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기갈기 찢고, 해체하고, 혁신하는 펑크는 패션사에서 늘 짜릿하고 더없이 매력적인 장르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2013년 패션 전시 <Punk: Chaos to Couture>를 통해 보는 펑크의 모든 것!

펑크가 그저 음악의 한 종류, 하나의 룩, 정치 선언, 혹은 뉴욕이나 런던의 한 시대와 순간을 묘사한 단어라면(그것이 전 세계 수 많은 이질적인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펑크가 지금도 타당하다는 증거, 다시 말해 그것이 여전히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도 요지 야마모토를 비롯해 마크 제이콥스와 로다테 멀리비 자매, 그리고 크리스토퍼 케인까지 서로 다른 세대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반복해서 펑크의 근원으로 돌아가지만 그것은 늘 모던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코스튬 인스티튜트에서 열리는 <Punk: Chaos to Couture”(5월 9일~8월 14일)>을 통해 확실히 볼 수 있다. “어떤 반문화 운동도 펑크만큼 패션에 큰 영향을 미친 적은 없습니다.” 전시 큐레이터인 앤드류 볼튼은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디자이너 30여 명의 작품이 진열된다. 그것이 펑크의 보편적인 힘을 설명한다.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던 모든 사람들에겐 지금도 그것을 자신이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볼튼은 덧붙인다. “사람들은 펑크에 대해 그런 감정적 반응을 보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것을 완전히 몰아낸 엑소시즘이었으니까요. 놀라운 신세계 같았어요.” 이번 전시를 위해 그 놀라운 신세계의 축소판들이 7개 갤러리로 재현되었다. 여기에는 영향력 있는 뉴욕의 록 클럽 ‘CBCG’와 런던 킹스 로드에 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의 부티크 ‘Seditionaries’도 포함되었다. 70년대 독창적인 DIY 스타일의 펑크 의상들과 최근 오뜨 꾸뛰르를 나란히 선보임으로써 펑크가 런웨이에서 얼마나 그 본질에 가깝고 얼마나 멋지게 반복해서 재해석돼왔는지 보여준다.

패션처럼 펑크도 늘 약간 경쟁적인 스포츠 같은 느낌을 주었다. 찢어지거나 스파이크가 박힌 이런저런 아이템들을 보고 친구들이 당신을 얼마나 난폭하고, 공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하고, 과격하다고 생각하든 당신보다 더 쇼킹하고 매혹적일 정도로 더 기이한 사람은 늘 존재했다. 더 열성적인 한 사람이 늘 있었다. 내 기억속에는 80년대 필라델피아가 남아 있다. 사우스 스트리트의 지퍼헤드 부티크, 월넛의 케널 클럽, TLA에서 열리던 하드코어 펑크 밴드 ‘데드 케네디스’ 공연 등등. 서열은 이랬다. 가장 밑에 멍하니 바라보는 관광객들, 그 다음은 패션 키드들, 그 바로 위에 아트 스쿨 학생들(필라델피아에는 미술 전공생들이 아주 많다), 그 뒤를 이어 실제로 밴드를 시작한 뮤지션들이 있었다. 그리고 불안정한 맨 꼭대기에 정말 헌신적이고 엄청난 괴짜들! 그들은 굳이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며 정상적으로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다. 취업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모파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매주 토요일 밤 케널 클럽에 나타났는데, 나는 그가 몹시 보고 싶었다. 아주 키가 크고 무시무시해서(작은 옷핀들로 뒤덮인 누더기 같은 검정 옷을 겹겹이 입은,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 그곳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낼 정도였다. 그는 영화 <가위손>의 에드워드 같은 면이 있었지만, 에드워드처럼 젠틀하게 행동하진 않았다. 그러나 메이크업과 헤어는 진정한 아티스트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아름다운 괴물을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가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했다면 그는 당신 이마에 담배를 비벼 껐을 것이다. 그리고 마이클 모파가 어디를 가든 ‘The Death Dolls’가 뒤를 따랐다. 나와 내 친구들은 무덤에서 막 나온 것처럼 보이던 세 여인을 그렇게 불렀다. 그들은 검정 레이스 드레스에 파우더를 바른 하얀 피부를 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녔다.

