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목소리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듯이 노래하는 투개월의 김예림. 그 매력을 뽐내게 해줄 튼튼한 날개를 달고 그녀가 솔로 앨범을 냈다. 이제 유혹적인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보여줄 차례다.

더블버튼 재킷은 김서룡 옴므,와이드 팬츠는 롤랑 뮤레(at Detail),브라톱은 알렉산더 왕 T(at Detail),목걸이는 디올, 반지는 프레드,스틸레토 힐은 마놀로 블라닉.

‘투개월’은 윤종신이 이끄는 ‘미스틱 89’의 첫 소속 가수다. 가수와 제작자, 그들이 만나기까지의 간단한 이야기는 어느 남녀가 돌고 돈 끝에 재회하는 이야기와 닮았다. 2011년 <슈퍼스타K 3>가 끝난 후 투개월을 잡으려는 기획사 들이 몰려들 때, 윤종신은 별달리 손짓하지 않았다. 그는 투개월이 금방 큰 기획사로 영입될 줄 알았나 보다. 시간이 흘러 투개월이 아직 소속사를 정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만나자고 한 이도 윤종신이다. 어느 중식당 테이블 위에, 한 신인 가수가 나아가면 좋을 음악적 방향과 미래가 펼쳐졌다. 투개월의 보컬인 김예림이 기억하기에 그건 ‘구체적이진 않고 추상적인 이야기’였지만, 시작하는 신인이 믿고 마음을 주기엔 충분한 대화였다. 사실 <슈퍼스타K 3>가 방송 중이던 때부터 투개월을 향한 윤종신의 눈빛은 남달랐다. ‘당연히 좋은 사람이 채가겠지’라고 여기던 제작자와 기대 받는 신인 가수는 결국 다시 만났다.

김예림은 목소리가 유혹적인 보컬이다. 윤종신은 보컬에 대해 말할 일이 있을 때면 늘 ‘희소성 있는 목소리’를 강조했다. 김예림의 독특한 보컬을 두고 쏟아진 여러 반응 중 으뜸은 ‘인어가 사람을 홀리는 것 같은 목소리’일 텐데,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듯이 이완된 그 목소리엔 명료한 개성이 있다. 6월 중순, 김예림의 솔로 앨범이 나온다. 기타를 치며 조화로운 목소리 궁합을 이뤄내는 멤버 도대윤이 학업 때문에 미국에 있기에, 김예림 혼자 먼저 선보이는 앨범이다. “앨범명이 <a Voice>예요. 처음 발표하는 앨범이니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목소리로 이것저것 표현해보는 정도’를 담고 싶었죠. 제 색깔이 뭐라고 말하기엔 너무 이르잖아요. 그래서 장르나 정서 같은 것은 모호한 채로 뒀어요. 제 목소리 자체가 정서일지도 몰라요.”

앨범 발표를 앞두고 먼저 공개된 노래에서 김예림은 미세한 떨림을 담은 인상적인 음색을 들려준다. ‘컬러링’은 검정치마가 작사, 작곡한 곡이다. 오래전에 태어난 이 곡은 한때 검정치마가 데모곡으로 녹음한 버전이 떠돌았으니 검정치마 팬들이라면 ‘앗!’하고 놀랐을 곡이다. “프로듀싱할 때 많은 걸 요구하진 않으셨어요.(웃음) 리드미컬하게 박자가 살아야 하는 부분에서만 포인트를 짚어주고, 그 외엔 제가 알아서 하게 놔두셨죠.” 요즘엔 미니 앨범을 내는 가수라도 그 중 한 곡을 골라 ‘선공개’ 하는 경우들이 있다. 김예림의 프로듀서이자 제작자인 윤종신은 그 자신이 ‘월간 윤종신’으로 매달 곡을 내며 가요계의 빠른 템포를 체득했을 터. 투개월이 같이 부른 ‘넘버원’은 ‘컬러링’보다 열흘 먼저 공개됐다. ‘투개월 결성 2주년’을 기념하는 이 곡은 페퍼톤스의 신재평이 작사, 작곡했다. 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뮤직 비디오란 이런 것이다. 김예림과 도대윤이 미국에서 팀을 결성한 순간부터 <슈퍼스타K 3>에 나가기 전까지 주고받았던 페이스북 쪽지들(“안녕! 시간날 때 노래 연습같이 해줄 수 있어?” “이 노래 한번 들어봐, 어떤 사람이 커버한 건데 우리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될 것 같아” 등의 대화들)로 팀의 귀여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뮤직 비디오다.

오디션 참가를 결심하기 전까지, 김예림은 누군가의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기억이 거의없다. “남들은 몰라도 저 혼자선 나름 연습을 했어요. 미국에선 차고 같은 공간에서 혼자 노래 불렀죠.” 사실 김예림은 특별히 어떤 음악과 가수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음악적 기원’ 같은 것들을 추적하는 대화를 하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질 뿐이다. 그녀는 스스로 말을 추상적으로 하는 편이라고 인정하면서, 사소한 것 같지만 소중한 기억 하나를 건져냈다. “어릴 때 캐나다에서 잠깐 유학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같은 반 친구의 노래를 들었는데, 정말 신기하게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그 노래가 제 마음에 들었어요. 그 아이를 통해 저도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불러봤죠. 친구가 잘했다고 말해줬는데 그때 기억이 남아 있어요.” 사춘기로 접어든 예민한 소녀가 또래의 노래로 인해 더욱 음악적인 눈을 뜬 걸까? 어쨌든 김예림은 예술 쪽으로 더듬이가 기우는 소녀였고, 마침 미국에서 사귀게 된 친구들이 사진을 찍거나, 미술을 하거나, 글을 쓰는 아이들이었다.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 해에 김예림은 <슈퍼스타K 3>에 나갔다. 타지에 적응했을 때쯤 방송을 타 화제의 인물이 됐고, 이젠 어엿한 가수로 노래를 부른다.

사진 촬영을 하는 김예림에게선 기대를 뛰어넘는 ‘모델 포스’가 흘렀다. 그 모습이 앳된 소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좀 놀라기도 했지만, 그녀의 보컬이 가진 몽롱한 매력을 느끼게 해준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솔로 앨범엔 윤종신과 검정치마와 신재평 외에도 이상순, 조정치, 하림, 밴드 ‘메이트’의 정준일 등이 참여했다. 이만하면 김예림이란 신인 가수가 가진 목소리의 매력을 뽐내게 해줄 튼튼한 날개를 단 셈이다. “제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뮤지션들이에요. 윤종신 선생님에 대한 믿음도 크죠. 모든 걸 아우르면서 이끌어줄 멘토가 필요했거든요. 지금은 <슈퍼스타K 3>에 나갈 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에요. 그동안 저도 성장했고, 세상에서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도 달라졌어요.” 김예림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은 예전 <보그>에 실렸던 기사 일부분을 찍은 사진이다. 2011년 연말, ‘올해의 남녀 보컬리스트’를 묻는 앙케트에 어느 평론가가 이렇게 답했다. “남자는 없다. 여자는 투개월의 김예림.” 그 문구를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는 김예림이 이제 본격적인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차례다. 윤종신이 김예림과 투개월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다듬으며 고심의 나날들을 보내는 사이, 김예림의 목소리도 어느 정도 익었다. 자꾸맴도는 그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