자인은 유지하되 다양한 소재와 색깔로 선보여 잇 백이 아닌 아이콘 백으로 진화시키고 싶다.

VK 컬렉션 준비는 어떻게 시작되나?
GV 스케치를 아주 좋아한다. 하얀 종이와 연필, 음악만 있으면 나만의 세계가 완성된다. 그보다 먼저 할 일은 실루엣과 테마를 정하는 것! 50~60년대 이탈리아 미술 작품들은 내게 늘 영감을 던져준다. 또 이브 생 로랑, 앙드레 꾸레주,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나의 영원한 우상이다. 그런 뒤 Timeless, Effortless, Ageless라는 나만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한다. 시즌이 지나도 입을 수 있고, 꾸뛰르 드레스도 티셔츠처럼 편하게 입을 수 있으며, 나이와 상관없이 입을 만한 옷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 물론 다른 하우스와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이 알게 모르게 작용할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렇다고 내 비전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웅가로를 떠난 지 3개월 만에 내 컬렉션을 발표했는데, 전혀 다른 비전을 보여주자 다들 놀랬다.

VK 당신은 로마에서 자라고, 런던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일하고 있다. 각 도시의 매력이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오나?
GV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다. 어린 시절엔 바비 인형 옷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아, 당신이 하나 빠뜨린 게 있다! 난 뉴욕에서도 지낸 적 있다. 패션의 관점에선 파리가 가장 이상적이다. 그래서 여기서 브랜드를 론칭한 것이다. 각기 다른 비전의 디자이너들이 모이는 곳이 파리다. 샤넬, 꼼 데 가르쏭, 랑방 등 모든 하우스가 뚜렷한 개성과 정체성을 지녔다는 사실이 정말 멋지지 않나.

VK 지암바티스타 발리 남성복은 아직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평소 어떤 옷을 즐겨 입나?
GV 스테파노 필라티의 생 로랑과 꼼 데 가르쏭, 크리스반 아셰의 디올을 자주 입는다. 지나치게 트렌디해 보이는 게 싫어서 일부러 시즌이 한참 지난 것을 찾아 입는다. 아페세, 유니클로, 아메리칸 어패럴의 기본 아이템도 좋아한다. 액세서리는 단연 에르메스!

VK 패션 외에 관심 있는 분야는 뭔가?
GV 리졸리 출판사와 함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지암바티스타 발리 하우스가 시작한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담게 된다. 패션 문외한은 물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나만의 철학과 비전을 보여주는 책이다. 인스피레이션, 스케치, 텍스처, 피팅 등으로 나눠 컬렉션이 완성되는 과정을 자세히 담았다.

VK 이제 가을 컬렉션이 끝났는데, 쉴 시간은 있나?
GV 곧바로 프리 컬렉션 준비에 돌입했다. 보통 하나의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다음 컬렉션을 생각한다. 하지만 주말에 시간이 나면 마라케시에서 쉰다. 정신없는 패션계를 떠나 자연을 바라보면 확실히 치유되는 기분이다. 언젠가 칼 라거펠트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단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가!” 아무리 바빠도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걸 행운으로 여기며 감사한다.

VK 10년 후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
GV 물론 컬렉션을 계속 준비하고 있겠지만, 패션 서적을 만드는 데 좀더 관심을 기울일지도 모른다. 패션 세계에서 하고 싶은 일은 정말이지 무궁무진하다!

로샤스 쇼룸에서 멀지 않은 곳에위치한 르네상스풍 대저택.뷔스티에 드레스와 금수가 놓인 재킷,복싱화의 매치가 독특한 느낌을 연출한다.

목부터 팔, 손가락까지 이곳 저곳에타투를 한, ‘록 스피릿’ 충만한 자니니와 커다란국화꽃 프린트 드레스를 입은 모델 이혜정.


