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팬츠 시대

침실에서 거리로 탈출한 파자마 팬츠에 이어, 시골 장터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나일론 꽃무늬 바지가 하이패션에 등장했다. 걸을 때마다 꽃잎이 나풀거리는 꽃무늬 팬츠 시대!

왼쪽 모델이 입은 크롭트 톱은필립 플레인(Pilipp Plein), 잔잔한꽃이 프린트 된 실크 팬츠는구찌(Gucci), 라피아 슈즈와 백은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컬러풀한 뱅글은 모두 폴리폴리(FolliFollie), 나무 목걸이는제이미앤벨(Jamie&Bell), 니트 소재목걸이는 데이드림 네이션(DaydreamNation at Space Null).오른쪽 모델의 프린트 톱과 팬츠,가죽 벨트는 겐조(Kenzo), 컬러풀한나무 뱅글은 모두 제이미앤벨,머리 장식으로 한 귀고리와 오픈토스트랩 샌들은 돌체앤가바나.

파자마 룩이 거리를 활보하더니 이번에는 ‘몸빼 바지’ 스타일이 유행의 정점에 섰다. 우리가 흔히 쓰는 ‘몸빼’는 일본어로 ‘바지’라는 뜻이다. 일본 도호쿠 지방의 전통 복장이었고, 2차 세계대전쯤에 일본과 한국에 널리 퍼졌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 여성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보급되었고, 1944년에는 그 바지를 입지 않은 여성은 관공서 출입은 물론 전철이나 버스를 탈수 없었다. ‘몸빼’ 바지의 특징? 현란한 무늬, 선명한 색깔, 마구 물빨래 해도 형태가 변형되지 않는 나일론 원단, 쭉쭉 늘어나는 고무줄 밴드 등. 덕분에 밭일하는 여성들이 입기에 더없이 편했다. 그런데 그 ‘몸빼’ 바지가 이번 시즌 패피들의 ‘잇 아이템(It Item. 바로 그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게 웬일!”이라 하겠지만, 파리와 밀라노, 뉴욕 등 패션 수도에서 열린 패션쇼에 등장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록 시크(Rock Chic)’의 대명사 발맹이 그 선봉에 섰다. 진짜 몸빼바지처럼 배까지 덮는 배기 형태로, 기하학무늬와 꽃잎을 추상적으로 섞은 디자인이 특징.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밋밋한 검정 크롭트 톱을 더해 동시대적 느낌을 더한 뒤 금속 벨트로 허리를 더욱 가늘게 강조했다. 여기에 큼직한 후프 귀고리와 도도한 눈빛까지 더해지자 실크 프린트 팬츠는 ‘시골 촌티’를 말끔히 벗겨냈다. 사실 꽃무늬 바지는 휴가철 리조트에서 빛을 발한다. 민속풍의 프린트 팬츠로 휴양지 패션의 정석을 보여준 에르메스는 이국적인 꽃 모티브가 과감하게 인쇄된 실크 팬츠를 선보이면서 같은 소재와 무늬의 오프숄더 블라우스를 매치했다. 매 시즌 새로운 스카프 스타일링을 소개하는 패션 하우스답게, 블라우스 역시 큼지막한 사각 스카프를 이용한 게 특징. 고급스러운 젯셋 느낌을 풍기는 구찌의 실크 팬츠에는 화사한 국화꽃 프린트가 눈길을 끌었다. 프리다 지아니니는 여기에 화려한 비즈 액세서리와 하이힐을 더해 60년대 ‘보헤미안 젯셋’ 이미지를 완성했다.

그렇다고 실크 프린트 팬츠가 바캉스 전유물은 아니다. 드리스 반 노튼은 도시에서 프린트 팬츠를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법을 보여줬다. 꽃분홍 립스틱을 바르고 상큼하게 등장한 모델들은 걸을 때마다 나풀대는 시폰, 구김이 살짝 들어간 새틴, 매끄럽고 부드러운 실크 상의에 다양한 패턴이 프린트된 팬츠를 하나같이 입고 있었다. 여성적인 꽃무늬와 남성적인 타탄체크의 조화는 환상의 궁합! 남성미와 여성미가 적당히 조화를 이룬 이 차림이야말로 도회지 여성들을 위한 최적의 배려다. 게다가 다리가 슬쩍 비치는 시폰 프린트 팬츠는? 섹시함은 물론, 안구 정화 차원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매 시즌 화려한 프린트 플레이를 구사하는 로베르토 카발리 역시 컬렉션에 프린트 팬츠를 포함시켰다. 다리가 비치는 시스루에 살구색과 연두색이 들어간 프린트 팬츠들! 여기에 남성적인 실크 재킷과 프린트 셔츠로 세련된 느낌을 더했다. 하이패션이 최고급 실크와 시폰 소재로 값비싼 꽃무늬 바지를 선보였다면, SPA 브랜드들은 100%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착한’ 가격의 프린트 팬츠를 준비했다. “네온 컬러 꽃무늬 바지들이 인기가 좋아요. 이번 시즌 네온 컬러가 워낙 유행이기에 레몬 옐로, 형광 오렌지 계열의 단색 민소매 톱을 매치하면 환상의 궁합이죠.” 눈이 팽팽돌 것처럼 한쪽 벽과 옷걸이에 꽃무늬 바지들이 가득 걸린 유니클로의 매장 직원은 나이를 불문하고, 비비드 컬러가 대세라고 귀띔한다. “소재가 100% 폴리에스테르라서 물빨래가 가능하고 보관도 편해요. 세탁기에 돌려 탈탈 털어 널면 구김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단점은? 섬유 유연제를 반드시 사용해야 정전기 때문에 다리에 바지가 휘휘 감기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한없이 매끄러운 실크, 은밀하고 에로틱한 시폰, 공기처럼 가벼운 폴리에스테르… 이번 시즌 ‘몸빼’ 바지는 다양한 가격대의 소재로 등장, 꽉 조여 숨을 쉴 수 없었던 여자들의 다리에 자유를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쇼에서 잔잔한 꽃무늬 실크 플라워 팬츠와 블라우스를 잔뜩 선보인 스티브앤요니의 스타일링 조언 한마디! “키가 작다면 복사뼈가 다 드러나는 크롭트 팬츠를 시도해 보세요. 상의로 짧은 크롭트 톱을 매치하면 다리가 길어 보이는 착시 현상까지 유도할 수 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