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얼굴을 드러낸 케이티 페리

최근 케이티 페리에 관한 소식이라면, 이혼 후 뮤지션 존 메이어와 만난다는 가십성 기사가 대부분이다. 루머 뒤편에서 맨얼굴을 드러낸 그녀를 만났다. 화끈하고, 유쾌하며,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케이티 페리의 나날.

아이보리 레이스 드레스는블루마린(Blumarine), 그 위에입은 레드 새틴 드레스는잭 포즌(Zac Posen), 반지는바네사 리안(Vanessa Lianne).

산 이시드로 랜치(San Ysidro Ranch)는 유명 인사들이 몰려드는, 서던 캘리포니아의 와인 컨트리에 위치한 호화로운 은신처다. 이곳으로 케이티 페리(Katy Perry)가 등장했을 때, 그녀는 빨간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펜디를 타고, 본드걸처럼 으르렁거리며 과격하게 주차했다. 왜 그녀는 마세라티를 샀을까? “포르쉐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 이 차는 렌트한 거예요.” 케이티 페리는 보스이자 매니저처럼 행동한다. 그녀는 이미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 오늘 일정을 꼼꼼하게 짜뒀다.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두 시간씩 하이킹을 하는 그녀와 산책을 할 것이다. 그 다음엔 산타 바바라에 있는 타코 전문 식당으로 간다. 오프라 윈프리와 마사 스튜어트도 칭찬한 곳이다. 식사 후엔 선인장 정원인 로터스랜드(Lotusland)의 개인 투어가 기다린다. 이곳은 그녀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는 중요한 장소다. 그녀의 집은 뉴욕과 LA에 있다. 그러나 산타 바바라는 페리의 고향이다. 그녀가 바쁜 와중에도 서던 캘리포니아를 위해 반쯤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것이 아주 사랑스럽고 귀엽다.

레드 훅의 농장 배경과잘 어울리는 꽃무늬 크로셰 드레스는발렌티노 오뜨꾸뛰르(ValentinoHaute Couture).

케이티 페리의 요즘 바쁜 일과 중 하나는 세 번째 앨범을 만드는 것이다(포브스에 따르면 그녀의 다른 앨범들은 4,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앨범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앨범 제작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말도 곧 취소했다. 모든 게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심스러웠다. “앨범을 녹음하는 중간중간 스스로 의심을 해요. 나는 그냥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내 노래 중 7곡이나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할 가치가 있다고 믿도록 여론 조작을 한 걸까? 그러다가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 곡을 쓰기 시작해요. 그럼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신감이 다시 용솟음쳐요. 그 마음은 항상 내 안에 있고,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아무도 그것을 빼앗아갈 수 없다는 걸 상기합니다. 그건 제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것이고, 평생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공들여왔으니까요.”

내일이면 케이티 페리는 최신판 스머프 영화(<개구쟁이 스머프 2>, 한국에선 8월 1일 개봉 예정) 홍보를 위해 멕시코 칸쿤으로 떠난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스머페트’ 목소리를 담당했고, 자신의 연기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주엔 <보그> 표지 촬영이 있다. 그 결과물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사진일 것이다. 그 후엔 자신의 세 번째 향수를 론칭하기 위해 뉴욕으로 간다. 향수 이름은 ‘킬러 퀸(Killer Queen)’. 어렸을 때부터 퀸을 좋아했고, 프레디 머큐리가 정말 여성을 잘 이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다. 그러곤 펑크 시대를 기념하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보그> 갈라 파티에 참석할 예정이다. 돌체앤가바나 의상을 입을 거라고 살짝 귀띔해줬다. 그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현장 방문을 하고 얼마 전에 돌아왔다. 도움이 필요한 두 지역 중 한 곳을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녀는 르완다(에이즈 환자 관리에 더 중점을 둔 지역)가 아닌 마다가스카르(여성들과 아이들 문제 관리에 더 중점을 둔 지역)를 선택했다. 마다가스카르의 절대 빈곤을 알고 놀랐기 때문이다. 이 방문은 일종의 테스트였다. 그녀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살펴볼 수 있는 테스트. 친선대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케이티 페리가 수줍어 하는 아이들과 주먹을 부딪치며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담긴 공식 영상자료를 보니, 그녀의 파워풀한 인지도가 유니세프에 충분히 유용할 것 같다.

케이티 페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녀를 만나기 몇 분 전에야 다급하게 일제 녹음기를 구입했는데, 이놈의 녹음기는 갑자기 망가진 내 원래 녹음기와 작동 방법이 전혀 달랐다. 그녀는 녹음기를 집어 들고는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씩씩하게 버튼들을 누르더니 “이젠 돼요”라고 말했다. 내가 녹음이 잘 되고 있나 불안해 하는 기색을 눈치 챘는지, 몇 번이나 녹음기를 가져가 작동 여부를 체크했다. 그녀는 내 작은 딸보다 어린 스물여덟 살이다. 그러나 실행력 면에선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녀 이외에 내 녹음기에 대한 통제권을 가졌던 유일한 인터뷰이는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뿐이었다. 그땐 녹음기를 들고 있던 내 팔이 그의 거대한 가슴에 닿지 않아(그가 너무 뚱뚱해서), 그가 그것을 직접 들고 있어야 했다.

