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치토세의 성공 스토리

2010년 봄, 파리 데뷔 후 LTE급으로 성장 중인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 올가을 패션쇼를 선보이기 위해 서울에 온 그녀가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15년간의 노력에 대해 <보그>에 털어놓았다.

쇼가 시작되기 전, 사카이의 2013 가을 컬렉션 의상으로 차려입은 모델들과 디자이너가한자리에 모였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

“흥미로우면서도 입기 편한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저 창의적이기만한 옷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죠. 제 옷을 입고 하루 종일 고통받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사카이의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Abe Chitose)는 늘 ‘입을 수 있는 옷’을 강조했고, 그녀의 디자인 철학은 지난 몇 시즌 동안 아주 잘 구현되고 있다. 옷장 속 평범한 아이템들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그녀만의 솜씨에 이미 많은 여성들이 매료됐기 때문이다. 니트, 레이스, 모피, 패딩 등 다양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섞어 만든 로맨틱한 룩! 사카이의 트레이드마크다. 2년 전, <보그 코리아>는 네 번째 파리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치토세를 파리의 쇼룸에서 만났다. 당시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24벌의 조촐한 컬렉션을 선보였을 뿐이지만, 전 세계 기자와 바이어들이 절대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파리 쇼 대열에 합류한 그녀였다. 가을 시즌을 위한 파리 패션위크가 끝난 지 두 달이 지난 지난 4월 말, 서울 팬들도 사카이 컬렉션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분더숍의 초대로 명동 신세계 백화점 트리니티 가든에서 열린 서울 쇼 리허설을 앞두고 만난 치토세는 변함없이 상냥했다.

VOGUE KOREA(이하 VK) 서울에서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갑다.
ABE CHITOSE(이하 AC) 2년 전 <보그 코리아>와 인터뷰할 때만 해도 한국에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후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는 4일 일정이다. 지난 3일간은 모델 캐스팅과 피팅 등 쇼 준비로 바빴지만, 오늘은 쇼가 끝난 후 스태프들과 클럽에 갈 예정이다.

VK 오늘 선보일 가을 컬렉션에 대해 직접 서울의 팬들에게 설명한다면?
AC 매 시즌 특별히 새로운 것을 탐구하기 보다 늘 같은 느낌을 추구한다. 가을 컬렉션의 핵심은 우아한 벨벳 드레스와 남성용 트렌치코트의 믹스! 앞면은 남색 벨벳 드레스, 뒷면은 볼륨 있는 트렌치로 만든 오프닝 룩처럼 말이다. 봄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소재들과 아이템들의 조화를 꾀했지만, 남성적인 요소에 좀더 집중했다.

VK 파리 쇼에서는 모델들의 독특한 동선이 눈에 띄었다.
AC 사카이의 특징은 앞에서 보면 단순하지만, 옆이나 뒤에서 보면 디테일이나 실루엣이 풍성해진다. 관객들이 모든 측면에서 옷을 관찰할 수 있도록 모델이 빙글빙글 도는 동선을 마련했다.

VK 사카이가 1999년 론칭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브랜드 이름은 무슨 뜻인가?
AC 결혼 전의 성이 ‘사카이’다. 사실 ‘Sakai’지만 ‘Sacai’로 살짝 바꿨다. 브랜드 이름을 아베가 아닌, 사카이로 정한 이유는 내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싶지 않아서다. 사카이는 하나의 팀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나는 꼼데가르쏭 하우스에서 8년간 일하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그만두게 됐다. 하지만 일을 계속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수작업으로 만들 수 있는 니트 아이템 위주의 소규모 브랜드를 론칭했다.

사카이 의상은 앞뒤 실루엣이완전히 다른 것이 특징.22벌의 가을 컬렉션 룩을선보인 이번 쇼 백스테이지에서디자이너는 모델들의옷매무새를 꼼꼼히 챙겼다.

VK 2010년 파리에 데뷔하게 된 계기는?
AC 8년 전부터 여러 차례 파리전시에 참여한 덕분에 바이어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상태였다. 기자들에게도 사카이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고, 알려야 할 시점으로 여겼다.

