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엄과 타탄, 상반된 매력의 체크

봄을 지나 여름부터 다가올 가을까지, 단 하나의 무늬를 골라야 한다면? 두말할 필요없이 ‘체크’다. 산뜻하고 화사한 매력의 깅엄, 고전적이고 대담한 타탄. 상반된 매력의 체크가 대세다.

하늘색 깅엄체크 셔츠 드레스와스커트로 연출한 깅엄체크검정 드레스는 프라다(Prada),블랙 팬츠는 샤넬(Chanel),보석 장식 가방과 뱅글은미우미우(Miu Miu), 흰색 오픈토슈즈는 마르니(Marni).

장면 하나. 푸른 하늘과 다홍색 등대를 배경으로 엄마의 외도를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소녀가 있다. 클로즈업되자 나타나는 건 소녀의 다홍색 깅엄체크 원피스. 장면 둘. 사랑에 눈 뜬 10대 꼬마 아이들이 강가에서 ‘프렌치 키스’에 대해 이야길 나눈다. 이때 소녀의 옷차림은 발칙하게도 하얀 브라 톱과 체크 팬티! 영화 <문라이즈 킹덤>에서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소녀 ‘수지’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를 담은 또 다른 영화 <플립>에도 모든 인물이 체크를 입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채로운 체크 룩이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건 여주인공 ‘줄리’가 동그란 피터팬 칼라의 빨간색 타탄체크 원피스를 입고 메리 제인 슈즈를 신은 채 오매불망 짝사랑하는 옆집 소년 브라이스 앞에 섰던 장면이다.

영화 속 첫사랑에 빠진 소녀들이 마음을 맞춘 듯 체크를 선택했다면, 이번 시즌 패션계에서도 체크, 그 가운데에서도 깅엄체크와 열렬한 사랑에 빠진 인물이 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하얀색 러플 장식 깅엄체크 원피스를 입은 모델들을 봄과 여름 사이의 광고 캠페인에 등장시켰다. 청량하면서도 고혹적인 광고 덕분에 깅엄체크는 유행의 최전방에 사뿐히 안착. 프라다 여사의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서 열린 남성복 컬렉션에서도 모노톤 니트와 팬츠 위에 짙은 파랑 깅엄체크 코트를 매치하며 깅엄체크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음을 공공연히 알렸다. 가을 컬렉션에서도 깅엄체크의 활약이 포착됐다. 데이비드 린치와 알프레도 히치콕의 여주인공처럼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불온한 의상 곳곳에 파스텔톤의 깅엄체크 원피스와 코트를 마련해 산뜻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하늘색 깅엄체크 원피스를 입고 동화 세계를 누비던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가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레이더망을 2013년 봄 런웨이로 되돌려보면 이곳에서도 깅엄체크 예찬론자들이 눈에 띈다. 여름 휴가를 앞두고 깅엄 체크를 목가적인 분위기로 연출하고 싶다면? 알렉시스 마빌의 깅엄체크 원피스를 눈여겨보자. 깅엄체크와 다른 무늬들을 섞어 믹스매치를 즐기고 싶을 땐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와 마르니가 좋은 예가 된다. 깅엄체크만으로 강렬한 포인트를 주고 싶다면 큼지막한 격자무늬를 활용해 깅엄체크의 진수를 선보인 루이 비통 컬렉션이 정답이다.

셀럽들의 깅엄체크 사랑은 또 어떤가! 빈티지의 여왕 클로에 셰비니 역시 오프닝 세리머니 협업 컬렉션을 위해 깅엄체크가 지닌 정갈하면서도 복고적인 매력을 멋지게 활용했다. 미우미우의 베이비돌 원피스로 차려입은 알렉사 청은 깅엄체크 덕분에 덕분에 더없이 귀여운 매력을 뽐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깅엄체크로 깊은 인상을 남긴 여배우는 브리짓 바르도. 그녀는 쟈크 샤리어와의 결혼식에서 곱디 고운 분홍색 깅엄체크 원피스를 선택해 화제가 됐다. 세기의 섹스 심벌도 연인 곁에서는 순수하고 사랑스럽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깅엄체크를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이 정도면 깅엄체크의 기세가 등등해질 만하지 않나.


재킷, 뱅글, 미니 숄더백, 클러치,워커 부츠 모두 샤넬(Chanel),타탄체크 미니 드레스와검정 양말은 스티브앤요니(SteveJ & Yoni P).


한편, 타탄체크 역시 편애에 가까운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2013 가을 = 타탄체크’라는 공식을 완성했다. 사실 타탄체크의 활약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2012년 12월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열린 샤넬 2013년 공방 컬렉션을 떠올려보시라. 스코틀랜드는 코코 샤넬이 웨스트민스터 공작을 만난 곳인 동시에 트위드와 캐시미어, 니트, 그리고 타탄체크의 나라. 전통적인 빨간색 스코틀랜드 타탄체크 롱 크트를 입은 스텔라 테넌트는 타탄체크의 귀환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보였다. 또 커스텀 주얼리 공방 ‘데뤼’에서 제작한 타탄체크 뱅글과 목걸이 역시 우아한 펑크 룩에 제격이었다. 샤넬의 상징과 스코틀랜드의 전통 유산을 능수능란하게 접목시킨 칼 라거펠트의 시도는 머리를 싸매고 가을 컬렉션을 준비하는 디자이너들에게 꽤 유용한 힌트가 된 듯하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 그런지에서 영감을 받은 생로랑의 베이비돌 원피스와 낙낙한 실루엣의 셔츠부터 검정 가죽, 화려한 금 장식으로 글램 펑크 룩을 완성한 파우스토 푸글리지의 킬트 스커트, 지방시의 빨강과 검정이 뒤섞인 블라우스, 제복과 스쿨 룩 사이의 경계를 오간 모스키노의 더플 코트 등은 올가을 체크 유행에서 중요한 위치에 올랐다. 각양각색, 개성만점의 디자이너들을 하나로 아우른 키워드가 빨강 타탄체크. 라거펠트가 앞에서 끌고 뒤에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전시 <Punk: Chaos to Couture>가 든든하게 받쳐준 펑크, 그 중에서도 브리티시 펑크 열풍이 타탄체크의 전성기를 이끌어 낸 셈이다.





서울 패션 위크에서도 타탄체크의 흥행 열풍이 감지됐다. 선두에 나선 건 푸쉬버튼과 스티브앤요니 무대. 푸쉬버튼의 박승건은 빨간색 타탄 체크를 80년대 파워 드레싱을 연상시키는 오버 사이즈 코트와 롱 드레스와 짝을 맞춰 극적이고 클래식하게 연출했다. 또 스티브앤요니는 후드집업과 포켓 셔츠, 러플 드레스로 펑키하게 해석했다. 그리고 매 시즌 유행의 핵심을 표현하는 2013 F/W <보그> 컬렉션 북 표지도 눈여겨보시길! 패션 애호가들이라면 타탄체크 유행을 감지했을 것이다.

민첩하게 유행을 캐치하는 SPA 브랜드 역시 체크 열풍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유니클로에는 파랑, 분홍, 연두 등 산뜻한 색감의 깅엄체크셔츠와 반바지들이 가득하다. 또 자라에는 드리스 반 노튼 풍의 타탄체크 셔츠와 정갈한 노랑색 깅엄체크 코트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곧 여름 옷들이 세일과 함께 팔려나간 자리에는 빨강 타탄체크로 채워질 것이다. 수줍고 사랑스러운 깅엄체크를 선택할 것인가, 클래식한 듯 자유분방한 타탄체크를 고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