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보이

화려한 서바이벌 오디션쇼에서 사라졌던 그 소년이 다시 나타났다. 타고난 리듬감과 미성으로 음악을 신나게 즐기는 일이 천성인, 열일곱 살 유승우다.

노란색 조끼와 안에 입은흰색 조끼는 길 옴므,회색 팬츠는 아이러니 포르노,신발은 엠비오.

유승우를 소개한다. 지난해 <슈퍼스타K 4>를 위해 천안 성환읍에서 올라온 소년은 ‘동안’이지만 알만한 건 다 아는 나이, 열일곱 살이다. ‘천안의 명물인 호도과자는 확실히 촉촉해서 좋다’는 고교 2년생. 승우는 <슈퍼스타K 4> 첫 출연 때 교복을 입고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석봉아’를 당차게 불러, 아는 사람만 알던 그 노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게임에 질려 기타라는 악기를 잡아본 지 1년도 채 안 됐을 때 일이다. 심사위원 이승철은 ‘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 그냥 그대로 음악하면 된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지금, 승우는 미니 앨범 <첫 번째 소풍>을 발표하고 정말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실용음악학원 대신 속셈학원에 다니며 가수를 꿈꾸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소년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 하나 할게요. 저 합기도 3단이에요.” 승우가 이렇게 ‘특종’을 내준 이유는 ‘기자 누나’의 팔랑거리는 통 넓은 바지를 보고 합기도 도복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저보고 나이보다 많이 어려 보인다고들 해요. 그래서 말 한마디를 해도 떼 쓰는 어린아이처럼 보이지 않으려 신경 쓰는 편이에요. ‘우리 이거 해요’가 아니라 ‘이거 하면 어떻겠어요?’라는 식으로 정중하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승우는 어른인 척 하는 어색한 말투를 쓰진 않는다. 노래 잘해서 소름 끼치게 만드는 10대들은 <보이스 코리아 키즈> 같은 프로그램에도 꽤 등장한다. 그러나 재능 있는 아이들 중 다수가 어린 외모와 전혀 매치가 안 되는 어른의 창법을 쓰거나 잔망스러울 정도로 어른처럼 구는 걸 생각하면, 승우의 매력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그 나이와 어긋나지 않는 목소리와 태도로, 다만 음악을 즐기는 일이 천성이라는 것을 누구나 느끼게끔 해주는 소년.

첫 미니 앨범엔 승우의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타이틀곡 ‘헬로’나 가장 처음 공개한 곡인 ‘너와 나’ , 현재 서울에서 같이 사는 작곡가가 이별 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직접 노랫말을 쓴 ‘한심한 남자가 부르는 노래’ 등엔 ‘기분 달래주는 음악’이란 부제를 붙여도 어울린다. 노래들은 대개 단조롭지만, 그래서 타고난 리듬감과 미성이 더욱 부각된다. “조용필 선생님 노래와 같은 제목의 타이틀곡이에요. 이 노래가 정말로 ‘헬로’하면서 다가가는 듯한 곡이기 때문에 제목을 그대로 뒀어요. 그 곡은 영어로 ‘Hello’이고, 제 곡은 한글로 ‘헬로’라는 나름의 차이가 있답니다.” 앨범을 만들면서 승우는 ‘앞으로 다양한 장르의 곡을 해보고 싶다’는 것과 ‘내가 쓴 노래도 담고 싶다’는 의견을 기획사에 냈다. “제 롤모델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제이슨 므라즈는 어쿠스틱을 하면서도 산뜻한 노래, 힙합 풍의 노래 등등이 다 가능하거든요. 김건모 선배님을 봐도 댄스, 발라드, 재즈를 다 하세요. 그러면서도 이분들의 노래는 하나하나가 다 좋고, 그분들과 어울리죠.”

아직 어린 승우가 특별한 점은 자기만의 특징적 스타일(‘바가지 머리’와 눈웃음 짓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 <슈퍼스타K 4>가 방송 중일 때, <SNL>의 김슬기가 노래 부르는 승우를 흉내 냈던 것도 그 점 때문이다. “그거 보고 좋았어요. 제 신곡으로도 많이들 흉내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흐흐.” 승우에겐 ‘연습’이란 개념도 따로 없다. TV를 보면서도기타를 안은 채 줄을 튕기고, 흥얼거리고,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 부른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줄 아는 음악이 대중과 스스럼없이 통하게 된 지금의 상황도 다행이다. 승우의 앨범이 나오기 직전, <슈퍼스타K 4> 우승자인 로이킴은 싱글 ‘봄봄봄’을 발표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 불렀다. 어쿠스틱 음악을 하는 가수들의 나이대가 어려진 셈이다.

교복을 벗어나기도 전 집을 떠나 음악 시장으로 뛰어들었지만, 승우는 요즘 행복감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 얼떨떨한 감정이나 급작스런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는 털털한 소년 특유의 무심함으로 비껴가는 중이다. 물론 음악을 더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 만큼, 고민은 있다. “저는 노랫말 하나를 쓰더라도 흔한 건 피하고 싶거든요. 가사를 쓸 때 한 단어를 실마리 삼아 거기서부터 풀어나가는데, 주제 하나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버스커버스커 형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 경험을 녹여내야 가사 쓰기가 쉽다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진짜 누군가를 좋아해 보거나 어떤 경험이 있으면 풀어내기가 훨씬 쉬울 텐데….” 생애 통틀어 짝사랑만 두 번 해본 전력으로 사랑 노래를 쓰기엔 한계가 있기에, 승우는 요즘 영화도 열심히 보고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들에도 귀를 기울인다.

웃고, 울고, 긴장하고, 경쟁하던 쇼가 막을 내리고, 사라졌던 그 소년이 다시 나타났다. 할머니를 따라 경로당에서 재롱잔치를 하던 아이의 꿈이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요즘이다. “저한테 가수는 아주 높은 존재예요. 그래서 제 입으로 가수라고 소개하면 약간 민망하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의 저를 보면, 저 제법 가수 같아요.(웃음) 사람들이 저를 떠올렸을 때 ‘좋은 음악, 좋은 사람’을 입에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