MARCO ZANINI OF ROCHAS


2009년 봄, 마르코 자니니는 첫 로샤스 컬렉션을 발표했다. 고다르 감독의 누벨바그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데뷔쇼에 대해 미국 ‘스타일닷컴’은 이렇게 평가했다. “마르코 자니니는 동시대적인 컬렉션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올가을 컬렉션에 대한 스타일닷컴의 평가는? “자니니는 이번 컬렉션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밀라노 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로렌스 스틸과 도메니코 돌체의 어시스턴트를 거쳐 베르사체 수석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았다. 할리우드의 거물 하비 웨인스타인이 할스톤을 다시 론칭하기로 했을 때 자니니를 스카우트했고, 우아한 드레스와 롱스커트, 니트 케이프 등을 내세운 쇼는 할스톤의 완벽한 부활을 의미했다. 올가을 파리 컬렉션을 마친 뒤 밀라노로 돌아가기 전(비행기 이륙 5시간 전) 로샤스 쇼룸에서 그를 만났다. 키가 정말 큰데다 목부터 팔, 손가락까지 타투가 가득한 모습을 보니 로샤스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옷과 언뜻 매치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한 인상 덕분에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 편안했다.

VOGUE KOREA(이하 VK) 쇼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건 가을 컬렉션이 그만큼 훌륭했다는 뜻이다.
MARCO ZANINI(이하 MZ)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번 컬렉션은 좀더 성숙한 여성을 표현했다. 늘 그렇듯 충격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 보다 최고급 원단, 아름다운색상, 그리고 우아한 실루엣을 향한 나의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물론 남성적인 아이템도 꽤 있었다. 모든 것은 재단에서 비롯된다. 남성적인 재킷이지만 엉덩이 부분을 둥글고 부드럽게 표현하는 식. 부드러운 원단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VK 로샤스의 가을 숙녀들은 봄 숙녀들과 무엇이 다른가?
MZ ‘로샤스 레이디’를 계속 발전시키며 그녀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다. 전혀 다른 여성을 매 시즌 보여주고 싶진 않다. 사람들은 이런 나의 방식과 로샤스 컬렉션을 보며 ‘자니니이즘’이라 말한다.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부끄럽다. 과분한 칭찬이다. 프린트 파자마 수트, 오버 사이즈 코트, 그리고 커다란 트라페즈 스커트 등이 자니니즘에 속한다. 전형적인 클래식에 나만의 개성을 담아 새롭게 재해석한다.

VK 그렇다면 ‘로샤스 레이디’는 어떤 여성인가?
MZ 패션을 사랑하는 로맨틱한 여성, 고급스러운 옷을 보면 그 가치를 알아채는 여성!

VK 4년 전 로샤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을 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
MZ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어느 브랜드에서 연락이 온지도 잘 몰랐다. 잠시 후, 로샤스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로샤스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역사가 깊다. 이름만으로도 의미 있는 하우스다. 결코 놓칠 수 없는 일생 일대 기회였다. 로샤스의 90년 역사는 패션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무슈 로샤스 시절은 물론이다. 게다가 50년대에 문을 닫았기 때문에 역사가 계속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세팅이 끝난 하우스에 비해 이제 막 성장해 나가야 할 로샤스가 내겐 무한한 자유를 제공했다.

VK 2009년 가을 컬렉션부터 지금까지 유난히 마음에 드는 컬렉션이 있나?
MZ 늘 마지막 컬렉션이 가장 마음에 든다. 다음 시즌으로 발전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사실 아홉 번의 컬렉션 만으로 완벽한 브랜드의 목소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원단을 고르고 스케치하고, 특정 아이템을 디자인하는 과정들 말이다. 나는 쇼 직전에 스타일링하기 보다 스케치하는 순간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룩을 통째로 디자인하는 편이다. 의상은 물론, 가방, 슈즈, 액세서리까지! 지난봄 컬렉션의 경우 처음부터 복싱화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다.

풍성한 트라페즈 스커트는자니니가 로샤스에서 매 시즌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아이템.

VK 매 시즌 근사한 프린트는 어떻게 탄생하나?
MZ 프린트를 개발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일 뿐이다. 그래서 프린트 일러스트레이터를 따로 두지 않고, 디자인팀에서 브레인 스토밍을 거쳐 프린트를 만든다. 우리 팀에는 웬만한 꾸뛰르 하우스 못지않은 최고의 장인들이 포진해 있다. 로샤스만을 위한 최고급 원단 공급자들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든 룩에 똑같이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 평범한 흰 셔츠라도 이브닝 드레스 못지않게 공을 들인다.