대학 2학년 때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는 친구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교외 기숙사(버려진 건물들 벽에서 조심스럽게 떼어낸 ‘Love Club’에서 열린 콘서트 포스터들을 붙여놓았다)로 돌아가 보면 내가 캠퍼스에서 얼마나 극단적인지 알 수 있었다. 머리 왼쪽을 밀고 한쪽 귀에 옷핀을 끼웠으니까. 그리고 동네 펍 의자에 걸쳐 있던 바이커 재킷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들었다(그 옷은 지금도 갖고 있다!). 각자 물건을 가져와 사고파는 바자회에서 완벽한 타탄 팬츠를 손에 넣었고, 이 모든 옷을 갈기갈기 찢었다. 결과는 씁쓸하면서도 달콤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인한 소외감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나를 자신들의 일원으로 인정한 소수의 사람들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필라델피아 시절 이후, 나는 몇 년간 애틀랜틱시티에서 지냈다. 그곳엔 펑크가 전무하다고? 천만에! 도시 전체가 펑크였다. 멋진 노쇠함! 도회적인 어두운 그림자! 그 모든 것이 주는 공포! 거리 곳곳의 시스템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일상적인 경악이랄까? 짜릿함과 살아 있는 느낌을 갖게 했다. 그 후 나는 모티머를 만났다. 모티머 같은 사람을 묘사하는 ‘클럽 키드’라는 말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가 90년대 초에 뉴욕에 살았다면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1985년 뉴욕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터무니없는 옷차림을 한 그와 마주쳤다. 나는 그냥 우리가 친구가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룸메이트가 되었다. 백베이라는 동네의 낡은 벽돌집에서 일 년 동안 함께 살았다. 그곳은 종종(비 오는 날 특정 각도에서 보면) 리버풀처럼 보였다. 모티머도 취업을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남자였다. 그는 타탄, 쓰레기 봉투, 소매 없는 그물의상, 찢어진 스웨터, 검은 가죽 등을 옷핀으로 이어 붙였다. 아쿠아 넷 깡통과 드라이어를 이용해 자신의 긴 빨간 머리를 높이 올려 모루(대장간에서 뜨거운 금속을 올려놓고 두드릴 때 쓰는 쇠로 된 대) 형태로 만들었다. 도자기 같은 아주 창백한 피부에 매일 군화를 신었다. 모두를 놀리려고 성직자처럼 입고 성경을 들고 클럽에 나타나는가 하면, 한 번은 손거울을 들고 외출해 밤새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친구들과 얘기하는 동안에도 말이다. 우리는 으스스한 곳에 위치한 쓰레기 같은 집에서 정신 나간 파티를 열기 시작했다. 모티머는 크리스마스 전구들로 자신의 몸을 감싼 채 밤새 거실의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 채 문 앞에서 사람들을 맞고, 그들의 코트를 받아 걸고, 칵테일을 가져다 주었다. 정말 기발했다! 또 한번은 늦게까지 계속된 파티 후 다음날 정오 무렵 잠에서 깼다. 주변에는 빈 맥주 캔들과 담배꽁초들이 가득했다. 일어나 보니 내가 자는 동안 그는 작은 플라스틱 개미들의 행렬을 만들어 놓았다. 그 행렬은 식당 마루를 가로질러 부엌을 지나 조리대를 거쳐 배수구로 이어져 있었다. 아마 수천 마리는 됐을 것이다. 내 반응? 처음엔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다음엔 멍하니 놀랐고, 그 다음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가 그런 반응을 얻기 위해 밤새 그것을 했다는 사실이야말로 내가 그를 존경한 이유다. 그가 놀라운 광경을 연출하는데 전념한 모습에 늘 경외심을 느꼈다. 뭔가 영웅적인 면이 있었으니까.

