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존재

최강희와 봉태규가 영화 <미나 문방구>에서 소란스럽고 귀여운 보통 사람을 연기했다. 비정한 연예 생태계에서 모두가 내 얘기인 것 같은 마력적인 보편성을 연기해 온, 품위 있게 ‘골 때리는’ 두 배우를 만나보자.

최강희의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흰색니트 톱은 까스텔바작(Castelbajac),목걸이는 엑 쏭프라세르트(Ekthongprasert at bbanzzac), 줄무늬팬츠는 파리게이츠(Pearly Gates),크리스털 팔찌는 더 에어리스(TheHeriess), 마이미 메이드 위드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MYme madewith Swarovski Elements), 검정모자는 두에 필로(Due Filo).봉태규의 회색 셔츠와 흰색 니트 톱은페라가모(Ferragamo). 흰색 파이핑라펠의 진회색 수트는 디올(Dior).고양이 머리 창작 인형과도자기 인형은 이재연 작가,김미희 작가의 비스크 인형은 모디돌.

화이트 셔츠와 라펠 장식의 남색 조끼는디올(Dior), 흰색 라인이 들어간 남색팬츠와 로퍼는 모두 프라다(Prada).팔찌는 나탈리아 브릴리(Natalia Brilli atbbanzzac).

VOGUE 두 사람 다 대항하지 않으면서 복종하지도 않는 초연한 외모를 지녔어요. 비정한 연예 생태계에서 살아남 은 자기만의 생존법이 있겠죠?
강희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에서 카메론 디아즈는 못생겨서 매력적이었죠. 저는 스스로 방어하지 않고도 잘 살아남은 존재예요. 연예 생태계에서 저 자신, 미생물이나 곤충, 혹은 거북이 같다고 느끼면서요.
태규 못생겼다 잘생겼다,를 떠나서 제가 욕먹을 만한 얼굴인가요? 외모생태학적으로 ‘신기하다’는 점에서 감독들에게 탐구적인 열정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해요. 과거엔 극복하기 위해 독기를 품었지만, 이제는 비 오는 절벽 위를 찬찬히 올라가는 염소처럼 욕망에 초연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VOGUE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기보다 자신을 믿고 순수를 지켜서 여기까지 왔다면, 분명 행운의 젊은이가 틀림없네요.
강희 전 욕망이 없어요. 가만히 있으면 물에 뜬다는 걸 잘 알죠. (멋진 부력이군요!) 물에 빠져도 전 쉽게 포기하죠. 이렇게 죽는구나. 전 회전목마도 어지러워 못 타는데, 언젠가 스카이다이빙을 해야 할 때도 있었죠. ‘안 죽으면 내려가 있겠지…’ 유언하며 몸을 던졌어요. 그런 방식이 최강희가 떠 있는 부력이 된 거죠. 요즘엔 잘 보이고 싶고, 열심히 살려고 괜히 아등바등 힘을 줘서 걱정이네요.
태규 인생 짧은데 남의 이목에 목숨 걸 필요가 뭐 있겠어요? 과거의 과오를 생각하면 현재의 내가 없어지죠. 요즘엔 영화 일이 없으면 집안 청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VOGUE 내 안의 지키고 싶은 소녀성과 소년성은 어떤 모습인가요?
강희 전 어린아이를 진심으로 동경해요. <미나 문방구> 촬영장에서도 아이들 눈을 열심히 쳐다봤어요. ‘쟤네 말투를, 쟤네 눈빛을 익혀야지, 절대 까먹지 말아야지.’ 눈이 사납거나 고독해지면 유년의 표정을 지어봐요. 그 눈꺼풀의 파동을 기억하려고 해요. <미나 문방구>에서도 저는 처음엔 물려받은 문방구를 팔아 치우고 싶어 하는 도시 공무원이지만, 점점 더 아이들에게 천진난만하게 빠져들어 가죠.
태규 저에게 소년성이라면 오타쿠 기질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지금 데님과 무쇠솥과 등산용품에 푹 빠져 있어요. 저는 물건을 소비하는 것보다 탐구하는 걸 좋아해요.

VOGUE 유년은 당신에게 어떤 상처와 기쁨으로 남아 있나요?
강희 전 ‘촐랑이’라고 소그룹의 리더였어요. 친구들과 우정반지도 맞추고 신이 나서 뛰어다녔죠. 하지만 그 뒤에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연예인이 돼 뜨기 전까지는 완전히 ‘쓸모없는 존재’였어요. ‘없는 것처럼 살아주마’ 가 제 신조였죠. 데뷔 때도 인상이 어두워 보인다는 이유로 제외되다가 마침내 꼭 맞는 배역인 <여고괴담>을 만났어요. 있는 듯 없는 듯 교실을 배회하는 유령 소녀가 바로 지난 시절의 저 자신이었거든요.
태규 제 유년은 계속 좋았어요. 햄버거, 오락실, 과자… 불량한 것을 맘껏 누리며 방목되었죠.