VK 그 이후, 단 몇 시즌 만에 ‘사카이 스타일’을 패션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AC 패션계에서 보기에는 단 몇 시즌이지만, 사실 사카이는 15년된 브랜드다. 처음 세 시즌 정도는 ‘과연 내가 입고 싶은 옷은 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감’으로 컬렉션을 완성했다. 네 번째 시즌부터는 내가 아주 기본적인 아이템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니트, 셔츠, 트렌치 등등. 하지만 이런 기본 아이템들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아이템으로 변신시키는 게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흔히 말하는 ‘사카이 스타일’, 가령 앞뒤와 안팎에 반전이 있거나, 혹은 여러 소재의 패치워크 등으로 굳어졌다.

VK 복잡한 옷이 꽤 많은데 스케치를 직접 하나?
AC 그림 그리는 데는 재주가 없어 남들이 보면 비웃을까봐 아주 작게 스케치를 한다. 15년 전부터 스케치를 위해 사용하는 종이가 있는데, 줄 그어진 방식이 마음에 들어 계속 복사해서 쓰고 있다. 옷을 보면 알겠지만, 재단이 무척 복잡하다. 스케치하고 원단 고르는 과정에서 재단사와 끊임없이 상의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매 시즌 테마를 정하는 일이다. 물론 시즌마다 특별한 테마를 내세운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먼저 정한 뒤 시작한다.

VK 컬렉션 테마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
AC 굳이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을 찾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도 하는데, 아이와 쇼핑하다가도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VK 레이 카와쿠보, 준야 와타나베와 함께 일한 경험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AC 두 사람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다. 꼼데가르쏭에서 일하는 동안 디자이너의 존재 가치는 독창성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배웠다. 사카이 외에 다른 곳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컬렉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또 디자이너의 역할은 옷을 디자인하는 것뿐 아니라 브랜드 역시 디자인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VK 브랜드 사카이를 디자인한다는 건 어떤 것인가?
AC 15년 전에 1인 회사로 시작해 지금도 독립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몇백 명이 일하는 거대 패션 브랜드와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일반 패션 브랜드들의 성장 과정, 즉 기성복으로 시작해 가방과 구두를 론칭하는 수순을 밟지 않고 나만의 방식을 모색해왔다고 보면 된다.

VK 지난 1월에는 첫 남성복을 선보였다.
AC 여성복은 100%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면 되지만 남성복은 그럴 수 없기에 힘들었다. 하지만 여러 소재를 조화시키는 기본 아이디어는 여성복과 흡사하다. 사실 디자인할 때 특정인을 상상하거나 이미지화하지는 않는다. 사카이 옷을 입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 누가 입어도 상관없다.

VK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나?
AC 솔직히 말하면 내 옷장에는 사카이와 ‘사카이 럭(Sacai Luck)’밖에 없다. 사카이럭은 세컨드 라인은 아니지만 아주 기본 아이템들로 구성된, 말하자면 란제리 라인이나 마찬가지다. 빈티지 티셔츠나 스웨터를 제외하곤 내가 직접 만든 옷만 입는다. 아, 반스 스니커즈를 자주 신는다.

VK 어릴 때부터 꼼데가르쏭의 아방가르드한 의상을 즐겨 입어 엄마가 함께 외출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들었다.
AC 열입곱 살 때 인어공주를 연상시키는 롱스커트를 직접 만든 적이 있다. 안쪽에 프릴이 잔뜩 달려 있었다. 어쩌면 이번 컬렉션과 비슷할 수 있다. 그 스커트를 입고 엄마와 함께 걸어가면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무척 싫어하셨다. 요즘도 함께 다니는 것을 약간 꺼리신다. 하하!

VK 어릴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나?
AC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어느 일본 디자이너가 TV 광고에 나온 것을 보고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됐다. 막연하게 옷을 좋아하긴 했지만, 패션 디자이너란 직업을 알게 된 순간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고 해두자. ‘리카짱(일본 바비 인형)’에게 옷을 만들어 주며 꿈을 키웠다.

VK 딸도 패션에 관심이 많나?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면 지지해 줄 건가?
AC 엄마가 스케치하는 모습을 늘 봐서인지 흥미를 보이고 있긴 하다. 구체적인 얘기를 한 적은 없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해도 무조건 사카이에 입사시켜주진 않을 것이다. 하하.

VK 일하지 않을 땐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
AC 아직은 일이 너무 좋아서 일요일이 싫을 정도다. 휴일에 집에서 쉬는 동안에도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디자인팀에 마구 쏟아내기 때문에 스태프들이 당황하곤 한다.

VK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
AC 좀더 많은 사람들이 사카이를 좋아하고 즐겨 입어줬으면! 먼 훗날, 아베 치토세는 잊혀지더라도 사카이는 영원히 기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