VK ‘로샤스 레이디’가 꼭 갖춰야 할 아이템은 뭘까?
MZ 여성스러운 스커트와 니트 스웨터, 그리고 잘 만든 재킷! 여기에 멋진 구두를 더하면 가장 전형적인 로샤스 룩이 된다.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멋져 보이지 않나? 사실 특정 시대를 엄두에 두고 디자인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40년대의 우아하고 클래식한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다. 이제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 시대가 반영되는 것 같다.

VK 이번 쇼가 끝나자마자 가을 컬렉션의 오버 사이즈 코트를 입은 지오반나 바타글리아를 디올 쇼장 앞에서 마주쳤다.
MZ 그녀가 로샤스 코트를 입고 수많은 사진가들에게 찍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셀러브리티에게 의상 협찬을 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지만, 로샤스를 정말 좋아해 입는 경우라면 환영이다. 최근 위노나 라이더와 엘르 패닝이 입은 것을 봤을 때도 아주 기뻤다.

VK 로렌스 스틸, 돌체앤가바나, 베르사체에서 일하며 당신은 무엇을 배웠나?
MZ 로렌스는 최고의 스승이었다. 도미니코 돌체의 어시스턴트로 1년, 도나텔라와는 9년을 함께했다. 그 시절에 디자이너의 삶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됐다. 패션쇼의 압박을 견디는 방법, 기자와 바이어, 고객을 상대하는 방법 등. 사실 나는 밀라노에서 자라고, 뉴욕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파리에서 일하는 중이다. 다양한 도시, 여러 브랜드에서 일한 것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패션의 기술에서 밀라노의 노하우는 세계 최고다. 뉴욕은 에너지 넘치고 상업적이며, 런던은 탄산수처럼 젊고 새롭다. 하지만 패션 수도는 단연 파리다!

VK 그들 가운데 당신의 롤모델이 있나?
MZ 나의 롤모델은 다른 인물이다. 바로 아제딘 알라이아! 그는 지구상의 유일한, 진정한 꾸뛰리에다. 물론 나는 알라이아, 로샤스 모두 입지 못한다. 다들 여성복이니까. 하하! 난 20대에 디자이너 컬렉션 의상을 많이 입었다. 늘 새로운 시즌의 옷을 입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루할 만큼 평범하고 기본적인 것만 입는다.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미치도록 패션을 좋아했다. 돈이 얼마나 많이 들든 상관없었다. 또 패션쇼를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부류였다. 밀라노와 파리 패션위크 때마다 텐트 밑으로 기어 들어가 거의 모든 빅 쇼를 봤다. 요즘처럼 경계가 삼엄하면 어림없는 소리지만. 하하! 내가 어린 시절 패션을 얼마나 좋아했는지에 관한 에피소드는 내일 밤까지도 계속 늘어놓을 수 있다.

VK 패션 이외에 당신이 관심 분야는 무엇인가?
MZ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 스케치 때부터 쇼에 사용할 음악을 고민할 정도다. 창의력에는 스위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음악을 듣다가도 문득 영감을 받을 때가 있다.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마찬가지. 그렇게 떠오른 영감을 바탕으로 벌써 리조트 컬렉션을 준비 중이다. 올가을 패션쇼가 있기 전에 이미 패브릭과 컬러를 정해뒀다. 하지만 오후 6시 이후, 그리고 주말에는 가능한 한 쉬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개인적인 삶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VK 언젠가 로샤스 꾸뛰르를 기대해봐도 될까?
MZ 그런 날이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아직은 정말 꿈 같은 일이다! 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 그리고 패션쇼를 발표할 영광을 계속 누렸으면 한다.

VK 그나저나 손가락에 ‘LOST’라고 문신한 이유는 뭔가?
MZ 모리세이의 곡 ‘Lost’를 아주 좋아한다. 또 문신할 때쯤 개인적으로 아주 힘들었었다. 디자이너로서 내 자신을 잃은 듯한 위기의 시기였다. 슬럼프에서 벗어나도 그때를 절대 잊지 말자는 의미다. 물론 지금은 늘 의욕이 넘쳐서 더 문제다. 하하.

VK 혹시 마르코 자니니라는 건축가가 있다는 걸 알고 있나?
MZ 알고 있다! 가끔 그에게 가야 할 우편물이 내게 온 적도 있다. 건축 사무실에서 일을 의뢰하기 위해 전화가 온 적도 있다. 하하!