타코 식당에 들어선 후, <보그> 팀과 케이티 페리는 서로 계산서를 먼저 차지하겠다고 싸웠다. 케이티 페리가 이겼으니 계산하는 건 그녀 몫이었다. 내가 홈메이드 타코를 아주 만족하는 표정으로 먹자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어렸을 때 서핑과 스케이트보드 동호회에서 활동했어요. 하루 종일 소금물을 들이켜고 나서 이 타코를 먹었죠.” 그녀는 창밖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식사를 한 후 들르던 중고매장이에요. 저기서 드레스를 샀죠.” 그녀는 타말리(으깬 옥수수와 다진 고기를 옥수수 껍질에 싸서 찐 멕시코 요리)를 먹어보라고 졸랐다. 그 축축한 파이 껍질처럼 생긴 것을 먹어보니 아주 맛있었다. “이곳에 살 때, 일요일이면 이걸 우리 집에 주고 가던 여자들이 있었어요. 교회에 다니는 히스패닉 여자들이었어요. 정말 좋았는데. 특전 중 하나였죠.”

케이티 페리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며 슬랩스틱 개그도 할 줄 알고, 그러다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유치한 농담과 어른스러운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러셀 브랜드(Russel Brand)가 1분 30초 만에 그녀에게 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러셀 브랜드는 그녀의 전 남편이다. 4년 전 그녀가 브랜드를 만났을 때, 그는 ‘마력을 지닌 남자’였다고 한다. “그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에요. 그와 결혼할 당시 저는 사랑에 빠졌어요. 그냥 이렇게만 말할게요. 그가 2011년 12월 31일에 이혼하자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이후 저는 그에게서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어요.”

나는 러셀 브랜드가 ‘나쁜 남자’라는 세간의 평판에 대해 말하면서, 하지만 그의 고국인 영국은 그를 용서했다고 덧붙였다. 왜냐하면… 그가 굉장히 웃기기 때문이다! 케이티 페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그는 아주 웃긴 사람이에요. 그가 어느 스탠딩쇼에서 저에 대한 농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객석에 있다는 걸 모를 때까지는 그랬어요. 당시 저는 그를 놀래켜 주려고 몰래 그곳에 갔거든요. 이혼한 이유 중 일부는 제 책임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투어를 많이 다닌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가능한 한 집에 자주 가려고 노력했어요. 그건 영화를 보면 아실 거예요.” 작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Katy Perry: Part of Me>에는 그녀가 브랜드와 함께하기 전, 함께하는 동안, 그리고 헤어진 후의 시기가 모두 담겨 있다. “특정 장면을 편집하진 않았어요. 원래 그가 등장한 장면은 없었어요.”

울 스웨터와 빨간 가죽 스커트,벨트는 모두 프라다(Prada), 플랫은레페토(Repetto).

둘의 결혼 생활은 14개월 동안 지속됐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동등함을 원했어요. 강한 남자들은 동등함을 원해요. 하지만 그들은 막상 그런 동등함을 획득하고 나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투어 때 보스 기질이 있는 제 성격을 싫어했어요. 그 부분은 정말 마음이 아팠고, 저를 화나게 했어요. 우리 관계가 끝난 것에 대해 많은 책임감을 느꼈지만, 그 후엔 진실을 깨달았어요. 그 진실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그 진실을 제 금고 안에 넣고 잠가 버렸어요. 마음을 비우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건 나 때문이 아니야. 이건 내 능력 밖의 일이야.’ 그리고 저는 그 일에서 벗어났죠.”

나는 그녀가 뮤지션인 존 메이어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다는 인터넷 기사들을 읽었기 때문에, 이혼 후 다른 사람을 사귄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네”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진행 중인가요, 아니면 끝났나요? “끝났어요.” 맙소사. 나는 그녀가 전 남편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전형적인 복수의 방편으로 존 메이어와 만났을 거라는 추측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를 미칠듯이 사랑했어요. 지금도 정말 사랑하고요.” 존 메이어를요? 그것은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었다. “제가 그 관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뿐이에요. 아름다운 마음, 고뇌하는 영혼. 저는 왜 이런 상처 입은 새들에게 끌리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해요.”