VOGUE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강희 초등학교 2학년 때 류금희 선생님이요. 아이 같은 분이셨어요. 의자에 앉아 무릎을 세우고 소녀처럼 앉아 계시곤 했죠. 제가 좋아하는 모습이에요.
태규 중학교 때 한문 선생님은 임시 교사였는데, 비가 오면 커피 마시다 수업에 늦기도 했고, 학교에 오지 않을 땐 채소 장사도 하셨죠. 결혼하지 않고 직장이 없어도 인생은 살만하다고 얘기하셨고, 무엇보다 말도 안되는 제 말을 믿고 들어주셨어요.

VOGUE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는 뭘 훔쳤나요?
강희 가나초콜렛 3개를 훔쳤는데, 담력이 약해 오줌을 쌀 뻔했어요. 옆방에 사는 ‘날라리’ 중학생 언니가 5개를 주문했는데, 3개만 가져가서 미안해 했어요.
태규 지우개, 연필 같은 사소한 걸 훔쳤어요. 강북 변두리에 살았지만 문방구만큼은 파라다이스였죠.

VOGUE 나 스스로 상당히 유치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강희 전 제가 유치하다고 느낀 적 없어요. 오히려 전 어른스러운데 남들이 철없어 보여요. 방 안에 장난감이나 인형을 늘어 놓는 취미는 얼마 전부터 자제하고 있답니다.
태규 저에 대한 좋은 비평을 한 감독이나 평론가들의 글을 외우고 있어요. ‘식물적 무신경으로 하류 청춘의 비루함을 끌어낸다’거나 ‘비폭력 무저항의 간지가 난다’는 평가들이요. 하하하.

VOGUE 잘나가고 폼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도 당신이 귀티나고 품위가 느껴진다면, 그건 어떤 이유일까요?
강희 연연해 하지 않는 태도 때문 아닐까요? 전 어떻게 하면 얄미운지 알아요. 샘내고 싸우지 않으면서 못살게 굴고, 괜한 잔펀치를 날리고… 전 그냥 한번 ‘빡’치고 말죠. 가끔 독설도 하지만, 펀치가 깨끗한 편이에요. 흐흐.
태규 전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다 귀하고 품위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고, 나도 타인도 귀하게 대접하다 보니 ‘귀티’가 나는 거죠. 물론 이제까지 영화 캐릭터상으로는 천하게 대접받았지만, 전제가 맡은 배역도 루저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자신의 단점이나 찌질한 상황을 감추지 않고 대놓고 드러냈다는 점에서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가장 귀하고 섹시했어요.

볼륨이 돋보이는 남보라색 드레스는제인송(Jain Song), 목걸이는슈룩(Shourouk at bbanzzac), 실버웨지힐은 버버리 프로섬(BurberryProrsum), 물고기 모티브의 헤드피스는두에 필로(Due Filo).

스트라이프 패턴의실크 원피스는 디올(Dior),목걸이는 대니조(Dannijoat Bbanzzac), 장갑은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Swarovski Elements),흰색 모자는두에 필로(Due Filo).

VOGUE 로맨스감이 좋은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당신이 포용력있고 리액션이 좋아서인가요? 아니면 사람에 대해 예민하기 때문인가요?
강희 전 리액션이 좋아요. 그리고 정말 사랑에 빠지죠. 남자는 예민한 동물이라 카메라 밖에서도 자신에게 잔뜩 호감을 갖는 저 같은 여배우가 어떻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어요? 흐흐.
태규 전 예민한 사람이라 상대 여배우가 누구인가가 매우 중요해요. 일할 때의 로맨스감은 대체로 좋은데, 실제 연애는 예측불가능한 애드립의 연속이라 힘들어 하죠. 최악의 연인은 <가족의 탄생>에서 정유미 씨 같은 캐릭터예요. 주변 사람들을 돌보느라 남자 친구를 애정 결핍 상태로 만드는 여자는 사양입니다.

VOGUE 자신의 마스크에서 표현력을 극대화시켜주면서 작가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부위는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강희 눈동자요. 가끔 사시가 될 때도 있는데, 약간 틀어질수록 표정이 묘해지죠.
태규 입이요. 사람들은 제 입을 주목하더군요. 제 입은 나온 게 아니라 아래턱이 작을 뿐이에요. 워낙 오랜 시간 앙다물고 살다 보니 아래턱이 조여들었어요. 양악 수술하면 가장 큰 효과를 볼 사람으로 저를 지목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입이 들어가면 머리가 나빠 보일 거예요. 사진 찍을 때도 늘어놓은 수건처럼 보이겠죠. 전 선명하게 들리는 제 목소리와 돌출된 제 입이 좋습니다.

