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초월성을 지닌 미니멀 주얼리

과감하고 거대한 커스텀 주얼리의 시대가 가고, 조용하고 얌전한 주얼리가 돌아왔다. 그게 진짜든 가짜든, 현재 가장 현명한 투자는 시대 초월성을 지닌 미니멀 주얼리다.

새끼 손가락의 반지는 알리칸이코즈(at 10 Corso Como),약지의 반지와 크리스털 장식펜던트 목걸이는 데이드림,엄지의 못 모양 반지는 까르띠에,나머지 반지들은 미네타니, 스퀘어프레임 팔찌는 알리칸 이코즈,문자가 새겨진과 뱅글과맨 아래 체인 팔찌는 미네타니,진주 장식 18K 골드 체인 팔찌는타사키, 나머지 뱅글들은 생로랑.

로코코 시대의 화려함을 재현한 드롭 귀고리, 야구공만한 진주 팔찌, 어깨를 뒤덮는 거대한 체인 초커, 예술적인 매력이 넘치는 크리스털 뱅글… 디자이너들이 예쁘게 가꾼 패션 무대에서 익숙한 커다란 주얼리들이다. 여전히 패션쇼 컨셉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거리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그들. 그런데 우리 여자들은 예전만큼 화려하고 큼지막한 주얼리에 의존하진 않을 조짐이다. 한동안 열광하던 큼직하고 컬러풀한 주얼리에 더 이상 마음이 끌리지 않으니 말이다(‘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옛말은 전혀 상투적이지 않다. 적어도 패션에서만큼은!). 최근 까르띠에의 저스트 앵 끌루와 러브 뱅글 두 가지를 놓고 망설이다가 좀더 미니멀한 러브 뱅글을 선택한 멋쟁이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루시에의 작고 심플한 로즈 골드 목걸이도 ‘저지르고’ 말았다. “주얼리를 새로 장만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유행을 타지 않는 심플한 디자인이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가 하면 셀레브레이션 링을 즐겨 착용하는 어느 헤어 스타일리스트는 최근 아주 가느다란 화이트 골드 링을 하나 더 마련했다. “반지를 끼고 있는 것조차 깜박할 정도 가볍고 편해요. 물론 다른 링들과도 잘 어울리기도 하죠.”

자, 이쯤 되니 ‘빅앤볼드’에서 ‘미니멀 앤 심플’ 쪽으로 유행이 이동되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나! 패션의 새로운 경향을 설파하는 셀린의 피비 파일로가 주얼리의 새로운 경향에도 앞장서고 있다. 칼더 작품으로 보일 정도로 미니멀한 셀린 가을 컬렉션의 목걸이와 팔찌는 지난 시즌 두툼한 가죽으로 매듭지은 팔찌와 영 딴판이다. 새로운 흐름을 몰고 오는 또 한 명의 위인, 에디 슬리먼 역시 기존 이브생 로랑의 과감하고 화려한 주얼리들을 죄다 없애고, ‘버메일’이라는 주얼리 라인을 새로 론칭했다. 건축적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뱅글 과 반지는 세련된 블랙 의상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르 스모킹이나 블랙 모슬린 블라우스처럼, 생 로랑 옷장에 꼭 필요한 아이템입니다”라며 생 로랑 하우스는 전한다. “남녀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여러 개를 함께 레이어드하면 더 근사하죠.”

이렇듯 주얼리는 피비 파일로, 에디 슬리만처럼 우리 시대 새로운 패션 리더들의 ‘뉴 디렉션’에 따라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라프 시몬스 역시 디올을 위해 작은 구슬 두 개로 만든 귀고리를 선보였다. 2009년 봄, 질 샌더 컬렉션을 위해 다 미아니와 함께 미니멀한 진주 귀고리를 선보였던 그는(드레스 한 벌에 맞먹는 가격이었지만 대히트!) “때로는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가장 놀라운 결과물이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하며, 새로운 주얼리를 소개했다. 또 발렌시아가가 선보인 손가락 관절에 착용 하는 골드 링 세트는 올봄 멋쟁이들 사이에서 인기 절정! 이번 시즌을 위해 철조망에서 영감 받은 심플한 메탈 팔찌 역시 마찬가지다.

작고 심플한 골드 주얼리 라벨, 수엘의 디자이너 이수진은 주얼리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실용적인 감각을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심플한 주얼리들은 언제 어디서든 무난하게 어울립니다. 크고 화려한 맛은 부족해도 볼수록 매력이 넘치지요.” 발 빠르게 패션 트렌드를주얼리에 대입하는 미네타니 디자이너 김선영도 최근 주얼리 디자인에서 힘을 뺐다고 전한다. “사이즈가 크더라도 디테일은 줄였습니다. 사실 요즘에는 미니멀 룩이 인기잖아요. 그런 옷과 잘 어울리는 주얼리를 고객들이 찾더군요.”

샤넬이나 랑방처럼 ‘비교적’ 접근성이 있는 가격대의 주얼리를 엔트리 아이템으로 선보이는 패션 하우스들은 어떨까? 그들이 앞다퉈 선보이는 주얼리는 여전히 크고 디테일이 화려하지만, 제니퍼 마이어, 이렌 뉴워스, 파멜라 러브 등 요즘 핫한 주얼리 디자이너들의 제품들은 하나같이 얌전하면서도 ‘쎄’지 않다. 멀티숍 10 꼬르소꼬모 서울에서도 미니멀한 주얼리가 인기다. “나사 모티브를 이용해 미니멀하게 해석한 톰 빈스 주얼리가 요즘 인기예요. 간결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오렐리 비어만의 레이스 시리즈도 인기죠.”

한동안 비대해진 주얼리가 이렇듯 거품을 싹 뺐다. 미니멀과 모던록 스타일이 되돌아온 것이다. 대신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사이즈는 작아진 반면 가격은 더 높아졌다는 것. 물론 파인 주얼리 대신 메탈ㆍ실버 등 세련된 패션 주얼리를 선택하면 되지만 말이다. 다만, 이런 작고 심플한 주얼리는 스타일링에서 크게 힘을 발휘하진 못한다. 뭔가 악센트를 주고 싶다면 크고 화려한 주얼리가 훨씬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요즘 대세인 이어커프와 손가락 관절에 끼는 너클링, 손가락 두 개에 끼는 반지는 어떨까? “파인 주얼리가 가끔 고리 타분할 때가 있어요. 너클링처럼 록 스타일의 반지로 포인트를 주는 것도 좋습니다.” 스타일리스트 한연구는 미니멀한 주얼리를 즐기되살짝 터프한 느낌을 가미하라고 조언한다. 발렌시아가의 너클링처럼 레포시의 주얼리(10 꼬르소 꼬모 서울에서 판매 중인 관절을 따라 구부러지는 반지와 손가락 두 개에 끼는 반지 등)도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다. “멋쟁이 주얼리 디자이너 가이아 레포시처럼 지나치게 꾸민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시크한 분위기를 완성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