케이티 페리도 충분히 나이를 먹었으니 이제 과거의 사건들을 용서하고 잊었을 것이고, 극도로 기이했던 어린 시절(어린 시절의 여러 사건들은 잘 기록돼 있다)에서 충분히 멀어졌을 거라는 추측도 했다. 그러나 과거는 그녀에게 긴 그림자를 남긴 것 같다. 그녀의 부모님은 성직자들로, 월급을 받지 않고 신자들이 모아준 돈에 의지해 살았다. 매를 아끼다가 아이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성경 말씀대로 매를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이다. 케이티 페리는 약간의 강박 장애가 있다. 그건 그녀가 어렸을 때 주변 분위기를 통제하고자 했던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내가 놀란 건, 그녀가 부모님의 떠돌이 생활 때문에 학교에 갈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산타 바바라에서 태어났지만, 서너 살 때부터 약 7번 정도 미국을 순회했다. 열 살 즈음 가족은 영원히 산타 바바라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공교육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영향을 받은 교육을 받길 원했어요. 그래서 저는 팝업 매장 스타일의 어정쩡한 기독교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케이티 페리의 부모님이 멍청하다거나 하자가 있다고 말할순 없다. “아버지는 유쾌한 분이세요. 제 유머 감각도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겁니다. 아주 재미있고 실용적인 농담을 잘 하시죠. 하지만 감정적이고 의욕이 넘쳐요. 어머니 역시 아주 감정적인 분인데, 가족 중에 배짱이 있었던 사람은 아버지예요. 아버지는 약간 펜테코스트파(성령의 힘을 강조하는 기독교 교파)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부모님은 다시 태어났어요. 그래서 그런 제 성장 배경이 약간 남아 있을 뿐이에요.” 그녀는 어머니가 아주 똑똑했다는 말도 했다. “어머니는 버클리에 다녔고, 스페인에서도 공부했어요. 프랑스어를 할 줄 알고, 화가로도 활동했죠. 하지만 지금은 목회 활동에 전념하고 있어요. 아, 기자 생활도 했어요. 바바라 월터스처럼 되고 싶어 했는데.” 왜 교육의 가치를 아는 여성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무시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케이티 페리는 엉망진창이었던 자신의 교육에 대해 아주 관대하다. 비록 자신의 약점을 인식하고, 후회 역시 하고 있지만 말이다.

“저는 읽는 능력에 좀 문제가 있어요.” 그녀는 녹음기를 쓰면서, 그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애쓴다. 현재 부모님은 예전과 달라졌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의 떠돌이 생활에 관대한 정도가 아니라 직접 ‘관여’하고 있다. 페리는 아홉 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십일조 헌금과 공물’을 걷는 동안에 말이다. 그녀는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이 듣고 자란 ‘세속적인 음악’도 거의 듣지 못했다. 집에서 그런 음악은 금기시됐다. 하지만 “부모님 이마에 매일 물을 조금씩 떨어뜨리는 고문”을 한 결과, 마침내 그런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열아홉 살 때는 곡을 쓰고 가스펠 앨범을 녹음했다. 앨범은 팔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조금씩 부상하기 시작했다(케이티 페리에겐 그녀의 일을 봐주고 있는 언니와 뮤지션인 남동생이 있다).

우리가 ‘올드 아도비 하우스’의 길어진 그림자 속에 앉아 있을 때, 어떤 남자가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다. 어두운 곳에 서 있는 젊은 남자. “올랜도 블룸 아시죠?”라고 케이티 페리가 내게 물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눴고, 미란다 커와 그들의 사랑스러운 어린 아들 플린도 인사를 했다. 최고의 위치에 있는 유명 인사들이 만나서 서로 인사를 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건 늘 재미있다. 아기만 빼고 모두 연기를 하고 있었다! 올랜도 블룸 가족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 케이티 페리는 이렇게 말했다. “제발, 지금 당신에게 제 노래를 들려 드려도 될까요?” 우리는 그녀의 차에 탔다. 그녀는 자신의 전화기를 홀더에 걸고 전원을 켰다. 그러자 곧 그녀의 기습적이고 감정적인 목소리에 목이 메어왔다. 차에 탈 때 노트나 녹음기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사를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목소리 톤과 조개 껍질을 귀에 댄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감정만 기억난다. 아주 슬픈 노래였다. 러셀 브랜드에 대한 노래는 아니었다. 상처 입은 또 다른 새에 관한 노래였다.

그녀는 말했다. “제가 과부로 살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뭐라고요? “감정적인 과부 말이에요”라고 그녀가 설명했다. 그리고 생각하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아니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지금은 제 자신과 저의 감정적인 지지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해야 해요. 현재 아무도 사귀고 있지 않아요. 그냥 혼자, 제 침대에서 혼자 지내고 있어요.” 다시, 그녀가 말했다. “혼자 있어도 행복해야 해요. 그리고, 저는 행복합니다.” 케이티 페리는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그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다. “제대로 된 방식으로 다시 사랑받게 될 거라고 믿어요.”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요.”