VOGUE 두 사람 다 변두리 청춘의 비루한 성장통을 담당해 왔죠. 강희씨는 <달콤한 나의 도시>나 <애자> 등으로, 태규 씨는 <바람난 가족>이나 <방과후 옥상> 등으로… 그런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나온 기분이 어떤가요?
강희 성장의 고통과 기쁨을 마디마디 느껴요. 작품과 함께 나도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왔죠.
태규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공감해요. 루저로 살아가는 88만원 세대의 청춘에게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VOGUE 지금 어떤 책, 어떤 어른이 당신의 성장을 돕고 있나요?
강희 책은 사람을 성장시킬 수 없어요.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을 거예요. 책은 지식이나 감정을 가르치지만, 그 틀에 맞춰 살게끔 나를 강제할 뿐, 절대 성장은 시키지 않아요. 사람은…, 달라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나를 성장시켜요. 절더러 ‘천재’라고 하면 저는 정말 천재가 되고, ‘못생겼다’고 하면 정말 못생겨져요. 저는 제 앞의 사람이 말하는 대로 변해요. 그래서 애인이 생기면 가장 근사해져요.
태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정말 굉장하지요. 그 책으로 교훈을 얻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콤플렉스라던가, 불합리한 세상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냥 받아들여야 해요. 외면하거나 움츠러들거나 극복하는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봉태규의 동그란 안경은 알랭 미끌리(Alain Mikli),넓은 화이트 칼라의 반소매 네이비 톱은 프라다(Prada).최강희의 검정 민소매 톱과 플라워 패턴의 볼륨 스커트,앞코가 뾰족한 검정 하이힐은 모두 디올(Dior). 목걸이는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Swarovski Elements), 초록색비즈가 장식된 노랑 모자는 두에 필로(Due Filo).

VOGUE 현재까지 당신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당신의 역작은 무엇인가요?
강희 드라마 <떨리는 가슴>에서 김창완 아저씨와 ‘바람’편에 출연했던 것(단 2회)과 아침 드라마 <단팥빵>에서의 모습이요. 유년 시절 ‘촐랑이’처럼 신이 났었죠.
태규 하는 동안 가장 즐거웠고, 원 없이 해봤고, 너무 빨리 그만둬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라면 시트콤 <논스톱>을 역작으로 꼽고 싶어요.

VOGUE 비평도 좋고 인기도 있었던 작품들이 많은데, 의외로 초기 소품들을 역작으로 선택했군요.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중요한가요? 세상이 나를 보는 눈이 더 중요한가요?
강희 점점 더 세상이 나를 보는 눈이 중요해져요. 그 반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쨌든 지금은 그런 시점인 것 같아요.
태규 당연히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중요하죠.

VOGUE 언제 웃고, 언제 눈물을 흘리나요?
강희 눈물은 잘 흘리지 않아요. 웃을 때는 최근 드라마 <7급 공무원〉을 함께했던 여배우 장영남과 있을 때요.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땐 웃을 준비가 돼요. 좋고 싫음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싸우지도 않는 장영남이 나를 가장 웃게 만들어요.
태규 잘 웃고 잘 울어요. 얼마 전엔 뮤지컬 <젊음의 행진>을 올리는 동생들을 보고는 눈물이 났어요.

VOGUE 다시 유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강희 다시 ‘촐랑이’로 살고 싶어요. 그래서 차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태규 똑같이 살고 싶어요. 열심히 놀고, 열심히 먹고, 열심히 오락하고.

VOGUE 당신의 스타일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가고 있나요?
강희 친구들이 저더러 여자가 되었다잖아요. 옛날엔 스트리트 룩이 잘 어울렸는데, 이젠 점점 더 페미닌하게 변해가요. 몸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저도 동의해요. 솔직히 제 자신이 ‘징그럽다’고 느낄 때도 있답니다.
태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옷에 더 애착이 가요. 리바이스 시리즈를 특히 좋아하는데, 생지 데님도 워싱이 되고 에이징이 되는 과정에서 나만의 옷으로 변해 가잖아요.

VOGUE 내가 아주 보통 사람처럼 느껴질 때는 언제인가요?
강희 남자들이 “얘가 무슨 사차원이야?”라고 할 때, 저에 대한 기대마저 한풀 꺾이는 느낌이에요. ‘사차원’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뭐랄까 특별하게 평범해요. 말하자면 여러분들은 제가 보통 사람이라서 사랑하시는 거예요.
태규 보통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몇 년째 보통의 존재로 살고 있어요.

VOGUE 태규 씨는 보통의 존재로 사는 자기만의 자존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태규 보통을 0이라고 해야 할지, 평균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인생에서 플러스 마이너스는 누구나 있는 거죠. 저는 멘토나 힐링, 자기계발도 사람들을 평준화시키려는 ‘세상의 재단사’에 불과하다고 봐요. 보통과 보통 아닌 것의 차이가 있다면, 그건 본인이 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자신만의 삶을 사세요.

VOGUE 마지막으로 강희 씨는 삶의 목적이 뭔가요?
강희 당장의 목표도 모르겠는데, 목적은 더 모르겠네요. 다만 최근에 사진작가 보리 실장의 장례식장에 갔는데, 그녀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요. 모두가 슬퍼하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죠. 그래서 문득 ‘이렇게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삶의 목적이라면, 그렇게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