청담 사거리에 위치한 발렌티노 플래그십스토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델 곽지영.수백 개의 꽃 모양을 섬세하게이어 붙인 드레스는 데미 꾸뛰르의 표본이다.


MARIA GRAZIA CHIURI & PIERPAOLO PICCIOLI OF VALENTINO


마리아 그라지아 치우리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벌써 25년을 함께한 듀오 디자이너다. 발렌티노의 황제가 두 사람을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지명했고, 몇 년 후 그들은 황제의 뒤를 이어 발렌티노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다. 2009년 봄부터 두 사람은 하우스 유산을 유지하며 자신들만의 개성을 주입했다. 덕분에 발렌티노 하우스에 젊고 사랑스러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 가을 컬렉션이 끝난 후 미국 <보그>가 “발렌티노는 비로소 마리아 그라지아와 피에르파올로의 디자인이 빛을 발하는 파워풀한 하우스로 자리 잡았다”라고 호평했을 정도다. 마리아 그라지아 치우리는 검정 터틀넥 스웨터와 타이트한 스커트를 입고 중간 길이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넘긴 채 나타났다. 또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색색의 면실로 손목을 둘둘 감은 사춘기 소년처럼 보였다. 이탈리아인답게 넘치는 열정과 유쾌한 성격 덕분에 분위기는 떠들썩했다. 게다가 그들은 웃을 때마다 박수도 함께 쳤다.

VOGUE KOREA(이하 VK) 이번 가을 컬렉션은 어느 때보다도 소녀답고 화사했다.
MARIA GRAZIA CHIURI(이하 MC)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주 사적인 시간을 즐기는 소녀의 모습! 쇼에서는 얼굴을 강조하는 게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화사한 비즈와 레이스를 잔뜩 사용한 칼라 장식을 자주 등장시켰다. 물론 자수와 비즈도 많이 사용했다. 어느 하나 쉽게 만든 게 없다. 특히 푸른색 도자기 프린트는 비즈로 수 놓은 것으로, 가라바니가 1968년 사용했던 프린트를 재해석했다.

VK 이토록 섬세한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나?
PIERPAOLO PICCIOLI(이하 PP) 로마 작업실에는 40명이 넘는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다. 그들과 작업실에서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재료와 씨름한다. 아무리 간결한 결과물이라도 긴긴 작업 시간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라 팽팽한 긴장감도 함께 존재한다. 하나의 예술품 같은 아름다움이 바로 거기서 생긴다.

VK 발렌티노 디자인팀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8년 10월, 알레산드라 파치네티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됐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PP 그렇게 강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의 뒤를 이어 수장이 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가라바니는 그의 뮤즈인 리즈 테일러 같은 여성상을 컬렉션에서 보여줬다. 또 자신의 고유 컬러인 타오르는 듯한 빨강을 상징으로 썼다. 하지만 마리아 그라지아와 나는 좀더 많은 여성들을 위해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보다 현대적인 여성의 모습과 50년 역사의 발렌티노 하우스가 지닌 정체성을 접목시키기위해 노력했다. 현재도, 앞으로도 그렇게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VK 발렌티노 하우스가 오랜 시간 동안 지켜온 가장 핵심적인 유산은 무엇인가?
MC 우아함! 다시 말해 무게가 느껴지되 근엄하지는 않은 그 무엇! 사전 계획이나 별다른 노력 없이도 풍기는 매력. 그건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일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 애정 행위를 하듯 옷을 만든다. 누군가에게 옷을 입힌다는 건 그 대상을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아름답게 만들고, 한편으론 드러내며 또 다른 한편으론 보호하는 옷을 원한다. 늘 그런 아이디어를 염두에 두고 컬렉션을 준비한다.

벌써 25년을 함께한 마리아 그라지아치우리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두 사람의옷차림도, 풍기는 분위기도 왠지 닮아 있다.

VK 듀오 디자이너이기에 의견 차이가 발생하진 않나?
MC 작업할 때 각자 선택하는 건 다르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늘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행복했던 시절, 낙천주의로 가득한 80년대를 거쳤다. 하지만 재정적인 풍요로움이나 나르시시즘도 이제 다 지난 얘기다.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런 복잡하고 민감하고 난해한 현실을 발렌티노 컬렉션에선 아주 아름답게 반전시키고 싶다.
PP 작업 방식이 달라도 같은 디자인 철학을 공유하고 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외부의 어떤 요소들을 흡수해 발렌티노의 전통에 활기를 불어넣길 원한다.