펑크는 포르노와 같다. 가령 코트니 러브가 약에 취한 채 <레터맨 쇼>에 나와 셔츠를 위로 끌어올리며 관객에게 야유를 퍼붓던 일 같은 것. 펑크는 당신의 부르주아 감성을 공격하길 원한다. 그것은 유치하고, 반항적이고, 음란하고, 아주 무례하고, 부적절하다. 한마디로 펑크는 도전이다. 당신이 70년대 말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런던이나 패티 스미스의 뉴욕에서 일어난 빅뱅의 순간으로부터 몇 년, 혹은 몇 킬로 떨어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티머는 그 후 10년을 펑크라고 여겼다. 그 후에도 애틀랜틱시티에서처럼 입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당시 억압적인 지배를 받던 잊혀진 땅 애틀랜틱시티는 쿠바와 다름없는 쓰레기하치장 같은 도시였다. 오늘날 진정한 펑크 풍경은 젊은이들이 떠나고 싶어 하는 곳에서 번창하고 있다. 아바나, 바그다드, 양곤 등등. 실제로 최근 일어난 진정한 펑크 록 사건 중 하나는 바로 ‘Pussy Riot’이다. 그들은 2011년 블라디미르 푸틴의 적법성에 도전하며 러시아에서 결성된 페미니스트 록 집단이다. 그 멤버들은 네온 칼라 복면을 쓰고 항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지난겨울 이들 중 세 명이 교회 제단에서 공연하다 체포되어 ‘훌리건’ 혐의로 기소되었다. 사실 이 단어는 펑크를 표현하기엔 구식이다. 그들 중 둘은 지금까지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으며,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다. 이들의 대의명분은 마돈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펑크 디스코 디바에 의해 지지 받았다. 마돈나가 존경하는 건 그들의 용감함이다. 그러나 펑크는 의미를 갖기 위해 논쟁(혹은 어떤 종류의 정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오스카 시상식에 백조 드레스를 입고 가서 레드 카펫 위에 알을 낳는 척하는 행위일 수 있다. 비요크, 마릴린 맨슨, 리 바워리, 혹은레이디 가가 같은 인습타파주의자들! 그들은 늘 사물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동물이나 괴물로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다. 펑크처럼 그들은 당신의 시각을 바꾼다. 그리고 가가의 ‘Little Monsters’(레이디 가가 공식 팬 사이트) 특유의 유머는 펑크가 되기엔 지나치게 동화 같은 면이 있지만, 그녀가 말 그대로 뼈가 부서지도록 노력했다는 사실(요즘 휠체어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너무 리얼하다)은 그녀가 자신의 예술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것에 진지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어쨌든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행위는 펑크의 완벽한 예다.

가끔 나는 혼잣말로 ‘저건 너무 펑크 록이야’라고 중얼거린다. 그것이 늘 칭찬인 건 아니다. 그것은 영웅적 행위에 대한 인정일 때도 있고, 가끔은 허무주의일 때도 있다. 때론 누군가의 기이하고 놀라운 차림새를 조용히 즐기는 것일 수 있고, 너무 부적절한 공개적인 행위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다. 가령 나는 지난 몇 년간 리한나와 크리스 브라운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애써왔다.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러나 펑크라는 시각에서 보면 갑자기 그들의 관계가 완벽하게 이해된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시드와 낸시(섹스 피스톨스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와 그의 연인 낸시의 광기 어린 사랑은 유명했다)다. 그들은 타투와 트위터를 통해 의도적으로 불쾌한 것을 우리 눈 앞에 펼쳐 보인다. 그저 우리를 약 올리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 그들이 당신의 부르주아 감성을 공격한다고? 글쎄,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만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