VK 아카이브 외에 컬렉션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
PP 우리는 바로 지금 이순간, 혹은 잠시 후 일어날 일에 귀 기울인다. 흔히 시류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다. 존재하는 것,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막 탄생하려는 것들! 바로 지금 우리가 발견한 것들을 바탕으로 한다.
MC 경험이야말로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솔직히 패션에 새로운 건 없다. 모든 컬렉션은 과거, 현재, 미래가 융합된 것이다.

VK 앤 헤서웨이부터 다코타 패닝, 제니퍼 애니스톤, 플로렌스 웰치까지 요즘 레드 카펫 위에서 발렌티노 드레스를 선택한 셀러브리티는 셀 수 없이 많다.
MC 키이라 나이틀리가 발렌티노 꾸뛰르 드레스를 입고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아주 감동적이었다! 드레스가 그녀의 영혼을 엑스레이 촬영하는 느낌? 키이라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지닌 연약함과 풍요로운 아름다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어쩌면 어떤 옷의 가치는 그것을 입은 사람과 보는 사람 간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에 달린 것 아닐까?

VK ‘연약함’이라는 단어야말로 ‘발렌티노 레이디’를 잘 묘사하는 것 같다.
PP 우리 컬렉션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개인의 몫이다. 옷은 입기 전엔 완벽히 파악할 수 없으니까. 목덜미 곡선, 우아한 몸짓, 피부결 등등 여성의 연약한 요소들이 옷을 생명으로 꽉 차게 만든다.
MC 섬세하게 옷감을 이어 붙이고, 정교하게 자수를 놓고, 투명한 소재로 간결한 의상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발렌티노만의 연약한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다.

간결한 점프수트에 정교한 레이스를더하는 것이 발렌티노만의 연약한아름다움이다. 스터드 장식 펌프스는한층 젊어진 하우스의 상징.

VK 두 사람 모두 로마에서 태어나 한 번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로마는 당신들에게 어떤 도시인가?
MC 나는 로마 시내, 피에르파올로는 교외에 살았다. 하지만 어디든 간에 로마는 정말 매력적이다. 우린 둘 다 로마 유일의 디자인 스쿨을 나왔지만, 동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1989년에 펜디에서 만난 뒤 현재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PP 로마는 빛나는 유적은 물론 거리마다, 작은 골목의 뒤뜰에서조차 아름다운 역사가 숨쉬고 있다. 모퉁이를 돌면 고대 로마의 유적들이 눈에 띈다. 그래서 거리를 걷다 보면 여러 세기를 파노라마처럼 보고 느낄 수 있다. 과거 모든 시대와 현재의 복잡한 도심이 공존하는 곳이 로마다. 마리아 그라지아의 말대로 우리는 펜디에서 10년을 함께한 뒤 발렌티노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함께 이직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커플로 오해하는데, 그저 뜻이 아주 잘 맞는 동료일 뿐. 각자 결혼했고 마리아 그라지아는 자녀가 두 명, 나는 세 명의 아이가 있으니 오해 마시길. 하하!

VK 두 사람 모두 어릴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나?
MC 엄마가 작은 의상실을 운영하셨기에 아주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올지아타는 대사관이 많은 부유한 동네였고, 엄마 의상실에 놀러 오는 숙녀들은 늘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바로 그런 여성들을 위해 옷을 만드는 게 자연스럽게 내 꿈이 됐다.
PP 열세 살 무렵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치네치타 영화제작소, 안토니오니 감독, 파솔리니 감독, 그리고 안나 마냐니나 모니카 비티 같은 여배우들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 <맘마로마> <르팡파론> <라돌체비타> <펠리니로마> 같은 작품을 보고 또 봤다. 그러다 보니 모든 열정이 로마 안에서, 로마를 통해 표현됐으며, 로마를 이상향으로 삼았다. 로마는 나의 미의식을 구축한 도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설 속 여주인공을 상상 속에서 그려보듯 패션을 꿈꾸게 됐다.

VK 그렇다면 앞으로의 꿈은 뭔가?
MC·PP 우리는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편이 아니다. 그저 지금 이순간을 즐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